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데뷔전은 인상적이었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그날 그는 홈런과 결승점이 된 희생 플라이를 쳤다. 그의 활약은 그 뒤에도 계속됐고, 그는 신문의 스포츠란에 여러 번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해 15홈런에 68타점, 이듬해 3할이 넘는 타율에 76타점. 포수라는 포지션이 공격력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 시절이었기에, 찬스에 강하고 타점이 많은 그의 존재는 롯데에게 축복이었다. 1999년 롯데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그가 9회에 동점 2점 홈런을 쳤기에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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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4월 18일, 실책으로 나가 후속 타자의 땅볼로 2루로 간 그는 갑자기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경기는 그가 들것에 실려나간 이후에야 재개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의 모습을 야구장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로부터 9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는 병원에 있다. 뇌의 일부분이 죽어 의식이 없는 상태로. 1969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마흔 하나, 동갑내기 양준혁 선수가 아직도 펄펄 날고 있는 걸 보면 이대로 누워만 있는 게 너무 아깝다. 여기서 언급한 선수가 누구인지 짐작이 갈 거다. 그렇다. 롯데 임수혁 선수 얘기다. 그가 쓰러진 이유는 부정맥. 이건 심장의 전기적 활동에 이상이 생겨 심장박동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를 통칭하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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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심장은 열심히 뛰면서 혈액을 공급하고 있다.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뭘까? 누가 심장에게 뛰라는 신호를 보내는 걸까? 이 신호에 해당하는 게 바로 전기, 심장으로 전류가 전달될 때마다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한다. 그럼 전기는 누가 발생시킬까? 이 전기의 발원지는 바로 우심방에 위치한 동방결절 (sinoatrial node, SA node)이다. 영국의 해부학자 키스(arthur Keith) 등은 우심방 벽에서 주위와 구별되는 세포들의 덩어리를 발견하고 이게 바로 심장의 활동이 시작되는 부위라고 추정했는데, 정말 그랬다. 이 동방결절은 외부의 자극 없이 스스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신비한 기관으로, 발전소를 생각하면 된다. 발전소가 물의 힘이나 기름을 태워 전기를 만드는 데 비해 동방결절에서는 나트륨과 칼륨, 그리고 칼슘이 드나들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여기서 만들어진 전류는 우심방과 좌심방을 거쳐 심방 중격, 즉 좌심방과 우심방을 나누는 벽으로 간 뒤 그 하단에 위치한 방실결절(AV node)로 전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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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에서 심실로 전기를 매개해 주는 곳이라 방실결절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이걸 그냥 전봇대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왜? 동방결절에서 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 때는 여기서 전기를 만들 수 있으니까. 게다가 동방결절에서 지나치게 자주 전류를 내려 보내면 아예 전기신호를 차단해 심장이 쉴 수 있게 해주니, 똑똑한 지역발전소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방실결절을 거친 전류는 히스속(His bundle)이라는 전선 비슷한 기관으로 가고, 곧 복잡한 망으로 구성된 퍼킨제 섬유(Purkinje fibers)에 도달한다. 이 퍼킨제 섬유는 심실 곳곳으로 전류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배전소를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전달된 전류는 심실을 흥분시키며, 심장의 수축을 일으킨다. 이게 잘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게 바로 심전도(electrocardiography), 매 순간마다 일정하게 그래프가 만들어지면 심장 전도가 잘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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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매 분마다 60-100번을 뛴다. 횟수보다 더 중요한 건 규칙성이다. 카드 결제일도 아니고, 멋진 이성을 앞에 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거나 느리게 뛰는 등 평상시 박동수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바로 부정맥이다. 심장이 느리게 뛰면 혈액공급이 잘 안되어 어지러운 증상이 나타나고, 실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심장에 혈액이 오래 고여 있다 보면 혈액응고가 일어나고, 이 핏덩어리가 다른 곳에 가서 혈관을 막는 소위 색전증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 역시 좋은 일은 아니다. 