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문제는 경제다! 3大 경제난제와 해법] 2018년 한국 경제의 걸림돌과 처방전 

‘혁신성장’이 경제 살려낼 수 있을까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경제전문기관들의 2018년 경제 성장률 예상치는 2.5~3.0%...대기업보다 중소기업·벤처 중심의 경제정책에 우려 시각도

경제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새해 2.5~3.0%대 경제성장을 예상했다. 정부도 ‘사람중심 경제’를 키워드로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내걸고 경제 활성화에 나섰다. 2018년 한국 경제는 순항할까?


▎새해 경제계의 최대 화두는 ‘혁신성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1월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혁신성장 전략회의에서 ‘혁신성장의 방향과 주요과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새해 한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 전문연구기관들의 경제 성장률 예상치는 다소 엇갈린다. 최저 2.5%에서 최대 3.0% 성장률을 내놨다.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3.0% 성장 전망을 내놨다. 민간소비가 좋아지고 수출과 투자의 증가세가 양호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 성장을 예상했다. “수출 증가세가 유지되고 소비가 개선되지만 기업들의 투자가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예산정책처, 민간연구기관인 국가미래연구원은 이보다 낮은 2.8% 성장률을 내놨다. 현대경제연구원·LG경제연구원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성장률 2.5%를 전망했다.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부동산 하락으로 건설투자 증가율이 꺾이고 설비투자도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관별로 전망치가 최대 0.5%포인트까지 차이 나긴 하지만 한국 경제가 성장세라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정부 목표대로 3.0% 성장이 이뤄진다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돌파도 가능해진다. 한국은 2006년에 2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12년째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이웃 나라 일본은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가는 데 4년, 독일은 6년이 걸렸다.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하면 ‘30-50클럽’에도 가입할 수 있게 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을 넘는 국가들을 일컫는 ‘30-50클럽’은 현재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6개국뿐이다. 한국이 가입하면 명실공히 경제력과 인구를 동시에 갖춘 경제강국이 된다.

한·미 FTA 개정 협상으로 교역 조건 악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라인. 한국의 수출은 호조세이지만 반도체에 지나치게 편중된 수출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하지만 3%대 성장은 반도체·스마트폰 등 한국의 주력 산업과 기업들의 투자심리, 정부의 내수 진작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가능하다.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다행히 새해 글로벌 환경도 교역량 확대 등으로 성장세다. 우리로선 긍정적 상황이다. OECD는 2018년 세계 경제가 3.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시아·유럽의 내수 확대로 세계 교역이 회복돼 제조업 생산이 증가하고 민간부문 심리가 개선되면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우선 미국은 양호한 고용시장에 따른 소비 증가와 투자 회복 등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이 수출 호조와 재정 확대로 완만하게 상승하고, 중국도 확장적 재정정책에 따른 인프라 투자 증가 등으로 양호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환경은 상황에 따라 변화 폭이 크다. 악재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살피는 정부의 세심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새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협상에 따라 미국과의 교역 조건은 다소 악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한(對韓)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자동차 분야 추가 개방을 요구할 경우 정부가 ‘농산물 추가 개방’을 협상 테이블에 내놓을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국회 등 정치권의 갈등이 과열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의 힘겨루기가 재현될 수 있다.

금리 인상도 주요 변수다. 미국연방준비제도(미연준)가 지난 12월 13일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국내 금리와 동일한 수준이 됐다. 미연준은 2017년에 3월, 6월, 12월 등 세 차례나 금리를 인상했다. 2018년에도 세 차례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우려했던 대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역전(逆轉)이 현실화된다. 국내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해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어떻게 반응할까?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우선 미국과의 금리 역전을 막기 위해 한은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렇게 되면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의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내수가 침체될 수 있다. 거품 논란을 빚은 서울 아파트값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국내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면 미국이 금리를 추가 인상해도 정부가 같은 속도로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가계부채 뇌관이 폭발하는 사태를 그냥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IMF는 한국은행에 통화 완화 정책 유지를 권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해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신중해질 것으로 내다보는 관측이 많다.

