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韓方명의열전] 방성혜 인사랑한의원 원장
“피부는 내장의 거울, 속을 다스리면 피부 좋아져”
기사입력 2015.12.04 20:34

현대인의 난치성 질환 중 하나가 피부질환이다.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인스턴트 먹거리로 인한 후유증이다.
피부질환은 단순한 피부 트러블에서부터 일상생활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우도 많다.
이러한 피부질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인사랑한의원의 방성혜 원장을 만나봤다.

방성혜 원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30대 중반의 김모씨는 아토피가 너무 심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토피가 얼굴과 목 주위뿐 아니라 온몸 이곳저곳에 퍼지면서 진물이 심하게 났다. 10년 동안 피부과에 다니면서 연고, 내복약과 주사제를 처방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 낫는가 싶다가도 금방 도지기 일쑤였다. 증상이 너무 심해 직장도 휴직을 해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던 김씨는 우연히 지인에게서 소개받은 인사랑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방성혜 인사랑한의원 원장은 “피부질환이 증상을 보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치료도 쉽지 않고 더디다”며 “특히 아토피는 환자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어 더 심해지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부병이 생기면 일단 피부과에 먼저 들르는 것이 보통이다. 피부과에선 이런저런 연고나 내복약과 주사제를 처방한다. 문제는 이렇게 내복약과 주사제를 몇 년에 걸쳐 장기간 처방 받게 되면 양약에 중독된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점점 독한 약을 써야 증상이 가라앉게 되고, 이는 만성 피부병으로 이어진다.

“김씨도 중증 아토피 환자였는데 10년 가까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했더군요. 주사제까지 써도 증세가 가라앉지 않자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스테로이드제를 중단했더니, 온 몸에서 진물이 철철 흐르는 상태가 됐어요. 사실 <동의보감>에도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쓰다가 중단한 환자에게 무슨 약을 쓰라고 적혀 있지는 않아요. 조선시대에 스테로이드가 있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환자의 몸 상태를 면밀히 관찰해 보면 무슨 원리로 어떤 약을 쓰면 될지 단서를 찾을 수가 있어요.”

김씨는 스테로이드제로 증상을 몇 년간 억누르다가 약을 중단하니 몸에서 열이 나면서 으슬으슬 한기를 느꼈다. 마치 심한 몸살감기에 걸린 것처럼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추워서 덜덜 떨었다. 이는 <동의보감>에서 ‘옹저류상한(癰疽類傷寒)’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상태다. 옹저류상한의 상태에 투여하는 한약을 쓰자 진물이 줄기 시작했다.

방 원장은 “피부병 환자 한명 한명에 맞는 처방을 찾는 일이 늘 단순하지만은 않다”며 “게다가 옛 의서에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인스턴트 음식, 불규칙한 생활, 스트레스에다 불필요한 약물까지 처방받는 과잉 의료로 인해 양약에 절어 있기까지 합니다. 과잉 의료에 젖어 있을수록 <동의보감>에서 말한 ‘유수불부(流水不腐)’의 치료 원칙이 필요합니다. 흐르는(流) 물(水)은 썩지 않는다는(不腐) 관점으로 인체를 바라보면 환자의 어느 부위에 정체가 생겨서 어떤 증상이 생긴 것이고 그래서 어떤 처방을 투여해야 할지 답이 보이기 때문이죠. 의서에서 말한 원리를 잘 이해하고 환자의 몸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면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면서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피부과를 전문으로 하는 한의사는 많지 않다.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은 환자마다 발병 요인과 증상이 각기 다르고, 치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방 원장이 피부 질환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은 그래서 더욱 빛나 보인다.


김남일 학장(왼쪽)과 방성혜 원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영문과 졸업 후 대기업 다니다 한의학에 뛰어들어
방 원장은 뒤늦게 한의학에 뛰어들었다. 그가 처음 들어간 대학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였다. 당시 학생들이 반 농담으로 하는 말이 영문과는 영문도 모르고 들어간다는 것이었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공부보다는 성적에 맞춰서 들어갔어요.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서 대리를 달 때까지 다녔고요. 직장 생활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10년, 20년 후를 생각해 보니 앞이 안 보였어요. 언제까지 롱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많았죠.”

