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단도직입]“분양원가 공개하고 분양가상한제 전면 시행 땐 집값 잡을 수 있다”

전병역 논설위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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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0 06:00 수정 : 2021.02.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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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동숭로 경실련 본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분양가상한제 시행 여부에 따른 서울 아파트값 변화를 그래프로 보여주고 있다. 김 본부장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았을 때는 집값이 급등했다고 지적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쌍용건설에서 20년간 쌓은 현장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실사구시에 입각한 주거정책 대안을 제시해온 시민운동가다. 한국건설정보 대표를 거쳐 1997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으로 주거 문제에 본격적으로 천착했다. 저서로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문제는 부동산이야, 이 바보들아> 등이 있다.

 

대책 낼 때마다 뛰는 집값

공공재개발 발표한 5·6 대책 이후
토지거래 허가제 발표하자 또 상승
세입자용 공급책 없는 2·4 대책은
투기 조장하는 역대급 토건 개발책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큰 불평등의 원인은 부동산 격차다. 세계적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엔 국내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 대책을 내놓기가 무섭게 집값은 오히려 폭등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선의가 옳다고 해도 잘못된 결과를 용인해선 안 된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문재인 정부가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누구보다 날선 비판을 가해온 사람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김헌동(66)이다. 그는 ‘경계인’이다. 민주정부 인사들은 껄끄러워하고, 그렇다고 보수들도 좋아할 수 없는 인물. 민주정부에는 ‘목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된 지 오래다. 진보 쪽이 보기에 넘어선 안 될 선도 눈치 안 보고 넘어 버린다. “박정희, 이명박 정권도 한 정책을 왜 노무현, 문재인 때는 못하느냐”고 할 정도다.

민주정부에 발끈하는 이유는 터무니없이 올려놓은 집값 때문이다. 대놓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가짜진보”라고 일갈한다. 경실련은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수치로 조목조목 꼬집는다. 김 본부장의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왜 가만히 있는 집값을 들쑤셔서 올려놓는가. 그래 놓고 종합부동산세니, 양도소득세니 세금으로 잡겠다고 뒷북이나 치고 있다.”

김헌동의 대안은 뭘까. 그는 “제대로 된 공급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분양원가 항목을 늘려서 거품을 빼고, 분양가상한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는 한편 이른바 ‘반값 아파트’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의 속시원한 해법을 듣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동숭로 경실련본부를 찾았다. 마침 “쇼크 수준”이란 정부의 83만여가구 주택공급안 발표 전날이다. 임기 1년을 남긴 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도하는 대규모 공급책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승부수’다.

현 정부의 ‘헛발질’

임대사업자에 특혜…사재기 키워
실태 파악 못한 ‘임대차보호 3법’
공급 부족이라지만 보급률 110%
세금으로 집값 못 잡는 건 입증돼

- 2·4 공급대책은 어떻게 보나.(발표 후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럴 줄 알았다. 어디에, 얼마를, 어떤 가격에 공급할지 밝힌 게 없다. 지난 4년 동안 정부가 서울에 공공분양으로 공급한 건 1만가구도 안 된다. 게다가 재건축·재개발 대상 주택에 수십만명이 전·월세로 산다. 이들은 어떻게 할 건가. 세입자용 공급책이 안 보인다. 앞서 김현미 전 장관도 이미 127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집값은 더 올랐다. 변 장관 이전에 국토부 관료들 작품이라 본다. 투기를 조장하는 ‘역대급’ 토건 개발대책이다. 서민 주거안정은커녕 집값을 더 올릴 수 있다.”

- 공급이 부족해서 집값을 못 잡았다며 방향을 바꾼 건데.

“세금으로 집값 못 잡는 건 입증됐다. 직접 관계가 없다는 거다. ‘가짜 전문가들’이 보유세부터 올리고 했지만 지금 어떻게 됐나.”

- 정부는 집값이 많이 안 올랐다던데.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14% 오른 거 외에는 특별한 거 없다고 한다. 그러나 경실련이 조사해보니 2017년 대비해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해까지 82% 올랐다. 옛날에는 5년 정도 월급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었다. 소득 대비 집값이란 개념이 노무현 정부 들어 깨졌다. 빈부격차를 더 키운 것이다. 민주정부를 지지하느냐, 아니냐를 떠나 이는 엄연한 팩트다.”

- 정부의 노력은 평가해줘야 하지 않나.

“현 정부 들어 더 큰 거품이 생겼다. 부동산114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통계를 보니 현 정부 들어 40% 올랐다더라. 청와대 참모들의 아파트값을 계산하니 42% 뛰었다. 더 놀라운 건 이들 중 37%가 다주택자라는 사실이다. 국회의원들 아파트값은 45%, 고위공직자 아파트값은 47% 올랐다. 청와대 참모와 관료들에게 문 대통령이 속고 있다.”

- 왜 이렇게까지 올랐나.

“총선 때까지는 별로 안 올랐다.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대출 금지 등 2019년 12·16대책 영향이다. 이후 눈치를 보다가 5·6대책에서 공공재개발을 발표하자 다시 상승했다. 용산, 여의도, 마포 아파트가 5월부터 뛰기 시작했다. 6월5일 잠실야구장 일대 개발 소식에 송파, 강남이 또 급등했다. 6월17일에 토지거래 허가제를 발표했는데 오히려 더 올랐다. 허가지역은 앞으로 오를 지역이라고 찍어준 꼴이 돼 상승세를 더 부추겼다.”

- 세금 올리면 집값 떨어지나.

“사실 거래가 활발하거나 끊기는 건 세금과 별 상관이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아파트 150만채가 미분양이 됐다. 1년에 적정 거래량이 70만채인데, 집값이 빠지면서 40만채로 줄었다. 오히려 집을 안 샀다. 박근혜 정부 때는 돈을 싸게 빌려줄 테니 사라고 해도 안 샀다. 왜냐? 집값이 떨어진다고 예상해서다. 반대로 잡겠다고 하는데도 값이 올라가면 너도나도 사려고 든다. 집을 팔기만 하면 후회하고, 부부싸움이 나는데 왜 팔겠나.”

- 국내 세율이 선진국보다 낮은데.

“총액으로 하면 우리가 실효세율이 0.2%가 안 되는 건 맞다. 다른 나라가 0.7~0.8%인데, 원인은 법인 세율 차이다. 우리나라 법인의 실효세율은 공시가격 대비 30% 수준이다. 서울역 앞 옛 대우빌딩(서울스퀘어)이 1조원에 거래돼도 공시가격은 3900억원에 불과하다.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가 10조5000억원에 현대자동차에 팔렸지만 공시가격은 3조원에 그친다. 공정시장가액 80%를 적용하면 실효세율은 실거래가의 0.16%밖에 안 된다.”

-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현 정부는 주택임대사업자에게 특혜를 줘서 100만채가 3년간 사재기됐다. 임대사업자 등록은 당연한 건데 왜 특혜를 주나. 임대사업자에게 80%까지 대출해준 건 사재기를 권장한 거 아니냐.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이 수십채 있어도 ‘합산배제’로 종부세를 한 푼도 안 낸다. 세금은 안 걷고 대출을 늘려주니 돈 빌려서 전세 세입자는 내쫓고 월세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전세 물량 100만채가 사라져버렸다. 무능한 정책실장에, 뭘 모르는 장관, 교활한 차관이 만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

- 전세난과 임대차보호 3법은 어떤가.

“사실 전세가 상승은 집값 상승의 영향이 크다. 매매가가 폭등하면 전세가도 올라가는 건 당연하다. 임대차보호 3법 이전에 임대차 신고제로 실태 파악부터 했어야 한다. 국내 주택이 2200만채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 때 1700만채에 집주인은 1300만명이고 사재기가 400만채였다. 지금은 2200만채 중 1270만채를 주인이 소유한다. 사재기가 더 심해졌다. 10년간 주택은 500만채 늘었는데 사재기를 자꾸 하면 공급 효과가 없어진다. 정부 말 반대로만 하면 매년 집값이 20%씩 올라, 대출은 80% 해줘, 보유세도 없어, 일정 기간(4년, 8년) 지나면 양도세도 안 낸다. 그러니 이 정부에서 버스 대절해 집 보러 다니는 ‘집 쇼핑족’이 생겨났다.”

