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선수들이 즐거워야 관중도 즐거워 … 그게 프로 [중앙일보]
지난 23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앞두고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훈련에서 귀네슈 감독이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가시마=뉴시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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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는 이기는 축구를 추구하다가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골문 앞에만 가면 허둥대고, 창의적인 플레이가 부족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귀네슈는 즐거운 축구를 통해 이기는 축구를 하고 있다.
서울은 24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일본 J-리그 챔피언 가시마 앤틀러스를 승부차기로 꺾고 8강에 진출했다. 귀네슈 감독은 “아시아 정상 정복을 위한 최대 고비를 넘어섰다”며 기뻐했다. 정규리그에서도 서울은 8승2무3패로 광주 상무(8승2무2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골득실에서 뒤지지만 승점은 같다. 서울은 올해 K-리그와 아시아 동시 정복을 꿈꾸고 있다.
더 중요한 건 경기 내용이다.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을 노리는 게 요즘 K-리그의 대세다. 재미는 없지만 승점을 쌓기 위한 지루한 노동 같은 축구다. 하지만 서울은 누구를 만나든 맞불을 놓는다. 최근 세 경기에서 서울은 연거푸 역전승했다. 역습에 휘말려 선제골을 내줬지만 최후의 웃는 자는 ‘축구를 즐긴’ 서울이었다.
2007년 부임해 K-리그에서 3시즌이 지났지만 귀네슈 감독이 보기에 아직도 한국 축구에는 이해하기 힘든 게 많다.
한국 축구에서 ‘부상 투혼’은 칭찬받는 미덕이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은 “아파도 이야기하지 않는 건 팀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조금만 쉬면 금세 괜찮아지는 부상도 참고 뛰다가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그는 심지어 “기분이 안 좋아 도저히 뛸 수 없다는 것도 괜찮다. 선수는 감독에게 뭐든지 믿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수들이 축구만 하려 드는 것도 귀네슈의 불만이다. 2월 터키 전지훈련을 마친 후 그는 일정을 조정해 선수들과 이스탄불의 박물관을 견학했다. 귀네슈는 “노래를 잘 부르면 좋은 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스타가 되려면 인간적인 품격도 갖춰야 한다. 축구 선수도 마찬가지다. 쉬는 시간에는 잠만 잘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아픈 사람도 위로하고, 교도소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도 해야 한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으려면 여러 사람의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축구 철학을 밝혔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박지성처럼 성공하려면 축구 기량뿐 아니라 인간적인 깊이도 박지성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귀네슈 감독이 한국 축구를 경험하며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심판을 너무 마구 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심판의 몸에 손을 대고 항의를 한다. 유럽 축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한국 심판들은 좀 더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판을 향한 지도자·선수·팬의 뿌리 깊은 불신은 한국 축구의 뼈아픈 부분이다.
터키인들은 한국인을 ‘칸 카르데쉬’라고 부른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피를 나눈 친구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때 한국을 도왔다는 자부심이 깔린 말이다. K-리그라는 축구 전쟁터에서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귀네슈 감독은 “우리 팀 선수 전원이 국가대표가 되는 게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
곁에서 본 귀네슈 감독은 축구 철학 뚜렷, 말 바꾸지 않아 선수들 무한 신뢰
▶이을용 강원FC 미드필더=터키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귀네슈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터키 사람이 한국 사람과 비슷한 게 있다. 귀네슈 감독도 겉으로는 느긋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혈질이면서 꼼꼼한 사람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주 섬세하고 집요하게 추구한다. 훈련 때 잘 안 되는 것은 몇 번을 반복해 가며 시키곤 한다.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귀네슈 감독이야말로 축구로 시작해서 축구로 끝나는 사람이다.
▶한웅수 FC 서울 단장=축구에 대한 철학이 분명하고 말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선수들도 신뢰한다. 축구 외적인 상식도 풍부한 제너럴리스트다. 얼마 전에는 터키 내 쿠르드족 분쟁에 대해 물어봤는데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대해 청산유수처럼 이야기했다. 터키 정치권에서 그를 러브콜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지난해 말 터키 여당으로부터 트라브존 시장 선거 공천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강명원 FC 서울 지원팀장=밖으로 티를 내지는 않지만 신앙심이 돈독하다. 금요일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이태원에 있는 무슬림 사원에 가서 예배를 본다. 하지만 이슬람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시즌 초 하도 일이 안 풀려 구단에서 고사를 지냈다. 돼지는 무슬림이 금기시하는 동물이지만 귀네슈 감독도 동참했다.
▶김태주 FC 서울 홍보팀장=전지훈련이나 원정경기를 위해 호텔을 구하면 프런트가 제일 먼저 하는 게 감독이 방에서 DVD를 볼 수 있도록 세팅하는 것이다. 뭘 하나 살펴보면 태반은 우리 경기나 상대팀 경기를 보면서 전략을 짜고 있다. 너무 꼼꼼해 아주 세심한 것도 직접 챙긴다. 항상 메모를 하는 게 인상적이다‘(기자와의 인터뷰 때도 귀네슈는 메모를 해가며 대답했다)’.
◆셰놀 귀네슈는 …
- 생년월일: 1952년 6월 1일 터키서 출생
- 주요 경력: 2002년 한·일 월드컵 터키 감독(3위), 2002년 유럽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
- 포지션: 골키퍼
- 선수 이력: 트라브존스포르(1975~87)
- A매치 경력:31경기 출전(77~86)
- 가족: 부인과 2녀(터키 거주)
- 감명 깊게 읽은 책: 시크릿(론다 번 지음)
- 자동차: 오피러스
- 주량: 와인. 1년에 1~2번 음주
- 담배: 안 피움
- 까다로운 팀: 수원·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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