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보다 강력한 TPP, 돌이킬 수 없는 민영화가 온다"

다음주 오바마 방한이 TPP 분수령…미국이 요구할 '입장료'는?

최하얀 기자
2014-04-20 11:28:42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는 돌이킬 수 없는 공공부문 민영화로 귀결될 것."

제인 캘시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법학 교수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TPP 현황과 전망 국제 심포지엄'에서 "TPP는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개방과 제도 변화를 한국에 요구할 것"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TPP는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이 추진 중인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관심 표명' 의사를 밝혔으며, 현재는 기 참가국들의 승인을 얻기 위해 예비 양자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5~26일에 있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이 한국의 TPP 참여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미국이 한국의 TPP 참여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무엇을, 어디까지 요구할 것인지, 그리고 TPP 참여로 추가 개방될 영역과 그 여파는 어느 정도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TPP 궁극의 목표, 공기업 해체와 민영화"

TPP에는 지금껏 어떤 FTA에도 없던 '국영 기업'에 관한 챕터가 있다. 캘시 교수는 "TPP가 달성하려는 궁극의 목표는 공기업 해체와 민영화"라며 "공기업을 시장에 개방해 공공의 이익을 줄이고 사익을 키우려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우려되는 곳은 산업은행, 우정사업본부, 수협, 농협,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미 의회에 제출한 '무역장벽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한국의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부 소유 금융기관들의 정책 금융(산업 보조금 정책)을 주목하고 있다. 이날 포럼 참가 차 방한한 미국의 로리 왈락 퍼블릭시티즌 대표는 "미국이 TPP를 통해 산업은행의 대출 정책을 대폭 축소하고 민영화를 재촉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미 한·미 FTA와 한·EU(유럽연합) FTA 후과로 보험 가입 한도 상향이 무산되는 좌절을 겪었다. '가입 한도 50% 상향 조정은 민간 보험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미국·EU 상공회의소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국민건강보험 영역에서도 생길 수 있다. 현재 50% 수준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려 하거나 재정 절감을 시도하면 TPP 위반으로 투자자 국가 소송(ISD)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석균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한국은 공적보험(국민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이 한 영역에서 경쟁하면서도, 민간보험은 공적보험이 다루지 않는 실손형 보험을 광범위하게 판매하는 나라"라며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면 간접수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접수용은 정부 규제로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한 경우 투자자가 해당 정부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한미FTA에서 간접수용은 ISD 대상이다. 왈락 대표는 "TPP 참여와 함께 ISD는 한국에 '굳은 시멘트'가 될 것(고착화할 것)"이라며 "한국에 자회사를 둔 1700여 개 미국 기업이 TPP를 통해 한국 정부를 공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입장료'…"공공·안전·환경 정책 무력화"

TPP 참여에는 '입장료'가 있다. 우선 현재까지 TPP 협의에서 결정된 사안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동의를 표명해야 한다. 이는 "협상 타결 전에는 어떤 나라도 신규로 들어올 수 없다"는 기 참여국들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제 와 '국영기업 챕터' 등 우려스러운 조항들을 재협상할 여지는 거의 없다. 

'예비 양자협의' 등의 절차도 밟아야 한다. 최경림 통상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협상단은 지난 3일 미국과 예비 협상을 시작했고 이르면 4월 말까지 2차 협의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때맞춰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25~26일에 방한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때 미국이 "한·미 FTA를 능가하는 요구"를 관철할 걸로 본다. 

미국이 내세울 입장료는 크게 5가지가 거론된다. △저탄소 차 협력금 제도 폐지 △개인 금융정보 해외 위탁 △원산지 검증 완화 △유기가공 식품 인증제 철회(유전자변형농산물(GMO) 확대 허용) △쌀·소고기 전면 개방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차량에 일정한 부담금을 매기는 저탄소 차 협력금 제도는 이미 미국과 EU 측 통상압력 때문에 시행이 한참 늦춰진 공공 정책이다. 미국은 자국 자동차 업계를 위해 현재도 고사 직전인 이 환경 정책을 이번 기회에 '아예 포기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미국 금융회사의 개인정보 본사 이전은 이미 시작됐다. 씨티은행과 메트라이프 등이 이를 추진 중이다. 한·미 FTA와 한·EU FTA는 협정 발효 후 2년부터 고객 금융정보를 본사와 제3국으로 이전할 수 있고 자료 처리를 해외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더해 미국 측 요구대로 해외 이전 및 위탁을 확대하면 불법 이전 등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귀결될 거란 우려가 크다. 왈락 대표는 "미국에서도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심각한데, 한국에는 그 보호 수준을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TPP로 인상될 의료비, 계산도 안 된다"

캘시 교수는 한국이 TPP에 참여하는 순간 △한·미 FTA △TPP △미국의 추가 요구라는 "머리 세 개 달린 호랑이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영역에서 한·미 FTA보다 미국의 추가 요구나 TPP가 수준이 높으면 높은 쪽을 따르게 된다. 

TPP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어 그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위키리크스의 지난해 11월 폭로와 미 의회에서 진행되는 논의를 통해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그간의 FTA보다 훨씬 강력한 협정"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전례 없는 '환율 조작 제재'가 강하게 언급되고 있다. 6개월 이상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를 '환율 조작' 국으로 보고 제재를 가하자는 미 의회 측 요구다. 

캘시 교수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물론 한국도 환율 조작국"이라며 "이 문제가 아직은 공식적으로 TPP 협상에서 거론되진 않았지만, 미 의회 승인을 위해 조만간 미 정부가 이를 주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건 의료 분야도 걱정거리가 많다.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TPP 협정문 초안 중 '지적 재산권' 장에는 이전까진 없던 '치료 과정 특허' 조항이 포함돼 있다. 새로운 치료법이나 진단법을 사용하려면 특허 사용료를 내야 한단 것이다. 우 정책위원장은 "이에 따른 의료비 인상은 계산도 어렵다"고 우려했다. 

바이오 신약품에 대한 자료독점권도 미국은 12년 특혜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모든 약에 5년 자료 독점권을 적용하고 있어 미국 측 이해가 관철되면 TPP는 한·미 FTA를 훨씬 능가하게 된다. 캘시 교수는 "협상이 진행되며 8년 정도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일반 약품 진입이 늦어져 의약품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캘시 교수는 "양자 무역협정도 많이 진행 중인 12개국이 그럼에도 왜 TPP를 진행하는지를 묻는 사람이 많다"며 "이에 대해 각국 정부는 TPP가 '황금의 룰'을 형성해 12개국 모두에 혜택을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 황금의 룰이 각국의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TPP는 노동자, 농민, 의약품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 슈퍼 강국과 대기업에만 실익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TPP-FTA 대응 대책위원회(전신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주관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통합진보당 김선동·정의당 김제남 의원 등 국회의원 11명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각계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 최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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