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하여(상편)
작성자 buddhabook

몇 년 전부터 시어머님께서 노환이 심해져서 시간마다 헛소리를 하시고 또 집을 나가시기도 하고 정신없이 욕을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저는 매일 시어머님을 어린아이처럼 살펴야 했습니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어디론가 가시거나, 집에 문을 잠가 놓으면 방 안의 물건들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자해하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님 때문에 저 역시도 거의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중풍이 와서 쓰러지셨습니다. 그 후로는 매일 사경을 헤매시다가 조금 좋아지면 또 옛날 증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기를 두 해가 지났습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어머님이 잠드신 틈을 타 길 건너편에 있는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를 찾았습니다. 그 해 초파일날 한 번 가 보았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大관음사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소식지를 보았습니다. 그 날은 너무 답답해서 찾아갔던 것입니다. 몸이 너무 지치고 힘이 없었습니다. 잠시라도 시어머님 곁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진 노천법당에 사람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어떤 할머님도 계셨습니다. 노천 법당 마루에 앉아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기분도 맑아졌습니다. 기도를 하시던 할머니가 기도를 끝내셨는지 염주를 가방에 넣으셨습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제 모습이 마음에 걸렸는지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보살님, 무슨 걱정 있으시오? 하긴 이 밤중에 가슴 답답한 사람 말고 누가 오겠냐마는…….”

저는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거 받으시오. 내 이 염주로 이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해서 무릎 병이 나은 사람일세. 그 가피 입은 뒤로 여기 와서 기도하는 게 낙이 되었소. 하루라도 관세음보살님을 보지 않으면 잠이 다 안 온다오.”

할머니는 가방에서 염주를 꺼내어 억지로 제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할머니…….”

“기도하는 게 죽을 때까지 내가 할 일인 것 같아서……. 아주머니도 열심히 기도해요. 곧 나이들 테고, 그러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오.”

저는 일어서서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돌아서서 가시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면서 시어머니께서 저 정도만 건강하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병간호에 지친 탓도 있었지만. 저는 가끔 제정신이 들었을 때 ‘빨리 죽어야 할 텐데…….’ 하시며 고통스러워하시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제목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하여(하편)
작성자 buddhabook

그 뒤로 종종 大관음사를 찾았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은 경전 책을 사다가 읽어보기도 하고 그 할머니가 주신 염주로 열심히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작년 가을쯤에 시어머니께서 다시 쓰러지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승의 삶이 남으셨는지 힘들게 연명해 가셨습니다.

그 와중에 큰 아이 결혼식 날짜까지 다가왔습니다.

혼수상태에서 가끔 정신이 들어도 저를 저승사자로 착각해서 욕하며 난리치는 시어머님의 병치레와 아들의 결혼식 준비로 거의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치고 지쳤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차라리 제가 죽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한참 난리를 치시던 시어머님이 잠들자, 저는 그 할머니가 주신 염주를 돌리며 무작정 관세음보살님을 불렀습니다. 앞이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결혼식을 치러야 할 지, 그 많은 친지들 앞에서 어떻게 어머님을 다루어야 할 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결혼식을 미룰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들의 결혼식은 또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막막함 때문에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서도 눈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어머니께서 주무시면서 제 목소리를 들었는지 같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의 매일 관세음보살님을 불렀어도 시어머님은 시끄럽다고 고래고래 고함치기 일쑤였는데!

너무나 놀라워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정말로 시어머님께서 관세음보살을 희미하게 부르고 계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시어머님의 손을 잡고 함께 관세음보살님을 불렀습니다.

 

그 뒤 잠에서 깨어나셨는데 멀쩡하셨습니다.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셨지만, 제정신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온 가족 모두를 알아보시고 대소변도 다 알아서 가리셨으며, 아들의 색시가 인사 왔을 때도 큰 어른답게 덕담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하시고, 그 많은 친지들과 마지막 만남을 이루고서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제 손을 잡으시며 ‘고맙다.’고 하시던 그 목소리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때서야 어머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습니다. 시어머님은 그 여윈 손으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주 편안하게 삶을 마감하신 것입니다. 그 전 시어머님의 모습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맑은 눈을 하시고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시면서 눈을 감으셨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편안하게 죽는 것도 복이라고 하더니, 이제 그 말을 실감합니다.

시어머님의 영가를 大관음사에 올렸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크나큰 깨달음을 준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제게 염주를 주신 그 할머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 후 몇 번이나 찾으려고 했지만, 다시 뵐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오신다고 하시던 그 할머님!

이 글로써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김수월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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