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나치협력자 대숙청 지위고하 막론하고 과감한 과거사 청산 10만명 재판없이 처형 반민족 행위자에 대해 공소시효 없다 프랑스 국민은 민족 반역자를 관용은 사치일 뿐이다 드골은 언론인부터 처형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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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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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나치 協力者(협력자) 지위 고하를 반론하고

과감한 과거사 청산 


민병대원, 친 나치 정부 선전원, 계엄 군법 사령부

검사와 판사, 고위 공직자, 친 나치 정부 獨逸 찬양한 자


기업인, 출판인, 지식인, 영화배우, 가수, 학자, 정치인


나치 협력자의 정계 진출 불가, 피선거권의 박탈


나치 협력자 12만 7천7백51명 재판


6천7백6십여 명-사형선고


사형집행-7백6십여 명


재판 없이 처형-10만 명


부역자 재판소 1948년까지 7.737명 사형선고 791명

사형집행(死刑執行) 40.000명 징역형(懲役刑)

친독 문인-작품 발표 금지, 친독 노동 지도자-노조 추방

부역 언론-"폐간(廢刊)" 

 

프랑스에 나치 협력자(協力者) 처단이 주는 교훈(敎訓)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韓國)은 프랑스처럼 하지 못한 것이 비극(悲劇) 과

분쟁(紛爭)을 가져다주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치 협력자(協力者) 색출 및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반민족행위자(反民族行爲者)에 대해 공소시효(公訴時效)는 없다.


獨裁者 무솔리니 (좌 2번째) 반민족행위자에겐 공시시효 없었으며

척결은 역사의 책무

무솔리니 夫婦 길거리에 버려진 부부 屍體 後에 棺에 넣었으나

일부러 뚜껑을 열어두어 오가는 市民들이 침을 뱉었다고 한다.

獨裁者 最後 處斬 한 夫婦 寫眞

出生: 오사카 히라노 가미나미 후쿠이도정(大阪 平野 加美南 福井道程) 

本名: 기코 아키히로(木子 明博) 두 번째 名: 쓰키야마 아키히로(月山 明博)

근 현대사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 포럼 대표 안병직 萬古逆賊

親日派 賣國奴 大韓民國 歷史 歪曲 代表


獨逸軍과 사랑 때문에 銃殺 직전 머리 깎는

모습 뒤엔 총을 감추어져 있다.

나치 협력했다는 反逆罪

프랑스 국민은 寬容 慈悲는 찾을 수 없었다.


나치 協力者 총살 프랑스 國民은 나치 附逆者 사전에 TOLERANCE는 極嫌


獨裁者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夫婦 아래는 탱크로 이송되어

夫婦 死刑 시킨 동영상 死刑直前 바람 좀 쐬겠다며 밖에

나가려고 해서 警備兵이 총으로 막으니까

불쾌한 듯 모자를 책상을 툭 친다, 죽기 몇 초전까지 반성은 없었다.

 

親日 崇拜 賣國團體 反民族主義者 萬古逆賊 あたらし らいと

친일 숭배 매국단체 반민족주의자 만고역적 뉴-라이트 덴노헤이카 반자이!!


民族 靈魂 마저 팔아버린 萬古逆賊  親日派 附逆 賣國奴  

이완용과 朝鮮日報 社主 방응모 민족 영혼마저  팔아버린

만고역적 친일파 부역 매국노 이완용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

天皇 崇拜 鬼才 이완용 방응모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 출생

성장 후 15세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王妃가 된다.


(히틀러도 오스트리아 출생 23세에 獨逸 보병 입대)

刑場의 이슬로 사라지는 마리 앙투아네트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국민의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하네요


사치도 없었고 물론 15세 오스트리아에서

정략결혼 프랑스 시집 갔는데

철부지 당시 사치는 조금 있었고 밤새도록 게임하고

잘못한 것도 없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낳고부터

아이들을 사랑하고 좋아했다고 하네요

프랑스인들이 오스트리아인들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어서

뒤 바리 영국에서 왜곡된 책을 내고부터 더 여론 악화 

뒤 바리도 단두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유언비어에 프랑스 국민들이 분노하고 잘못된 정보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결국 단두대 가면서

실수로 백정의 발을 밟았는데

죄송해요 일부러 밟은 것은 아니었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러면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하게 있다면 속죄했습니다."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단두대 집행 직전

"배고파서 못 살겠으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고

절규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억으면 되지 않나"?


빵이 없으면 케이를 먹어라 이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고

오스트리아인을 싫어서 루이 15세 백작부인 뒤 바리가 왜곡한 책에서

뒤 바리도 단두대 처형 당했다.

유언비어로 결고 단두대 생을 마감했다 합니다.


 

 

독일군의 아기를 낳은 삭발 여자 도망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똘레랑스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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