- 시장에선 공급이 부족해서라는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주택보급률은 40~50%밖에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보급률 98%일 때도 안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보급률이 110%, 2200만채인데도 왜 집값이 뛰나. 공급부족이란 게 대체 뭔가. 우선 집값을 안 오르게 해야지. 잔뜩 오르게 해놓고는 세금을 중과하겠다니 말이 안 된다. 보유세, 양도세를 안 올려도 집을 안 사게 만들어야 한다. 갖고 있으면 값이 오르는데 왜 팔겠나.”

민주정부는 왜 집값 못 잡나

친재벌 기재부·국토부 ‘늘공’ 작품
대통령·시장·경기지사 특권으로
역세권 땅 사서 반값 주택 분양 땐
집값 충분히 안정화할 수 있다

- 어떻게 집을 내놓게 할 수 있나.

“이명박 정부 때 30평 아파트를 강남에서 3억원에 분양했다. 강남에 1000가구, 서초에 800가구, 고양 원흥에 700가구, 하남 미사에 1200가구 공급했다. 서울, 경기에 보금자리 폭탄이 떨어졌다. 10억원 아파트 옆에 3억원짜리를 분양하니 낡은 비싼 아파트는 겁나서 못 산다. 민간업자가 20억원에 팔던 걸 10억원에 내놔도 미분양이 70%였다.”

- 반값 아파트는 로또아파트란 비판이 많다.

“개포주공은 1000만원, 목동 아파트는 미분양 나서 할인 분양했다. 개포주공은 13평이 30억원 됐는데 그런 게 진짜 로또아파트 아닌가. 누가 더 불로소득이냐. 문재인 정부는 반값 아파트 하나도 안 지었다. 새누리당이 2009년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특별법, 보금자리 특별법을 당론으로 만들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때부터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이를 오세훈이 이어받았고, 노무현 정부는 2008년에야 시행했다.”

- 돈이 풀려서 집값이 뛴다고도 한다.

“집값이 떨어질 때는 돈을 공짜로 빌려준다고 집을 사나. 유동성과 집값은 큰 상관이 없다. 정부가 제 역할만 하면 집값은 잡힌다. 3기 신도시에 반값 아파트만 지으면 된다. 가짜 분양원가 공개도 바로잡아야 한다. 박원순 전 시장이 지난해 마곡지구에 평당 2000만원에 공급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06년 발산지구에 평당 790만원에 공급했다. 분양원가 공개하고 분양가상한제에다 후분양까지 해서. 그래도 공기업이 30% 이익 남겼다. 왜 못한다는 거냐. 이렇게 한 달에 2000~3000가구씩 1년 동안 약 3만채만 분양해봐라, 바로 시장이 안정된다.”

- 서울에 그럴 부지가 있나.

“서울 세입자들 경기도로 내쫓으려고 고양시의 창릉 같은 데를 개발하나. 서울 역세권 땅 사들여서 용도변경하면 된다. 강남의 옛 서울의료원, 도곡동 구룡마을, 용산 미군기지, 철도정비창, 불광동 질병관리본부 부지 등에 가능하다.”

-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까.

“지금 강북 다가구, 연립주택 가격이 뛰었다. 공기업이 나서서 강북 구도심까지 집값 올리겠다는 거다. 이대로 가면 집값은 더 폭등할 거다. 2기 신도시로 노무현 때도 집값을 못 잡았다. 신도시든 뭐든 그냥 공급으론 안 된다. 지난 4년간 왜 집값이 올랐는지 심층분석한 뒤 대안을 내놔야 한다. 약한 사람들 살기 더 힘들게 하는 게 진보냐.”

- 2·4대책에 부족한 건 뭔가.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가격을 확 낮춰서 공급해야 한다. 강남도 4억원 아래로 분양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분양가상한제도 전면 시행해야 한다. 즉시 전국에 적용해서 부동산 거품부터 제거해야 한다. 공공보유 토지는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공급하거나 하면 된다.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상한제는 박정희 때 만들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도 이어받았던 거다. 민주당이 도대체 왜 못하는가.”

- 민주정부에서 집값이 왜 이렇게 올랐을까.

“실력이 부족해서다. 누가 이렇게 했나. 친재벌인 기획재정부와 국토부 ‘늘공’한테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당해서다. 아직도 늘공이 정책 기초작업을 하고 기본인 집값 상승률, 부동산시장 진단을 한다. 대통령, 시장, 경기도지사에겐 ‘토지수용권, 독점개발권, 토지용도변경권’이란 3대 특권이 있다. 이 도깨비방망이를 잘만 쓰면 집값은 안정된다. 역세권 부지나 골프장, 논밭 등을 수용해 주택 분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재명 경기지사만 해도 모호한 ‘기본주택’만 얘기할 뿐, 그 특권은 하나도 안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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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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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쌓인 의문의 상자들... 섬이 위험하다

[최병성 리포트] 국제망신 당한 제주 이야기... 이 지경인데 제2공항까지?

21.02.09 14:12최종 업데이트 21.02.0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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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쓰레기매립장에 비닐로 말아 놓은 쓰레기 눈사람 더미 ⓒ 최병성

 
네모 모양의 눈사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논에서 벼를 베고 난 후 볏짚을 말아 놓은 소 사료가 아니다. 저 네모난 비닐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비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쓰레기'다. 제주도민들과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저 비닐 속의 주인공이다. 지금 제주도엔 쓰레기가 넘쳐난다. 저 많은 쓰레기를 지금 다 처리할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비닐로 둘둘 말아 쌓아 놓은 것이다.
 

 비닐로 감은 쓰레기 더미가 끝없이 쌓여 있고, 그 위를 까마귀가 날아다니고 있다. 이게 '쓰레기 섬' 제주도의 현실이다. ⓒ 최병성

 
이곳은 제주도에 있는 봉개매립장이다. 제주도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발생하기에 4단 높이로 쌓아 놓은 쓰레기더미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일까? 저곳에 얼마나 오래 쌓여 있었던 것일까? 비닐이 찢어지고 쓰레기 물이 줄줄 흐르는 것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쓰레기를 임시 보관하기 위해 또 다른 비닐 쓰레기를 대량 발생시키는 코미디가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제주 → 평택 → 필리핀 민다나오섬 → 평택... 부끄러운 쓰레기 여행 

지난 2020년 2월 2일 경기도 평택항. 필리핀에서 온 컨테이너 박스들이 열렸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수출입 화물이 아니었다. 제주도 쓰레기였다. 비바람에 삭아 비닐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제주도 봉개매립장에 쌓여 있던 쓰레기와 동일한 쓰레기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평택항으로 돌아온 제주도 쓰레기 ⓒ 독자 제공

  

 2020년 2월 2일 필리핀에서 반송된 쓰레기 ⓒ 독자 제공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온 컨테이너 박스에서 왜 제주도 쓰레기가 나온 것일까? 경기도 평택시에 소재한 A사가 싼 값에 제주도 쓰레기를 처리해주겠다며 가져갔다. 그러나 이 업체가 가져간 쓰레기가 향한 곳은 국내 폐기물 재활용처리장이 아니었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이었다. A사는 제주 쓰레기를 포함해 2018년 7월에 5177톤, 9월에 1211톤 등 총 6388톤을 민다나오 섬에 불법 수출했다.

A사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임에도 불구하고 재활용이라고 속여 수출했다가 필리핀 당국에 적발되었다.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제주도 쓰레기 더미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침출수가 흘러내렸다. 심지어 화재가 수시로 발생하여 연기가 민다나오 섬을 뒤덮었다. 제주산 쓰레기가 멀리 필리핀 민다나오섬 주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것이다.


2018년 11월, 견디다 못한 필리핀의 환경운동 단체들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쓰레기를 한국으로 가져가라"고 시위했다.

한국의 쓰레기가 국제문제로 커지자 환경부는 2019년 2월 필리핀 항구 컨테이너에 있던 1211톤의 쓰레기를 한국으로 반송해와 소각처리 했다. 그러나 2018년 7월에 수출된 5177톤의 쓰레기는 여전히 민다나오 섬에 남아 있었다.

지난 2020년 2월 2일 평택항으로 돌아온 쓰레기는 필리핀에 남아 있던 5177톤 중 800톤을 컨테이너 50개에 담아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이 쓰레기는 환경부, 평택시, 제주도의 협의에 따라 30개는 평택시가 처리하고, 20개는 제주도가 처리했다.

