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 - 전생에 기생을 울린 남자의 업보

여인 영가들은 하나같이 독기 어린 얼굴로 초혼한 아버지 영가를 쏘아봤다

사람에겐 타고난 복이란 게 있다. 그 복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복은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교계 여류명사인 K씨는 쉽게 남자와 인연을 맺을 수 없었다. 그녀가 사귄 남자들은 하나같이 비명횡사를 하거나 비참한 말로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동이 조심스러워 진 것이다.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그녀는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제가 만난 남자들은 모두 끝이 안 좋았습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아마 제가 재수 없는 여자인가 봅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과거의 미모가 얼굴 곳곳에 또렷이 남아있었다.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고교시절부터 미인으로 소문난 그녀는 조용히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항상 교문에는 그녀를 기다리는 남학생들이 줄을 서서 편지를 건네줬다. 한 번 만나달라고 집 앞에도 매일 남학생들이 서성거렸다. 마치 황진이처럼 남자들이 그녀만 보면 상사병에 걸려 가슴앓이를 하자 할 수 없이 학업을 그만 두고 사교계에 입문하게 됐다.

조각 같은 외모와 뛰어난 화술로 단숨에 주목을 받은 그녀는 당시 정재계 최고 인사들과 교분을 나눴다. 아무나 만날 수 없는 명사들이었지만 언제나 그녀 주위에는 그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와 인연 있는 남자들이 하나 둘 사교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궁금해 그들을 수소문해보니 그녀를 만난 직후 사업이 망하거나 명예가 실추되는 사건이 발생해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는 속담처럼 모두 우연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패가망신의 원인이 자신과 관련 있다고 퍼진 소문은 소문을 낳아 남자들은 그녀를 점차 멀리했다.

 반면 자신이 동생처럼 아끼는 사교계 후배는 만나는 남자마다 대박을 맞았다. 한 무명 남자탤런트는 후배를 만난 뒤, 우연히 캐스팅된 드라마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단번에 A급 스타가 됐고, 평범한 회사원이던 한 남자도 후배와 인연을 맺은 뒤 자신이 기획한 프로젝트가 대성공을 거두며 임원으로 고속 승진했다. 한마디로 행운이 따르는 여인인 것이다.

 그녀는 외모로 보나 화술로 보나 자신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후배는 만나는 남자마다 잘 되고, 자신은 만나는 남자마다 잘 안 되니 아무래도 전생에 큰 과보를 진 모양이라며 본의 아니게 자신 때문에 불운해진 남자들을 위해 차법사에게 구명시식을 청했다.

 "당신은 전생에 남자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불운은 전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생과는 달리 잘생긴 미남이었던 그녀는 전생에 남부지역에서 유명한 보석상을 경영했다. 풍류남아로 기생집 출입이 잦았던 그는 수많은 기생들과 깊은 관계를 가졌는데 항상 끝에 가서 기생들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의 행태를 보면 먼저 비싼 보석으로 미끼를 던졌다. 그런 뒤 첩으로 삼겠다고 하룻밤을 보내면 감감무소식이었다가 며칠 후에 잃어버린 보석을 찾으러 왔다면서 기생에게 사랑의 약조로 준 선물을 빼앗아 손님에게 되팔았다. 그에게 농락당한 기생들은 "너도 한 번 우리 같은 여자로 태어나 똑같이 당해봐라!"며 그를 저주했다.

 여자에게 원한을 산 부잣집 미남은 현생에 미모의 여성으로 태어나 온갖 수난을 겪었던 것이다. 뒤늦게 전생의 과보를 깨달은 그녀는 전생에 자신이 울린 여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내생에는 복 많은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당신을 만났기 때문에 남자들이 안 풀렸다고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카르마대로 생긴 일일 뿐입니다. 단지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겁니다." 그제야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녀는 편하게 웃어보였다.

구명시식은 운동경기와 마찬가지로 각본 없는 드라마다. 무대만 있을 뿐 주연도 없고 언제 어느 때 극적인 사건이 발생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구명시식이 의외로 쉽게 풀리기도 하고 순조로울 것 같은 구명시식이 난관을 맞기도 한다.

 얼마 전 구명시식은 정말 일촉즉발 예측불허였다. 돌아가신 전직 고위공무원 아버지를 위한 구명시식을 신청한 다섯 남매에겐 반갑지 않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4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결혼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결혼을 못할까요?" 다섯 남매는 결혼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헛수고였다. 집안도 좋고, 인물들도 좋고, 결혼상대로는 모두 합격점인 다섯 남매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뭘까.

 구명시식이 시작되자 초혼한 아버지 영가 외에도 어디선가 초혼하지 않은 다수의 여인 영가들이 나타났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차법사가 물었더니 여인 영가들은 하나같이 독기 어린 얼굴로 초혼한 아버지 영가를 쏘아봤다. "저 남자 때문에 왔어요."

 알고 보니 아버지는 생전 장안의 여성들을 울리고 다녔던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는 매일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공짜 술을 얻어 마시며 여인들도 공짜로 사귀었다. 소위 접대를 받은 것이다. 술집에서 절대 자기 돈 내는 일도 없었고 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훤칠한 외모와 화려한 화술로 여인들의 환심을 사는 데는 천재였다. 진정한 작업의 고수라고나 할까.

 여자들은 그의 행동이 진정으로 사랑인줄 알고 모든 것을 다 바쳤지만, 그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짜로 만난 여자들이라 한 번에 여러 명을 만나는 것은 기본이고 결코 오래 만나지도 않았다. 풍채가 워낙 점잖아 아버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자식들도 아버지의 이런 면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아버지는 진짜 풍류를 아는 멋진 분이었으며, 가족을 사랑하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완벽한 이중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자 여인 영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자식이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다. 여자를 헌신짝처럼 여기는 바람둥이였던 그에게 '네 자식들도 그렇게 돼 봐라!'며 저주를 퍼부었던 것. 자식들에게 차마 진실은 말할 수 없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아버지 영가는 잘못을 빌기에 바빴다. 젊었을 때 혈기가 왕성해서 참지 못했다는 등, 다음 생에 만나면 다시는 울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등, 자식을 만나러 온 자리에 여자들에게 쫓겨 다니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비참한 바람둥이의 말로였다.

 "아버지께서 여자들에게 공덕 쌓은 게 없어서 결혼이 늦어지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 업이라 생각하고 이제부터 이성들에게 잘 해주세요." 차법사의 말을 들은 자식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요즘 만혼인 자식을 둔 부모가 많다. 만혼이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과거를 돌이켜볼 필요는 있다. 이성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잘못한 사람일수록 자식이 결혼을 못하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싱글이고 좋은 상대와 맺어지고 싶다면 이성에게 공덕을 쌓아라. 무조건 잘 해주고, 해준 것은 빨리 잊고, 헤어져도 잘 되길 바라도록. 그래야 자신도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유상태 기자(rst5928@whoim.kr)/ 인터넷신문 후아이엠(www.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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