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메이저대회와 야구의 메이저리그.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승부를 펼치는 이들 대회에서 기량의 차이는 사실 ‘백지장’이다. 여기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박인비(25·KB금융그룹·사진 왼쪽)와 류현진(26·LA다저스·오른쪽)은 분명 ‘멘털’에서 남다른 강점을 지녔다.
둘은 거의 표정 변화가 없어 때론 ‘오누이’ 같다고 느끼는 팬들이 많다. 멘털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실수를 빨리 잊고, 자신을 믿으며, 경쟁에 쫓기기보다 ‘즐기는’
스타일.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멘털의 위기’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박인비…‘긍정의 힘’
이번 US여자오픈에서 ‘메이저대회 3연승’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느꼈을 박인비. 그는 1일(한국시간) 마지막 라운드 초반 6, 7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흔들렸다. 이때 그는 실수를 자책하지 않았다. “아직 홀이 많이 남았다”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꿨다. 결국 9, 10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만회했다. 3라운드까지 압도적인 선두를 달릴 때는 스스로 “인비, 참 잘한다”며 자신을 칭찬했다. 칭찬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경기 내내 지니게 만들었다.
세계여자골프의 새 역사를 쓴 박인비의 원동력은 ‘긍정의 힘’이다. 박인비는 “지난 3년 동안 나의 ‘백 스윙(테이크 어웨이)’을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에는 지금의 백 스윙 동작이 맞다고 확신하고, 다른 부분들을 보완해 성공확률 90%가 넘는 ‘컴퓨터 스윙’을 구사할 수 있었다. 자신을 믿은 것이다.
박인비의 멘털코치 조수경(43·조수경
스포츠심리연구소장) 박사는 “박인비는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다. 원래 물리학 용어로, 전 홀에서의 실수를 잊고 다음 홀에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로 빨리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선수가 직전의 실수를 잊기란 쉽지 않다. 박인비와 다른 선수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조 박사는 “박인비는
상담 때 그날 라운드를 스스로 평가하고 잘된 것부터 얘기한다. 반성이 아닌 칭찬부터 한다. 이렇게 하면 잘되고 있다는 자기최면도 걸 수 있고, 자신감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실제 박인비는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마지막날 18번홀에서 보기를 범해 카트리오나 매튜(영국)에게 연장전을 허용했다. 다른 선수의 경우 연장에서 패할 확률이 높지만 박인비는 전 홀의 실수를 금세 잊고 다음 홀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우승했다.
◆류현진…“생각이 많으면 진다”
류현진은 “생각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게임이 안 풀린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하는 투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 박찬호(40·은퇴)가 완벽주의와 세심한
성격 때문에 때로 심리적 동요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류현진은 자신의 투구에만 집중할 뿐 나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류현진은 경기 도중
수비 실책이 나와도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도 과거 SK 감독 시절 자기 팀 에이스인 김광현과 류현진을
비교하면서 “김광현은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데, 류현진은 포커 페이스”라고 칭찬한 바 있다. 잡념을 담아두지 않고 투구만 생각하기에 감정의 기복이 적다. 구원투수들이 승리를 날려도 “내 역할을 다하면 승리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고 ‘쿨’하게 대처한다. 자신을 믿는 ‘당당함’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
국내 팬들에게 ‘멘털 갑(甲)’으로 불리는 류현진은 “수비 실책이 아쉽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오면 어김없이 “수비 도움을 받은 게 더 많다”거나 “내가 위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답한다. 심판의 볼 판정이 애매해도 “투수가 심판 성향에 맞춰야 한다”고 넘긴다.
최근 5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 이하)에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아쉬워하기보다는 선발투수로서 자기 역할을 해낸 것에 만족한다. 민훈기 XTM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류현진을 1∼2년간 지켜보고 작성했던 리포트에는 ‘마운드에서의 당당함과 경기 지배력이 대단히 좋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았다”며 “류현진 본인도 힘든 것은 바로 잊어버리는 낙천적 성격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강한 정신력 덕분에 위기가 닥쳐도 오히려 집중력을 더 발휘한다”고
분석했다.
민 위원은 “다 잡은 승리가 날아가면 억울할 수도 있는데, 류현진은 ‘내가 못 던지고 타선 덕분에 승리하는 날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자세가 동료들에게도 좋게 받아들여져
미국 적응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명식·김성훈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