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갑질' 시대, 끝내자

[기고] 국가정보원, 국회가 통제하라 [下]
2017.03.25 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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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갑질' 시대, 끝내자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1) 국정원은 종교기관인가?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2) 국정원 통제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이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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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국회가 통제하라 [上] : 국정원 통제 수준이 민주주의 수준이다

☞국가정보원, 국회가 통제하라 [中] : 국정원은 종교기관인가?


온 몸을 던져 국정원 보호한 새누리당 의원들  


지금까지 이명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저지른 수많은 불법과 편법 의혹은 모두 '국회 정보위 소집-국정원장 부인-국정원 자료 거부-정치공방 후 소강 상태'라는 똑같은 패턴으로 처리됐다. 당연히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  


이 대목에서 지난 9년 동안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소속 국회 정보위원들이 국정원을 위한 투쟁에서 얼마나 집요하고 투철했는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들은 어떤 의혹이 불거져도 온 몸을 던져 국정원을 감싸고 돌기에 급급했다. 색깔론은 이분들의 단골 메뉴였다. 2013년12월 국정원법 개정 논의가 한창일 때도 이분들은 법으로 국정원 활동을 규제하면 안 된다며 국정원의 자체 개혁 안을 수용하자고 합창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는지 묻고 싶다. 머지않아 정권이 바뀌고 국정원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 이분들을 반드시 기억하고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민주 정부 10년 이후, 다시 정권 보위조직으로 타락한 국정원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국정원에 대한 제도 개혁을 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장과 독대 금지를 5년 내내 실천하며 국정원의 힘을 뺐지만 국내 파트의 정보 수집 기존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국정원은 과거의 정치 개입 타성과 적폐를 급속도로 되살리며 정권 보위 조직으로 타락한다.  


특히, 지난 3월 10일 탄핵으로 공식 종료한 박근혜 정권은 탄생 과정에서도 국정원의 신세를 톡톡히 졌지만 집권 기간 중에도 계속 국정원의 암약을 부추기며 그에 힘입어 연명한 국정원 주도 정권이었다. 박근혜의 국정원만큼 4년 집권 기간 내내 정치 뉴스의 전면에 등장하며 불법적 존재감을 과시한 국정원은 일찍이 없었다. 한마디로 국정원은 박근혜 정권의 산파역이자 호위무사였다.  

국정원이 만든 대통령 박근혜, 취임 후에도 정치국정원에 병적으로 의존

박근혜 정권 국정원의 불법 비리 스캔들을 굵직굵직한 것만 몇 가지 구체적으로 기억해보자. 이명박 정권의 원세훈 국정원은 2012년 박근혜 당선을 위해 대대적으로 온라인 정치댓글을 조직하며 '대국민심리전'을 수행해서 박근혜 당선의 1등 공신이 된다.


2013년 정권 원년에 박근혜 정권의 남재준 국정원은 NLL 관련 정상회담 발언록을 공개하고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노골적으로 정권 보위에 나선다. 2014년에 국정원은 세월호 관리 의혹과 2016년 영화 <자백>으로 그 전모가 드러난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으로 대대적으로 언론을 탄다. 국정원은 2015년 여름 이탈리아 해킹팀한테 핸드폰 도감청 장비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큰 곤욕을 치렀으나 결국 담당 사무관의 자살로 흐지부지된다. 2016년에는 특검 수사로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전례 없이 드러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보수단체 지원, 국민연금 정보수집 후 삼성 유출, 대법원장과 지법원장 사찰, 헌재와 법원 사찰 시인 등이 줄을 이었다.  


이런 연대기가 말해주듯이 박근혜 정권은 정치검찰 못지않게 정치국정원에 병적으로 의존한 권력 중독 정권이었다. 음지에서 무명의 헌신을 해야 할 국정원이 4년 내내 정치 전면에 나섰던 하수상한 세월이었다.  

