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는 해도 깃발은 못해… 난 구멍 난 난닝구니까"

입력 : 2011.10.08 03:03 / 수정 : 2011.10.08 09:28

[베스트셀러 저자 박경철의 일곱번째 책 '자기혁명']
출간한 지 1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책 곳곳 인문학 심어 인문학 인용만 100권
책 한 권을 읽더라도 한 줄 남으면 좋은 책… 내년 키워드는 '위로와 격려'될 것

자기혁명

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400쪽 1만6000원

전국을 돌면서 안철수와 진행해온 청춘콘서트는 끝났지만 그는 요즘 더 바쁘다. 6일 인터뷰 중에도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드릴 말씀이 없네요. 모든 언론사에 똑같이 이렇게 답합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다시 기자를 보며 “이게 요즘 일”이라며 웃는다. 작은 눈이 감길 듯하다. 그 눈에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도전권’을 양보하던 날이었다. “온갖 억측이 돌더라.

하지만 안 선생은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고 나는 곁에서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게 끝나니까 모든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눈물이 쏟아졌을 뿐이다.”

약속대로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로서는 일곱 번째 신간이다. 출간 전부터 예약 판매 1위를 기록하더니 출간 1주 만에 교보·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선두다.

시골의사 박경철은 트위터 팔로어 수만 33만9000명이 넘는 영향력 1위의 파워블로거다. 하지만“나는 깃대는 될 수 있어도 깃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6년 전 지방 강연 중에 한 학생이 이러더라.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그렇게 해도 제가 좋은 대학 가거나 좋은 직장 얻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도 선생님 말대로 살면 희망이 있을까요?’ 듣는 순간 가슴이 콱 막혔다. 2009년 여름 안 원장이 대담 토론을 제안했다. 이화여대에 모인 2000여 학생 눈빛을 보니 그때 고교생이 생각났다. 안 원장에게 지방에도 기회를 주자고 했다. 그때부터 주 3~4일 전국 순회가 시작됐다. 이 책은 그때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자, 청년들의 눈빛을 닮은 앨범이다.”

―‘기성세대의 벽’을 말할 때는 우석훈의 ‘88만원 세대’와 겹치고, ‘내 안의 혁명’을 처방하는 대목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비슷하다.

“사실 인문학 책을 겨냥했다. 자기계발서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인문학 코드를 부비트랩처럼 심어놨다. 가능하면 다른 분야에도 호기심을 가져보라는 취지다. 인용된 책만도 100권쯤 될 거다. 나는 사회 현상을 아주 비판적으로 분석하지만 해법은 점진적이다. 사회를 뒤집는 게 아니라 개선해 가는 것이다. 바꾸자는 쪽과 바꾸지 않으려는 쪽 사이 간극을 좁혀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합리적 보수’ ‘합리적 중도’ ‘중도 좌파’ 여러 가지로 불리나 보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쉬면서 특별한 여행기를 구상 중이다. 책에서는 낯선 곳 여행하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못 했다. ‘체 게바라의 눈으로 쿠바를 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눈으로 그리스를 보다’ 그런 기행문…. 자료 모으고 공부하는 중이다.”

―체 게바라 이야기 하니까, 의학도에서 출발해 관심을 넓혀간 궤적이 비슷하다. 평범한 시골 의사에서 경제 분석가로, 시사 프로 진행자로, 대중 강연자로 점점 사회적 참여를 넓혀왔다.

“대학 땐 별생각 없었다. 의사든 변호사든 사회의 주어진 틀 안에서 성실하게 사는 게 범용적 삶이지만, 가슴 속엔 누구든 ‘초월성’이 잠재한다. 인문학이 촉매제였다. 현상을 비판적으로 파고드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내 삶을 ‘인 더 월드’(세상 속에서 균형 잡고 사는 사람)로 규정한다. 많은 사람이 ‘포 더 월드’(세상을 위해 산다는 사람)를 자처한다. 자각을 못 하면 그냥 ‘오브 더 월드’(생각 없이 세상의 일부로 사는 사람)로 살게 된다.”

―이미 ‘포 더 월드’ 쪽에 와 있는 것 같다.

“나는 토대나 깃대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깃발은 못한다. 깃대에 걸레가 걸려서는 안 된다. 멀리서 보면 깃발처럼 보이는데 구멍 난 난닝구도 있다. 그런 부류가 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자기 혁명을 권하지 않았나.

“개인 혁명이란 삶의 방식과 태도의 틀을 깨고 넘어서는 것이다. 반면 사회 혁명은 개인의 선택을 벗어나 사회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 전체가 함께 움직일 때만 이뤄지는 것이다. 다양한 자기 혁명이 일어나면 그때 손과 손을 잡는 연대가 생겨나고 사회를 바꾸는 혁명이 되는 것이다.”

―트위터 팔로어 수만 33만9000명이 넘고 영향력으로는 1위다. 사회 변화에 쓸 생각이 안 드나?

“용도가 바뀌면 폐기된다. 빨랫비누로 세수를 하면 안 된다. 나는 내가 구멍 난 난닝구란 걸 안다. 행주 정도밖에는 효용도가 없다.”

―자기 역할을 뭐라고 생각하나?

“중간 다리다.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트위터도 하면서 오랫동안 대중을 봐왔다. 대중에 굉장히 민감하다. 내가 읽어낸 대중의 뜻을 ‘포 더 월드’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전달하는 역할은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투자 분석가 시절 ‘평균 움직임을 잘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 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

“사실 정의 열풍이 불기도 전에, 김영사 박은주 사장과 밥 먹으면서 ‘내년 키워드가 뭐겠느냐’ 하기에 서슴없이 ‘저스티스(정의)’라 했다. 왜냐. 시대의 화두는 가장 부각된 게 아니라 그 시대의 결핍분이다. 샌델 책이 나오자 대박 났다. 그 후에 박 사장이 또 키워드 묻길래 ‘공정’이라고 했다. 정의는 관념에 지나지 않고 실천적으로 공정한 룰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시사잡지에서 오피니언 리더 100명에게 내년 키워드를 물었는데 대개 복지라 했다. 나는 ‘위로와 격려’라 답했다. 공정은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좌절하고 지치고 체념하기도 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자신을 가학적 독서가라 부른 적이 있는데.

“독서 강박이 있다. 독서는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하고 책을 펴고 덮을 때 내 삶이 달라져야 한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없다. 한 권을 읽고 딱 한 줄이라도 남으면 좋은 책이다.”

―‘자기혁명’은 그런 책인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시골 의사에서 경제 평론가로, 판매량 130만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방송인으로, 강연자로 변신을 거듭했다. 언제가 가장 ‘나답다’고 생각하나.

“(한참 생각한 후) 올여름 청춘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 기분 좋다. 48년 살면서 가장 대가 없는 일에 가장 뜨겁게 가장 진지하게 살았다. 이건 계획해서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어떤 우연 속에서 흥이 나고 몰입돼야 가능한 일이다.”

출간 1주 만에 종합 베스트셀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자기혁명'의 저자 박경철이 이야기 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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