새해도 역시 경제성장의 열쇠는 수출이 쥐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출이 둔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새해에도 수출은 증가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불안한 성장’이다. 반도체에 지나치게 편중된 기형적인 수출 구조 때문이다.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9%에 불과했지만 2017년엔 16.8%까지 치솟았다. ‘수출 기여도’ 역시 반도체가 42.9%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화학(10.4%), 선박(10.4%), 석유제품(10.1%)에 철강(7.4%)과 자동차(4.2%)를 다 합쳐도 반도체 한 종목의 수출 기여도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정부와 기업, ‘반도체 착시’에서 벗어나야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공식화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에 시름이 깊어졌다. 현대자동차 수출 선적부두에 외국으로 수출될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한국 제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영 상황에 따라 한국 수출과 코스피 지수 전체가 휘청대는 구조다. 정부와 기업이 수출 호조세를 떠받치는 반도체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현재의 반도체 호황에 취해 한국 경제 펀더멘털은 문제없다고 오판하다가 큰 화를 당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반도체 산업은 주기적인 사이클이 있다. 한국은 1993~95년 반도체 호황이 끝난 뒤 1997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2002~2004년 D램 급성장기가 끝나자 2008년에 곧바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현재 호황인 D램과 낸드플래시도 2018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게다가 중국이 우리를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다. 투자자들의 지나친 반도체 투자 열기도 널뛰기 증시에 휘둘릴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1월 26일엔 “메모리반도체 경기가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모건스탠리 보고서 한 장에 삼성전자 주가가 하루 만에 5% 이상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새해에는 2017년보다 1.4% 줄어든 3억1530만 대를 판매하며 점유율이 19.2%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도 삼성전자가 구글과 아마존에 뒤처져 있다. 주력 수출기업인 삼성전자의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이다. 해법이 있을까? 차상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혁신 DNA를 가진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주창했던 ‘신경영’처럼 파격적인 연봉을 주고 국내외 A급 인력을 영입하고, 과감하게 인수합병(M&A)을 진행해 가면서 회사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에 따르면 새해 한국 경제가 활력을 찾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려면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돼 제조업 가동률이 80%는 돼야 한다. 현재 국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0% 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금리와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계획했던 투자를 줄이고 새해 경영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수출기업들도 늘고 있다. 2017년 달러당 평균 1160원 수준이던 환율은 새해엔 1050원 아래로 뚫고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출기업들 입장에선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새해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회복돼야 한다. 설비·건설 투자가 둔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정부가 내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삭감해 토목·건설 부문에서는 부진이 예상된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 정책이 지속되면서 신규 아파트 분양과 건설 수주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설비투자 여건도 좋지 않다. 반도체를 제외한 여타 업체들은 가동률이 낮을 것으로 전망돼 설비투자 증가폭도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정부에 ‘노동시장 개혁’ 주문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벤처로 이동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1월 30일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을 마친 뒤 벤처 창업 페스티벌장을 방문해 한 벤처기업이 만든 프린터 ‘망고슬래브’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체질 개선을 서두르는 한편 구조 개혁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요구하는 구조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개혁’이다.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법인세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과 강화되는 기업 규제,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 임금 인상이 기업의 활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기업인이 많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숨은 설계자로 꼽히는 변양균 전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도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구조개혁 과제로 ‘노동시장 개혁’을 주문했다.

