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줬다”를 “최순실이 받았다”로 바꾼 ‘숨은 권력’
[기고] 이재용 게이트에 대한 언론 보도, 그 심층에 깔린 ‘시장 중심주의’… 본질은 경제 권력의 정치 권력화
이 글의 출발점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몸통인 삼성에 대한 보도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최순실 사태가 드러난 2016년 7월의 시점부터 11월21일까지 ‘최순실’이란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고, 이중 재벌 비리의 대표 ‘삼성’이 제목에 삽입된 기사를 검색한 결과, 삼성에 초점을 둔 기사는 전체의 0.3%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 ‘최순실’, ‘삼성’ 관련 보도 건수 |
최순실 게이트 보도, 삼성 기사는 0.3% 뿐
재벌 가운데 삼성은 최씨가 배후에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이라는 가장 많은 지원금을 출연했다. 곧 삼성과 최씨 사이에 ‘직거래’가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삼성은 최씨의 회사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에 35억 원을 먼저 송금하여 최씨의 딸 정씨의 말 등을 구입하도록 도왔고, 43억 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사무총장으로 있던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빙상캠프 후원 등의 명목으로) 16억 원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삼성이 2018년까지 정씨에게 220억 원을 지원하려고 했던 사실을 입증하는 문건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원 사실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말을 뒤집는 건 박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삼성은 처음 최씨에 대한 자금 제공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가, 검찰 수사가 공개되자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유망주 육성을 위해 지원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현재 삼성은 최씨 쪽의 협박에 못 이겨 지원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보고를 받지 않아 몰랐던 것으로 설명한다. 삼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비춰볼 때 최씨에게 사기나 강요를 당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에도 말이다.
▲ 12월6일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사진공동취재단 |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었다
지난 2년간 청와대는 삼성과 보폭을 맞추며 그의 사업 규모를 확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의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부터 삼성은 본격적으로 의료 서비스 산업에 뛰어든다. 삼성은 해당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도, 대중이 ‘의료 산업화’에 대해 갖는 반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를 ‘헬스케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진행시킨다. 이는 2012년 삼성경제연구소가 “헬스케어 3.0: 건강수명시대의 도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진행된다. 2015년 다보스포럼 등의 공식석상에서도 이재용은 수차례 삼성의 ‘미래 먹거리’가 IT, 의학, 바이오 융합이라고 거론하고 구체적 산업으로 ‘원격의료’를 언급했다. 우연이었을까? 같은 기간 박 대통령의 입에서도 ‘원격의료’라는 단어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수립 직후 2013년 4월 기획재정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한 이후, 창조경제의 상징으로 ‘원격의료’를 제시하고 박 대통령은 한 달에 3~4차례 꼴로 이 단어를 언급했다.
이러한 정황으로부터 삼성과 청와대 사이에 이전부터 모종의 관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고, 이는 삼성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부역자나 공범이 아니라 ‘주범’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대표 김종인,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주진형 등은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이 ‘재벌의 탐욕’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재계가 최씨를 매수해 박 대통령을 농락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 역시 오래전부터 삼성이 국내 경제 환경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초법적인 권력기관이 되었다고 비판해왔다. 다시 말해, 현 시점에 논의하고 있는 이재용 게이트의 본질은 피해자나 부역자가 아니고, ‘정경유착’ 사건도 아니며, ‘경제 권력의 정치권력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2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체육 활성화를 위한 기업인 오찬’에서 행사장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박용현 한국메세나협회장, 구본무 LG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 연합뉴스 |
2016년 12월 현재 언론은 정치권의 ‘경비견’ 혹은 ‘부역 언론인’의 오명을 탈피하려는 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시점에 언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큰 몸통이자 ‘경제 권력의 정치 권력화’로 요약될 수 있는 이재용 게이트를 어떻게 보도할 수 있을까? 이재용 게이트의 실체를 드러내고 그의 재벌 권력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할 때, 언론은 보도의 진정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 연구는 언론이 이재용 게이트를 다루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보도 방식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진단하고, 왜 그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또한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부역 언론인의 오명을 벗으려면…
우선, TV 방송 채널의 보도를 살펴 본 결과 각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취재한 결과보다, 이재용 게이트에 초점을 둔 기사가 많지 않았고 검찰의 움직임을 받아 적은 기사가 많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국 이재용 게이트와 관련해 형성된 공론장은 전반적으로 부실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지상파 3사(KBS, MBC, SBS) 가운데에서는 SBS의 활약상이 KBS와 MBC에 비해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SBS의 공로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시청자들이 경험적 의심을 가지고 있어 SBS의 활약상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SBS는 사건 초기에도 삼성에 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고 재벌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11월6일부터 독일에 파견된 SBS 특별취재팀이 삼성과 최순실 회사 비덱 사이에 직접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결정적 증거들을 밝혀내면서 삼성과 최씨가 손발을 맞추어 일을 진행한 정황들을 포착해 단독 보도를 이어갔다. MBC는 침묵과 누락, 뒷북, 물타기 보도를 이어가면서 지상파 3사 가운데 가장 저조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특히 MBC는 보도 기사 제목에 들어가야 할 ‘삼성’이란 단어를 매번 ‘최순실’로 대체하는 태도를 보였다. 가령 ‘삼성이 (지원금을) 보냈다’라는 문장은 모두 ‘최순실이 받았다’로 표현하고 있었다. KBS 역시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나는 시점에 청와대 감싸기 보도를 했던 것처럼, 이재용 감싸기 보도를 하면서 초점과 화살을 ‘최순실’에게 돌리는 면모도 보였다.
