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준무효 명박퇴진”
26일 밤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 모인 3만여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며 한미 FTA 폐기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일부 언론들에 대한 시민들의 취재 거부도 이어졌다.
당초 민주당 주최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정당연설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시민들은 6시 45분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1시간 가량 집회를 이어가던 시민들은 몸싸움 끝에 경찰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사거리 일대를 점거하고 이순신동상 앞으로 모여들어 집회를 이어갔다.
광화문 쪽을 바라보며 앉은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비준무효 명박퇴진” 구호를 외쳤고,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천정배 의원, 이종걸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김선동 의원, 통합연대 노회찬 상임대표, 심상정 전 의원 등이 대열 맨 앞 자리를 잡고 앉아 경찰과 대치했다.
| | |
ⓒ노컷뉴스 |
|
경찰은 이순신동상 좌우측에 총 3대의 살수차를 대기시킨 채 “해산하지 않을 시 앞에서 집회를 주도하는 주동자를 검거하겠다”면서 해산 경고방송을 이어갔다. 몇몇 시민들은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경찰과 마주보며 “평화시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휴대폰을 방수케이스에 넣어 온 시민도 있었다. 시민들은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끌어다가 ‘저지선’을 구축하기도 했다.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곳곳에서 표출됐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 장면을 카메라에 담던 KBS 취재진을 향해 시민들은 “방송도 안 할거면서 왜 왔냐. 자료로 보존하러 왔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또 다른 시민도 “시민들이 이렇게 도심에서 시위를 하는데 오늘 저녁 뉴스에도 안 나왔다고 하더라. 뭐하러 찍어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왔다는 김해경(33)씨는 “조중동에서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신뢰하지 않는다. SNS나 여러 미디어가 많다”면서 “여러 관점에서 FTA를 바라보게 됐고 그러면서 비판적 관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가현(19)씨는 “조중동은 시민을 폭도로 몬다”며 “언론이 일방적으로 정부 입장만 얘기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원래 한나라당 지지자였다”는 이석호(48)씨는 “KBS 뉴스는 아예 안 보고 MBC도 요즘 안 본다”면서 “30년 전 독재정권 때 행태가 계속되니까 볼 필요가 없다”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MBC 카메라를 향해서도 “9시 중요한 뉴스에 FTA 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 나가라. 너희가 언론이고 기자냐”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이명선(41)씨는 “언론은 항상 뻥튀기 해왔다. ‘한미FTA하면 몇 조 이익이 생긴다’는 거다.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 불리한 것 같은데 보도하지 않는다”며 “이제 방송은 안 본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게 낫다. 참여정부 때 MBC PD수첩이 FTA 문제점 방송한 적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안 한다. MBC만 봤는데 이제는 안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언론들의 ‘직무유기’를 5·18 방송 안 한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 | |
▲ 일부 시민들이 손에 들고 있던 손팻말을 경찰 차량에 붙여 놓았다. ⓒ허완 기자 |
|
저녁 9시경, ‘국민참여당’ 로고가 박힌 방송차량이 광화문4거리에 도착했다. 시민들과 의원들은 방송차를 향해 방향을 바꿔 시청 방향을 바라보고 다시 자리를 정돈했다.
무대 위에 올라선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통령이) 일부 반대가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1% 일부 반대가 있더라도 망국적 FTA를 막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승수 전 의원은 “29일에 이명박 대통령이 비준 서명 못하게 해야 한다”며 “내년 총선 대선에서 당선된 후 FTA 막겠다는 얘기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국민참여당 천호선 최고위원은 “국민참여당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그 부채도 계승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FTA 폐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집회가 진행되던 도중이던 9시 35분경, 박건창 종로경찰서장이 갑자기 시위대를 가로질러 시청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해 시민들과 몸싸움이 빚어졌다. 일부 시민들은 “뭐하러 여길 들어오느냐”면서 항의했고, 일부 시민들은 모자를 벗기거나 물병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이에 몇몇 시민들이 “(경찰이) 폭력을 유발하려고 하는 거니까 말려들지 말고 조용히 보내주자”며 길을 터주자고 요청했고, 박 서장과 경찰 관계자들은 시청방향 무대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대열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
경찰은 시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오는 차량을 따로 통제하지 않아 시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길이 막힌 차량들이 경적을 울려대며 유턴을 시도하는 바람에 일대 교통이 마비됐고, 일부 운전자들은 시위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밑에서 차량을) 막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피했다.
| | |
▲ 한 시민은 경찰차량에 '경향신문'을 꽂아 넣기도 했다. ⓒ허완 기자 |
|
잠시후 경찰이 종로 방향으로 차량 소통을 유도하면서 병력을 이동해 시위대의 ‘허리’를 잘라냈다.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길이 막힌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경찰은 ‘차량을 소통해야 한다’며 시민들이 차도로 나오거나 광화문광장 쪽으로 길을 건너는 것을 막아섰다.
9시 55분경 집회가 마무리 되자 시위대 선두 2천여 명은 종로 네 개 차로를 점거하고 종로2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눈에 띄는 지휘자나 방송차량은 없었다. 10시 20분경 종로2가에 도착한 시위대는 진행 방향을 놓고 잠시 이견을 보이다가 종로3가 방향으로 행진을 계속하다가 뒤늦게 달려온 경찰과 한 때 충돌하기도 했다. 이어 남아있던 시민들은 명동성당 앞으로 이동해 내일 7시에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하며 밤 11시 35분경 자진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