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강인이 홀로 ‘자전거’를 탑니다입력 2021.06.26 (09:01)수정 2021.06.26 (09:01)취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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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시간도 아닌데 왜 벌써 나왔지?"

지난 23일 도쿄행에 승선할 최종 명단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훈련 현장을 찾았습니다.

파주 축구대표팀 훈련장엔 일본 경기장 환경과 같은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잔디를 누르는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일본 경기장은 잔디가 짧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학범 감독은 훈련장 잔디를 비슷한 조건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훈련 시작 시각은 오후 5시 30분. 훈련 시작 약 한 시간 전, 대부분의 취재진들은 센터 옆 기자실에서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훈련장엔 훈련 준비를 하는 김은중 수석코치를 비롯한 코치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훈련장 사이드 라인 밖에 세워진 하체 근력 훈련용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있는 겁니다. 훈련 한 시간 전인데 벌써 나와서 운동하는 선수가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했습니다.

슬쩍 다가가 보니 '막내 형' 이강인입니다. 벌써부터 왜 나와서 훈련하느냐 묻고 싶었지만, 방해될 것 같아 멀리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취재진의 '급' 등장에도 이강인은 당황하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집중해서 밟았습니다.

23명의 예비 명단 가운데 오는 30일이 되면 18명의 최종 명단이 발표됩니다. 함께 훈련하는 선수 중에서 65%만 살아남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보니 새삼 이번 올림픽에 대한 이강인의 마음가짐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기본적으로 훈련 시작 30분 전에 모두 나와 훈련 준비를 했습니다.)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막내 형다운 기질은 이번 소집 훈련에서도 잘 보여집니다. 훈련장에서 형들을 향해 거침없이 '잘한다!' '좋아!'를 마구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김학범 감독과도 자연스레 공을 주고받으며 훈련을 즐겼습니다.

김학범 감독은 빡빡한 올림픽 경기 일정에 대비해 체력 강화에 힘쓰고 있어 지난달 31일 제주 소집 훈련부터 매일 오전엔 서키트 트레이닝, 오후엔 볼 훈련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번 파주 소집훈련에서는 첫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실력은 이미 검증된 선수들이 여기에 모인 것이다. 이번엔 체력이 발탁 기준이다." 라고 밝힐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체력 훈련은 정말 말 그대로 입에서 단내나도록 하는데 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강인은 한 번도 힘들다고 한 적이 없답니다. '지옥 훈련'을 묵묵히 따르는 선수들이 신기하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이강인은 도쿄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김학범 호에 처음 승선해 지난 15일 가나와의 두 번째 평가전에서 실전에 나섰는데 날카로운 킥 능력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드러냈죠.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이강인은 개인적으로 자신의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해했다고 합니다. 체력을 더 끌어올려야겠다고, 경기를 자주 못 뛴 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며 평가전 뒤 해산했을 때에도 내내 김학범 호만 생각했답니다.

가나와의 평가전을 마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열정!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올림픽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는 당연하다는 듯 웃음을 보이며 '모든 선수가 꿈꾸는, 꼭 가고 싶은 무대'라고 답했습니다.

처음 손발을 맞춰본 김학범 호는 어떠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단 감독님 축구가 너무 재미있는 것 같고 훈련 때도 훈련 밖에서도 분위기도 좋고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집에 안 가고 싶고 소집(훈련)에 계속 있고 싶고, 제가 처음 올림픽대표팀에 들어왔는데 다들 잘 받아줬고 그래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형들에게 잘하고 코치진에게 잘하고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서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얼마나 신나면 집에 안 가고 싶다고 표현할까요? 그동안 흔히 듣지 못했던 이 신선한 답변에 순간 객관성을 잃었습니다. 절로 응원의 마음이 생깁니다.

올림픽 최종 명단을 희망하며 김학범 감독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했더니 말이 필요 없답니다.

"감독님에게 저는 선수 중의 한 명이기 때문에 말보다는 경기장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려 하고 제 장점이 이 팀에 녹아들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올림픽 꼭 참가하고 싶고 팀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도쿄행 확정을 위한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최종 경쟁이 전쟁처럼 치열한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이하고 싶고 재미난 듯 즐기는 이강인.

65%의 생존율에 포함될까요? 도쿄올림픽 축구 최종 명단은 오는 30일 발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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