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라이벌] ‘남심을 잡아라’ 질레트 vs 쉬크의 면도기 전쟁
'최초의 안전면도기' '최초의 전기면도기' 혁신 기술로 시장 양분
5중날 신기술까지 ‘날 전쟁’에다 독자적 마케팅으로 아성 쌓아와
오프라인 경쟁만 보다 가성비 앞세운 스타트업 공세에 고전 직면
"선두 업체라도 혁신, 창의 등 기업가 정신 잃으면 언제든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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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100년 면도기 라이벌’ 질레트와 쉬크가 떨고 있는 이유는? |
평생 무려 3,000시간이나 소비합니다. 날짜로 따지면 140일, 횟수로는 2만번이 넘죠. 그렇다 보니 면도기는 남성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입니다. 시장은 질레트와 쉬크가 각각 1, 2위로 양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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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레트와 쉬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이 결합해 거대 기업을 탄생시킨 좋은 사례인데요. 188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던 킹 캠프 질레트(King C. Gillette)는 아침마다 수염을 깔끔하게 깎아야 했습니다. 당시 수염을 깎을 수 있는 도구는 날카로운 칼밖에 없었고 얼굴에 상처가 남기 일쑤였죠. 불평을 해대던 질레트는 이발사가 빗을 대고 머리카락만 잘라내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여기에 착안해 칼날을 얇은 철판 사이에 끼워서 털만 닿게 한 상태에서 면도를 할 수 있는 ‘안전면도기’가 탄생했습니다. 질레트 신화의 시작이었죠.
쉬크의 성장 스토리는 전기면도기에서 출발합니다. 쉬크의 창업자 제이콥 쉬크(Jacob Schick)는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물로 면도하다 불현듯 전기면도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때문에 쉬크는 전기면도기의 발명자로 불리죠. 전기면도기 회사 창업 이후 습식면도기 시장에도 뛰어들면서 질레트와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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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는 주고받거니 경쟁을 벌이면서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쪽은 질레트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에 면도기를 납품하며 인지도를 쌓았고, 군인들은 전역 후 질레트의 ‘충성 고객’이 됐습니다. 두 번째 도약의 계기는 연구개발비만 총 7억5,000만달러(약 8,400억원)를 투자해 3중날 면도기 ‘마하3’를 내놓으면서부터죠. 마하3는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억 개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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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크도 면도날 혁신 경쟁에서 질 수 없었습니다. 최초의 4중날 면도기 ‘콰트로’를 출시한 것이죠. 혁신적인 피부 밀착과 면도의 안정성을 자랑하며 쉬크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높였죠.
여기서 가만히 있었다면 ‘면도기 전쟁’이란 수식어가 필요 없겠죠?
충격을 받은 질레트는 2007년 최초의 5중날 진동면도기 ‘퓨전’을 내놓으며 소위 대박을 칩니다. 쉬크는 이에 질세라 피부자극을 줄여주는 보습기능에 ‘올인’하게 됩니다. 다중 날 경쟁에서 밀리자 사업 전략을 바꿔 면도 시 촉감과 저자극에 무게중심을 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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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의 경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이하게 다른 마케팅 전략입니다. 질레트는 오랜 시간 데이비드 베컴과 리오넬 메시 등 유명 스포츠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을 고수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손흥민 선수도 모델로 활동 중이죠. 반면 쉬크는 광고 모델보다 면도기 자체 기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보습력을 강조해 파도나 물방울의 모습을 극대화한 그림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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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숱한 위기에도 자신만의 전략으로 시장을 양분해 온 질레트와 쉬크. 변변한 경쟁자도 없다 보니 매년 고가의 모델을 새로 출시해 가격을 올리는 프리미엄 전략을 고집해왔습니다.
하지만 2011년 ‘면도기 구독 모델’이라는 기존 시장에 없던,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자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요즘 면도기는 너무 비싸다”는 슬로건을 내 건 면도날 배달 서비스업체인 ‘달러 쉐이브 클럽’과 ‘해리스(Harry’s)’이죠.
마이클 더빈 달러 쉐이브 클럽 대표는 “2주에 한 번 면도날을 바꿔야 하는 교체형 면도기에 진동 핸들과 플래시, 6중날과 같은 것들이 왜 필요한가”라며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습니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매달 월정액을 내면 첫 배송 때 면도기 핸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이후에는 면도날만 매달 4~5개 보내줍니다. 질레트 등에 비해 60% 정도나 싼 가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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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스타트업들은 홍보 방식도 전통적인 강자들을 압도했습니다. 비싼 광고 모델을 등장시키고, 화려한 영상기술을 쓰는 대신 SNS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달러 쉐이브 클럽은 단순하고 코믹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단 48시간 만에 2만1,000명의 고객들이 늘었죠. 스마트폰과 SNS 시대에 맞춰 최고의 광고 효과를 올린 셈이죠.
소비자들은 열광했습니다. 달러 쉐이브 클럽과 해리스의 미국 남성 면도기 시장 점유율은 2015년 7.2%에서 2017년 12.1%로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질레트 점유율은 60%에서 50%로 빠졌죠. 결국 질레트와 쉬크는 백기를 들었습니다. 가격을 인하하며 프리미엄 전략을 포기한 것이죠. 또 질레트는 달러 쉐이브 클럽의 방식을 모방해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면도기 시장의 두 공룡이 신생 스타트업의 추격을 허용한 것은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브랜드 전략과 기술력만 강조하며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반면 스타트업 기업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꿰뚫어 봤습니다. 새 면도날을 마트에 가는 수고로움 없이 집에서 싼 가격으로 받아볼 수 있다는 매력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죠.
100년 이상 계속돼 온 질레트와 쉬크의 면도기 전쟁. 외날부터 5중날까지 계속된 ‘날 전쟁’에서 숱한 신기술을 보여주며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에 직면하며 아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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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고전은 경영환경이 급변하는데도 현실에 안주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배달 서비스 등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는데도 오프라인 시장에서 1위와 2위간 경쟁만 보고 있었다는 얘기지요. 또 두 회사의 사례는 혁신, 창의적 아이디어, 소비자, 진화 능력 등 기업가 정신의 기본 키워드를 잃어버릴 경우 선두 기업이라도 언제든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줍니다. 한때 휴대폰 세계 1위 기업이었다가 스마트폰에 적응 못해 순식간에 몰락한 노키아처럼 말이죠.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F8FRLAYE?OutLink=n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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