필리핀에 남아 있는 5177톤의 쓰레기 중에 약 1800톤이 제주도 쓰레기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와 평택시가 35:65 비율로 비용을 분담해 소각처리하기로 합의했다. 환경부는 필리핀에 남아 있던 4300톤의 쓰레기를 총 6번에 걸쳐 들여와 2020년 12월에 처리를 완료했다. 경기도는 평택 쓰레기를 민간 소각장에서 처리했고, 제주도는 울산 소재 소각장으로 가져가 처리했다. 

왜 '쓰레기 섬'으로 전락했나

그동안 우리는 제주도를 청정 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착각에 불과했다. 제주도는 발생한 쓰레기를 처리조차 못할 만큼 '쓰레기 섬'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지난 2020년 2월 평택항에 들어온 쓰레기는 너무 끔직했다. 제주도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쌓여 있기에 제주도 쓰레기가 필리핀까지 불법 수출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제주도의 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2020년 4월말 제주도로 날아갔다.

봉개매립장에 흰색 비닐로 말아 쌓여 있는 쓰레기 눈사람은 평생 처음 보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제주도 쓰레기가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날이 2018년 7월인데, 내가 제주도를 찾은 2020년 4월말에도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2021년 2월 7일 현재, 놀랍게도 쓰레기는 더 늘어났다. 쓰레기를 치우기는커녕 시간이 흐른 만큼 쓰레기를 쌓아 놓은 면적이 더 늘어났다.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치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2021년2월7일 현재 제주도의 쓰레기 현장. 쓰레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했다. ⓒ 임형묵

 
최근 제주 주거 열풍으로 2010년 57만 8천 명이던 인구가 2020년 10월엔 69만 7천 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2020년 한 해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은 코로나19로 2019년보다 33%가 감소했음에도 1023만 6000여 명에 이른다.

문제는 인구와 관광객 증가로만 끝나지 않는다. 쓰레기 배출량은 2010년 639톤에서 2015년 1161톤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제주도의 1인당 하루 생활쓰레기 발생량은 2010년 0.97kg에서 2015년 1.8kg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는 전국 1인당 하루 쓰레기 발생량 평균인 0.94kg의 무려 두 배에 이른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2019년 9월 4일, 제주도 내 12개 쓰레기 매립장을 전수조사 한 후 기자회견에서 "인구와 관광객의 양적 증가에 매몰된 현재의 정책과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쓰레기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며, 현재 쌓아놓은 쓰레기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제주도의 정책 변화와 제도 개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섬 자체가 포화상태

지금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공항이 포화 상태이기에 새로운 공항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지금 제주도 자체가 포화상태다. 발생하는 쓰레기도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2공항 건설로 더 많은 관광객이 밀려올 경우, 그 재앙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오늘도 끝없이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제주도. ⓒ 최병성

 
또, 철새와의 충돌로 인한 사고 위험이 높아 부지 선정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 상태다.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국토부가 지난 2019년 10월 제출한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검토한 결과 사업부지 입지가 부적정하다고 밝힌 바 있다.

KEI는 앞서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해서도 '제2공항 예정부지는 법정 보호종을 포함한 많은 철새들의 주요 월동지 및 중간기착지로서 생태 보전적 가치가 매우 우수한 공간지역일 뿐만 아니라, 항공기와 조류의 단 한차례 충돌로도 기체의 물리적 훼손에 따른 경제적 손실과 기체 추락에 따른 인명피해 등 치명적인 피해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제출했다. 이에 KEI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입지의 부적절함을 재차 강조했다.
 

① 사업지구는 철새도래지가 인접하고 과수원, 양돈장, 사냥금지구역, 조류보호구역 등 다수의 부적정한 시설물이 입지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국내외 규정에 부합하지 않아 입지적 타당성이 매우 낮은 계획이다.

② 법정보호종의 서식역과 철새도래지 보전을 통한 생물다양성 및 서식역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의 부합성이 낮고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예방을 위한 입지규제가 높음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입지 적정성 문제를 검토하기보다는 운영 시 관리계획만을 수립한바, 입지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

 

 비행기와 철새와의 충돌 위험으로 공항의 부적정함으로 지적한 KEI의 제주제2공항 환경영형평가서 검토의견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KEI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제주 제2공항 예정지는 공항이 들어서기에 부적절한 곳이다.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지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팔색조와 긴꼬리딱새가 살아가는 생태보고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은 환경영향평가서엔 빠져 있다.
 

 공항 예정지 안엔 멸종위기종이 맹꽁이가 다량 서식하고 있다. 맹꽁이들이 짝짓기를 하고 있고, 주변엔 이미 맹꽁이 알로 가득하다 ⓒ 주용기

 
KEI가 '하도리, 종달리, 오조리, 성남-남원해안 철새도래지는 제주도 동부권의 철새도래지벨트이자 생태권역'이라고 강조한 바와 같이 제2공항 예정지 인근에서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를 비롯해 수많은 희귀 철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난 2019년 8월, 러시아 모스크바 주콥스키 공항에서 항공기가 이륙과 동시에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항공기는 재비행이 불가능할 만큼 파괴됐다. 승객 233명 중 27명이 다친 이 사고의 원인은 '조류 충돌'이었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인근에서 천연기념물 노랑부리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를 비롯 다양한 도요새 무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 주용기

 
비행기는 작은 새와의 충돌로도 대형사고가 될 수 있다. 제2공항 예정지는 철새들의 시베리아-호주-일본 등 이동 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완벽한 항공기-조류 충돌 예방 방안이 전무하다. 철새 이동 시기엔 수많은 새떼들이 하늘을 덮는다. 이런 곳에 공항을 건설한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건 도박에 다름없다.

제2공항은 도박

제주도와 국토교통부는 2월 15~17일 3일간 제주도민 여론조사 결과로 제주 제2공항 건설을 결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주도는 제주도민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토다. 게다가 제2공항 건설 사유는 더 많은 관광객을 받기 위함이다. 제2공항 건설은 이를 이용하게 될 전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전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함이 마땅하다.

제주도민들은 모두 제2공항을 환영할까? 아니다. 제2공항을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이 "지속 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며 4일부터 9일까지 삼보일배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무릎이 아프고 차량 먼지로 고통스럽지만, 제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켜달라며 삼보일배 중인 제주도민들 ⓒ 이길주

 
제주도민들이 깊이 생각할 문제가 또 있다. 관광객 증가로 쓰레기가 늘어나면 제주 지하수가 오염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쓰레기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 위험이 상존한다.
 

 관광객들의 발자국으로 어지러운 제주도 해변과 모래가 유실 중인 제주도 해변. 제주도는 이미 포화상태다. ⓒ 최병성

 
제주공항 포화상태가 아니라, 제주도 자체가 이미 포화상태임을 걱정해야 할 때다. 지금은 지속가능한 제주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관광객이 아니라, 관광객 입도 제한 등의 청정 제주를 키기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때다.

지금도 제주도에는 쓰레기가 쌓여간다. 이런 상태에서 관광객을 더 받고자 제2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지금 당장 조금의 이익을 위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다.
 

 제주도에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 무엇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길이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길인지 대하민국 국민 모두의 의견을 물어야한다. ⓒ 최병성

 

#제주도 #쓰레기 #성산읍 #쓰레기 섬 #제주 제2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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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초과부담금도 실거주 의무도 면제…공공정비사업 물꼬 틀까

등록 :2021-02-04 19:07수정 :2021-02-05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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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도심 공급대책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어떻게?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강당에서 열린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 브리핑’에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4일 내놓은 공급 대책 가운데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서울 등 대도시의 재개발·재건축 등 기존 정비구역에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촉진하기 위한 방안이다.

