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터넷기업 'BAT'의 미국 침공
송기용 특파원의 China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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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의 침공). 1964년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미국진출은 '영국음악의 미국 침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충격적인 데뷔였다. 정확히 50년이 흐른 2014년은 중국 인터넷기업 반란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시나웨이보, 징둥상청(京東商城), 쥐메이요우핀(聚美優品) 등 중국 인터넷기업들이 최근 성공적으로 미국증시에 상장했다. 이름도 생소한 이들은 SNS(소셜네트위크서비스), 온라인홈쇼핑, 온라인 화장품 판매 등을 주력으로 하는 중국의 신생 인터넷기업이다.
징둥상청과 쥐메이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류창둥(41)·천어우(31)는 이번 상장으로 보유주식의 시장가치가 60억달러(약 6조1420억원), 14억달러(약 1조4329억원)까지 치솟았다. 대박신화를 쓴 이들에 이어 중국 2대 인터넷보안기업 치타모바일, 온라인여행업체 투뉴왕, 동영상서비스업체 쉰레이 등도 조만간 미 증시 상장대열에 합류한다.
무엇보다 올해 미국증시의 최대 대물로 평가받는 알리바바가 상장을 앞두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알리바바는 지난해 매출 1조위안(약 163조원)을 돌파해 세계적인 온라인쇼핑몰 이베이, 아마존을 압도했다. 온라인결제, SNS, 음악스트리밍서비스에 이어 지난해에는 온라인금융상품 위어바오(餘額寶)를 출시해 중국 금융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일종의 머니마켓펀드(MMF)인 위어바오는 1년도 안돼 가입자가 8000만명을 넘었고, 5000억위안(약 8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13억 인구를 발판으로 한 알리바바의 성장가능성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전문가들은 알리바바의 시가총액 규모가 1600억달러(약 1640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알리바바가 미국증시에서 거둘 것으로 추정되는 200억달러의 자금조달 규모는 세계 정보기술(IT)기업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종전 최고기록은 페이스북이 기록한 160억달러였다.
아직까지 알리바바가 미국의 양대 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중 어느 곳을 통해 상장할지 결정되지 않았는데 두 거래소의 '알리바바 모시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NYSE와 나스닥 임원들은 지난해부터 IPO 유치를 위해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수차례 접촉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NYSE가 알리바바 IPO를 유치하면 기술주 중심 증권거래소로 명성이 높은 나스닥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섀블 리 나스닥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나스닥은 성장지향적인 기업에 최적의 행선지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알리바바를 향한 노골적 구애를 보냈다.
◆ 중국 IT기업, 왜 미국으로 몰려가나
인터넷기업들의 잇단 미국행과 관련 중국 내에서는 자국 기업들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긍정적 반응과 함께 미국증시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중국 기업들이 상하이, 선전거래소 등 자국증시를 외면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국은 기업공개제도가 허가제인 반면 미국은 등록제다. 미국은 요건을 충족하면 상장을 허용하지만, 중국은 모든 조건을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가 심사하고 허가한다. 게다가 중국 증권당국은 주가하락을 이유로 2012년 10월 기업공개 업무를 일체 중단했다가 최근에야 재개하는 등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기업을 골탕 먹이고 있다.
상장 시 본사를 중국 역내에 설립하도록 요구한 규정도 문제다. 알리바바 등 중국 인터넷기업들은 외자유치 편의상 케이만군도 등 면세지역에 페이퍼회사를 지주회사로 세우고 이 회사가 국내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형태여서 중국증시에 상장하는 데 제약이 있다.
무엇보다 중국은 공모 시 보통주와 다른 권리를 가진 주식발행을 허용하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창업자인 마윈 회장의 지분이 8.9%에 불과하다. 상장 시 기업공개를 하면 마윈의 지분은 더욱 떨어지는 만큼 경영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은 창업자가 특별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발행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행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 BAT 무한경쟁… 실탄 확보위해 미국행
중국 인터넷기업들의 미국행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은 인수합병(M&A)용 자금조달 측면이다. 중국 온라인홈쇼핑 2위 진둥상청은 압도적 1위인 알리바바와의 경쟁을 위해, 알리바바는 숙명의 라이벌 바이두, 텐센트와의 일전을 위해 각각 미국증시로 향한 것이다.
특히 3대 인터넷기업의 일전은 과거 위·촉·오 3국 시대에 견줘 'BAT 삼국지'로 불릴 정도다. 이들 3개 업체는 이제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성장해왔다. 바이두는 검색엔진,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텐센트는 온라인게임과 SNS 분야의 최강자다. 하지만 최근 고유성역은 파괴되고, 상대의 강점분야를 파고들려는 3사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텐센트는 알리바바가 대성공을 거둔 인터넷금융에 진출했고,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위챗에 전자상거래 기능을 넣어 알리바바와 전면전을 선언했다. 또한 온라인 검색업체 써우거우 지분을 인수하며 바이두에도 싸움을 걸었다. 이에 맞서 알리바바는 위챗 대항마로 소셜 메신저 라이왕을 발표했고, 바이두는 앱스토어업체인 91와이어리스를 인수해 모바일분야를 강화했다.
인수금액은 19억달러로 중국 인터넷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BAT의 영역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지난해 인터넷 관련기업 M&A 건수는 317건으로 전년보다 2배 늘었다. 해외기업 인수도 14건이나 되고 투자금액도 23억달러에 달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BAT의 경쟁은 중국은 물론 세계 인터넷업계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판이 커졌다. IT, 특히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했던 한국의 입지가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을 선언하고 업계 1위 네이버를 향해 도전장을 던졌다. 더 이상 중국에 뒤처지지 않고 명실상부한 인터넷 강국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 한 업체의 장기독주보다는 치열한 경쟁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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