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역대 정치인 테러 백태
지난 20일 오후 7시20분 서울시장 오세훈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르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모씨(56년생)으로부터 피습을 당했다. 얼굴에 11센티미터 가량 자상을 입은 박 대표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으로 남은 선거기간 동안 유세는 어려울 전망이다. 제1야당 대표에다 대권주자인 박 대표가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역대 유력 정치인에 대한 테러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해방이후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와 습격 사례를 살펴봤다.
5.13지방선거 기간 중 터진 박 대표 피습사건과 유사한 사례는 지난 1985년 처음으로 발생했다. 12대 총선 당시 동작지구 합동연설회에서 민정당 허청일 후보가 연설을 하던 중에 서울대, 중앙대 대학생 3명으로부터 분뇨세례를 받았다. 선거 2달을 앞둔 시점에서 터진 대학생 분뇨 투척사건은 결과적으로 허 후보가 1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생 분뇨 투척 사건이후 선거기간에 발생한 정치인 테러 사건은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역대 정치인 테러의 경우 다수가 정치적 현안과 맞물려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정치인 ‘암살’ 횡횡
1945년 해방직후 주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좌.우익 대결로 인한 이념 갈등에 기인했다.
본격적인 정치 테러 서막은 1945년 송진우 암살 사건이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던 우파 송씨가 자택에서 저격당해 암살된 것. 이어 중도좌파 거물 정치인 여운형이 1947년 7월 집으로 귀가 하던 길에 극우파 청년의 저격으로 숨졌다. 또 독립운동가 출신의 정치가 김구도 1949년 6월 숙소 겸 집무실로 사용하던 경교장에서 현역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됐다. 당시 테러는 좌우익 이념 대결의 산물이었고 이는 이승만 정권 하의 우익 테러로 이어졌다.

YS, ‘정치 테러’로 전·노 구속 계기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야당 정치인들이 주요 테러 대상이었다. 특징도 권력 차원의 배후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범인이 검거되지 않았다.
1969년 6월 야당 정치인이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의 자택 부근에 괴한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김 총무의 승용차 창문에 초산을 뿌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1985년 11월 민추협 공동의장 시절에는 괴한의 가택 침입과 서류 탈취를 당하는 피해도 겪어야 했다. 군부독재 정권하에 이뤄진 횡포로 인해 YS는 1987년 13대 대선 당시 ‘군정 종식’을 선거 구호로 내세우기도 했다. 야당 시절 정치테러를 경험한 YS는 1995년말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정설이다.
1973년 8월 야당 지도자였던 DJ 일본 토교 납치사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대표적인 정치인 테러 사건이다. 이후 90년대에 들어서는 돌발적인 성격이 강한 테러 사건이 주를 이뤘다. 정원식 국무총리의 한국외대 대학생으로부터 달걀 투척세례, 1999년 YS가 퇴임 후 외국출장을 나갔다 귀국하는 공항에서 맞은 ‘페인트 달걀 투척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홍준철 기자>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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