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쪽방촌 개발' 반대하는 진짜 이유
단지 분양권 때문이 아니다, 토지주들은 진심으로 쪽방촌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21.02.18 07:29ㅣ최종 업데이트 21.02.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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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용산구 KDB생명타워 LH주택공사에서 바라본 국토부 주관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 계획부지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지옥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뜻하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축약해서 부르는 단어이다. 하지만 지옥고 아래 더 열악한 주거시설이 쪽방이다. 30년 이상 오래된 건물을 1~2평으로 촘촘히 쪼개어 월 20만~30만 원의 월세를 받는 쪽방촌은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 있는 주거 형태이다. 최근 쪽방촌을 두고 정부와 쪽방촌 토지주들 사이에 일진일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5일 정부가 도심 내 주택공급 방안으로 공공임대 1250호, 분양 1160호 규모의 서울역 앞 동자동 쪽방촌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해당 사업구역 토지주 모임인 후암특별계획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에서는 15일 입장문을 내 "정부의 추진 방식이 폭압적이고 사유 재산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사업추진에 대해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강제지정 전면 취소를 요구하며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도 법에 의거해 진행하는 사업이고 공공주도 도심지 주택공급의 상징적 사업이라 물러설 여지가 없다.
쪽방촌 토지주들은 적극적으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아주경제> 보도에 따르면 동자동 쪽방촌 소유주뿐 아니라 인근 후암·갈월동 쪽방촌 소유자들까지 나서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동자동 무너지면 용산구 다 죽는다. 다음은 후암, 갈월 등 용산구 내 모든 쪽방촌이다. 쪽방촌이 끝이 아니다. 쪽방촌 끝장나는 순간 용산 알짜배기 땅에 임대주택 다 들어선다고 생각하면 된다. 용산구 주민 전체가 정부(국토교통부), 서울시와 싸워야 한다."
"세입자들은 축제다. 토지 소유주들이 세입자들에게 밀리면 안 된다. 반대 의견서 제출하고 국토부, 서울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항의 전화 계속해라."
- <아주경제> "동자동 무너지면 다 죽는다" 용산 쪽방촌 소유자들 집단 반발(2021. 02. 16)
공공주택사업지구로 지정되면 사업구역 내에 실거주하지 않는 90%의 토지주들은 분양권을 얻지 못하고 현 토지용도, 거래사례 등을 기준으로 현금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향후 아파트 분양으로 발생할 막대한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사활을 걸고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토지주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쪽방촌 관련 언론 기사 다수는 토지주들의 반발과 재산권 침해라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토지주의 관점, 쪽방촌 거주민의 관점
▲ 쪽방 주거환경 개선 (출처 : 국토교통부 "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 보도자료) ⓒ 국토교통부
시좌(視座), 어디에 앉아서 보는지가 중요하다. 토지주들의 입장에 앉아서 보면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된다. 다만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어떻게 볼까?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쪽방촌 재개발에 대해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거기본법에서 정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은 '14㎡(약 4.24평)의 면적, 부엌, 수세식 화장실 및 목욕 시설'이다. 하지만 현재 지옥고 아래 쪽방촌의 거주민들은 최저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주택 내 촘촘히 쪼개진 1~2평 남짓한 방에 산다. 이마저도 수도가 얼고 전기도 자주 끊기는 열악한 시설이지만, 보증금이 없다는 이유로 20만~30만 원의 월세를 내고 있다.
만약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이 진행된다면 쪽방촌 거주민들은 공사기간 중 인근에 임시거주지를 제공받고 공사가 끝나면 공공임대주택을 제공받아 현재 쪽방촌보다 2~3배 넓고 쾌적한 공간을 현재의 15%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살 수 있다.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주거공간을 지금보다 매우 저렴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쪽방촌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공주도의 쪽방촌 개발을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빈곤 비즈니스
▲ 1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일대 건물 외벽에 공공주택지구사업 계획에 반발하는 후암특계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가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가 쓴 <착취도시, 서울>은 쪽방촌을 대상으로 누가, 어떻게 착취를 하는지 쪽방촌을 둘러싼 빈곤 비즈니스를 파헤친 심층탐사 취재기사를 묶은 책이다. 서울 전역의 쪽방촌 주소를 확보하여 등기부등본을 떼어 소유주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분석해 부자들이 쪽방촌을 활용해 어떻게 돈을 벌고 탈세와 증여를 하는지 잘 파헤친 글이다.
쪽방촌 건물주들이 쪽방에 사는 경우는 없다. 쪽방 건물주 중에는 강남 타워팰리스 등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전직 유명 수능 인터넷 강사, 중소기업 대표, 고등학생까지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부자동네에 가서 살고 관리인을 통해 월세만 받는다. 쪽방촌 인근의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다.
"쪽방은 세를 놓는 거고 건물주들은 부자 동네 가서 살죠. 솔직히 원룸처럼 시설을 잘해놓은 것도 아닌데 월세를 그렇게 받는 건 폭리를 취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화장실도 없고, 주방도 없는 쪽방이 태반인데 이론적으로 따지면 월세 5만 원만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1평에 25만 원 수준이면 웬만한 아파트 평당 월세의 다섯 배는 될 걸요." - <착취도시, 서울> p.81
월세의 일부를 쪽방촌 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어도 매월 수백만 원의 현금이 들어오고 세금도 내지 않기에 대를 이어 증여와 상속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이들은 쪽방촌이 재개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도 한다. 재개발이 되면 매월 들어오는 수백만원의 현금수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후암특별계획1구역은 쪽방촌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일부도 포함되어 있기에 공공주도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들은 쪽방촌 소유주들만은 아니다. 공공주도 쪽방촌 재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아파트 분양수익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쪽방촌 자체를 유지시키고 싶어하는 악랄한 부자들의 목소리도 함께 있다.
시좌(視座), 앉은 자리가 중요하다. 앉아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많은 것이 달리 보인다. 토지주들의 입장이 아닌 쪽방촌 거주자들은 공공주도의 쪽방촌 재개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루는 기사들이 많아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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