 

서울과 광역시 등에는 교통 여건 등 주거 인프라가 양호한 재개발·재건축 예정지역의 신축 주택 수요는 커진데 반해, 조합 내부 갈등과 경제성 부족 등으로 사업 추진이 멈춰 있는 정비구역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곳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사업 시행자로 나서면 사업기간 단축과 함께 용적률 상향 등으로 수익성을 확 끌어올려주는 대신 그에 따른 개발이익은 주민과 공공기관이 배분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정부는 이를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개정해 ‘공공 직접시행 조합 정비사업’ 유형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조합이 아닌 공공기관이 토지소유권을 확보하고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아 기존 대비 1.5배 이상의 주택을 지으면서 조합원 수익을 보장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 재개발이나 재건축은 조합 설립을 기본 전제로 추진되지만 이 사업은 아예 공공기관이 주민동의를 얻어 토지를 사들여 직접 시행하게 된다. 사업 신청은 조합원이나 토지 등 소유자 과반의 동의로 가능하지만, 1년 내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는 게 필수 요건이다. 이런 동의를 거쳐 정비계획이 수립되면 공공기관은 단독 시행자가 돼 현물선납과 수용 방식으로 땅을 확보하게 된다. 이때 조합원은 주택 우선공급권을 부여받고 장래 부담할 아파트값을 기존 소유자산(토지, 건물)으로 제공하면서 정산하는 방식이 이뤄진다. 조합원에게는 기존 정비사업 대비 10~30%포인트의 추가 수익을 보장하는 선에서 조합원 분양가가 산정된다.이렇게 되면 조합총회나 관리처분인가 절차가 생략되고 지자체 통합심의 등이 적용돼 기존 13년 이상 걸렸던 정비사업이 5년 이내로 앞당겨질 전망이다. 공공기관은 조합원 몫을 제외한 분양주택을 일반분양해 사업비를 충당하고, 임대주택 건설과 기부채납 등도 책임지게 된다. 용적률은 1단계 종상향을 해주거나 법적 상한 용적률의 120%까지 높일 수 있으며, 3종 주거지역 가운데 역세권 도로변은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해 용적률이 최고 500%까지 확대된다.부동산 업계에선 공기업의 재개발·재건축 사업 직접시행 방식에 대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처라고 평가하고 있다. 재건축의 경우 지난해 8·4 대책에서 제시된 ‘공공참여 고밀재건축’에는 없었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면제, 조합원 2년 거주 의무 배제 등 규제 완화 조처가 조합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기존에 선정해놓은 시공사와 계약 승계, 매몰비용 보전, 필요시 층수제한(40층) 완화 등이 가능해진 것도 기존 정비사업 지역 주민들이 공공사업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높이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그동안 재건축 사업 추진의 최대 걸림돌은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이었는데 공공 재건축 방식을 선택하면 이를 면제받게 돼 재건축 공급 ‘물꼬 트기’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주민들의 반응과 의견 수렴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재건축 초기 단계인 단지들은 개발 속도가 빠른 공공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최종훈 기자 cjh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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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property/981926.html?_ns=c1#csidxef85874e4c0a5bcb0a666a43eca7d0b 

'최저시급 8590원, 십원도 안쓰고 30년 모아도...' 가곡이 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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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 김재일(오른쪽)과 피아니스트 김가람이 직접 출연해 제작한 가곡 '아파트 구입'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사진 오푸스]

성악가 김재일(오른쪽)과 피아니스트 김가람이 직접 출연해 제작한 가곡 '아파트 구입'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사진 오푸스]

“나랏일 하시는/높으신 분들도/몇채씩 갖고 있는데/그분들이 서민대책을 만들어요/으하하하 우습다.”
경쾌하고 빠른 2분의 2박자. 중후한 음색의 바리톤이 스타카토로 끊어 부르는 노래는 직설적이다. “서울시내 아파트/평균가격 십사억/얼마를 일해야/장만할 수 있을까/이공이공 최저시급/팔천오백 구십원/십원도 안쓰고/삽십년을 모으면/그제야 육억사천.”

작곡가 류재준 연가곡집 '아파트'
경쾌한 리듬, 중후한 바리톤 음색
노골적인 가사로 지금 세태 풍자

 
노래 제목은 ‘아파트 구입’. 작곡가 류재준(51)이 이달 완성한 연가곡집 ‘아파트’ 중 10번째 곡이다. 노래 15곡과 피아노 전주 7곡으로 된 이 가곡집은 한국의 아파트와 관련한, 노골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저 너머 힐스테이트/이편한 세상/하늘은 푸르지오/끼리끼리 살아야지/교양있는 사람들”(1곡 ‘아파트먼트’) “정말진짜 부자들은 이런데서 살지않지”(5곡 ‘지루해’) “모델하우스 화려한데/그집은 어디갔소/사전분양/누굴위한 정책이오”(11곡 ‘선분양’)
 
바리톤과 피아노가 함께 하는 노래들은 아파트 가격뿐 아니라, 여기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을 다룬다. 경비원, 택배기사, 수험생, 명예퇴직한 주민 등이다. “아무리 더워도/에어컨은 사치죠/눈치없이 원하면/한방에 짤려요”(2곡 ‘경비원’)
 
작곡가는 이런 곡을 왜 썼을까. “독일ㆍ이탈리아에서 어렵게 성악 공부하고 온 후배들이 귀국 독창회에서 독일어로 ‘겨울나그네’, ‘시인의 사랑’을 부르는데, 청중은 자고 있더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류재준은 “듣는 사람들과 연관된 노래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의 모든 청중이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는 주제가 아파트라는 결론을 얻었다.  
 
류재준은 서울대 음대 작곡과,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을 졸업했고 고(故)강석희, 고(故)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서양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2013년엔 홍난파 음악상 수상을 친일행적을 이유로 거부했고, 2015년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곡을 썼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지금은 서울국제음악제와 앙상블 오푸스의 예술감독이다.
 
그가 이번에는 아파트를 통해 사회와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아파트를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걸 희생하고, 허상을 좇으며 살다가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걸 알게 되지 않나. 한국에서 아파트는 사람들이 모이는 순간 일어나는 갈등, 욕망을 대변한다.” 가사는 『다락방 미술관』『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등을 낸 문하연 작가에게 의뢰했다. “작가와 함께 가사를 여러번 고치면서 내 생각을 많이 넣었다. 특히 정책 만드는 사람들이 집을 몇채씩 가지고 있고, 본인들이 가장 아파트를 사랑하면서 정책을 따르라고 한다는, 이런 '문제적' 내용은 다 내가 쓴 가사다.”
작곡가 류재준. [중앙포토]

작곡가 류재준. [중앙포토]

 
가사는 불편할 정도로 직접적인데 음악은 대부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다. 바리톤 김재일과 피아니스트 김가람이 출연해 제작한 ‘아파트 구입’ 뮤직비디오는 발랄하기까지 하다. “유머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만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류재준은 “셰익스피어 ‘리어왕’을 보면 왕에게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어릿광대다. 나도 그렇게 할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파트’를 구상한 건 5년 전. 강남 아파트를 30년 전 2000만원에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음악을 머릿속에서 완성하는 데 5년, 악보로 옮기는 데 4개월이 걸렸다. 듣기에는 쉬운 음악이지만 복잡한 코드들이 숨어있다. 무조건 아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의 ‘아파트 구입’에는 음을 단 4개만 썼다. “십원도 안 써야되니까 음도 아껴봤다”고 했다. 몇몇 노래는 돌림노래다. “남들 사니까 따라 사는 심리를 표현했다.” 세번째 곡 ‘층간소음’은 성악가가 윗층과 아랫층 사람을 다 부르는 1인 2역이다. 류재준은 “각 인물에게 고유의 멜로디를 줘서 각 층 사람들을 다르게 표현했다”고 했고 “더 넓은 집, 더 좋은 아파트로 가야만 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바다 바깥을 늘 꿈꾸는 ‘인어공주’를 연상케 하는 음악도 넣어봤다”고 말했다.
 

'아파트 구입' 뮤직비디오

‘아파트’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담은 최초의 한국 가곡집으로 기록될 만하다. 류재준은 “드라마와 음악이 함께 있는 ‘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규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여름부터 무대에서 공연할 계획인데 약간의 연출을 넣는다. “7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이후 2년 정도 공연 계획이 잡혀있다. 한번 만들어놓고 연주자들이 계속해서 부를 수 있는 레퍼토리로 만들려 한다.”

