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네 집입니까? 여기 학교입니다.”
설거지를 하다말고 놀라움으로 전화기를 꼭 쥐었습니다.
“학교요? 정훈이 학교 갔는데요?”
“어머니십니까? 저 정훈이 담임입니다. 지금 정훈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답니다. 저도 곧 출발할 테니 어머니도 응급실로 빨리 좀 가십시오! 이따 뵙겠습니다.”
저는 뭐라고 말할 정신이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지 병원 이름도 말하지 않고 끊었다가 다시 전화를 해서 병원이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가슴은 방망이질 치기 시작하였고 우왕좌왕하며 겨우 돈과 의료보험증을 챙겨 뛰쳐나갔습니다. 택시 안에서도 ‘정말 교통사고가 났을까? 많이 다쳤을까? 큰 사고가 났으면 어쩌나…….’하는 생각들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정훈아!”
병원 응급실의 하얀 시트에 누워있는 정훈이의 죽은 듯 한 모습을 보았을 때, 미친 듯이 아이를 흔들었습니다.
“보호자 되세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의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것 같습니다. 우선, 전신사진 촬영과 부분 MRI 찍도록 해야 합니다. 응급이라고 부탁해 드릴 테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세요. 접수하시고요.”
울 틈도 없이 정신없이 병원을 돌아다녔습니다. 곧 남편이 왔고 온 집안 식구가 병원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심한 뇌출혈로 아이의 의식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2시간의 대수술동안 저는 눈물이 말라붙을 지경이었고 남편의 위로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에 희망의 시간도 잠깐,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자, 저는 매일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매달렸지만, 그들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의 피 묻은 교복은 버리고 책가방은 보자기에 싸서 보이지 않는 구석에 밀쳐놓았습니다. 고통의 세월이 쉼 없이 흘러갔습니다. 지쳐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으며 매일을 멍하니 아들의 얼굴만을 쳐다보았습니다.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아들 대신 누워있을 수만 있다면!
1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병실 구석에서 지쳐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염주를 목에 걸고 방에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밝게 말을 걸어 왔지만, 저는 모든 것이 귀찮았습니다. 몇 번 무슨 말인가 하다가 저의 지친 모습에, 한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기도를 해 드리고 싶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의외의 말에 돌아보았습니다. 다른 종교인들도 몇 번 기도해 준다고 왔었지만, 저의 모습에 그냥 돌아가거나, 스스로 기도를 하고 갔었는데……. 그런데 그들은 제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지한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이런 것일까?
“그럼 기도하는 동안에 아들 손을 좀 잡아주세요.”
병명이나 상태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잠자듯 누워있는 아들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습니다. 아주머니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전을 읽을 때마다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들의 맥박을 느꼈습니다.
손목 안쪽에서 느껴지는 맥박소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들은 살아 있었습니다. 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 포기하려고 했던 아들의 생명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저 스스로 아들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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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끝나고 가려는 두 아주머니께 그 기도 책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선뜻 그 책과 염주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좋은 인연」이란 소책자에는 몇 가지 기도법과 작은 이야기들과 기도로 병이 나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그 책에 적힌 절 이름과 위치를 보니 병원에서 아주 가까웠습니다.
그 날 저녁에 그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를 찾았습니다. 저녁 불빛에 절은 아늑하게 보였고 노천 법당의 중심에 서 계신 부처님을 보고 한동안 멈춰 서 있었습니다. 그 책자 표지에 있던 부처님이셨습니다. 더욱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저는 무조건 절을 하였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습니다. 얼마나 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1시간 정도 절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처님을 올려다보았을 때 기분이 너무도 좋았습니다. 아들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으며 무언가 꽉 막혀 있던 것이 순식간에 내려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녁마다 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되었을 때,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3개 층의 층마다 부처님이 계셨고 2층과 3층에는 절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뜨거운 열기가 확 느껴졌습니다.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혔고, 방석 위에는 수건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신도들이 모여 삼천배하는 날이었습니다. 삼천배!
