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메타버스'의 모든 것

기사 입력시간 : 2020.08.21 18:00:46 | 박서연 기자

 

 

 

게임에 푹 빠져 식사나 수면을 잊는 것.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게임 마니아들이 한 번쯤은 겪는 상황이다. 가볍게 즐기는 하이퍼 캐주얼 게임이 주목받는 가운데, 여전히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게이머의 몰입도를 최고로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HMD(머리에 착용하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착용하고 화면 외 시야각을 모두 차단한 VR 게임, 현실과 게임을 결합시킨 AR 게임처럼 말이다. 한편 단순히 즐기는 게임을 넘어 하나의 세상을 체험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과 가상이 합쳐진 세계, ‘메타버스’에 관해 알아보고 게임의 미래를 예상해 보자.

 

SF 영화 같은 게임 속 세상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초월 우주,

메타버스의 품으로

 

‘가상현실’은 익숙한 용어지만, ‘메타버스’는 아직 생소한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이다. 이 용어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유래되었다. 『스노 크래시』에는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국가가 존재하는데, 이곳에 들어가려면 사람들은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통해 활동해야 한다. 이 소설 속의 가상세계 개념이 웹에서도 구현되면서 ‘메타버스’에 대해 알려졌으며, 아울러 ‘아바타’라는 용어도 대중화되었다.

 

가상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세계, 메타버스

 

메타버스에 관하여 아직 뚜렷한 정의가 확립되진 않았다. 손강민 등은 '모든 사람들이 아바타를 이용하여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는 가상세계', 류철균 등은 '실생활과 같이 사회,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는 가상현실 공간', 서성은은 '단순히 3차원 가상공간일 뿐 아니라, 가상공간과 현실이 적극적 상호작용하는 공간과 방식 그 자체'로 정의했다. 공통적으로 메타버스를 단순한 그래픽 기술이 아닌 가상공간과 현실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메타버스로 한 발자국 다가갔던 ‘세컨드 라이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뒤편으로

 

가상현실 플랫폼이 만화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메타버스 용어를 성립시킨 소설 <스노 크래시>의 영감을 받아 린든랩(Linden Lab)사에서는 ‘세컨드 라이프’를 개발했다. 세컨드 라이프 속 사이버머니는 현금 전환이 가능하며, 사적인 사회 관계는 물론 사업 진행이 가능할 정도로 자유도가 높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세컨드 라이프도 2008년 무렵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밀려 주춤하기 시작했다. 웹 기반 서비스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옮기기 쉬웠지만 세컨드 라이프와 같은 3D 가상현실 서비스는 저사양 모바일 기기로 이동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다. 시대의 흐름뿐 아니라 세컨드 라이프만의 매력을 계속 끌고 나가지 못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가장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에도 유령 계정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훗날 초고속 인터넷과 현실 같은 3D 기술, 플랫폼 자체의 이점이 뚜렷한 가상현실 플랫폼이 나온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메타버스

 

청각, 시각, 촉각 등 우리가 현실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는 많은 감각이 필요하다. 감각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시스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바탕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3차원 가상세계 구현에도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비영리 기술연구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에서는 메타버스를 이루는 구성요소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 총 4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증강현실은 메타버스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증강현실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 주는 기술을 말한다. 종종 가상현실과 혼동하기도 하는데 가상현실은 배경 전체가 가상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증강현실의 예시로는 사진 촬영 앱에서 이미지를 덧대어 보여 주는 ‘스노우’ 앱, 거리에 포켓몬이 튀어나와 수집하는 ‘포켓몬GO’, 특정 위치에 서면 증강현실 영상이 재생되는 AR 광고 등이 있다. 가상현실은 주로 HMD와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가상의 환경 속으로 들어가 사용자가 환경을 조작하는 기술이다. 장비가 없다면 VR 카페 등에서 체험할 수 있다. 게임, 항공 시뮬레이션 등 몰입이 중요한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몰입도는 가상현실이 높지만, 현실 이미지를 사용하고 스마트폰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증강현실이 응용 범위가 더 넓은 편이다.

 

개인을 비롯한 이 세상 모든 정보가 축적되어 메타버스를 이룬다

 

메타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영상뿐 아니라 정보 관련 기술의 적용도 필요하다. 사용자의 모든 경험과 기억이 기록되고, 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정말 현실과 유사한 ‘메타버스’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이프로깅 또한 메타버스의 주요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라이프로깅이란 개인이 보고, 듣고, 느낀 모든 정보를 자동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SNS가 대표적인 라이프로깅이다. 삼성 헬스 등의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사용자의 건강 정보를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라이프로깅의 대표 예시라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구글어스 등 현실세계를 인터넷에 CG로 재현한 기술인 ‘거울세계’, 3D MMORPG나 앞서 언급한 세컨드 라이프 등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디지털로 구축한 ‘가상세계’까지. 크게 4가지 범주가 메타버스를 구성한다.