국정원의 비정상적인 행태, 잘못된 국정원법의 결과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명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은 꼭 필요한 정보 수집에서 실패하고 불법 공작을 어설프게 수행하다 들통이 나는 등 극도의 비효율을 드러내며 국내외에서 국가와 기관의 품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렸다. 김정일 사망 관련 정보 수집 실패, 북핵 관련 정보 수집 실패, 인도네시아 방한대표단의 국내호텔방 잠입 발각,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미행 발각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실패 사례들이다.  

국정원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국정원의 잘못일 뿐 아니라 국정원의 갑질을 법적으로 승인하고 방치해 온 잘못된 국정원법의 결과다. 여기서 잠깐 국정원법의 역사를 개관해보자. 국정원법(당시 안기부법)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했던 1993년, 처음으로 민주적 통제의 관점에서 개정된다. 무소불위 안기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고 내란외환죄와 반국가단체범죄 등을 제외한 대공수사권 일부를 박탈했다. 국회 정보위원회도 그때 설치된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1996년 말 국가보안법 상의 수사권을 다시 되돌려주는 개악 법률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그 후 안기부에서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훈을 바꿨을 뿐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에도 본격적인 법 개정이 없었다.  

국정원 직원이 법에 따라 직무 거부할 수 있을까? 

2012년 대선 개입 국기 문란 스캔들의 여파로 지난 2013년 12월 31일 4당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개정 국정원법은 1993년에 이은 두 번째 민주적 개혁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국회정보위가 상임위로 격상되고 예산통제권이 조금 강화됐다. 정치댓글 등 온라인 정치활동 금지규정이 마련됐으며 국가기관과 정당, 언론사 등 상시 출입을 국정원 내규로 규제하라는 조항을 신설했다. 정치활동 위반 금지에 대한 벌칙을 강화했고 정치활동 등 위법 지시에 대해 내부 이의 제기 및 직무 거부 절차를 마련했다. 이의 제기 당사자가 오직 공익 목적으로 수사기관에 고발한 경우 비밀 유지 의무 예외로 인정하고 내부 고발자로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개정법은 근본적으로 대증요법과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관행으로 해온 정치 정보 수집 지시를 받은 조직원이 무슨 수로 원장에게 이의 제기를 할 것이며 무슨 수로 직무 거부를 할 것인가. 제3의 독립기구를 만들어 이의 제기를 받고 독립적인 조사를 약속하면 모를까 조직 내부에 이의 제기를 하도록 했으니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예산 "실질 심사"에 필요한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했지만 국가 안보와 국가기밀 방패를 그대로 놔뒀다. 국가기관과 정당, 언론사 등의 기관원 상시 출입 및 정보 수집 규제 원칙을 법률로 제시하지 않고 어이없게도 국정원 내규에 맡겼다.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긴 꼴이다. 

법원에 대한 통상적 정보 수집 활동?국정원법에 부합하나?


무엇보다 개정법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비밀정보기관 개혁 3대 원칙을 100% 비껴갔다. 국정원의 수사권을 그대로 남겨놨고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도 분리시키지 못했으며 국회 정보위에 국정원 의혹 사건을 샅샅이 조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못했다. 국정원장은 여전히 국가안보를 이유로 국회 정보위의 자료 제출 및 답변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 개정법 아래서도 국정원이 국가안보 방패를 내밀며 국회의 창칼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기 때문에 국정원과 국회의 전도된 갑을관계는 예전처럼 굳건하다. 소문난 잔치 집에 먹을 게 없는 셈이다.  

그나마 개정된 법 조항들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정원이 어떤 노력을 경주했으며 국회 정보위가 얼마나 채근했는지도 알려진 게 없다. 개정법 시행 3년이 지났지만 아직 위법 지시 이의 제기 및 직무 거부 절차를 활용한 내부 직원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국가기관과 정당, 언론사 상시 출입에 대한 국정원의 내규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제정됐는지, 그 과정에서 국회 정보위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양승태 대법원장과 춘천지방법원장 사찰 문건이 드러났을 때 국정원은 그것이 법원에 대한 통상적 정보 수집 활동에 해당한다고 강변했다. 그렇다면 국회 정보위가 지금까지 헌재와 법원에 대한 '통상적'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이 과연 국정원법에 정한 "국내보안정보(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 범죄조직 관련 정보)" 수집 활동에 해당하는지,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이뤄져야하는지를 제대로 점검했는지 의문이다.

