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7.09 03:05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120명 연구한 미치 코언 "富의 성공 방정식, 통념과 다르더라"
독일의 화장품 회사 블렌닥스에서 일하던 마케팅 임원 디트리히 마테시츠는 어느 날 아침 호텔에서 신문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에너지 음료로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은 일본의 음료 제조사가 일본 최고액 납세기업이었던 것이다. 마테시츠는 서구에 비슷한 음료가 없다는 점에 착안,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인 파트너와 함께 창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마테시츠의 나이는 40세였다. 마테시츠는 서구인의 입맛에 맞춰 탄산을 첨가한 고카페인 음료 '레드불'을 선보였고, 1990년대와 2000년대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에너지 음료 시장을 평정했다."레드불의 창업 스토리는 대다수가 알고 있는 억만장자의 성공 방정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신기술에 능숙한 젊은 천재들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대다수 억만장자는 수년 동안, 때론 수십 년 동안 몰입한 분야에서 '대박' 아이디어를 찾아냅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처럼 '새로운 IT에 능한 젊고 유능한 기업가' 이미지에 익숙했던 탓일까. 미치 코언(Cohen·58)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부회장의 말은 뜻밖이었다. 코언 부회장은 "기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기회는 언제나 숨어있다"며 "특히 특정 산업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잠재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언 부회장은 컨설팅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 컨설턴트다. 1981년 PwC에 입사해 컨설턴트로 30년 넘게 활동했다. 성공한 억만장자의 경영 전략을 담은 책 '억만장자 효과(The Billionaire Effect)'를 지난해 출간했다. 지난 2009년부터 PwC 부회장을 맡아오다가 지난달 말 은퇴했다.
- ▲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 가운데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전문가가 많다니 의외입니다.
"저 역시 놀랐습니다. 일반인은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가운에 극히 일부만 알고 있습니다. 젊고 유능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기업가들만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2012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 명단 가운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를 120명 추려 조사해봤습니다.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성공적인 창업의 열쇠로 여겨지는 통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기술 산업이 비즈니스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창업가로 성공하는 경로는 기술 부문에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조사한 억만장자 중 80%는 레드오션, 즉 경쟁이 극심한 시장에서 막대한 부를 창출했습니다. 자산 관리, 소비재 부문에서 나온 억만장자 숫자가 기술 부문에서 나온 억만장자 숫자와 비슷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석유·천연가스·의류·식음료·호텔·인쇄를 포함해 19가지 이상의 산업에서 골고루 억만장자가 나왔습니다. 게다가 전체 억만장자의 70% 이상이 30세 이후에 10억달러짜리 성공을 안겨준 아이디어를 떠올렸거나 혹은 30대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루퍼트 머독은 아버지가 물려준 신문사를 15년이나 경영한 후 40대에 비로소 인수·합병(M&A)시장에 뛰어들었고 영화 제작사인 20세기 폭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인수하며 미디어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은 열한 살 때부터 투자를 시작했는데 여러 번 창업을 거쳐 30대에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 글로벌 투자 회사로 키웠습니다."
―억만장자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어떤 것입니까.
"재미있는 점은 억만장자들이 시장을 레드오션, 혹은 블루오션(성장 잠재력이 큰 새로운 시장)으로 나눠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모든 시장을 기존 관행과 새로운 기회가 뒤섞여 있는 퍼플오션(보라색 시장)으로 바라봅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 거대한 부를 쌓기도 하지만 기존 시장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소비자의 욕구를 찾아내 이를 활용할 줄도 압니다. 억만장자들의 성공 아이디어는 난데없이 떠오른 무작위적이고 즉홍적인 번뜩임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축적된 경험에서 나옵니다.
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를 만든 조 맨수에토는 1980년대 초반 펀드 중개인이었습니다. 그는 개별 펀드 투자 설명서를 받기 위해 여러 펀드 회사에 직접 연락해 보는 꼼꼼한 성격이었는데, 어느 날 자료를 정리하다가 특정 속성을 토대로 펀드를 비교하는 형식의 보고서를 만들면 꽤 유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펀드 실적에 초점을 맞춘 리서치 전문 기업을 세웁니다. 펀드를 팔았던 경험이 그에게 성공의 아이디어를 안겨준 셈입니다."