 

 

포트나이트, 동물의 숲

메타버스를 향하여

 

세컨드 라이프 이후 게임 속 메타버스 구현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가장 최근 화제가 된 사례는 ‘포트나이트’에서 열린 가상현실 콘서트이다.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업계가 굉장히 난항을 겪었다. 많은 뮤지션이 사회적 거리두기 장려 차원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포트나이트에서도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가 열려 1230만 명이라는 접속자가 모였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온라인 콘서트를 감상하는 사례는 흔하지만, 게임 속에서 콘서트를 감상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지난해 2월에 열린 DJ 마시멜로 콘서트도 동시 접속자가 1100만 명을 돌파했다.

 

포트나이트는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를 여는 등 게임의 플랫폼화에 앞장서고 있다

 

3인칭 슈팅 게임인 포트나이트에서 이루어진 콘서트라니. 어찌 보면 연관성이 적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개발사인 에픽게임즈 또한 분명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 포트나이트는 유독 한국에서 흥행이 저조했지만 북미와 유럽 등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매출은 18억 달러(약 2조 원)로 전 세계 게임 매출 1위, 전 세계 가입자 2억 5000만 명을 돌파하는 저력을 과시하였다. 에픽게임즈의 CEO 스위니는 “포트나이트는 게임인가, 플랫폼인가?”라는 질문에 “포트나이트는 게임이다. 하지만 12개월 후 다시 질문해 달라.”라는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마블, 스타워즈 등 유명한 IP(지적재산권)가 포트나이트에서 프로모션을 하거나, 나이키 운동화를 게임 내에서 판매하는 등 마케팅 방안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가상세계라는 메타버스의 개념이 게임에서 실현되어 가는 모습이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역시 메타버스에 다가서는 게임 중 하나이다

 

포트나이트 이외에 ‘모여봐요, 동물의 숲’,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등에서도 유저 간 생일파티, 가상 결혼식 등 게임 속 사회 활동이 이루어진다. 경제적 활동까지 겸할 메타버스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디센트럴랜드'와 같은 블록체인 구동 가상현실 플랫폼도 활발히 개발, 출시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서비스가 주목받는 만큼 게임의 메타버스화 실현은 한층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 발전해야

메타버스도 온다

 

온라인 게임 접속자가 많아지고, 사회 활동이 이루어지면 메타버스 게임의 꿈을 모두 이룬 걸까? SF 영화나 만화같이 현실과 가상이 완벽하게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만약 같은 가상현실(VR) 기술이어도 그래픽과 자유도, 편의성이 더 뛰어날수록 사용자에게 진정한 메타버스를 체험시킬 수 있다. 밸브(Valve)가 출시한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Half-Life: Alyx)’와 자체 개발한 VR 헤드셋 ‘인덱스(Index)’는 컨트롤러가 정교하고 조작 자유도가 높아, 해당 기기로 하프라이프 게임을 할 때 현실과 유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처럼 가상공간도 현실적으로 즐기기 위해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가 모두 받쳐줘야 한다.

 

하프라이프 알릭스와 전용 VR 기기는 높은 자유도로 주목받았다

 

밸브와 에픽게임즈는 모두 날고 기는 개발사들이다. 게임의 메타버스화에 앞장서는 기업이 대형 개발사 뿐이라면 경쟁과 발전이 더뎌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발전한 게임 엔진 기술이 저렴하게 시장에 공개되었다. 포트나이트 개발사인 에픽게임즈는 게임 엔진인 ‘언리얼’을 만들기도 한 회사인데, 2021년 말 언리얼 엔진5의 새로운 출시를 예고했다. 언리얼 엔진은 현실과 매우 유사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어 리니지2M, V4 등 다양한 고퀄리티 3D 게임 제작용으로 쓰인 바 있다.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야만 만들 수 있던 3D 게임을, 이제는 업계 최상위권이 아닌 중소 개발사에서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 볼 수 있다.

 

▲페이스북도 가상현실 게임 제작 스튜디오를 인수하는 등 가상현실 플랫폼에 관심을 보인다

 

텍스트, 사진, 짧은 영상으로만 세계를 제패하던 SNS 페이스북이 가상현실 게임 제작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비트세이버나 아스가르드 래스 등 타 게임 제작사에 대한 인수합병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과거 SNS의 행태와 유사했던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는 사용자의 이목을 끌 만한 것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기술이 발전하고 기업 경쟁도 이루어지는 이상,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완벽히 허무는 게임이 나올 수 있을까? 중요한 건 개발사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게이머는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박서연 기자 press@appsto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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