 
사회 문제를 담은 음악을 계속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학벌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의’를 비꼬는 음악도 생각 중이다. 이런 내용을 담으려면 음악이 완성돼 있어야 하고,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냥 넋두리가 아니라 예술로 내놔야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최저시급 8590원, 십원도 안쓰고 30년 모아도...' 가곡이 된 '아파트'

박주민 “당이나 대표 차원에서 사면 건의 없을 것”
“‘5대 범죄 제외’ 공약 유지…국민이 한 탄핵, 대통령이 사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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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승인 2021.01.15  10:10:52
수정 2021.01.15  10:36:25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국난극복본부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와 관련 15일 당이나 대표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건의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난 번에 (이낙연)대표가 그런 말씀을 하셔서 의원방(텔레그램방)에서 굉장히 많은 대화가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박 의원은 “또 최고위원회의가 긴급하게 열려서 여러 의원들의 이야기 등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렸다”며 “지금은 다 정리가 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당이나 대표 차원에서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면 건의하는 일은 없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 의원은 “그렇게 받아들여도 된다”고 답했다. 그는 “의원들의 당시 분위기, 최고위원회에서 정리한 것에 따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지금까지 보면 그런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며 그런 이유에서라도 사면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전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 직후 이낙연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국민께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면론을 제기한 것에 대해선 이 대표는 “당은 국민의 공감과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정리했고, 저는 그 정리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사과하면 건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박주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사과를 안 할 것이라고 보지만 사과가 있고, 그 사과가 국민들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였다면 그 때서야 고민해 볼 수 있겠죠”라고 답했다.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검찰개혁특위 위원장, 박주민 간사가 지난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특위 운영 방향 및 향후 계획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선 박 의원은 “사실상 재판과정에 거의 불참했다”며 “본인의 상황이나 죄책에 대해 승복하거나 인정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태도로 봤을 때 입장표명은 없을 것 같다”며 “당연히 (사과도) 없을 것 같다”고 추측했다.

보수야권에서 사면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박 의원은 “탄핵은 국민이 한 것”이라며 “굉장히 추운 겨울에 여러 차례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서 그 힘에 의해 국회가 움직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정치권이 먼저 하거나 정치권이 대부분 역할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며 “사면은 국민적 동의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이)탄핵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사면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 2017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제15차 범국민행동의날(15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조기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20

"모든 것이 그대로 있길 원한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1116525729080

유은혜 장관, “미래 교육 토대 쌓겠다”
  •  변진경 기자
  •  호수 696
  •  승인 2021.01.11 14:22

세 차례 개학 연기, 온라인 개학과 학습, 등교수업 재개, 12월3일 수능…. 유은혜 장관이 책임진 2020년이다. 교육격차 해소, 공동체 경험, 다양성과 창의성 함양…. 그가 책임져야 할 2021년이다.
ⓒ시사IN 신선영1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오늘의 교육 현실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빛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항성이 오래전 쏘아 올린 과거의 빛이 지금 우리 눈에 도달하는 것처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교육 현장의 많은 문제와 모순들은 짧게는 수년 전, 길게는 수십 수백 년 전 기획되고 전개된 여러 교육정책들에 기인한다. 당장 입시에서의 수능 비중을 조정한다고 하루아침에 교육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며, 내일 코딩 교육과 인공지능 교육을 도입한다고 모레 제4차 산업혁명의 미래형 인재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오늘의 교육은 오랜 과거의 유산이고 먼 미래의 교육은 바로 오늘 우리가 만들어낼 결과물이다. 그때그때 바로 정산되지 않는 교육 비용과 투자 결과의 특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일시에 해결하기 힘든 오늘의 문제에 핏대를 세우고 지금 변화해야만 바꿔낼 수 있는 미래의 문제에 둔감하게 반응한다.

별빛과도 같던 교육 현장에 지난해 돌발 변수가 하나 찾아왔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신종 감염병은 다른 변수들과 달리 매우 즉각적으로 오늘의 교육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 유은혜 교육부 장관(59)은 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사상 최초, 유례없는, 초유의 ‘신종’ 교육 과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과거의 유산으로 이어져온 고질적인 교육 병폐와도 계속 싸워야 했다. 더불어 코로나19 이전과는 같지 않고 또한 같지 말아야 할 미래 교육의 토대를 쌓을 책무도 맡았다.

코로나19를 맞은 대한민국 교육은 즉각 변화해야 했다. 감염병 시국이 끝난다 하더라도 그 영향은 즉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향후 수십, 수백 년간 미래 세대에게 별빛처럼 남을 것이다. 그 빛을 쏘아 올리는 현장의 한가운데 선 유은혜 장관에게 2020년 교육의 기억을 회고해줄 것을 청했다. ‘교육 대전환’의 해가 될 2021년과 그 이후 나타날 미래 교육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1월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림판과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었다.

딱 1년 전으로 돌아가볼게요. 대한민국 교육 책임자로서 만난 코로나19의 첫 기억이 궁금합니다.

2020년 1월20일이 기억납니다.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죠. 그날 오후 2시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현 질병관리청장)이 첫 긴급 브리핑을 했어요. 저도 같은 시간 브리핑을 했어요.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사업이라는, 고등교육 부문 중요한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였어요. 브리핑을 마치고 청사 사무실에 들어와보니, 감염병 위기경보가 ‘관심’에서 ‘주의’로 올라갔더군요. 그때 정부 여러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교육부 안에서도 처음으로 대책단이 꾸려졌어요. 설 연휴를 지나 2월에 접어들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장관들이 직접 대책본부장을 맡아 각 부처를 지휘하게 됐고요. 저는 당장 3월2일 개학이 다가오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학교가 정상적으로 개학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세 차례 개학을 연기하던 시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2월23일 첫 번째 개학 연기 브리핑을 했어요.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듣고 상황을 종합해보건대 3월2일 개학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개학 일주일 연기를 발표하면서, 1~2주 연기하면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게 사실이에요. 코로나19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갈지 그때는 잘 몰랐으니까요. 두 번째 개학 연기를 발표하면서는 어느 정도 실감이 났어요. 팬데믹이 선언된 상태였고, 이제 당장 다음 주 학교를 가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이 위기 상황이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이 안전하면서도 배움과 학습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개학 결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3월 초 개학을 연기하면서 온라인 개학이 가능할지 여부를 두고 2주간 의견을 청취했는데 교육 현장에선 반대가 많았어요. 아이들이 배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대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이 있었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 개학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설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어쨌든 IT 강국이라는 점도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토대였어요. 전국적으로 전 학생들에게 원격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 IT 인프라를 갖춘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지금 돌아봐도 완벽하지 않았고 현장의 어려움이 있었던 걸 이해하지만, 당시 온라인으로라도 학습을 이어가도록 결정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공백이 장기화되었다면 지금 더 많은 혼란을 겪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시사IN 조남진2020년 6월2일 인천의 한 가정에서 초등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과정들 속에서 욕도 많이 먹었는데요.

네, 많이 먹었죠(웃음). 네가 와서 수업해라, 그게 말만 한다고 되는 거냐…. 실제 선생님들이 고생 많이 하셨어요. 3월31일 온라인 개학 발표를 하고 4월9일 고3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했으니 채 2주가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 거죠. 하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준비할 게 많았어요. 3만명 정도만 접속이 가능한 EBS 서버를 일일 300만명을 감당할 수 있게 확장해야 했어요. 온라인 개학 2주 차까지 비상상황실을 운영했는데, 처음에는 서버가 다운되고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좌불안석이었어요. EBS와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는 물론이고 민간기업이 합류해서 기술적으로 조치를 취해주며 힘을 모았어요. 어떤 학교는 인터넷망이 연결 안 된 곳도 있는 등 천차만별이었는데,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빠르게 와이파이 에그라도 설치했고요. 스마트 기기가 없는 학생들을 조사해서 보급하고, 통계청에서 1만 대를 빌려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팬데믹 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모든 부처, 기관, 민간이 헌신적으로 노력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동했습니다.

교육 현장의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의 ‘맨땅에 헤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선생님들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어요. 이미 디지털 교과서, ICT 수업 등을 연구하고 활용해보신 교사들이 계셨지만 사실 소수였거든요. 그런데 놀랍게도 2주를 지나면서 많은 선생님들의 저력이 드러났어요. 직접 교육 콘텐츠를 생산하고 교과협의회를 통해 공유하면서 젊은 선생님과 연배 있는 선생님들 간 수업 운용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고…. 학부모와 학생들도 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학교와 교사를 믿고 잘 따라와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도전의 연속, 숨찬 하루하루였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등교수업 재개는 또 하나의 난제였습니다.

5월 초 등교수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터지면서 또 일주일 연기가 됐어요. 그때도 제기됐던 문제가, ‘이렇게 확산이 계속되는데 왜 꼭 등교를 해야 하나?’였어요. 등교 재개를 중단해달라는 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 제가 ‘왜 학교를 보내야 하는지’ 답변하기도 했어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원격수업과 등교 공백이 길어지면, 학습도 학습이지만 아이들의 사회성과 심리적·정서적 성장에 대한 걱정이 컸어요. 특히 저학년 같은 경우 그런 성장을 하려면 최소한의 대인관계가 형 성돼야 하는데, 몇 달 동안 그 기회가 원천 차단되고 고립되는 생활이 이어졌잖아요.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근본적 의문을 전 국민이 갖게 된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학교에서 일어났던 많은 것들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느끼게 됐죠.

