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갑니다, 미셸"… 직장내 영어이름, 군대식 문화 없앨까 -전략기획조직경영

2014/09/09 16:42

복사 http://blog.naver.com/jameskods/220116982724

전용뷰어 보기

<조선일보 2014-08-30-토>

 

 

기업들, 수평적 의사소통 위해 '영어이름' 쓰고 '~님'자 붙인다는데


원어민에 영어이름 의뢰도
다음·카카오 합병 후 사용… CJ, 2000년부터 ‘~님’ 붙여
SKT는 과장·부장 없애고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


도입 기업들, 긍정적 평가
“상하간 대화 자유로워지니 창의적 아이디어 나오더라”
“구성원간 존댓말 쓰며 존중 채용 때도 인재들 몰린다”


“업무 효율성만 저하” 지적도
“직급 없으니 책임소재 애매 후배에게 일 지시도 힘들어”
KT는 직급승진제도 재도입 “한국 현실에 맞지 않았다”

다음 커뮤니케이션 직원 A씨는 최근 '작명가'를 만났다. 30대의 나이에 갑자기 이름을 바꾸겠다고? 그건 아니었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결정된 후 전 직원이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카카오 직원들은 이미 영어 이름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 그들과 겹치지 않는 영어 이름을 찾느라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영어 이름을 아직 못 지은 직원들을 도와주느라 원어민이 회사로 출장을 온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는 임직원 간에 '부장'이나 '대표' 같은 직책을 붙이지 않고 영어 이름으로만 서로를 부른다. 카카오 측은 "수평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다. 말단 직원도 김범수 이사회 의장을 그냥 '브라이언(Brian)', 이석우 공동대표는 '비노(Vino)'라 부른다"고 했다. 이기연 카카오 홍보담당은 "우리 회사엔 '직급'이라는 개념이 없다. 다만 '팀장', '실장'처럼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직책'의 개념은 있다.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리더십만 있으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커뮤니케이션 직원들에게 '직급 없는 직장 내 호칭'은 낯선 문화가 아니다. 이미 이름 뒤에 직급 대신 '님'을 붙여 서로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최세훈 다음 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직원들에게 '최세훈님' 혹은 '세훈님'이라 불렸다. 직급 없이 직책만 있는 것도 카카오와 마찬가지. A씨는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다 이제 영어 이름으로 바뀌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장 내 소통 위해 '영어 이름'·'~님' 

임직원 간에 호칭을 바꿔보는 시도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상무 등 '연공서열'을 명시하는 직급을 붙여 부르다 보면, 소통이 원활치 않은 것은 물론 빠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판단에서다.

W서울 워커힐 호텔(W호텔)도 직원들끼리 영어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 호텔 이수정 PR&마케팅팀장은 '미셸(Michelle)', 같은 팀 직원 양혜정씨는 '해나(Hannah)'다. 회사에서는 대화할 때는 물론이고, 문서에서도 한글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W호텔 측은 "우리는 직장이 곧 '무대'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예명을 사용하는 것처럼 무대에서 끼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 '스테이지 네임(stage name)'을 쓴다는 개념"이라고 했다. 즉 자연인으로서의 인격과 사회인으로서의 인격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로서 영어 이름을 택했다는 이야기다.

CJ그룹은 2000년 1월 '님 호칭제'를 도입했다. CJ그룹 측은 "당시 상무였던 이재현 회장이 '조직 내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야 창조적일 수 있다'며 내린 지침이다. 회사 공식 행사에서도 사회자가 '이재현님 입장합니다'라고 하고, 회의할 때도 '이재현님'이라고 한다"고 했다. 다만 CJ의 경우 카카오나 다음과는 달리 직급은 존재한다. 연공서열의 상하관계를 인식하면서 호칭만 '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SK텔레콤과 SK E&S는 각각 2006년 10월과 2008년 4월부터 대리, 과장, 부장 등의 구분 없이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이름 뒤에 매니저를 붙이는 식이다. 하지만 본부장, 실장, 팀장 등은 그대로 뒀다. SK 측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이 같은 방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영어 이름이든 '님'이든 호칭을 바꿀 때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 전제로 한다. 그래야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창의적 아이디어 창출에 도움"