심장에 혈액이 차기도 전에 쥐어 짜 버리면 충분한 양의 혈액이 나가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고, 심장은 심장대로 일을 과다하게 하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호흡곤란과 흉통이 생기고, 심한 경우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 심방세동(atrial fibrillation)은 심장이 빨리 뛰는 대표적인 경우로, 이건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심장이 분당 350-600회 정도 뛰는 걸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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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정맥이 늘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심한 증상을 나타내는 건 아니다. 살아오면서 이따금씩 심장이 박동을 건너뛰거나 더 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거다. 이건 정상인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경험이 자주 있다면 문제가 된다. ‘어쩌다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심장에 있어서는 대단한 착각이다. 갑자기 죽는 사람의 90%가 심장에 의한 것이며, 그 중 일부는 부정맥 때문이니 말이다. 가끔씩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던 사람이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 즉 전기신호가 마구잡이로 전달되어 심장이 제대로 뛸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사망하는 경우는 비교적 흔하다. 그러니 가끔씩이라도 심장박동이 이상하면 병원에 가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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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맥의 발생 부위가 심방이냐 심실이냐, 혹은 그 경계부위냐에 따라, 또 심장이 늦게 뛰냐 빨리 뛰냐에 따라 치료법은 달라진다. 일단 시도되는 게 항부정맥제를 쓰는 것으로, 전기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나트륨이나 칼륨 등을 조절해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심장을 느리게 뛰게 해주기도 한다.
심실세동이 일어나거나 심장이 그냥 멈춰버린 경우에는 ‘제세동기(defibrillator)’를 써야 하는데, 이걸 쓰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 드라마 같은 데서 많이 나오는, 심장에 전기충격을 주는 게 바로 제세동기다. 요즘은 몸 안에 심는 것도 나왔는데, 이건 부정맥에 대한 영구적 치료법이 되기에 갈수록 널리 이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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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치료보다 중요한 건, 부정맥이 있다는 걸 본인이 느끼고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 통상적인 신체검사에서 어쩌다 한번씩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걸 알기는 힘들다. 이럴 때 쓰는 게 바로 24시간 심전도, 뭔가 좀 이상하다 싶을 땐 병원에서 주는 심전도 기계를 차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심장의 전기적 상태를 체크해봐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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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혁 선수는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도 부정맥을 지병으로 가지고 있었다. 운명의 그날, 2루로 간 임수혁 선수에게 심실세동이 일어났다. 요동치던 그의 심장은 얼마 못 가 멈춰버렸고,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자 그는 갑자기 찾아온 어지러움 때문에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만다. 팔다리를 비롯해 우리 몸의 다른 기관들은 30분까지 혈액공급이 안 된다 해도 괜찮을 수 있지만, 뇌는 산소에 취약해 4-5분 가량 혈액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다면 죽기 시작한다. 심장을 마사지하고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는 심폐소생술을 4분 이내에 시행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당시 운동장에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세동기 같은 장치는 없었다 해도, 심폐소생술을 아는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힘껏 눌러 줬다면 그의 심장은 다시 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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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임수혁 선수가 쓰러진 뒤 병원에 실려갔을 때까지의 시간이 무려 11분이었다니, 그 동안 그의 뇌가 얼마나 손상되었을까? 얼마 전 두산의 이종욱 선수가 동료 선수와 부딪혀 턱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이종욱 선수가 쓰러지자 1분도 안되어 대기 중이던 앰뷸런스가 그라운드에 도착했고, 이 선수는 금방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 앰뷸런스를 보면서 임수혁 선수를 생각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 임수혁 선수의 사고 이후에 야구장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임수혁 선수는 아직도 투병 중이다. 그가 쓰러졌을 당시에 비하면 세상의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그의 가족과 팬들은 아직도 그가 꿋꿋이 일어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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