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유튜브, 인스타? 우린 메타버스에 산다

 

황은순  기자 hwang@chosun.com

 
▲ 메타버스를 잘 보여주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photo 뉴시스

미국 10대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곳은 어디일까? 유튜브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모바일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ROBLOX)’로 미국 16세 미만의 55%가 가입돼 있고 유튜브보다 2.5배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단지 게임만 하는 곳이 아니다. 월 1억명의 사용자가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학교도 만들고 놀이동산도 만든다. 직접 게임도 만든다. 여기서만 통용되는 가상화폐로 거래도 한다. 이곳에서 실제로 돈을 번 사용자는 30만명이 넘고 연 매출 1억원을 넘은 경우도 있다. 팬데믹으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오프라인 공연, 콘서트가 올스톱된 상황에서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 안에 만들어진 콘서트장은 전혀 딴 세상이었다. 지난해 4월 포트나이트 콘서트장에서 열린 미국 인기 래퍼 트래비스 스콧의 공연에는 1230만명이 동시 접속했다. 거대한 스콧 아바타와 1230만명의 게임 아바타들이 게임 속 공간에서 함께 춤을 추고 날아오르며 라이브 콘서트를 즐겼다. 이 콘서트 매출은 2000만달러에 달했다. 사용자가 전 세계 3억5000만명에 이르는 ‘포트나이트’의 가상공간 ‘파티로열’에서는 새로운 영화의 예고편이 상영되는가 하면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BTS(방탄소년단)도 지난해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를 이곳에서 처음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의 최대 경쟁자는 디즈니가 아니라 포트나이트이다”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그룹 블랙핑크는 네이버제트가 만든 증강현실 아바타 앱 ‘제페토’에서 팬사인회를 열었다. ‘제페토’는 실제 얼굴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아바타를 만들 수 있고 다양한 가상현실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블랙핑크의 팬사인회에는 5000만명에 가까운 아바타 팬들이 몰려 블랙핑크 아바타를 만나고 사진을 찍었다. ‘제페토’는 현실에서 하기 힘든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스타를 만날 수 있고, 친구를 사귀고 소셜 활동을 할 수 있다.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전 세계 2억명이 ‘제페토’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즐기고 있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왔다”
   
   ‘로블록스’ ‘포트나이트’ ‘제페토’가 낯설다면 요즘 세대들에게 ‘탑골’(1990년대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게임 플랫폼이 아니다. 전 세계 수억 명의 아이들이 모여 뭔가를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아이템을 사고판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10대들에게는 한물간 공간이다. 이들은 아바타를 앞세워 ‘메타버스(Metaverse)’의 세상에 살고 있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현실과 가상공간이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초현실의 세계라고 보면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매트릭스’를 떠올리면 더 이해하기 쉽다.
   
   메타버스는 올해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이다. 디지털·IT 기업들이 앞다퉈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영역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창업자 겸 CEO는 “앞으로 20년은 공상과학영화에서 보던 일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메타버스의 시대가 왔다”고 공언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말 메타버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3D 플랫폼 ‘옴니버스’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메타버스의 시장 규모가 2025년 3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메타버스 선두주자인 로블록스는 연초 상장 계획으로 기업가치가 8조원이 넘는다. 로블록스는 상장 증권신고서에서 ‘메타버스’ 단어를 16번이나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버스’는 새로 등장한 단어는 아니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사용됐다. 아바타라는 용어도 이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스노 크래시’를 모티브로 2003년 출현한 가상현실 게임 ‘세컨드 라이프’가 메타버스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 밀렸던 메타버스가 최근 급속하게 확장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현실 세계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 필요해진 것이다. 두 번째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메타버스’에 필요한 기술들의 진보이다.
   
   박종일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교수는 “메타버스의 핵심 기술은 그래픽과 인공지능이다. 메타버스는 나는 현실 세계에 있으면서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통로가 과거에는 모니터였다면 안경처럼 점점 더 작아질 것이다. VR용 헤드셋인 HMD(Head Mounted Display)의 경우는 360도로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리얼리티의 완성도도 곧 해결된다. 무수히 많은 메타버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은 그만큼 큰 시장이 열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실사 형태의 아바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게임 캐릭터 형태의 아바타를 넘어 실제 얼굴과 똑같은 아바타로 얼굴 표정, 행동을 실시간으로 똑같이 구현하는 기술이다. 가상공간에 캐릭터가 아닌 실제 모습의 아바타가 들어가는 셈이다.
   
   

▲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앱 ‘제페토’에서 열린 블랙핑크 사인회에는 5000만명 가까이 참여했다. photo 유튜브


   기업들 앞다퉈 메타버스의 세계로
   
   발 빠른 기업들은 이미 메타버스에 뛰어들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입점했다. 루이비통 디자인의 스킨을 팔고 ‘롤’ 챔피언십 우승자에게 주는 트로피 케이스에 루이비통의 고유 디자인을 넣었다. 현실에서 루이비통을 입기는 어렵지만 게임 속에서는 루이비통 옷을 입고 루이비통 문양의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다. 구찌도 글로벌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에 캐릭터용 옷과 신발을 선보였고, 버버리는 신상품을 입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온라인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다. 발렌시아가는 2021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비디오게임으로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실제 구매력이 없는 가상 세계에 뛰어드는 것은 미래의 고객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가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미국 대선 전 조 바이든이 젊은 세대를 찾아나선 곳도 닌텐도 게임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었다. 바이든은 이곳에 섬을 만들고 아바타를 내세워 선거유세를 했다. 우리나라 연예기획사들도 메타버스에 적극적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는 '제페토'에 총 170억원을 투자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키우고 있는 커뮤니티 플랫폼 ‘위버스’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 개발자들을 영입하고 증강현실 등의 기술을 장착하는 것도 메타버스 전략이다. 지금 인류는 새로운 세계로 급속하게 이전 중이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현실 공간보다 메타버스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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