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의 풋볼리스트] '천재' 구자철 ① 첫 눈에 놀란 재능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낯선 축구 소년 하나가 영국으로 건너 갑니다. 요즘처럼 축구 유학이 유행하던 때도, 한국 선수들의 유럽 무대 활약이 익숙하던 시절도 아니었지요. 무모한 도전일 수 밖에 없었던 영국행, 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몸을 맡긴 소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에 당당히 입단한 것이죠. 당시 웨스트햄 유소년팀은 영국의 모든 축구 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리오 퍼디낸드, 조 콜,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캐릭. 이런 엄청난 재능을 발굴하고 성장시켜온 곳이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 세계 소년들과 겨룬 최초의 한국인, 그러니까 그 축구 소년의 이름은 바로 ‘이산’입니다. 얼마 전, 이산은 축구화를 벗었습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긴 시간 체득한 경험은 여전합니다.<풋볼리스트>는 대한민국 그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을 가진 이산 객원기자의경험과 견해를 독자 여러분께들려드릴 생각입니다.- 편집자 주
"내가 본 가장 천재적인 선수 중의 한 명, 구자철" (사진=연합뉴스)
[풋볼리스트] 런던(영국)=이산객원기자 |1998년. 어머니의 결심, 나의 열정이 영국 축구 유학을 택했다. 이후 많은 일이 벌어졌다. 1998년 중동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크리스탈 팔라스(Crystal Palace), 풀룸(Fulham), 웨스트 햄(West Ham), 상파울로(Sao Paolo), 플루미네스(Fluminense), 브렌트포드(Brentford), 셰필드 유나이티드(Sheffield United), 제주 유나이티드 등 세계 곳곳으로 공을 차러 다니며, 참 많은 선수들을 만났다. 나에게 유난히 볼을 주지 않던 선수들부터 시작해, 축구 천재 기질을 가진 선수들, 불우하게 공을 차는 선수들, 실력은 뛰어나지만 끝내 빛을 내지 못한 선수들, 그리고 내 인생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선수들에 이르기까지. 국적과 인종을 넘어 공 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을 이제는 당당히 말하고 싶다.
아스날의 데닐슨(Denilson), 라지오의 헤르나네스(Hernanes), 리버풀의 글렌 존슨(Glen Johnson), 조 콜(Joe Cole), 토튼햄의 저메인 데포(Jermaine Defoe), 에버튼의 필 자기엘카(Phil Jagielka), 선더랜드의 안톤 퍼디난드(Anton Ferdinand), 마이클 터너(Michael Turner), 울버햄턴의 스티븐 헌트(Steven Hunt), 웨스트 햄의 마크 노블(Mark Noble)로 시작해, 멀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자메이카 국가대표였던 디온 버턴(Dion Burton)과 가까이는 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의 최효진 형을 비롯한 세계 축구를 한때 이끌어간, 그리고 이끌고 있는 선수들과 같이 운동을 했었던 것은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과 추억이다.
그 경험과 추억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또 천재성을 가진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2007년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한 구자철을 꼽고 싶다.
구자철과의 첫 만남
2007년 1월 셋째 주의 어느 날, 제주 중문 연습구장에서 현대 미포 조선과 친선 경기가 열렸다. 이 날은 내가 자철이와 처음으로 운동을 함께 한 날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에 한 선수를 평가하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축구 선수들은 다른 축구 선수들을 볼 때 금세 실력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 직감이 있는 것 같다. 당시, 제주는 후반 교체 투입 전까지 경기에 나서지 않는 선수들에게 이른바 ‘포지션 게임’이라 불리는 훈련을 시켰다. 히딩크 감독님이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에게 실시한 것으로 알려진 훈련으로, 두 사각형을 연결시킨 좁은 공간에서 선수들의 7:4의 비율로 공격과 수비를 나눠 볼을 돌리는 운동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해보는 운동이었지만, 센스가 크게 요구되는 훈련 중의 하나로, 매우 효율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처음 접하는 훈련이었는데, 한국 선수들의 볼 돌리는 기술과 센스에 무척 놀랐다. 좁은 공간에서 발목으로 쉽게 볼을 돌리는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놀랐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 정신이 없어진 기억 밖에 없다.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의 구자철(7번)이 팀 동료 방승환의 골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세계 최고 선수가운데 한 명
그렇게 제주에서 1년간 자철이를 지켜봤다. 아쉽게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인정받은 한 해였다고 본다. 당시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내 눈을 의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수비형 미드필드로 뛰던 자철이 포지션에서 그간 나와 함께 뛴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세계 최고 선수 중의 한 명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스날의 데닐슨 같은 경우 그가 14살일 때부터 지켜본 선수이다. 브라질 U-14,15,16,17 청소년대표를 두루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데닐슨도 분명 뛰어난 선수이며 지금 아스날에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볼 때 자철이 보다는 더 수비적인 스타일의 선수다.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자철이에 비해 기량이 월등히 떨어진다.