2학기의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수능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무사히 수능을 치르는 일이 가능하리라 보셨나요?

원래 학사일정상 11월19일이 수능일이었는데 개학이 연기되면서 12월3일로 2주 미뤄야 했어요. 수능이 생긴 이래 12월에 시험을 보는 건 처음이었죠. 감염이 확산될 때마다 수능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는데, 8월부터 담당 부서 직원들과 수능 대책을 준비하며 원칙들을 세웠어요. ‘자가격리자든 확진자든 무조건 시험을 칠 수 있게 똑같이 기회를 제공한다. 수능을 통해 감염이 확산되면 안 된다. 그리고 12월3일에는 반드시 수능을 본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감당하고 책임진다.’ 만약 12월3일 수능을 보지 않으면, 그 상황이 초래할 교육 현장의 위기와 혼란이 더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50만 가까운 아이들의 향후 일정이 다 뒤범벅돼요. 군대 갈 사람도 있고, 취직할 사람도 있고, 사회적 경로들이 다 계획돼 있을 텐데…. 9월 학기제도 부정적으로 봤던 이유가, 우리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리 정책적 변화를 계획했고 예상했던 대로 진행하는 거라면 논의해볼 수 있는 문제라고 봐요. 그렇지만 감염병 상황과 같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9월 학기제 같은 변화를 도입하면 현장에 굉장히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수능 역시 예상했던 대로 치르지 못하면 그 불안한 상황 때문에 불러올 파장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불안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고요.

ⓒ시사IN 신선영2020년 12월3일 코로나19 확진 수험생을 위한 임시 고사장에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사진은 폐쇄회로 화면.

다행히 수능을 무사히 치렀습니다. 쉽지 않은 미션이었는데요.

기도하는 심정으로 수능을 준비했어요. 질병청과 협의하면서 모든 응시자들이 병원에서든 생활치료센터에서든 수능을 치를 수 있게 공간과 인력을 마련했어요. 수능 전날까지 수험생과 감독관이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검사받을 수 있게 저녁 10시까지 보건소를 열어두고, 보건환경연구원으로 검체를 조금이라도 빨리 옮기기 위해 소방청과 협의해 수송 차량도 배치했고요. 12월3일 당일 새벽 5시까지 검체를 확인하고 확진된 수험생을 아침에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해서 시험을 볼 수 있게 했어요. 원래 한 시험실에 28명씩 배치하던 수능시험 인원을 24명 이하로 줄였고, 그에 따라 시험실을 3만 개 넘게 마련했어요. 감독관 수도 늘렸고요. 감염병 전문가들과 몇 차례 회의를 열고 현장을 점검하고, 앞뒤 거리두기가 충분히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가림막을 설치하기로 하니 또 난리가 났어요. 시험지를 앞뒤로 움직여야 하는데 어떡하냐고요. 그래서 가림막 아래쪽을 뚫고 제가 책상과 가림막을 갖다놓고 직접 샘플 시험지를 넘겨보며 확인해보기도 했어요. 나중에 집계해보니 최종 확진 수험생이 41명, 자가격리 수험생이 456명이었어요. 이후 2주 동안 모니터링을 했어요. 혹시라도 수능을 통한 감염이 발생했는지 역추적을 했죠. 다행히 수능을 통한 감염 확산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았는데, 이런 의문도 듭니다. 왜 그렇게까지 수능을 치러야 할까요? 입시 위주 우리 교육 현실이 사상 초유의 팬데믹 속에서도 여전히 굴러가는 모습이라며 씁쓸해하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대입 경쟁교육 시스템을 비판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교육제도에 대한 모색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아무리 팬데믹 상황일지라도, 이미 약속돼 있고 사회적·제도적으로 정착돼 있는 일정을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정부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학입시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고등학교까지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진학이든 다른 진로든 사회에 나가려는 첫발을 내딛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불확실성이 큰 감염병 상황일지라도, 50만명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 수능이라는 절차만은 안전하게 잘 관리해서 예상했던 대로 제공하는 것이 교육부로서도 정부 전체로서도 신뢰받을 수 있는 일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공평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임일 텐데요, 원격수업에서 발생하는 교육격차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핵심적 숙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고요. 집이 제2의 교실이 된 상황에서 편안하게 수업받을 수 있는 학생과 편하게 앉아 있을 곳조차 없는 학생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에요. 각 시도교육청에서 지난해 8월 1학기를 보내고 나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교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교육격차 문제였어요. 우선, 꼭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대면 수업을 최대한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수업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거나 기초학력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학교에 나와서 맞춤형으로 일대일 지도를 받을 수 있게끔 교육청별로 멘토링 사업, 전담교사제 등 대안을 마련했어요. 좋은 사례를 발굴해서 공유해나가려고 합니다. 아직 완전히 만족스럽게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지만, 2021년 학기를 시작하면서 훨씬 더 보완하고 추가 지원해나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당장의 교육격차도 걱정이지만 이 시기 학령기를 지난 아이들이 장기적으로 짊어지게 될 학습과 공동체 경험 공백의 비용이 두렵습니다.

등교수업 재개를 결정한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에요. 해외 사례를 봐도 그렇고 전문가들도 특히 저학년의 경우 하루빨리 대면 수업을 통해 사회관계와 또래 관계를 맺을 환경을 돌려줘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했습니다. 자기 삶을 꾸리는 토양을 만들어가는 단계에서 그 경험이 멈추면 길게 겪게 되는 어려움이 상당하다고 해요. 저학년은 돌봄 문제도 있었지만 사실 그 같은 이유가 컸어요. 고3과 함께 저학년을 먼저 등교시킨다고 하니 반대가 엄청났어요. 그런데 등교시켜보면 또 어린 학생일수록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마스크 쓰기 등 방역 수칙도 잘 지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동시에 학습과 일상이 덜 무너지고 이어가게 해줄 수 있을까가 저에게 계속되는 고민이에요. 무엇 하나 선택해 이게 우선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모범답안이 있으면 그걸 따라가면 쉬울 텐데 그런 것도 없고요. 끊임없이 협의하고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고 공유하면서, ‘교육 현장에 뭘 더 지원해줄 수 있지?’ 하고 물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주 먼 과거 같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볼게요. 2019년 11월 고교체계 개편,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고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자사고와 특목고들은 애초 설립 취지와 달리 대입 경쟁을 준비하는 곳으로 변질됐어요. 일반계 고등학교는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기 진로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거나 지원받을 기회를 누리지 못했고요. 지금은 입시 준비를 고등학교 때 시작하는 게 아니라 초등 3~4학년이 되면 어느 외고, 특목고를 갈 거라고 목표를 세워놓고 선행학습을 한다고 하잖아요. 국회 교육위원회에 있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일반계 고등학교의 역량을 높일 수 있을까 궁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려면 아이들을 고교 유형으로 구분 지어 대입 경쟁 과정에서 낙인찍는 고교체계는 반드시 개편이 필요하다 여겼습니다.

ⓒ연합뉴스2020년 1월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주최로 열린 외고, 자사고, 국제고 폐지 반대 정책토론회. 김경회 성신여대 교수(왼쪽)가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고교 하향평준화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나왔는데요.