10억달러 아이디어 실현되려면 10년 필요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사업 초기에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체형 보정 속옷 전문 기업인 스팽스(Spanx)를 세운 사라 블레이클리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그는 얇은 옷감 겉으로 속옷이 비치는 것이 싫어서 하얀색 바지를 사놓고 입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비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드스타킹을 꺼내 발 부분을 잘라낸 후 바지 안에 입어보았고 거기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공장주들은 레그스나 헤인스 같은 기존 스타킹 생산 기업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시장에서 발목이 없고 몸매를 보정하는 스타킹을 만든다는 그의 아이디어가 실패한다고 믿었고, 블레이클리는 시제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물론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스팽스 제품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과는 반대였죠.
제임스 다이슨은 '미스터 후버'라는 강자가 있던 진공청소기 시장에서 먼지 봉투가 없는 진공청소기로 시장의 판도를 바꿨고, 이후에도 날개 없는 선풍기처럼 레드오션에서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 다이슨도 사업 초기에 제조사를 찾지 못해 결국 직접 제조사를 차렸습니다. 기존 기업에 속해있는 직원들은 보통 의사 결정자들이 수용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아이디어, 기존 시장이나 전략적 목표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 현재 갖고 있는 인프라와 기술로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만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주지 못합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120명 연구한 미치 코언 "富의 성공 방정식, 통념과 다르더라"
- ▲ 미치 코언 PwC 부회장. / 뉴욕=온혜선 조선비즈 기자
"많은 기업이 단기 실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억만장자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10억달러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평균 10년의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기존 기업들은 일상적 기업 운영에 매몰되어 있어서 현재 고객들이 행동하는 양상을 파악하고 있어도 그 지식을 획기적 제품 개발을 위한 미래 비전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 내 유능한 직원을 찾아내 일 대신에 여유를 줘야 합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종종 동료나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오랫동안 산책하며 마음의 여유를 줬습니다. 중요한 흐름을 보는 눈이 있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잠재적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이 있다면, 그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탐구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유능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내 벤처 문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기업가를 키우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일단 사내 벤처를 기업의 부차적인 조직이 아니라 핵심 조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CEO가 직접 사내 벤처에 관여해야 합니다. 따로 담당자를 만들 경우에는 기업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CEO가 사내 벤처의 의사 결정에 관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CEO는 사내 벤처에서 최고 스폰서로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사내 벤처가 실패하더라도 벤처에 속한 직원들의 커리어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사내 벤처에 들어가 성과를 내고 기업가로 성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30세 되기 전에 영업해보라
―억만장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기획력을 키우세요. 사업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를 고객의 경험으로 바꿔주는 것인데, 성공한 억만장자들은 기획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유니클로를 창업한 야나이 다다시는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을 물려받았지만, 가업을 그대로 이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해외 여행 경험이 있었던 그는 미국, 영국에서 갭이나 막스앤스펜서처럼 싼 가격에 클래식한 기본 의류를 파는 브랜드들이 인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에는 그런 브랜드가 없었죠. 야나이는 시장에 존재하는 간극을 발견하고 빠르게 창업에 나섰습니다. 캐주얼 의류의 이미지를 '젊은이들이 입는 싼 옷'에서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의류'로 바꾼 것이 통한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기획력입니다.
기획력을 키우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경험이 영업입니다. 억만장자들이 모두 다 타고난 세일즈맨은 아니지만, 사업을 출범시키기 전에 영업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제가 조사한 억만장자 중 79%는 직접 영업을 해봤고, 대다수는 30세가 되기 이전에 처음 영업을 해봤더군요. 영업은 이미 알려져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능력입니다. 이를 익히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의 맥락을 소비자 요구에 맞게 재구성하거나 제품, 서비스, 기간, 조건, 위험 등을 변화시킴으로써 아이디어를 더 잘 팔 수 있습니다." 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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