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꽉 채운 '나꼼수 파워', 어디로 향할까

프레시안 | 기사전송 2011/12/01 04:16

[현장] 반FTA보다 센 '반MB' 정서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엄청난 인파였다. 여느 집회처럼 사전 고지된 공연 시작시간인 오후 7시 30분에 맞춰 여의도역에 도착했으나, 3번 출구는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흡사 주말 강남역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빌딩숲을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퇴근길에 나선 직장인들이 인파를 보고 흠칫 놀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혀를 끌끌 찼고, 다른 누군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인파를 거슬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여의도공원에 도착했으나 몰려든 인파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한걸음 물러나 뒤를 돌아 나가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말소리가 작은 탓에 뒤편에서는 말이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역시 당황한 기자 몇이 보였다.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걸 어쩐다.

▲30일 서울 특별공연을 연 <나는 꼼수다> 팀. ⓒ프레시안(최형락)

강력한 대중적 인기

30일 저녁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특별공연을 보기 위해 주최측 추산 5만 명, 경찰 추산 1만6000명이 몰렸다. 대충 눈짐작으로도 여의도공원 광장의 80% 정도가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공연을 기획한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진행한 한미 FTA 비준안을 날치기한 한나라당 국회의원 이름 외우기 노래 부르기가 끝난 후, 저녁 8시 정각 <나꼼수> 출연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커다란 함성 소리가 조용히 불이 켜진 인근 고급 아파트단지를 울렸다. 흡사 록 스타의 출연을 보는 듯했다.

<나꼼수>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의 하나임은 분명했다. 박영선, 정동영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 심상정 (가칭) 통합진보정당 신임공동대표, 최재천 변호사가 무대에 올랐고, 공지영 소설가 역시 <나꼼수> 4인방 못지않은 입심을 과시했다.

김어준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정봉주 전 의원, 주진우 <시사IN>기자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자지러졌고 록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춤을 췄다. 흡사 YS와 DJ가 대선 유세에서 몇만 명을 모았느냐를 두고 경쟁하던 시대를 보는 듯했다.

<나꼼수>의 성공 비결이 무엇일까. 이들은 방송에서처럼 거침없는 입담(혹은 잡담)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만화가 강풀의 그림처럼 4인방은 방송을 통해 절묘하게 캐릭터화됐고, 이는 딱딱하기만 하던 정치뉴스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거듭나게 했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상당수 시민이 "<나꼼수>를 통해 정치뉴스를 접한다. 언론에서 못 듣는 얘기를 알게 된다"고 말한 게 이를 입증한다.

<나꼼수> 캐릭터 가방까지 메고 공연을 보러 온 직장인 이동엽(40) 씨는 "2개월 전부터 <나꼼수>를 들었다. 그 전에는 정치 문제에 '그냥 싫다'고 하는 정도였는데, <나꼼수>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에도 나가봤는데, 역시 <나꼼수>의 영향이 컸다"며 "상당수 직장 동료들도 이 방송을 듣는다. 방송이 잘 진행될 수 있게 더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도와왔다는 직장인 장미현(27) 씨는 "다른 언론에서는 듣지 못하는 얘기를 <나꼼수>에서는 들을 수 있다. 다른 언론은 다 정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비판도 못 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물론, KBS, MBC의 취재도 응하지 말자는 팻말이 많이 눈에 띄었다. 기성 언론에 대한 이 같은 시민들의 불신이 <나꼼수>를 민주언론상 수상자로 만들었으리라. 적어도 이날 공연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경찰 등이 그저 웃음소재로 격하됐다. 출연진과 시민들은 무서운 권력을 가진 이들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꼼수>가 요구한 그대로였다.

▲<나꼼수>는 '가카 헌정방송'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열기와 행동, 즐거움과 저항의 사이

공연을 보는 모든 이가 그저 흐뭇한 표정을 지은 것만은 아니다. 한 시민의 입장은 어느 정도 경직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곱씹어 볼 내용이기도 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 깃발을 들고 있던 이 중년남성은 "솔직히 <나꼼수>에는 관심이 없다. 트위터의 대세가 <나꼼수>라 혼자 오는 트위터 사용자들을 위해 깃발을 들고 있지만, 사람들이 유명인에 열광하기보다 한미 FTA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 나와서 웃고 즐기는 건 누가 못하느냐. 그러나 당장 우리 삶을 바꿀 한미 FTA는 즐길 문제가 아니라 '저항'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말은 "장기전이다.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즐기자"라는 나꼼수 출연진의 주장, 혹은 격려와 어긋난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반복해서 "길거리로 나와 달라"고 요청했다. 심상정 대표 역시 "투쟁만이 한미 FTA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영 의원도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길거리 투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반 FTA 촛불의 수를 늘리는 '행동'이 세상을 바꾸지, <나꼼수> 청취가 곧바로 변화를 낳는 건 아니라는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이들의 말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거리를 메울지는 미지수다. 전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1000여 명도 되지 않는 이들이 모였다.

물론 <나꼼수>의 위력을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다. 이날 공연 소식과 참여자 수는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취재기자들에게 빠르게 연락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사실상 이 대통령의 비준안 서명 이후 전적으로 <나꼼수>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나꼼수>는 현재로서는 의미 있는 '정치 입문용' 콘텐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속되는 분노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중요한 해독제가 되어주고 있다. 이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이 언제고 행동을 결심하고 나서면 투표, 국정운영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는?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가 의존하는 <나꼼수>는 현재 '반MB' 정서에 기대고 있다. FTA가 주연이 아니라 '가카'가 주제다. 유효기간은 내년까지다. 다음은? 안철수 또는 문재인인가, 진보정당인가. 통합인가 정책인가. 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후자가 더 떠오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복지의 정도는 어디까지인가. 토지공유제는 우리가 용인하기 불가능한 문제일까, 아닐까. 대체 군복무제는 중요한 문제일까, 아닐까.

결국 첨예하게 갈릴 것이다. 과거 '노짱 열풍'이 그랬고 지방선거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의 처지 역시 그랬다. <나꼼수>의 한계를 벌써부터 얘기하고, <나꼼수>가 보수지지층과 무당파는 물론, 진보진영까지 흡수한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나오는 이유다. <나꼼수>가 이끈 이 열광은 어떻게 한국을 변화시킬까.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이들도 이날 공연무대에 섰다. ⓒ프레시안(최형락)

▲공지영 작가는 '깔때기' 정봉주 전 의원 못지 않은 입심을 과시했다. <나꼼수> 4인방은 개성넘치는 캐릭터를 구축했고, 이는 방송 흥행에 큰 역할을 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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