카카오 직원들의 채팅 화면.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 /카카오 제공
'직급 없는 호칭' 사용이 과연 직장 내 '수평적 의사소통'과 '빠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까? 이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 대부분은 그간의 '실험'이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기연 카카오 홍보담당은 "상하 간 대화가 자유로워지니 누구나 자기 의견을 쉽게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열심히 낸다"고 했다.

권혁준 CJ그룹 인사 담당자는 "CJ가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제일제당그룹으로 분리독립할 때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 '군대식 문화 타파'였다. 엔터테인먼트, 쇼핑, 외식산업 등 새로운 사업을 성장시키려면 창의적 문화가 중요했다. '님 호칭제'는 그를 위한 초석 중 하나였다"면서 "수평적 문화 덕에 그룹 규모에 비해 채용 경쟁력이 높다.

매년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 5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윤아 SK 홍보담당자도 "'매니저'란 호칭을 쓰면 연차를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신입사원에게 업무를 요청할 때도 조심스럽게 한다. 서로 존중한다는 측면을 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학계는 기업들의 이러한 '시도'는 일단 환영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한국어 경어법, 힘과 거리의 미학'을 쓴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직급을 의식하면 자유롭게 말을 하지 못한다. 직급과 관계없이 호칭을 대등하게 쓰려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 한 문화심리학자도 "대화할 때의 표정, 몸짓, 말투가 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호칭을 바꾸는 것이 수평적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업무 효율성 저하한다는 시각도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인식 개선 없이 '호칭'을 바꾼다고 소통이 원활해지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수십 년을 유교적 위계질서 문화에서 자랐는데 호칭을 바꾼다고 해서 갑자기 아랫사람이 기탄없이 할 말 다 하고, 윗사람이 여기에 귀 기울이게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초·중학교를 나오고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B씨는 "단지 영어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관계가 수평적이 될 거라는 발상은 순진해 보인다"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퍼스트 네임'을 부르는 건 격식을 싫어하는 미국 문화일 뿐이다. 직급을 없앤다는 것도 대외 과시용으로 느껴진다. 직급이 없으면 조직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CJ에서 근무했던 C씨는 "젊은 사람들이 '님 호칭제'를 환영한 반면 나이 많은 남자들은 불편해했다. 특히 '하라면 하지 왜 말이 많으냐'는 사고방식을 지닌 상사들이 힘들어했다"고 했다. 언어인류학·사회언어학 전공자인 왕한석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구조의 핵심은 유교적 위계질서와 존댓말이다. 우리 사회처럼 한두 살 나이 차이를 가지고 '상대'와 '나'를 규정하려는 곳은 드물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라도 존댓말이 발달하지 않은 중국과는 또 다르다. 단순히 호칭이 바뀐다고 해서 '소통'이 원활해질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직급 부르지 않기'가 업무 효율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40대 남성은 "위기 상황에서는 소위 '선배'가 '후배'에게 일을 시키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직급이 없다 보니 책임이 애매해지고, '후배'에게 일 시키기도 꺼려진다. 서열 파괴의 효과는 있지만 효율성 측면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조직 외부와의 의사소통도 쉽지 않다. 카카오 관계자는 "택배가 왔을 때 실명을 몰라 안내데스크 직원이 영어 이름과 실명 리스트를 확인하고 전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SK 계열사의 한 직원은 "모두 '매니저'가 되다 보니 다른 부서 사람과 일할 때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몰라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최근 KT는 2009년 말 폐지했던 직급승진제도를 재도입했다. KT 측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았다. 직급이 바뀌고 승진을 해야 직원들 사기 진작이 되는데 호칭을 '매니저'로 통일했더니 그게 어려웠다"고 밝혔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