2025년에 모든 특목고와 자사고를 일반계고로 전환하겠다고 시기를 적시한 이유가 있어요. 2020년에는 마이스터고, 2022년은 특성화고, 2025년에는 모든 일반계고에 고교학점제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거든요. 그걸 위해 ‘2022 교육과정’ 개정을 준비하고 있고요. 올해 교육부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2022 교육과정을 국민과 함께 만드는 거예요. 현장 교사, 외부 전문가는 물론이고 특히 학생들의 의견도 수렴할 예정이에요. 뭘 배우고 싶고 왜 이걸 배우고 싶은지 아이들의 의견을 교육과정 개정에 반영한 적이 이제껏 한 번도 없었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국민과 함께 만든 개정 교육과정을 접목해서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기초 과목 등 공통 수업이 물론 있지만, 아이들에 따라 자기가 듣고 싶은 걸 선택할 수 있어요. 일정한 지역을 묶어서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하고, 원격수업 같은 방식도 활용할 수 있고요. 거리가 먼 지역, 혹은 해외라도 좋은 강사나 전문가를 연결해서 화상으로 수업을 듣는 거죠. 고교학점제의 우려 중 하나가, 학교마다 거리가 먼 지방의 경우 공동 수업을 개설하는 문제 등에서 도시와 비교해 격차가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거였는데, 이번에 원격수업을 경험하면서 걱정이 많이 사라졌어요. 어느 학교를 방문했는데 원격으로 독일 대사관을 연결해서 쌍방향 대화를 하는 독일어 수업을 하더라고요. 또한 일반계고 학생들 중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특성화고와 연계해 진로교육을 받을 수도 있어요. 진로 선택의 다양성을 넓혀주는 과정을 공교육에서 경험하게 해줘야 해요. 이렇게 2025년 전면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자사고, 특목고가 따로 필요 없어진다고 저는 봐요. 그곳들도 고교학점제 취지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한 파트로서 다른 학교들과 다를 바 없이 기능하는 거죠.

그에 따라 대입제도도 바뀌게 되겠네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반영하는 대입이 돼야 합니다. 이미 수능을 포함해 새로운 대입제도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국가교육회의나 교육감협의회 등을 통해서 교육의 변화와 전환의 의미를 담는 대입제도를 논의해나가고 있습니다.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갈지 큰 틀에 대해선 올해 말 정도에는 국민에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입장에서, 교육제도 변화만으로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지는 않나요? 이를테면 서열화된 노동시장 같은 교육 영역 밖 현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꾼들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저는 큰 틀에서 이미 사회가 바뀌고 있다고 봐요. 대한민국 대전환이라고 하는, 일자리를 포함한 전체 산업구조 체계의 변화가 지금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그간 4차 산업혁명을 말하면서도 이게 뭔지 체감이 어려웠는데, 이번 팬데믹을 겪으면서 훨씬 더 와닿게 된 것 같아요. 언택트라고 하는 지금의 변화가 감염병 상황이 아니었으면 정말 상상도 못하는 거였잖아요. 감염병이 끝난다고 해서 완전히 다 과거로 돌아가진 않을 거예요. 경제 시스템, 산업구조, 일상생활과 문화 모두 다양하게 바뀌고 있어요. 정부에서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대전환을 이야기하는 것도 지금을 과거 산업화 시대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로 급속하게 전환하는 시기로 보는 거죠. 이 변화의 시기 교육은 또 어떻게 전환해야 할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이고요.

ⓒ연합뉴스공간 혁신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서울용암초등학교의 숲속공방. 목구조 공간으로 목공과 도예 수업이 이루어진다.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 중 하나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교육사업이 포함됐는데 선뜻 와닿지 않습니다. 그냥 토건사업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어요.

공간이 아이를 바꿔요. 아이들이 제일 많은 시간을 머무르는 곳이 학교인데, 모두가 네모반듯한 교실 안에서 칠판만 바라보는 획일적 공간 속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이 키워지길 바라는 건 모순이죠. 편안하고 자유롭고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취지예요. 그전처럼 예산을 투입해서 뚝딱 시설공사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 공간을 실제 사용할 구성원들, 학생과 교사가 직접 설계 과정에서부터 참여해요. 화장실을 어떤 모습으로 바꿀 건지부터 벽면 색을 뭘로 칠하냐까지 함께 토론하고 때론 논쟁해서 싸우기도 하는, 이런 과정 속에서 문제 해결력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민주시민교육까지 이뤄낼 수 있는 구상이죠.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날도 적은데 학교 공간 혁신이 무슨 의미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요.

코로나19 이전부터 공간 혁신 사업을 지역 단위로 일부 도입해왔는데, 2020년 팬데믹을 맞아서 보니 유연하고 탄력적인 학사운영 자체가 공간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학교 공간이 유연해지면 여러 규모와 형태의 수업이 가능해지니까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비가 더 잘 돼요. 고교학점제 같은 다양한 미래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학교 공간이 바뀌어야 하고요. 더 나아간다면 학교가 아이들이 머무르는 곳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합시설이 될 수도 있어요. 물론 내진 보강 등 시설 공사도 포함되겠지만 더 방점을 두는 것은 교육과정과 학습 방식의 다양성을 구현해내는 공간 혁신이에요. 몇 년 뒤면 동네 구석구석 서로 다른 모습을 한 개성 있는 학교들이 생길 거예요. 5년간 18조5000억원 예산을 잡고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이 교육부 장관을 거쳐갔지만, 이 특별한 시기 그 자리를 맡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떤 교육부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모든 장관직이 그러하겠지만, 책임이 크고 어려운 자리예요. 교육은 국민적 관심이 크고 모두의 경험이 다르며 특히 갈등과 이견이 많은 분야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올해는 우리 대한민국 교육이 미래 교육으로 전환하는,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교육의 변화와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봐요. 그 전환을 완성까지는 못해도, 미래 교육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토대는 만들어놓은 장관이 되었으면 하고 소망합니다. 그렇게 기억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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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리더십 부족” “경제정책 실패”… 무당층, 정부에 날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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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1-11 07:32 무당층이 움직인다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무당층이 움직인다] <1>

사회·안보 현안엔 현실론 추구
67% “피해업종·취약층에 재난지원금”
응답자 전체 평균인 62%도 “선별지급”

정부 평가엔 ‘부정’에 기울어
66% “文정부, 촛불정신 계승 못한다”
반대기류 강해… 실책 지속 땐 이탈 가속
반사이익 없는 野, 선거 우세 장담 못해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대면 화상으로 열린 ‘2021년 국민과 함께하는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늘 신년인사회는 온라인 영상회의를 통해 정치,경제계 등 각계각층의 국민과 정부 주요인사 50여 명이 함께했다 . 2021. 1. 7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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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대면 화상으로 열린 ‘2021년 국민과 함께하는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늘 신년인사회는 온라인 영상회의를 통해 정치,경제계 등 각계각층의 국민과 정부 주요인사 50여 명이 함께했다
. 2021. 1. 7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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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보궐선거와 대선 승패의 열쇠를 쥔 무당층은 경제·사회·안보 등 현안과 관련해 현실론을 추구하면서도, 현 정부에 대해선 대체로 비판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이탈한 지지층 상당수가 야당으로 넘어가지 않고 무당층에 머물고 있는 만큼 향후 정부·여당이 선보일 인사·정책에 따라 이들의 최종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신문과 현대리서치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무당층(지지정당 없음)은 남북 관계, 코로나19 재난지원금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응답자의 전체 평균과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북한이 남북 대화 재개를 요구할 경우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무당층의 65.3%가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서해 공무원 사살에 사과를 받고 대화에 응한다’고 답했다. ‘조건 없이 대화에 응한다’와 ‘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는 각각 19.3%, 11.1%였다. 이는 전체 응답자 61.3%가 사과 후 대화를, 26.4%가 조건 없는 대화를 택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도 무당층의 66.6%는 ‘코로나19 피해업종과 취약계층에 집중적으로 지급하는 게 좋다’, 30.3%는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게 좋다’고 답했다. 전체평균(선별지급 62.4%·전 국민 지급 36.2%)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정부 평가와 관련 있는 항목에서는 ‘부정’ 쪽으로 기울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잘 계승했느냐는 질문에 무당층의 65.7%는 ‘그렇지 않다’고 답해 전체응답층(58.1%)을 뛰어넘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의 책임에 대해선 가장 많은 42.1%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전체는 37.3%)을 꼽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권력자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할 것이라고 보느냐는 물음에는 67.9%가 ‘그렇지 않다’(전체는 54.9%)고 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선 더 박한 평가를 내렸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무당층의 47.5%는 ‘못했다’(전체는 34.8%)고 지적했다. 또 올해 부동산 가격 전망에 대해서는 ‘현재보다 더 오를 것이다’는 의견이 64.0%로 전체응답층(53.4%)을 크게 앞질렀다.

