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건 이긴 정권 없었다
이제 탈토건 위원회를 만들자
[똑경제-우석훈의 생각] 지역숙원사업, 삭발, 상경투쟁 언제까지 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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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3.13 11:54 수정 2019.03.13 14:31
국민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 지갑은 줄거나 두둑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의 일자리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정부나 기업 등은 앞장서 경제를 살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주변 동네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대형 마트로 채워집니다. 매일 쏟아지는 경제뉴스가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주 수요일 <오마이뉴스>가 새로운 경제필진 4명과 함께 '똑바로' 쓴 경제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편집자말]
 

바다를 가로질러 고군산도, 그리고 군산까지 이어지는 새만금 제방 ⓒ 추연창


진보와 보수라고 표현하든, 좌우라고 표현하든, 한국에도 여야 개념이 있고, 정권교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정치가 바뀌는 것만큼 경제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기대를 한다. 지난 주말 종로를 지나가면서 우연히 태극기 집회를 봤다. 그들은 "경제가 파탄난다, 문재인은 퇴진하라"고 외쳤다. 좀 어색하기는 했다.

MB 때는 경제가 정말로 위기였고, 박근혜 때에도 경제가 괜찮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날 집회 보너스로 "태양광이 왠 말이냐, 문재인은 퇴진하라"는 구호도 들었다. 그럼 태양광 반대가 보수의 핵심 정책인가? 그리고 그게 대통령이 퇴진해야 할 이유인가? 진짜로 미세먼지 가득한 봄날, 박근혜 하야 2주기를 맞아 거리에 나선 태극기 집회 참석자에게 저 구호들이 가슴을 때리는 구호일까?
 
하여간 좋다. 요즘은 좌파경제학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정치경제학이 오랫동안 경제학의 본명이었다. 정치와 경제가 떨어져서 분석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정치가 바뀌면 경제가 바뀌는 건지, 아니면 경제가 바뀌면 정치가 바뀌는 건지, 선후관계는 아직도 알기 어렵다. 정치가 바뀌면 경제의 일부가 바뀌기는 하는 것 같지만, 바뀌지 않는 것도 많다. 그리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토건경제다.
 
태극기집회서 튀어나온 "태양광 왠 말, 문재인 퇴진하라"

토건이라는 말은 일본 경제를 분석하면서 등장한 '토건국가'라는 개념에서 나왔다. 공공사업과 관련된 토목과 건설분야를 합쳐서 토건, 일본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다리와 도로가 토목에 속한 것이라면, 아파트는 건설에 속한 것이다. MB는 아파트값을 억지로 올리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4대강을 통해서 토목은 좀 했다. 박근혜는 창조경제 한다고 하면서 토목은 좀 덜한 것 같지만, '빚내서 집사기'로 건설 경기 부양은 열심히 했다.
 
진보, 보수 어느 쪽 정권이 들어와도 한국에서는 토목이든 건설이든, 결국 토건에 기반한 경제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토건이 나쁘냐?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많이 하기 때문에 문제다. 복지나 지식 혹은 문화 등 다른 쪽으로 들어갈 돈을 시멘트가 먼저 가져가는 것, 이런 게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의 2~3배 돈을 일본이 토건에 쓴다는 것이 토건국가의 최초 명제였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쓴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그렇게 토건으로 갈 이정표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헌재의 '한국형 뉴딜'과 함께 결국은 토건으로 달렸고, 그 때 풀린 토지보상비로 정권 말기에 아파트값 폭등이 생겼다.
 
한국에서 토건에 이긴 정권은 아직 없다. 집권 1~2년째, 뭔가 멋지고 고상한 얘기를 하다가 결국 임기 중반부를 돌 때쯤이면 토건파가 청와대와 경제부처를 장악하고, 결국 토건으로 갔다.

한국서 토건에 이긴 정권은 없다

역대 토건을 강조하지 않은 청와대 인사로는 DJ 시절의 김태동 경제수석, 노무현 시절의 이정우 정책실장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장하성 정책실장 정도 아니겠는가? 대개 정권 초반을 지나면 이런 사람들이 밀려나고, 토건에 우호적이거나 덜 반대하는 '온건파'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결국 토건으로 달려가는 패턴이다.

연초에 등장한 예비타당성 면제 24조원 사업은 이 패턴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순서로 지금의 정권도 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내년에는 총선이니까 좀 이해해주시라", 요 정도 얘기가 정권 핵심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다. 그건 이전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선거도 있고, 총선도 있고, 결국 표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것을 현 정권도 보여주는 것 같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영원히 이렇게 할 것인가? 새만금 공항이 과연 전북을 살리고, 지역경제에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무주를 비롯한 전북 내륙지역에서는 '새만금 블랙홀'이라는 볼맨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 같다. 다른 사업도 뜯어보면 마찬가지다. 예타 면제 절차도 석연치 않지만, 그 결과도 개운하지는 않다.
 
이런 문제를 제도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개혁 때 '일본의 큰 곳간'이라고 부르는 거대 경제부처, 대장성을 2001년에 해체하였다. '잃어버린 10년'을 일본에서는 토건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환경부와 건교부를 아예 합쳐서 환경부총리를 만들었고, 생태부가 국토 문제를 총괄하게 만들었다. 토건과 관련, 재정 흐름과 정부 직제를 고친 사례들이 아예 없지는 않다.
 
지역경제 어려우니까 도로, 공항 만들자고? 탈토건위원회 만들자

 

수상태양광 시설 둘러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0월 30일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 청와대

우리에게는 오래된 토건의 전통 문제도 있고, 지방자치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문제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기에는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방 건설사 등 토호들의 세력이 여전히 강하고, 토건이 아닌 대안을 형성할 시민사회의 기반이 약하다.

그러니까 중앙정부가 제도를 틀어쥐고 있다가, 정치적 이유로 하나씩 하나씩 풀어주는, 그런 패턴이 형성되었다. 개별 사업을 하나하나 평가하기는 너무 어렵고, 그것마다 전부 '지역 숙원 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도지사가 삭발하고, 도청 공무원들이 상경투쟁하는 것, 이 악순환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뭔 놈의 숙원이 이렇게 많아?)
 
전국에 도로도 놓을 만큼 놓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지하도로와 지하도시로 가자고 한다. 지역경제가 어려우니까 공항이라도 새로 더 놓자고 한다. 제주에서 서해바다, 동해바다, 전국이 공항 문제로 갈등 중이다.

경제성 검토, 예산 원칙, 행정 기구 개편 등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탈토건에 관한 원칙을 토론하고 제도화시킬 기구가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하다. 아니면 "내년에는 총선이니까, 이번만 예외로 하자", 이런 얘기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나오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여당 그리고 각 지자체에 각자의 탈토건위원회를 설치하자. 개별 사업에 대한 인허가 검토가 아니라 전체적인 방향과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시멘트가 아닌 사람에게' 돈이 흘러가는 경제, 그게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건 진보/보수, 정치적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한 경제의 문제다. 그리고 그 논의를 시작하는 게, 좋은 정치다. 합계출산율 1 이하로 내려간 지금, 돈이 들어갈 곳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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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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