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동향] 상비병력 50만 명 시대의 한국군 미래 

‘군수 MRO’가 軍 전력구조 개편 시발점 될까 

美, 무기정비체계 아웃소싱 통해 군사력 현대화·고용 창출
국방개혁 2.0 위해선 비전투 분야 대폭 감축 통한 효율화 필수


▎올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서울 ADEX 2019)’에 등장한 공군의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의 실물모형.
최근 국방 분야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슈가 있다. ‘모병제’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에서 모병제를 2020년 총선 공약으로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모병제 전환은 인구절벽 시대에 정예 강군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적 과제이자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모병제’ 화두까지 수면 위로 끌어올린 출산율 저하 현상은 ‘병력 감축’이라는 고육지책을 꺼내 들게 했다. 최근 정부는 2022년 말까지 군 상비병력을 지금보다 8만 명이 적은 50만 명으로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드론 로봇과 정찰 위성 등 첨단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전력구조개편을 통해 병력 공백을 메운다는 복안도 내놓았다. 관건은 예산이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 내용은 없었다.

국방부 안팎에서는 전력구조개편에 앞서 국방 운영의 비효율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정비 체계다. 해외 정비 위탁에 따른 장비 가동률 저하와 군과 방산업체 간 중복 투자로 국가적 자원 낭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이 줄줄 새고 있는 셈이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군수 정비 예산은 2015년 약 1조8000억원에서 2018년 2조9000억원으로, 3년 새 61.1%나 증가했다. 2023년에는 방위력 개선 사업비의 지속적 증가에 따른 운영비 급증으로 약 4조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방개혁 2.0’에는 무기체계 정비 물량의 민간 위탁이나 정비창 민영화 방안은 제외돼 있다.

이에 따라 방위산업계는 국방경영의 효율화와 국방 자원을 통한 산업화를 위한 정비 체계 혁신의 방안으로 ‘MRO’를 요구한다. MRO는 유지(Maintenance), 보수(Repair), 완전 분해·점검(Overhaul)을 의미한다. 군수 MRO는 방산기업이 개발 및 생산한 무기체계를 수용자인 군이 운용하면서 적합한 성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비·수리 및 개조하는 활동이다.

선진국에서는 ‘군수 MRO’의 효율성이 입증됐다. 미국은 1997년 국방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군 보유 정비창을 50% 감축하고 전투에 긴요한 무기체계 및 군 핵심장비에 대한 정비까지 아웃소싱했다. 이 결과 군 정비인력의 58%인 9만1000 명을 감축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는 오히려 국방력 증대에 기여했다. 군 정비인력에 투입됐던 예산을 군사력 현대화 추진에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간 영역에서도 파급 효과가 발생했다. 정부의 아웃소싱으로 인해 민간업체들은 매출이 증가했고 고용 창출도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게다가 기존 무기체계에 대한 신기술 적용·성능개량 등 선순환이 이뤄지면서 결과적으로 국방력 향상에 기여하게 됐다.

군수 MRO는 산업 측면에서의 성장도 이뤄냈다. 1980년 대 이후 영국 정부의 국방 효율화 정책에 따라 정비 위탁 사업을 진행한 BAE사는 2016년 매출 227억 달러(약 26조원)를 기록하며 글로벌 MRO 업체로 거듭났다. 싱가포르는 1960년대부터 군수 정비 사업을 아예 국가 주력산업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아시아 최대 MRO 클러스터를 조성했고 규모는 18조원 이상이다.

“육군·공군, 해군 정비시스템 참조해야”

우리나라 역시 2006년부터 민간자원 활용을 통한 국방경영의 효율성 향상을 추진했지만, 선언적 수준에 머물렀다. 2008년부터 2012년에도 정비창 민영화 민간 위탁을 검토했지만, 국방부 반대로 무산됐다. 전시 안정성, 과다 비용 소요 및 군 인력 운용 측면에서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2010년이 돼서야 PBL(성과기반 군수제도) 착수 이후, 군수지표가 개선되면서 민간 영역과의 협력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PBL은 무기체계 개발 단계부터 생산업체 선정은 물론 개발·배치·운영·유지 등 전 분야 또는 일부분을 민간 업체에 전담시키는 제도다.

현재 군수 MRO를 진행하고 있는 업체는 주로 항공 분야에 집중돼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 약 300억∼350억원 수준의 항공 MRO 공급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자체 생산한 KT-1·T-50·수리온 등에 대해 PBL기반의 정비를 진행하고 있고 2018년 7월에는 국토부 지정 항공MRO 전문기업(KAEMS)을 자회사로 설립하기도 했다. 올해 10월에는 에어버스 헬리콥터스와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수리온부터 소형무장·민수헬기(LAH/LCH)까지 헬기사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밖에 군용 엔진 위주의 항공 MRO를 수행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구 한화테크윈), 아태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군용기 정비기지를 보유한 대한항공을 중심으로 MRO 산업이 형성돼 있다.

정비 체계의 민간 위탁 효율성은 국감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해군 LTS 정비시스템을 통해 체계종합업체가 전력화부터 퇴역까지 민군 합동으로 다 관리해주고 있다”며 “육군·공군에서 참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LTS 정비시스템 도입 후 평균 복구 일수가 38일에서 9일로 29일 단축됐고 고장 건수도 월 7.1건에서 6.7건으로 줄었다. 반면 가동률은 2배 증가했다. 해군 LTS 정비시스템은 함정 도입부터 도태까지 전(全) 기간 외부 전문인력을 투입해 전투체계를 주기적으로 통합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고장이 발생한 경우에만 정비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항시 배치된 전문인력이 주기적으로 함정의 전투체계를 진단하고 이동 정비를 시행한다.

국방전문가들은 병력 감축을 비롯해 국방개혁 2.0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MRO를 비롯한 비전투 분야 대폭 감축을 통한 효율화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사례처럼 군수 MRO의 민간기업 이관을 통해 전투형 강군 육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방위산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방산기업은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구성돼 있고 세계적 수준의 고급인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단기간 내에 세계적인 MRO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해외에 외주하는 MRO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현 상황에서 4조원에 달할 MRO 예산을 국내로 전환한다면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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