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가던 중 높은 산길서 아스팔트로 추락했음에도 무사 50세엔 99% 실명 위기 염불하며 치유 발원하자 씻은듯 나아 딸네 가족 탔던 차 큰 교통 사고에도 관세음보살 가피로 극복
부처님의 가피가 정말 있을까? 관세음보살님의 영험이 분명히 있을까? 불보살을 향한 기도의 힘이 과연 존재할까?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특징 중에 하나가 절대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믿거나 믿지 못하는 모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불교는 믿음을 억지로 주입하지 않는다. 다만 체험을 통해 스스로 찾아가라고 조언한다.
불보살의 가피도 결국 자신이 증명해야할 수행의 문제이다.
필자의 주변에는 불보살의 가피를 실제로 경험하고 맛을 보신 분들이 무척 많다. 직접 체험하고 스스로 기도의 맛을 본 불자들은 결코 불보살의 가피를 의심하지 않는다. 물을 마셔서 시원함을 직접 맛봤듯이, 기도를 통한 불보살의 가피를 직접 체험한 자에게 ‘믿는가, 믿지 않는가?’ 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다.
부산에 살고 있는 오도화 보살은 칠십 평생 부처님을 의지하며 신행 생활을 닦아나갔다. 의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부처님만을 믿고 기도 정진하면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큰 가피를 수 없이 체험하였다.
노 보살님이 체험한 수많은 가피의 이야기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 지면에 소개한다. 보살님은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녔다. 젊어서 기도를 시작하며 매일 정성으로 염불하고 독경하였다. 하루하루가 기도의 삶이었다.
보살님이 36살 젊었을 때의 일이다. 부산 영도 태종대에 약수물을 받으려 올라갔다. 약수터에 다 오를 때쯤에 그만 갑자기 발을 헛디뎠다. 난간이 없는 상황이었다. 산길에서 미끄러져 언덕 아래 아스팔트 길 위로 추락하였다.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저마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다들 걱정하면서 크게 다쳤을 거라고 짐작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언덕에서 구른 보살님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보살님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놀라운 일이었다. 몸에 멍 자국 하나 없었다. 목격한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살님이 나중에 그 때 상황을 기억하면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발이 미끄러져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는데 몸이 바닥에 부딪히려는 순간 무언가 따뜻한 솜이불이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길바닥에 사뿐히 내려놓는 느낌이 들더라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몸에 상처 하나가 없더구나.”
50살 때 일이다. 기도 중에 눈에서 갑자기 피가 흘렀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 달 정도 지나고 시력이 급격히 어두워져 눈으로 물체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99%는 실명이고 치료는 1% 가망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받아보겠습니까?”
큰 충격을 받았지만 보살님은 곧 마음을 다스렸다. 그동안 육안으로 잘보고 살았으니 이제는 심안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날을 잡아서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의사가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까지 부정적으로 말했다. 보살님은 수술대에 오르며 오직 약사여래불을 염불하였다.
수술을 마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칠십이 넘은 지금 현재도 깨알 같은 글씨까지 아주 잘 보인다.
평소에 육류와 오신채를 끊고 김과 김치만 먹고 지낸지 30년을 살아오다가, 어느 날 몸의 느낌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니 혈당이 400까지 올랐다. 의사가 당장 큰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보살님이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처방받은 약과 음식 조절, 운동을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2주 만에 정상 수치가 되어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혈당이 정상이다.
보살님이 환갑이 되던 해 1월1일에 꿈을 꾸었다. 꿈에 부처님께서 나타나 공부를 잘해서 환갑 선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무슨 선물을 주실까 궁금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잊혀졌다. 3월이 되어 이사할 계획이 생겨 마음에 드는 집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이 너무 비싸서 결국 포기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자신의 생일이 있는 8월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아무도 집을 사는 사람이 없어서 원하는 대로 돈을 깎아주고 집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집을 구입하여 수리하고 이사를 했다. 그 다음날 새집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다가 그때서야 꿈이 떠올랐다.
“이것이 선물인가 보다.”
지금도 그 집에서 잘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울산에 막내딸이 살고 있었다. 일요일에 사위와 딸이 어린 손자를 데리고 부산 친정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저녁 9시경에 울산 고속도로에서 추월하는 앞차를 피하려다가 대형사고가 났다. 막내딸이 탑승한 차가 3번을 굴러 뒤집혔다.
늦은 밤에 사위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은 코를 다쳤고 아내와 아이가 응급차를 타고 큰 병원으로 실려갔다. 보살님은 심장이 멈출 듯 놀래 허겁지겁 병원으로 곧장 향했다. 사위는 코가 휘어 있었고 딸은 한쪽 어깨뼈가 부러졌다. 생각보다 부상이 위급하지 않아서 다음날 수술하기로 진단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린 손주는 상처와 멍조차도 없었다. 사고의 수준으로 봤을 때 가족 모두가 기적에 가까울 만큼 부상이 경미했다.
그런데 막내 딸의 이야기가 더욱 놀라웠다.
사고가 나는 그 순간에 막내딸이 아이를 안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부처님!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관세음보살님이 아이를 안고 계시는 모습을 쳐다보면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서 깨보니 차가 샌드위치처럼 납작하게 부서졌는데도 남편과 자기는 생명에 지장이 전혀 없었고 아이는 아주 멀쩡하더라는 것이다.
노 보살님은 확신했다. 분명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로구나.
지금도 보살님은 남은 평생 동안 부처님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정진하고 있다.
광우 스님 마음수행법회 지도법사 kgk515@hanmail.net
[1537호 / 2020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