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일자리 혁명에서 살아남는 법①
19C 러다이트 “기계가 일 뺏는다” 파괴
80년대 후반 버스 안내원 ‘직업증발’
10년 후 자율주행차, 100만 기사 위기
AI 특이점, ‘직업증발’ 속도 빨라질 것
사라진 일자리, 노동자 재교육·취업 필요
제2의 유나바머, 네오 러다이트 조심해야
산업혁명 하면 보통 증기기관을 떠올리지만 18~19세기 영국에선 방적기가 기술혁신의 대명사였습니다. 수공업으로 이뤄지던 직물 제조업에 방적기가 도입되면서 대량 생산 체제가 구축된 것이었죠. 방적기는 노동자들보다 훨씬 많은 직물을 생산했고 일의 속도도 무척 빨랐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기계와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죠.
돈 많은 자본가들은 방적기를 양말 짜던 수공업자들에게 빌려주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기계를 사용한 대량생산으로 양말 값은 하락했고 노동자들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특히 당시 유럽 대륙을 점령한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하는 ‘대륙봉쇄령(Blocus Continental)’을 내리면서 영국은 높은 실업률과 식량 부족까지 겪게 됐습니다.
방적기의 도입 이후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있던 노동자들은 결국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생필품조차 못 구하는 상황에서 방적기를 파괴하기에 이른 것이죠. 공장 노동자들은 그들의 리더인 네드 러드(Ned Ludd)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러다이트’라고 불렀습니다. 노동자들은 그를 ‘러드 장군(General Ludd)’, ‘러드 왕(King Ludd)’ 등으로 칭했지만 실존했던 인물인지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증기기관 한 대가 1000명의 사람을 실업자로 만들고 노동자 모두에게 분배될 이익을 한 사람에게 넘기기도 한다. 새로운 기계가 나올 때마다 많은 가정이 빵을 빼앗긴다. 증기기관이 하나 만들어지면 거지의 숫자가 늘어난다. 사회의 모든 돈이 일부의 자본가들 손에 들어가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걸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러다이트는 기계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게 아니라, 인간을 자본에 귀속시켜 기계보다 못한 삶을 살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러다이트는 단순히 기계를 부수는 게 아니라 이를 소유한 자본가 계급에 대한 증오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죠.
러다이트를 경험한 영국은 이후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자의 실업 문제에 적극 개입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게 1865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입니다.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반대하는 마부들을 달래기 위해 제정된 법인데요. 자동차 한 대를 운행하려면 운전사와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따라 붙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기수는 붉은 깃발을 들고 수십 미터 앞에서 자동차를 이끌어야 했죠. 그러나 이 법은 산업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폐기 처분됩니다. 물론 마부란 직업은 사라졌고요.
하지만 우린 이와 같은 일들이 아직 실감나지 않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미래는 점진적으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훅’ 하고 이미 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자리가 천천히 감소하는 게 아니가 한 순간에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죠. 바로 ‘직업 증발’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례는 종종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버스 안내원’이죠. 이른바 ‘안내양’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었죠. 하얀 장갑을 끼고 동전을 거슬러주거나 탑승이 완료되면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버스에 안내방송과 하차 벨이 생기면서 더 이상 이들의 역할은 필요 없게 됐습니다. ‘안내양’이라는 직업은 불과 몇 년 만에 사라져 버렸죠.
[출처: 중앙일보] 한 순간에 ‘훅’ 직업 증발의 시대 온다
미국에선 엘리베이터 도우미(elevator operator)가 그랬습니다. 1880년대 처음 등장한 이들은 1950년대 1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인 1960년대 6만 명으로 반 토막 나더니 얼마 후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내양’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발달로 없어진 대표적인 ‘직업 증발’ 사례죠. 이처럼 기술혁신은 필연적으로 일자리를 사라지게 합니다.
물론 없어진 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겁니다. 전체 산업과 노동 구조의 측면에선 또 다른 일자리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직업 증발’은 생계와 삶의 목표가 걸린 큰 문제입니다.
특히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기술혁신은 과거와는 차원이 매우 다릅니다. 지금껏 기계로 대체된 일자리의 대부분은 육체를 쓰는 단순노동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인간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죠. 그러나 기계가 단순히 인간의 물리적 노동만을 대체하는 게 아니고 인지적 능력까지 대신하게 될 때는 그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또한 미래에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다 해도 지금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힘듭니다.
전문직으로 불리는 법조인과 의사도 예외는 아닙니다. 변호사 업무의 경우 2025년까지 37%, 2030년까지 48.1%가 AI가 인간을 따라잡게 됩니다. 판검사도 2025년(34.5%), 2030년(58.6%)까지 AI의 능력이 높아질 전망이고요. 의사는 더욱 심합니다. 2025년 33.3%, 2030년 70%입니다. 의료 분야에선 이미 AI 의사 왓슨이 큰 활약을 하고 있죠. 2030년엔 교수(59.3%), 기자(52.4%) 등도 절반 이상의 역량이 AI와 같거나 못하게 될 전망입니다.
3개 도시를 분석했는데 현재와 비교해 자가 차량 보유자 비율이 댈러스(31%), 로스앤젤레스(44%), 뉴욕(60%) 등 순으로 급감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운전가가 사라질 뿐 아니라 자동차 구매자 역시 없어지는 거죠. 대신 사람들은 자동차를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그 때문에 모빌리티업계에서는 다소 흥미로운 전망도 내놓습니다. 현대차와 같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미래 사회에는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렌터카업체로 변신할 것이라는 거죠. 마치 최근 몇 년 사이에 호텔업이 지고 에어비앤비가 뜨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미래 기술의 혁신은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을 겁니다. 자율주행차 뿐 아니라 다른 산업과 직업 분야도 마찬가지죠. 특히 AI 기술이 특이점(singularity·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AI로 대체되는 일자리는 더욱 많아질 겁니다. “조만간 AI가 지식과 정보의 습득 능력뿐 아니라 논리와 추론의 영역에서도 인간을 뛰어넘을 것”(미래학자 레이커즈 와일)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30년 후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죠. 이처럼 특이점 시대에 ‘직업 증발’의 속도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겁니다.
유나바머는 결국 1996년 FBI에 체포돼 시어도어 커진스키라는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인들은 그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매우 경악했습니다. 희대의 폭탄 테러범이 하버드대를 졸업한, 어릴 적부터 수학 천재로 유명한 버클리대의 전직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른바 ‘유나바머 선언문’에서 “인류에게 산업혁명은 재앙이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될 거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고통 받는 노동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직업 증발’의 시대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제2의 유나바머, 또는 러다이트 운동이 생길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몇 년 후 얼마만큼의 일자리가 없어질 거라며 발만 동동 구르거나 어두운 전망을 곱씹으며 우울감에만 휩싸여선 안 됩니다. 반대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거니 걱정 말라”는 순진한 낙관론에 빠져서도 안 되고요.
제일 먼저 우리는 없어질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재취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울러 미래에 필요한 인간의 역량이 무엇인지, AI와의 경쟁에서도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무엇인지 찾아내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철저한 준비가 없이 미래를 맞이한다면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4차 혁명의 성과가 시민 다수에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직업과 일자리 문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일을 위해 우리는 뭘 준비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무얼 배워야 할까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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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한 순간에 ‘훅’ 직업 증발의 시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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