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온 '가상현실 서비스'
주간경향 입력 2015.08.19. 09:33
ㆍ오큘러스VR사, 가상현실 시장 선도… 한국서도 체험기 올려
5년 후 2020년 한국의 어느 가정 풍경. 전체 가구형태 중 1인가구가 가장 많아졌다는 게(29.6%) 틀린 말이 아니다. 혼자 사는 총각들을 어딜 가나 볼 수 있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노총각 김달봉씨도 혼자 산다. 외롭지만 외롭지만은 않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가상현실 속 무수한 애인들이 있으니까. 앞이 막힌 물안경 모양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 기기(HMD)를 머리에 쓰면 눈앞에 실감나는 입체 가상현실이 펼쳐진다. 단순히 보고 듣기만 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보조 컨트롤러 기기를 통해 말 그대로 ‘체감’할 수도 있다. 혼자 하는 사랑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일본 업체, 플랫폼 선점 경쟁 치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일 뿐일까. 가상현실 기기와 콘텐츠는 이미 상용화되어 있다. 내년 1분기에 소비자용 HMD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 판매를 앞두고 있는 오큘러스VR사는 가상현실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현재까지 기기 및 관련 서비스 개발자용으로 한정 수량이 시장에 풀린 상태다. 한국에서도 얼리 어답터와 관련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오큘러스 리프트를 통한 가상현실을 체험해본 사용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제공되는 콘텐츠는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상, 그 중에서도 성인용 영상은 이용자 입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이기도 하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가상현실을 눈앞에 펼치는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양 눈앞에 좌우로 나누어진 디스플레이 화면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입체감을 주기 위해 볼록렌즈를 넣어 물고기눈이 보는 식으로 영상에 변형을 주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조건에 맞게 영상을 변형해 전송하는 역할은 연결된 컴퓨터가 담당하기 때문에 오큘러스 리프트 기기 자체의 가격은 일체형 기기에 비해 크게 낮다. 기기 안에 디스플레이와 렌즈, 헤드폰, 그리고 머리 움직임에 따라 화면에 나타나는 시야를 바꿀 수 있게 하는 센서만 갖추면 된다. 대중적인 보급이 가능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기어VR’ 역시 개발자용 모델이지만 일반 이용자들에게서도 인기를 끌었다. 기어VR는 컴퓨터와 연결할 필요도 없고 안에 디스플레이 화면을 장착해둘 이유도 없다. 스마트폰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스마트폰에 깐 뒤 기어 VR에 넣고 구동하기만 하면 된다. 오큘러스사의 가상현실 전문서비스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다.
삼성의 기어VR는 디스플레이 화면과 컴퓨터 역할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해 기기 구조를 보다 간결하게 했지만 특정 기종의 스마트폰만 이용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게다가 시중에 풀린 물량이 많지 않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미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다. 구글이 배포한 ‘카드보드’, 즉 골판지 도면대로 직접 만들어 자신이 쓰는 스마트폰을 넣어도 된다. 눈과 볼록렌즈, 화면과의 거리만 잘 조절하면 아쉬운 대로 오큘러스 리프트나 기어VR에 근접한 입체 가상현실을 엿볼 수 있다. 안드로이드뿐만 아니라 아이폰으로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국내 성인용 영상 서비스 업체는 전무
단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실제로 본 가상현실 영상은 높은 몰입감을 안겨준다. 굳이 성인용 영상이 아니라 전 연령대가 이용 가능한 롤러코스터 탑승 체험 영상만 감상하더라도 입체음향과 함께 펼쳐지는 눈앞의 광경 변화 탓에 몸이 움찔하며 반응할 정도다. 한 이용자의 후기에 따르면 현재 가상현실 기술의 완성도는 “성인용 영상에 출현한 여배우가 눈앞으로 다가와 귓가에 바람을 불 때 진짜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발전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이 초점을 잡는 중심부에 비해 주변부의 화질은 떨어지는 데다, 아직까지 게임과 영상 모두 제공되는 콘텐츠 양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오큘러스 리프트만 해도 최고 사양의 그래픽카드가 달린 컴퓨터에서만 고화질의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기어VR나 카드보드 이용 HMD에서는 화면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조작이 쉽지 않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하드웨어의 문제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될 내년부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관건은 콘텐츠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지의 여부다. 수요가 집중될 두 분야 중 하나인 게임 분야에서는 조작용 컨트롤러는 물론 이용자가 직접 뛰어다니는 것이 가능하게 러닝머신과 비슷한 형태의 보조 기기들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3D를 넘어 이용자가 직접 체험하는 4D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이다.
가상현실 기기 화면에서 영상은 좌우 두 화면으로 나뉜 상태에서 어안효과를 주는 방식으로 표현돼 입체적인 현실감을 준다. / cmoar 제공 |
성인용 영상 분야 역시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성인용 영상서비스 업체들이 가상현실용 포르노 서비스를 속속 시작하고 있는 형편이다. 고화질 영상이 필요한 만큼 길어야 20분 내외의 비교적 짧은 영상 한 편이 용량은 2~4기가바이트 이상으로 큰 편이다. 사이트마다 올라온 영상의 편수는 수십 편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다양한 인종과 상황을 배경으로, 동성애 영상까지 있을 정도로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미국 사이트 기준으로 15일간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이 5~7달러 수준에 가격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형 성인 영상 제작업체인 너티아메리카(Naughty America)가 미국 최초의 가상현실 포르노를 제작하면서 “여성 이용자들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밝힌 것처럼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영상 콘텐츠도 늘어날 전망이다.
하드웨어 기기 제작과 지원용 소프트웨어, 그리고 콘텐츠 시장을 합한 가상현실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7100만 달러(한화 약 834억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이 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콘텐츠 시장은 각각 46억 달러(약 5조405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가상현실 체험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HMD 기기의 경우 2018년 3억9000만대 이상 팔릴 것으로 보여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성관계 내용을 담은 영상의 제작 및 배포가 불법인 한국에서는 성인용 가상현실 영상에 접근하는 데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국내 성인용 가상현실 영상 서비스업체가 전무한 상황에서 해외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기가 어렵다. ‘warning.or.kr’로 유명한 방송통신심의위의 차단에 막히기 때문이다. 향후 보다 많은 성인용 콘텐츠가 만들어질 경우 청소년의 접근을 차단하는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IT 칼럼니스트 김종헌씨는 “한국의 성인용 콘텐츠 시장이 공식적으로는 개방되지 않은 문제 때문에 향후 해외 업체들이 콘텐츠 보안을 강화할 가상현실 시장에서는 저작권 침해에 관한 법적인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성인용 콘텐츠 수요가 한편으로는 영상기술과 함께 정보기술의 발달에 현실적으로 도움을 줬다는 측면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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