저는 신도들과 함께, 그 날 밤과 다음 날까지 삼천배를 하였습니다.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삼천배를 하는 동안 몇 번이나 그만 두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삼천배를 하고 돌아와서 여전히 혼수상태에 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반응 없는 아들을 보니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의의로 절에 가는 것은 유일한 낙으로 변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간절한 기원인 동시에 탈출구였습니다. 미칠 것만 같았던 그 병실과 아들의 상태에 대한 압박이 서서히 사라져 갔던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또 아들과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저의 밝은 모습은 의외로 남편과 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아들을 가운데 두고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몇 번이나 이 상태로 그냥 둘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20여일이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니, 집으로 데려가는 게 낫겠다고 말하면서도 병원비 걱정을 대신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모두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남편조차도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천배를 하기 시작한 후부터, 저는 아들이 꼭 살아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삼천배를 10번째 하는 날이었습니다. 몹시 지치고, 노천법당에서 하는 절이 그날따라 바위 하나를 어깨에 매단 듯이 힘들었습니다. 천배 이후부터는 몸이 천근만근으로 엉덩이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생전 처음 절할 때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저녁이 되도록 삼천배를 끝내지 못하다가 마지막 백배를 마쳤을 때, 저는 완전히 뻗고 말았습니다. 병실에 돌아와서도 아들의 손만 잡았을 뿐 그대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억지로 눈을 떠 보았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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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상에!
황금색의 가사를 걸치신 부처님께서 병실에 들어서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부처님 앞에 절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마땅히 앉으실 만한 의자도 없었고, 그날따라 병실이 무척 지저분했습니다. 아들의 몸 위에는 온갖 쓰레기와 더러운 옷이 쌓여 있고 병실 여기저기에서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너무도 수치스럽고 속이 상해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냥 돌아서 나가실 것 같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청소라도 하고 잘걸 하면서 제 자신을 나무랐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소리 내어 우는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몸 위에 쌓여 있는 더러운 것들을 손으로 싹 쓸어 버렸습니다.
그때 아들이 크게 숨을 내쉬더니 눈을 떴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들의 손에 조그맣고 붉은 과일 몇 개를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을 달게 먹었습니다. 부처님께 감사하다고 절을 올리는데 갑자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너무 선명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저는 세수를 하면서 계속 꿈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뭔가 희미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놀라서 병실로 뛰어갔습니다.
“엄마…….”
아들이 깨어났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손을 잡았습니다. 병원에서도 난리가 났으며 남편과 딸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두, 세 시간이 지나 아들이 다시 잠들었습니다. 또 혼수상태에 들어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마음 졸였지만, 잠든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부처님을 뵈러 가서 절하고 또 절했습니다. 이렇게 가피를 입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일이 바로 제게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삼천배를 올리고 나오는 길에 보니 노천 법당 마당 구석진 곳에 토마토가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연치고는 너무도 이상했습니다. 전 쭈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았습니다. 자그마한 토마토가 붉게 익어 있었습니다. 꿈에서 부처님께서 아들에게 주시던 그 과일이 생각나 너무도 신기해서 넋을 잃고 들여다보았습니다.
누가 옆에 다가오는지도 몰랐습니다. 돌아보니 주지스님께서도 그걸 들여다보고 계셨습니다. 너무 정신없이 보고 있으니 궁금해서 오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스님께서는 곧 맑게 웃으시며 그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시더니, 오늘은 아주 표정이 좋으시네요. 선물이니, 가져가세요.”
전 얼떨결에 토마토를 받아 들었습니다. 뭔가 말할 새도 없이 스님은 훌쩍 법당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제야 무심한 것 같던 스님께서 계속 지켜보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몇 번이나 스님 사라진 방향으로 절을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병원에 오니 아들은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손에 들린 토마토를 보더니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깨어난 뒤 병원에서 준 미음도 먹지 못하던 아들 이었는데…….
저는 토마토 즙을 내어 아들의 입에 조금씩 넣어 주었습니다.
그 후 아들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고 다행히도 큰 휴우증은 없었습니다. 이제 10개월이 흘러 아들은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또 아주 건강합니다.
저와 남편, 아이, 모두 일주일에 한 번은 大관음사에 가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달았습니다. 이 모두가 대원력 관세음보살님의 크나큰 가피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도 한원만성 합장 | | | http://www.tvbuddha.kr/bj_board/bjbrd_view.htm?board_id=experience&board_sel_cate=&board_search_field=&board_search_key=&board_sel_cate=&page=5&num=1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