웨스트햄 유스팀 출신의 미드필더 마크 노블(왼쪽) (사진=연합뉴스) |
라치오의 브라질 미드필더 에르나네스 (사진=연합뉴스) |
프리미어리그 코치와 나눈 이야기
제주에 있을 당시 자철이를 볼 때마다 말했다. “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거야.” “내가 이제껏 본 선수 가운데 네가 최고야.” 그럴 때마다 자철이는 “형, 제가 어떻게요”라고 받아치며 웃어 넘긴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자철이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런 플레처를 좋아한다고 답하곤 했다. 그러던 2010년 1월 9일, 영국의 <스카이 스포츠>가 블랙번이 구자철에게 관심이 있다고 보도했다. 자철이의 실력을 아는 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생각보다 빠르게 프리미어 리그 클럽에서 움직이는 것이 놀라웠을 뿐이다. 당시 제주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온 상태였던 나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철이를 영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기회를 노리던 나에게 첫 번째 기회가 왔다.
2010년 3월 2일, 런던 QPR 축구 클럽의 그라운드에서 열린 한국과 코트디 부아르의 친선 경기에서 정해성 감독님을 통해 얻은 표로 전망 좋은 위치에서 경기를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내 주위 객석에는 울버햄턴의 맥카시 감독, 전 볼턴 감독인 알리다이스를 비롯해 브라질 감독 둥가, 그리고 나의 17세 당시 코치이자 현재 웨스트햄 1군 코치로 있는 캐빈 킨 등이 관람하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난 뒤, 나는 웨스트 햄 시절 스승이었던 캐빈 킨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당시 이청용, 기성용, 김재성, 오범석 등 기술적이고, 유럽 선수들과는 다른 느낌의 선수들이 활약을 벌였기 때문에 대화의 화두는 당연히 한국 선수들의 기술적인 면이 될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케빈 킨은 “한국 팀은 조직력이 뛰어나다”며 말문을 열더니, 나에게 조심스럽게 차두리 선수가 지금 어디에서 뛰는지 물었다. 이어 케빈은 “차두리가 한국 선수들 가운데 가장 유럽 축구 스타일에 잘 맞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괜히 신이 난 나는 차두리 선수의 아버지가 누구이며, 2002년 월드컵에서도 뛰었다는 등의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좋은 얘기를 퍼부었다. 그리고, 하프타임이 끝날 무렵, 은근히 자철이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경기장에 오지는 않았지만 필자가 제주에서 뛸 때 함께 뛰었던 뛰어난 선수를 알고 있다고 소개를 한 것이다. 당시 블랙번의 루머도 소개한 덕분인지 그가 흥미를 보였는데 케빈은 “혹시 어느 자리에서 뛰는 선수냐?”고 물었다. 이 지점에서 사실 조금 멈칫했다. 왜냐하면, 당시 웨스트 햄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마크 노블이 맡고 있었다.
노블은 나의 웨스트 햄 2년 후배로, 웨스트햄이 과거의 조 콜, 리오 퍼디난드처럼 대형 스타를 만들어 내지 못한 이래 그래도 가장 주목받는 웨스트햄 출신 선수였기 때문이다. 노블은 웨스트 햄 유스 출신의 웨스트 햄 주위에서 자랐고 스스로 웨스트 햄에 대한 충성심이 커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선수다. 물론 나는 자철이가 마크 노블처럼 전형적인 영국 축구 선수들에 비해 투쟁심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경기 운영 능력과 모든 기술적인 면에서 마크 노블보다 월등이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구자철이) 마크 노블보다 월등히 잘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흘렸다. 노블은 아주 어릴 적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두 살 위인 내 나이 팀에서 함께 뛰었고, 지금 이야기를 나누는 케빈 킨은 당시 노블을 선발로 뛰게 한 당사자였으니 내가 하는 말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자 케빈은 관련 자료를 웨스트햄 연습 구장으로 가지고 오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웨스트햄 연습 구장으로 건너가, 미리 준비한 자철이에 관한 자료를 케빈에게 건넸다. 그날 오후, 나는 캐빈으로부터 문자를 한 통 받았다. “차두리 선수가 뛰고 있는 팀이 어디인지 아니?” 그리자 내 머릿속에는 캐빈의 말이 맴돌기 시작했다. “유럽 스타일 축구에 맞는 것 같다.” “유럽 스타일 축구에 맞는 것 같다.”
②부에서 계속
글 | 이산 (전 영국 프로축구선수) - 1985년생.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스 아카데미 출신. 잉글랜드와 브라질의 여러 클럽과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쳤다. 지금은 축구화를 벗고 학업과 취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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