변양균 전 실장은 2017년 11월 IMF 홈페이지에 게시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경영 사정 악화나 급격한 기술 변화에 맞춰 고용을 줄일 수 있는 ‘자유’가 없다면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에 경제적 자유 증진을 위한 최우선 구조개혁 과제로 ‘노동시장 개혁’과 ‘금융시장 개혁’을 주문했다. 변 전 실장이 강조하는 노동개혁은 노동계약의 경직성 완화와 함께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변 전 실장은 기업들이 사회가 주문하는 ‘투명경영’을 실천하고 있을 경우 기업이 요구하는 근로자 해고가 가능할 수 있게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재계와 기업들은 변 전 실장의 조언에 공감하는 눈치다. 정부의 경직된 친노동 정책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변 전 실장의 제안은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과는 결을 달리하는 주장이라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3%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활력을 찾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업활동의 부진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좋지 않다. 통계청의 2017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실업률은 3.2%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체감실업률도 21.4%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그럼에도 새해 고용 사정 전망은 밝지 않다. LG경제연구원은 건설투자 위축으로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의 투자 둔화로 전반적인 고용 사정은 2017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실업이 특히 심각하다. 2017년에 9.2%를 기록해 10% 대가 코앞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이 악화된 요인 중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2018년 시급 7530원)을 꼽았다.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현실은 정부의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국내 일자리의 65%를 종업원 50인 이하의 소기업이 맡고 있는데, 최저임금을 매년 올리면 소기업들이 이를 부담할 능력이 안 돼 고용을 줄여 가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시적인 재정 투입으로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출 못지않게 내수 시장이 성장해야 한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런 맥락에서 새해 한국 경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문이 소비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등 정책 효과로 내수가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설계자이기도 한 김광두 국가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특히 사람에게 투자하는 ‘사람중심 경제’를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131쪽 기사 참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존의 수출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심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한 것이 그 사례다.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는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면서 “사람중심 경제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그 중심에 중소기업을 세우고자 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일자리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의 주역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중소벤처기업부의 출범은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이다”며 “정부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우리 경제의 중심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경제계는 사람중심 경제와 중소기업 육성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 정책의 급격한 전환에 대해서는 내심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경제정책의 중심을 재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겨 가겠다’는 정책은 대기업 기 살리기보다는 대기업을 위축시키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홍정학)에 지나치게 힘이 쏠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심지어 지난 정부의 공룡부처였던 미래창조과학부가 연상된다는 이들도 있다. 경직된 정부 정책은 기업들의 활동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사람중심 경제는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 대신에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것을 경제정책의 목표로 하자는 바람직한 정책으로 국제기구들이 권고하는 소위 ‘포용적 성장론’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대기업의 역할이 외면되거나 부정적 존재로 인식돼 기업들의 의욕을 꺾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동원 교수는 “혁신성장과 공공부문 고용 확대는 물론 기존 기업들의 활동을 격려하는 정책을 펼쳐야 정부의 주요 과제인 일자리 창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에 자유로운 생태계 조성을 강조한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벤처·중소기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감지된다. 벤처기업들의 성장 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국내 벤처기업의 발전 과제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내 벤처기업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핵심 주체로 부상하고 있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면서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담당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2000여 개 벤처기업을 상대로 표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유일’ 기술을 보유했다고 응답한 벤처기업 비중은 2012년 4.2%에서 2016년엔 0%로 떨어졌다. 수출에서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부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중시 정책을 펼칠 경우 자칫 자생력 없는 벤처기업에 대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대중 정부 때 ‘묻지마 벤처’ 거품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때문에 지나친 벤처·중소기업 중시 정책보다는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동반성장에 방향을 둬야 한다는 주문이다.

새해 최대 화두인 ‘혁신성장’에 관심


▎사람중심 경제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솔루션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수상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새해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 활력을 되찾고 3%대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혁신성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등 주력수출 상품과 중국·미국에 편중된 교역국을 다변화해 국내 경제가 받을 충격을 줄여야 한다. 창업과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새해 본격화될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에 경제계의 기대가 큰 이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지난 11월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중소벤처기업부·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21개 부처 공동으로 ‘혁신성장을 위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대응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 등 미래 기술의 확산을 강조하고,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발표 내용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 별로 다르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정부가 스타트업·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으로 제시한 성장사다리펀드·기술금융 등 금융 지원, 공공기관 중심 수요 창출, 연대보증 전면 폐지 등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내용과 대동소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성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도 이 점을 의식했는지 “‘그 나물에 그 밥’이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도 말이 되면 계승·발전시키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부와 차별화된 ‘혁신’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아직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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