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월 450만원씩 주면 심야약국 운영, 편의점서 상비약 팔지 말라"
김태환 기자 입력 2018.08.04. 06:02
편의점에서 파는 안전상비의약품에 ‘겔포스' 등을 추가하려 하자 약사들이 반대에 나섰다. 이미 판매 중인 진통제 ‘타이레놀' 등 아예 상비약 판매를 중단하라는 입장이다.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밤늦게 상비약을 찾는 소비자를 위해 심야약국을 운영할테니 세금으로 지원해달라고 주장한다. 의사가 처방한 전문약품이 아니라 소비자 판단으로 구입하는 상비약 판매까지 간섭하는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평가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8일 의사와 약사, 일반 소비자, 편의점 업체 관계자 등 각계 이해관계자 10인으로 구성된 ‘제6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를 열고 편의점 상비약을 13~15개로 조정·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심의위는 이번 6차 회의에서 속쓰림 증상 개선 효과가 있는 ‘겔포스’, ‘스멕타’ 2종의 신규 품목 추가 안건과 기존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 등 13개 품목의 유지 여부를 표결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심의위는 약사회의 반대로 표결 자체가 어려울 전망이다. 심의위는 지난해부터 동일 안건에 대해 다섯 차례에 걸쳐 논의를 거듭했으나 품목 확대를 반대하는 대한약사회 관계자의 자해시도 등으로 인해 합의점을 계속해서 찾지 못하고 있다.
약사회 측은 아직까지 신규 후보품목인 겔포스뿐 아니라 알코올 복용 시 간독성 우려가 있는 타이레놀 등 기존 6개 품목도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편의점 전체 품목에 대한 판매 재검토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 약국서 진통제 사면 괜찮고 편의점서 사면 부작용...기막힌 이기주의
약사회는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 반대 이유로 의약품 오·남용과 부작용 발생 우려를 꼽는다. 복약지도가 없는 편의점 판매로 부작용을 겪는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약사회는 2015년~2016년간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신고된 의약품 이상사례 보고에서 현재 편의점 상비약으로 포함된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500㎎’과 ‘판콜에이 내복액’은 각각 195건과 22건의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사망1건도 있어 약국 판매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1일 “같은 약이라도 약국에서 팔면 안전하고 편의점에서 팔면 부작용이 크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의약품 부작용과 편의점 판매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 약사들이 억지를 부린다는 입장이다. 예컨데 약국이나 편의점이나 “진통제 주세요” 하면 편의점은 그냥 팔고, 약국은 “음주 후 복용은 안됩니다”는 식으로 복약지도를 하냐는 말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6년 정부용역과제로 조사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 시행 실태조사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면 2012년 편의점 상비약 판매 첫 해 13개 상비약에 대한 부작용 건수는 124건으로 나타났다. 편의점과 약국을 합친 공급량 대비 부작용 발생률은 0.0048% 수준이다.
2013년 편의점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13개 상비약의 부작용 건수는 434건으로 늘었지만 부작용 발생률은 0.0037%으로 전년대비 감소했다. 편의점 소비량이 가장 많은 타이레놀500㎎의 부작용 발생률 역시 2013년 0.0024%, 2014년 0.002%, 2015년 0.001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약사회, ‘박카스' 등 상비약 판매 줄자 ‘밥그릇' 싸움 본격화
약사회가 공공연히 알려진 편의점 상비약의 부작용 등 위험성에 다시 불을 지핀 까닭은 약국 매출의 변화와 심야시간 약국 운영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약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의 비율이 전문의약품 80%, 일반의약품 20% 수준이었다면 최근에는 85%와 15%로 일반약 비중이 줄었다.
실제 13종의 안전상비약 편의점 공급량은 2012년 195만개에서 2013년 1114만개, 2014년 1412만개, 2015년 1708만개, 2016년 1957만개로 지속 증가했으나, 약국 공급량은 2012년 59만개에서 2013년 41만개, 2014년 39만개, 2015년 46만개, 2016년 50만개로 감소했다.
약국의 대표 ‘미끼상품’으로 불리던 박카스 등도 2011년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편의점용 제품이 별도 출시되면서 약국 판매량이 줄었다. 2016년 기준 전국 프랜차이즈 편의점 수가 3만여개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때 전국 2만여개 약국과 소비자 접근성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약국을 찾기 힘든 심야시간 소비자들의 의약품 구입 해소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 제도를 도입한 가장 큰 이유였다.
이와 관련 약사회는 편의점으로 이탈하는 소비자를 잡기위해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영업하는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을 대구, 제주, 경기 등 전국 33곳에서 하고 있다. 약사회는 심야약국 운영에 정부 지원금을 달라고 하고 있다. 약국 한 곳에 시간당 4만5000원씩 월 450만원을 지원하라는 것이다. 심야약국을 운영하면 편의점보다 안전하게 약을 판매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약사회 관계자는 “안전상비약 사용시 부작용 발생으로 인한 보험 부담 진료비용 등을 고려하면 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이익이 크다”며 “약국은 소비자들에게 약 복용에 대해 구두와 서면으로 지도하고 환자 상태를 파악해 편의점보다 안전하게 약을 구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편의점 상비약과 관련해 약사 이기주의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우리는 전문가로서 국민 건강을 지키고 약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비자 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러한 약사회의 주장이 집단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경실련은 안전상비약 자체가 가벼운 증상에 환자가 자가판단해 사용하도록 지정한 약인 만큼 오히려 소비자가 긴급 시 선택할 수 있는 품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실련 사회정책팀 관계자는 “편의점 상비약은 긴급한 상황이나 편의성을 위한 것으로 약국보다도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데 판매 품목을 제한하는 약사회의 주장은 억지”라며 “약사회가 편의점 판매 품목 확대에 반대하는 것은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비약을 약국에서만 판매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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