SBS 외에 이재용 게이트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 언론은 JTBC였다. JTBC는 삼성의 정유라 지원 과정에 개입했던 회사, 모나미 사장과 접촉하여 삼성의 정유라 지원설을 뒷받침했으며, 정유라 주변인들에게도 접촉하여 삼성 지원 사실에 대한 정황 증거들을 수집해 보도했다. 이처럼 현장에서 수집한 단서들는 국가 권력기관 검찰에게 수사를 요구하고 압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JTBC가 삼성 비리를 보도하는데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1월2일 삼성이 최씨에게 35억 원을 직접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을 당시, JTBC는 이를 ‘삼성’이 아니라 ‘대기업’이 지원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삼성의 공범 사실을 명시하지 않는 MBC의 물타기 보도보다는 전반적으로 사실을 적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포문을 열었던 TV조선은 이재용 게이트라는 또 다른 몸통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삼성 비판하기와 삼성 감싸기를 모두 보여주는 비일관적 태도로 일관했다.
또한 검찰로부터의 독립된 취재가 필요하다. 검찰은 박근혜·최순실 일당의 권력 농단에 충실히 기여해 온 개혁과 변화의 대상이었다. 검찰은 정윤희 문건파동 때에도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등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목적을 두고 움직였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최순실과 박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개혁과 변화의 주체로 나서면서 키를 쥐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앞으로 검찰이 박 대통령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제스춰를 취하는 것도 박 대통령까지의 범위일 수 있다는 우려도 감출 수 없다. 특검이 시작되는 현재의 시점에 언론은 계속해서 검찰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보다, 출입처에 해당하는 검찰 주변을 맴돌기보다 현장을 돌며 ‘사소해보일 수 있는’ 단서들을 수집하여 검찰의 역할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더욱 막중해진다.
둘째, 이재용 게이트에 관한 5대 일간지의 보도 방식을 살펴본 결과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기업 친화적 성향을 보여 온 보수 언론은 삼성을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친삼성’적 태도를 보였고, 진보 성향의 언론은 삼성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자’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었다. 보수언론 조선일보는 기본적으로 친삼성적 태도를 취하면서도,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비해서는 사태의 본질을 적시하고 삼성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선일보의 비일관적 태도는 사회 권력에 대한 ‘감시견’으로서의 진정성보다는 단독 보도 혹은 특종에 대한 집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이재용 게이트에 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면피용으로 보도하거나 삼성을 두둔하고 감싸기 위한 발언을 일삼았다. 그들은 ‘죽은 권력’으로서의 박근혜와 그의 측근 최순실에 대해서는 온갖 비난을 쏟아냈지만, 삼성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재용 게이트의 중심에 최순실을 위치시켰고, 그녀의 강요와 협박, 횡령의 피해자가 삼성인 듯 묘사했다. 물론 삼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비춰볼 때 최씨에게 사기나 강요를 당했다고 보기는 어려움에도 말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연합뉴스 |
언론을 지배한 시장/경제 중심주의 이데올로기
셋째, 기타 보수 언론에 해당하는 일간지 문화일보와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 데일리안, 디지털데일리와 미디어펜, 그리고 경제지 등은 이재용 게이트에 대해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보도했다. 이는 인터넷 신문과 경제지들이 계속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최고의 광고주 삼성이 불편해하는 이슈를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관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은 이재용 게이트에 관한 보도를 내더라도 일부 사안을 누락시켜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거나, 뒷북 보도, 물타기 보도를 일삼았다. 특히 보수 일간지 문화일보와 보수 인터넷 신문 미디어펜 등은 취재를 통해 기사를 쓰기보다 주장을 앞세우는 경향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국내의 ‘경제위기’ 상황을 부각시키고 이재용 게이트가 드러나는 것을 ‘바람직한 기업 환경의 저해’라고 해석했다. 이들은 또한 국가주의를 북돋우며 삼성을 국가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 지난 12월6일 대기업 총수들이 출석한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이재용 구속’이라 쓰여있는 손팻말을 들고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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