미래에 나 이렇게 살고 있더라| 우리 사는 이야기
해질녘 | 조회 37 |추천 0 | 2011.12.27. 19:26

다음 아고라 감동 글, 역마차님 글 옮깁니다.

미래에 나 이렇게 살고 있더라

소설이나 영화를 보노라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을만한

어려운 일들이 얽히고설킨 장면이 나온다.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나가겠다는 것인지, 시청자들은 극의 전개에

내심 주판알을 굴려보고 궁금해 한다.

도저히 해답을 찾지 못하고 난감해 할 무렵, 그때 작가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바로 ‘몇 년 후’ 라는 자막을 띄우며 오랜 세월을 훌쩍 건너뛰는 것이다.

젊었던 순돌이 아빠가 늙은 장돌뱅이 임 현식으로 변해 등장하며 다음 장을 이어나가면서

시공을 초월한 빈 공간의 궁금함은 시청자들의 각자 판단의 몫으로 남겨둔다.

불현듯, 1막을 마치고 2막을 여는 내 인생의 ‘몇 년 후’가 궁금해진다.

내가 늙고 병들어 숨을 거두기전 뒤돌아본 내 인생의 여백은 아마 이랬으리라.

# 일 년 후 이맘때.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연일 TV와 언론에서는 새로운 각하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시끌벅적하다. 이제 살림살이 좀 나아지려나. 한줄기 서광을 향해 읊조리며

출근하려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머니가 문 밖까지 배웅을 나오신다.

“애비야. 눈길 조심 해라. 자빠지지 말고”

먼저 출근한 아내와 새벽녘에 등교한 남매 자식들은 넘어지지 않고 잘 갔는지…….

뒤 돌아선 어머니의 뒷모습을 흘깃 보니 허리가 5도쯤 더 굽으신 것 같다.

도로는 온통 빙판길. 어쩌랴 먹고 살려면 출근해야지. 징그러운 눈!

# 십 년 후

정년퇴직 통보를 받았다. 오래 쓴 육신이니 이제 집에서 쉬라며 떠민다.

아직 10년은 끄떡 없이 일 할 자신 있는데 누구하나 손 내밀어 잡아주질 않는다.

내 앞에서 굽실거리던 김 과장.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그래. 지금까지 잘리지 않고 버틴 게 어디냐. 퇴직금 두둑 하겠다 미련 없이 가야지!’

자꾸만 길어지는 꼬리를 자르며 집에 오니 아내와 남매 자식들이 보내는 격려와

위로에 괜스레 눈물이 흐른다.

그래 멋지게 남은 인생 살아 보는 거야!

전 부터 눈치를 살펴오던 녀석들이 이윽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단다.

죽어라 대학 졸업 시켜줬는데 그동안 저축도 못했냐며 호통을 쳤더니

나보고 세상을 휘이 둘러보란다. 전부 한시적인 직장에서 무슨 돈을 벌겠냐며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들단다. 둘러보니 정말 젊은이들의 고통소리가 애끓는다.

퇴직금 톡톡 털어 주고 나서 바라 본 벽에 걸린 영정사진 속의 어머니가,

‘그것 봐라 이놈아. 품에 있을 때나 자식이란다.’ 난 왜 진작 몰랐을까.

# 이 십 년 후

평양으로 이사 간 송 영감과 화상 통화를 했다. 늘그막에 평양 색시를 얻었다나.

그러면서 역시 남남북녀란다. 주책이지만 부럽기는 하다.

한 시간 거리인데 한 번 놀러 오라는 송 영감. 가고 싶어도 달린 혹이 있어

다음을 기약했다.

며느리가 맡기고 간 유치원 손자들을 보던 아내가 지겹다며 얼른 바통 터치하잖다.

어쩌랴. 엊그제 받은 연금 쌈짓돈으로 까까를 사 들고 간다.

정신없게 만드는 녀석들. 살아생전 어머니가 내 자식들을 보시면서

‘죽지 못해 산다’ 라고 하셨던 그 말씀이 지금에야 가슴 저미는 건 왜일까.

왜 나는 자꾸 그 옛날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는지.......

어렵게 경쟁을 뚫고 일하게 된 미화원직에서 또 해고 통지를 보내온다.

첨단 청소장비와 젊은 중, 장년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란다.

담벼락에 붙은 구인 광고를 보다가 허탈한 마음에 쪼그려 앉아 있는데,

“아, 아! 제가 당선되면 노인 복지를 위해 실업수당…….”

또 선거철 인지 앉아있는 내게 사탕 한 봉지를 건네주는 유세 차량.

이젠 다 안다 사탕발림 이라는 걸.

미화원 하며 그나마 마누라 할망구에게 얻어먹던 두 끼 식사. 오늘 저녁엔

얻어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 삼 십 년 후 어느 날.

병상에 누웠다. 몇 달 전부터 이상증세가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 실려 왔다.

더 살고 싶으면 장기 재생을 신청하란다. 로봇 부품 바꾸듯 사람 장기도 재생 시키는

시대니 돈만 주면 만수무강 해 준단다.

누가 그걸 모를까. 돈이 문제지. 지금도 여전히 옛날처럼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하며

여전히 1%가 위세 등등 하다.

각박한 세상 더 살아 무엇 하리오. 자식에게 짐만 되는 삶 이어가서 무엇 하리오.

가물거리는 정신을 돌려 병실 벽을 쳐다보니 달나라 여행 상품 광고가 붙어있다.

어차피 하늘나라로 갈 텐데, 이제 곧 달나라로 날아갈 텐데 뭘…….

저 멀리서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영수야’ 나를 부르신다. 얼른 달려가 말 하리라.

그 옛날 어머니와 살았던 초가집 지붕위에, 그 시절 주렁주렁 열렸던 사랑과 정이

그리워서 달려왔노라고…….

꼭꼭 닫아 건 유리창 틈새를 기어이 비집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생각해보니 또 한해가 간다.

소설이나 영화처럼 나도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는 말을 빌려 쓰면서 생각해 보면

다가올 내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저 오늘 하루도 내곁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겅중거리는 중년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 앞으로의 남은 세월은 내 가족과 더 많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잔잔히 흘러가고 싶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다보면 편안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흐르는 세월을 바라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

저녁 무렵 아내와 거실 창문에 커튼을 달아 꽁꽁 언 세상을 차단하며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 하느라 애를 먹었다. 나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듀 2011!

http://cafe.daum.net/cjsemr/KcX/2316?docid=NcnN|KcX|2316|20111227192624&q=%B9%CC%B7%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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