그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한다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종의 자아 찾기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잠시 가졌던 의료인의 꿈을 마음속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이 들긴 했지만 문제는 한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능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고 또 뱃속에서는 둘째가 자라고 있었다. 마음은 간절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무렵 박세리 선수가 미국 LPGA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일이 크게 보도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세리 선수도 저 어려운 일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가서 메이저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더 쉬울까, 수능 준비를 시작해서 한의대에 합격하는 것이 더 쉬울까. 답은 명백했죠.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비록 아이 엄마이긴 하지만 수능 시험에 도전해보자!”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중에 출산도 치러야 했다. 출산 직후 병원 침실에 누워서 링겔을 꽂은 채로 수능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그 정도로 시간은 부족했다. 병원에 소문이 났는지 간호사들이 와서 힐끗힐끗 쳐다봤다. 정말 산모가 수능 문제집을 푸는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간호사들은 병원 개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한의학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낯선 학문이었다. “한자투성인데다 모두 외계어 같았어요. 그러던 중 <동의보감>이라는 책을 예과 2학년 때 처음 보게 됐어요. 보자마자 이 책이다 싶은 느낌이 팍 들었죠. 그때부터 밤낮으로 <동의보감>을 파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도통 알 수가 없었던 <동의보감>의 내용은 볼수록 하나 둘씩 구슬로 꿰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본과 3학년 때에는 전국 한의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의보감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졸업한 후에도 <동의보감>에 기반을 둔 진료를 했다. 피부질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내장 질환은 환자 혼자 느끼는 것이지만 피부 질환은 누가 봐도 전후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서 매력을 느꼈어요. 또 양방과 비교했을 때 한의학에 강점이 있는 분야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동의보감>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더 큰 배움에 대한 갈증은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석·박사 과정에서도 피부 질환 관련 의서를 샅샅이 파헤쳤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도 ‘한국 한의서에 수록된 피부과 치료법 연구’였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도 연구는 계속됐다. “한의학에서는 피부과를 외과라고 해요. 겉으로(外) 드러나는 병이라는 의미죠. 외과에 관한 의서와 여러 기록들을 살피던 중 백광현이라는 조선 후기의 걸출한 한의사를 알게 됐어요. 당시 청나라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외과 의사였어요. 눈부신 활약에 비해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는데, 마침 백광현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드라마 <마의>가 만들어졌어요. 제가 한의학 자문을 맡게 됐죠.”

드라마 자문을 하는 데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드라마에서 미처 얘기하지 못한 그의 활약상이 혹시라도 사장될까봐 직접 책을 쓰기까지 했다. 그의 실제 행적을 한사람이라도 더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 소설을 집필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이라는 책이다.

현대인은 해독이 필요해

방성혜 원장이 침 치료를 하고 있다.
방 원장은 피부 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동의보감>만 참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자주 찾아보는 <외과심법요결>은 여러 피부질환에 대해 상세한 기술이 돼 있다. 전염병과 인체 면역계와의 치열한 전투 끝에 생기는 인체의 반응에 따른 처방을 기술한 <상한론> 역시 그에게 지침이 되는 의서다.

“의서뿐 아니라 실제 환자를 치료한 진료기록도 참고합니다. 이런 진료기록을 ‘의안’이라고 부르는데, <승정원일기>에서는 왕과 왕비에 대한 생생한 진료 기록을 얻을 수 있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왕과 왕비의 피부 질환이 현대에도 종종 있더라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인조의 경우 추웠다가 더웠다가 하는 한열왕래라는 증상을 자주 앓다가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가려움증도 생겼다. 이때 어의는 간의 열을 내리는 약을 투여해서 호전시켰다. 그런데 방 원장은 인조와 똑같은 증상의 환자를 실제 진료실에서도 만났다. 그 환자에게 인조의 경우처럼 간의 열을 내리는 약을 투여했더니 역시나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현대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귀한 지혜를 옛 치료 기록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피부는 내장의 거울이라고 해요. 소화기 계통은 얼굴에, 간은 횡경막 부근의 피부에, 스트레스는 목에 나타나요. 내장을 깨끗하게 하는 약을 쓰면 피부가 덩달아 좋아지는 이유죠. 해독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피부가 깨끗해졌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인들은 온갖 오염물질에 몸이 찌들어 있으니까요.”

해독 치료를 받고 나면 혈압이 떨어지거나 소화 장애가 개선되거나 비염이 좋아지거나 심지어는 자궁근종의 크기가 줄어드는 효과가 생긴다. 해독은 <동의보감>에서 말한 ‘추진치신(推陳致新)’이라는 치료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추진치신이란 ‘묵은 것(陳)을 밀어내면(推) 새 것(新)이 생기게(致) 된다’는 뜻이다. 해독 치료를 통해 묵은 염증을 싹 밀어내면 새로운 세포가 생긴다는 것이다.

방 원장의 꿈은 원대하다. 그는 “곧 간행을 앞둔 책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모두 6권의 책을 쓰게 된다”며 “한의학의 치료정신과 우수성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한의학을 배우게 됐을 때 무슨 이런 외계어가 있나 싶었어요. 아마 일반인들도 똑같이 느낄 거예요. 비록 한의학 용어는 생소하지만 그 치료 정신은 결코 어렵지 않아요. 한의학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 방성혜 원장은…
1972년 생, 1994년 서울대 졸(영어영문학), 2006년 경희대 졸(한의학), 2008~2011년 경희대 한의대 석·박사(의사학). 현 서울 송파구 신천동 인사랑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대 겸임교수

기사: 김남일 경희대 한의과대 학장 (southkim@khu.ac.kr)
사진: C영상미디어 이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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