국정원에 대한 국회 정보위의 통제, 전시용 몸짓일 뿐 

국회 정보위 소속 국회의원들도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보위원인 신경민 의원은, 법 개정 1년 반이 지난 2015년 7월, 해킹 장비 도입 스캔들이 터졌을 때 "지금처럼 자의적으로 법률을 해석해서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해킹 장치 구매 신고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보위의 예산 심의 및 감독 권한을 강화했다고 하나 "시간은 짧고 (국정원의 설명) 자료는 부족하고 사람(보좌인력)도 부족한 3중 4중의 제약  속에서 정보위가 예산 결산을 진행한다"고 증언했다.  


지금도 국회 정보위원들만 국정원의 예산과 비밀 문건 등을 열람할 수 있고 의원 보좌관들이나 정보위원회 직원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런 한심한 상황이 지속되는 이상 국정원에 대한 국회 정보위의 감독과 통제는 전시용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국정원 개혁 7대 과제 

민주당은 2013년 9월 국정원법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며, "첫째, 국정원 대공수사권 전면 이관; 둘째, 국내 정보 수집 기능 전면 이관; 셋째, 국회의 민주적 통제 강화; 넷째, 국무총리 소속 기관으로 전환; 다섯째,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분석 기능 NSC 이관; 여섯째, 정보기관원의 국회 및 정부기관 파견, 출입 금지; 일곱째,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를 제보한 내부 제보자 보호"를 7대 과제로 꼽았다.  


이런 과제가 다 집행되면 권력기관 국정원은 고어사전에 나오는 철지난 얘기가 될 것이다. 위의 7대 과제 중 2013년 개정법에는 국회(정보위) 권한 강화, 국회 등 출입 규제, 내부 제보자 보호만이 몹시 미흡한 채로 반영됐을 뿐이다. 나머지 본격적인 개혁은 정권 교체 후의 숙제로 남아있다.  

국정원이 아닌, 국회 정보위가 '갑'의 지위에 서려면 

국회 정보위가 국정원 활동을 제대로 감독하는 갑의 지위에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정원이 국가안보 방패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내려놓게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정원의 정보 수집, 보관, 수정, 폐기 관련 규정과 지침, 예규와 사례를 국회 정보위가 낱낱이 제출받아 인권 보장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그 내용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개선을 권고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정원에 정보 수집과 폐기 등의 원칙과 기준을 상세하게 정한 내규와 지침이 없을수록 국정원이 제멋대로 정보수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정원 개혁은 국정원의 모든 내규와 지침이 국회 정보위나 국가인권위 등 전문기구의 조언과 통제 아래 제대로 만들어지고 구체적 정보 수집 활동이 그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지 철저하게 감독되는 선까지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촛불시민들은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을 지켜보며 '이게 나라냐'고 분개하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국정원도 공범이다", "새누리당도 공범이다"를 목청 높여 광장에서 외쳤다. 정권 안보를 위한 국정원의 불법 행태를 떠올리다 보면 '이런 국정원을 그대로 놔둔 게 나라냐'고 묻고 싶어진다. 영화 <자백>의 끝머리에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국정원 시절의 조작간첩 사건 중 재심 무죄를 받은 사건 목록이 끝도 없이 올라간다. 그동안 한국의 비밀정보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간첩사건을 조작하고 선거에 개입하며 대법원장을 사찰해왔다. 이제 국정원 갑질 시대를 끝내야 한다.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국정원 개혁, 더 늦출 수 없다 

국정원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사활이 걸려있는 국정 과제다. 국정원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지금의 올인원 KGB모델에서 탈피해 수사권이 없는 국내외분리형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국민을 대신해서 국회 정보위에 국정원의 모든 직원과 파일, 시설에 대한 무제한적 접근 조사권을 부여하여야 한다.  


여기에 보태서 국정원에 대한 독립적인 전문 사후 통제 기구와 전문 권리 구제 기구까지 만들어지면 금상첨화다. 이럴 때만이 국정원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보다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비밀정보기관이자 국가안보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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