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민의 월드why] 바티칸은 외계인을 인정한다고? 400년 전과 달리

서울신문 | 입력 2015.08.12. 11:22 | 수정 2015.08.26. 16:58

[서울신문 나우뉴스]

외계생명체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공상과학영화를 즐겨보는 마니아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흥미를 가지는 소재다. 지구 외에 또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와 다른 생명체와의 만남을 ‘곧 다가올 미래’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집단 중 하나는 바로 바티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중심으로 세계 종교의 한 축을 구성하는 바티칸은 최근 “지구 이외의 또다른 행성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는 뜻을 밝혔다. 신(神)의 존재를 믿는 종교단체 및 지도자가 신 이외의 다른 ‘고등 생명체’의 존재를 거론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드문 일이다. 바티칸은 왜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믿게 됐을까.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
바티칸

▲바티칸 천문대의 역사

바티간 소속으로서 천체를 관측하는 교육 기관인 바티칸 천문대의 역사는 15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는 부활절과 축일(하느님과 구세주, 천사와 성인들, 거룩한 신비와 구세사적 사건 등을 기념하거나 특별히 공경하도록 교회가 별도로 정한 날) 등을 결정하는데 있어 역법을 이용했다. 즉 천체의 주기적인 운행을 시간 단위로 구분해 날을 정한 것이다.

교회는 하늘의 움직임을 살필 전문가들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역법이 급속도로 발전한 18세기의 교황들은 바티칸 천문대와 천문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바티칸은 외계생명체를 거론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현 바티칸 천문대 소장인 호세 가브리엘 푸네스 신부는 2008년 “가톨릭 교리나 성경에서도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부인하는 내용은 없다”고 밝혔으며, 가톨릭과 바티칸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지난 해 5월 바티칸 라디오 정규방송에서 “내일이라도 녹색 피부에 긴 코와 큰 귀를 가진 화성인이 세례받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면서 “세례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문을 닫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비교적 근대의 일이긴 하나, 바티칸이 바티칸 천문대를 중심으로 먼 우주를 관찰한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천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다. 그는 망원경으로 달과 목성 등을 관찰하고 역학 연구를 통해 근대 천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그가 벌인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옹호다.

지동설은 태양이 우주 혹은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는 우주관이며,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입증할 만한 연구 및 발언을 지속하다 결국 두 차례의 종교재판을 받았다. 당시 교황청이 갈릴레이에게 재판 및 고문을 선고했던 이유는 갈릴레이의 주장이 지구가 중심이라는 ‘진리’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그의 이론들이 이단에 가깝다고 주장하며 그의 모든 서적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지오르다노 부르노(1548~1600) 역시 갈릴레이에 앞서 교회와 다른 뜻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한 바 있다. 이처럼 약 400년 전 바티칸은 우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지구가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포토리아
사진=포토리아

▲‘ET’의 존재를 인정한 바티칸

4세기에 걸친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다. 그는 1992년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교회의 비난이 잘못됐음을 인정했고 “진화론은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밝혔다. 갈릴레이에 대한 명예도 회복 시켰다. 그 즈음 등장한 것이 바로 외계생명체였다.

1992년 미국항공우주국(이하 NASA)가 영화 속 캐릭터인 ‘ET’로 대변되는 외계생명체를 본격적으로 탐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바티칸은 이 탐색 작업에 적극 협력할 뜻을 표명했다.

당시 바티칸 천문대는 이탈리아 언론인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지구 외계에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 지구상의 인간만이 유일한 고등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중심주의”라고 전했다. 바티칸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종교로서 인류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 바티칸의 의지로 해석된다. 이후 바티칸은 종교와 과학의 간극을 없애는 노력과 동시에,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 기존의 믿음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다만 400년 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우주 만물’이라는 피조물에 ‘외계인’이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외계생명체에 대한 믿음, 종교·개인마다 달라

외계생명체의 존재가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는 ‘진리’처럼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닌 만큼, 종교별로 다양한 입장이 공존한다.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의 천문학자인 데이비드 와인트랍 교수는 자신의 저서 ‘종교와 외계인: 우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Religions and Extraterrestrial Life: How Will We Deal With It?, 2014)에서 외계생명체가 실존한다는 가정하에 “유대교는 자신과 자신이 사는 곳에 있는 신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긴다. 외계인의 존재를 문제화 하지 않는다. 모르몬교는 확실하게 외계인을 믿으며 이슬람교의 코란에도 또 다른 지적 생명체와 관련한 언급이 있다. 힌두교나 불교 등의 신비로운 동양 종교들도 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일수록 "외계생명체와 관련한 문제가 더 많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외계생명체를 향한 믿음은 종교 뿐 아니라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보는 종교의 신도라 할지라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이를 부인할 수도 있다. ‘ET’의 실존 여부는 여전히 ‘믿거나 말거나’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주 및 외계생명체의 탐색은 현재진행형이며, 전 세계가 집중하는 고등 학문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송혜민 기자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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