최근 무당층이 늘고 이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힘이 이에 대한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는 만큼 본격화할 선거 국면에서 야당의 우세를 점치기 어렵단 평가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결국 지금의 무당층 증가는 정부·여당의 실책에 의한 것이지 야당이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다”라며 “민주당 이탈층이 대거 포함된 무당층이 정부·여당에 비판 신호를 보내는 건 일종의 ‘마지막 기회’를 부여한 것과 같다. 여기서 무리한 정책 추진, 인사 실패 등을 반복한다면 그땐 정말 균형추가 야당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韓산업 대전환 ④] 생존 필수조건 'ESG경영'…총수들이 앞장선다


'ESG 전도사' 최태원 이어 이재용·정의선·구광모·신동빈·최정우도 가세

지난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글로벌 퍼펙트스톰'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코로나19가 언택트 시대를 앞당기고 디지털 전환의 촉매제로 작용하면서다. 미국과 중국을 대척점으로 하는 신냉전도 글로벌 경제 생태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낳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엄청난 변수다. 반(反)기업법 쓰나미 역시 경영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같은 요인은 2021년 신축년(辛丑年)에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국 경제는 전환 시대를 넘어 지형도를 바꾸는 변혁기에 들어설 전망이다. [편집자 주]

[아이뉴스24 강길홍 기자] "인류는 지금 글로벌 환경·사회적 위기에 팬데믹까지 더해진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도전들은 글로벌 사회의 포괄적이고도 조화로운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신뢰받는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 경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 나가야한다."


'ESG 전도사'로 불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열린 '상하이 포럼 2020'에서 개막 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최 회장이 강조한 것처럼 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ESG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서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뜻한다. 착한 투자를 표방하는 펀드들은 ESG를 소홀히 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지 않고,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ESG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들과 거래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국내 기업들도 앞 다퉈 ESG 경영 방침을 발표하고, 전담조직을 신설하는 등 본격적으로 ESG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역시 SK그룹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ESG 전도사'로 불릴 만큼 오래전부터 관련 조직을 만들고 이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특히 SK그룹 8개 계열사는 한국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RE100은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최 회장은 지난 9월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ESG를 기업 경영의 새로운 축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아이뉴스24]

재계 1위 삼성그룹도 ESG 경영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9년 삼성전자 5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함께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는 메시지를 내놓으며 '동행' 비전을 발표한 바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 중심의 사업 전환과 관련해 ESG 기반 아래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 구현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는 ESG 정보의 투명하고 정확한 전달과 다양한 국내외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위해 2003년 이후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한국IR협의회가 주관한 '2020 한국IR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그룹 CSR 팀장을 맡고 있던 이방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향후 ESG 경영에 더욱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이방수 사장은 향후 LG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ESG 경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및 기후변화 등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ESG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국내 철강업계 최초로 ESG 전담 조직을 만들고 ESG 관점에서 종합한 기업시민보고서를 발간했다. 연임에 성공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그린수소 대량생산 체제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밖에도 업종을 불문하고 ESG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평가받던 에너지기업은 물론이고 이와 무관한 금융, IT 업계도 ESG 경영 성과를 강조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과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ESG 경영을 내세워 해결한다는 목표다.


다만 국내 대다수 기업들의 ESG 경영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매년 상장기업의 ESG 평가 결과를 발표하는데, 지난해 최상위 수준인 S등급을 받은 기업은 한곳도 없었다. 또한 평가대상기업의 68%(전년 74%)는 여전히 B등급(보통) 이하로 ESG 경영 수준이 취약한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길홍 기자 slize@inews24.com


노력하면 오를 수 있나… 희망마저 두동강 났다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입력 : 2021-01-02 13:36:51 수정 : 2021-01-02 13:4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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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교… 좋은 직장… 내 집 마련까지 결국 ‘엄빠 찬스’
한국 부모 교육열 전 세계적으로 유명
자식에 좋은 대학 간판 달아주려 애써
더 나은 계층을 물려주기 위한 돌파구

억대 비용 받고 명문대 입학 책임지는
드라마 속 ‘입시코디’ 공공연한 비밀
‘부모의 재력=명문대’ 공식도 굳어져

SKY의대 신입생 70% 상위 계층 해당
25개 로스쿨 신입생 절반도 고소득층
더 이상 ‘계층이동 사다리’ 역할 못 해

서울 신혼부부 ‘영끌’해도 전세 못 얻어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 찬스’는 이어져
‘금수저’ ‘흙수저’ 양극화 갈수록 뚜렷
#. 직장인 김모(33)씨는 대학 동기 모임을 나갈 때마다 씁쓸하다.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기 몇몇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학부 졸업 후 진학을 꿈꿨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취업해야 했다. 김씨는 “변호사 친구들을 보면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다. 연봉 얘기를 들어보면 더욱 심해진다. 나보다 3년 이상 늦게 사회 진출을 했지만, 유명 로펌에 입사한 친구들은 초봉부터 억대를 받고 있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과의 격차는 좁힐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동기 모임을 나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로스쿨은 사법고시의 폐쇄적 기수문화, 몇몇 특정 대학에 합격자가 몰려 있는 것 등을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로 2009년 도입됐다.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이제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로스쿨 진학이다. 도입 때부터 ‘돈스쿨’, ‘귀족스쿨’ 논란을 일으켰던 로스쿨은 여전히 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비판이 큰 지점은 비싼 학비다. 3년, 6학기로 이뤄진 로스쿨을 졸업하기 위해선 평균 6000만원이 들어간다. 가장 저렴한 로스쿨도 3000만원이다. 애초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기 어렵고, 고소득층 자녀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이유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대·로스쿨 신입생 소득분위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 신입생의 51.4%가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9·10구간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소득 9구간의 월소득 인정액은 월 949만8348원 이상, 10구간은 월 1424만7522원 이상이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 대학’의 로스쿨로 좁히면 58.3%로 더 올라간다. 전국 대학 신입생의 평균 고소득층의 비율이 24.5%라는 것을 감안하면 로스쿨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기는커녕 고소득층의 부 대물림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 현실은…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1945년 해방 이후 빠르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겪은 한국은 양반-상놈의 신분구조가 한순간에 타파됐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가 자신보다 더 나은 계층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단이 바로 교육이었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에겐 더 나은 교육과 더 나은 간판을 달아주기 위해 힘쓰는 게 한국의 부모들이다. 대학을 흔히 ‘우골탑’이라 부르는 것도 농가에서 가장 큰 재산인 소를 팔아서 자식을 대학 보낸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공정성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민심의 ‘역린’이 됐다. 지난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와 문재인정권의 공고했던 지지율에 가장 큰 균열을 냈던 ‘조국 사태’의 시작이 바로 자녀 교육 문제였다. 2018년 방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것도 교육, 그리고 입시가 공정할 것이란 일종의 믿음 혹은 성역을 철저히 깨부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스카이캐슬’이 드라마 특유의 과장이 있긴 해도, 연 1억원이 넘는 비용을 받고 명문대 입학을 책임지는 ‘입시코디’가 있다는 것은 ‘가진 자들의 리그’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대학 간판, 나아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딸을 둔 회사원 장모(49)씨는 “스카이캐슬을 보고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은 내가 딸에겐 도저히 해줄 수 없는 사교육을 고소득층은 척척 해줄 수 있다는 일종의 무력감이었다”면서 “딸이 공부로 힘들어할 때 족집게 과외는 시켜주지 못할망정 ‘공부란 건 결국 엉덩이를 누가 의자가 오래 붙이고 있느냐’라고 말했던 내 충고가 딸에겐 그저 현실감 부족한 아빠의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싶어 슬프다”라고 말했다.

 

로스쿨뿐만 아니라 명문대 진학에도 부모의 부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통계도 수두룩하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학기 SKY대학 신입생 중 장학금 신청자를 대상으로 소득구간을 나누자 9·10구간이 55.1%를 차지했다. 2017년 SKY 대학의 고소득층 비율은 41.1%에 그쳤지만 2018년 51.4%, 2019년 53.3%, 2020년 55.1%로 해마다 상승세다.

 

특히 SKY대학의 의대 신입생의 경우 10명 중 무려 7명 이상이 고소득층으로 분류됐다. 올해 1학기 이들 대학 의대 신입생 중 9·10구간 비율은 74.1%로 2017년 54.1%에 비해 20%포인트나 급증했다. 서울대 의대는 2017년 45.8%였던 고소득층 비율이 올해 84.5%까지 올랐다. 3년 새 고소득층 비율이 무려 38.7%포인트나 폭증한 것이다.

 

‘부모 찬스’는 대학 진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최근 교육부 종합감사를 통해 대학 사회의 이런 어두운 그늘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7월 발표한 연세대학교와 학교법인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연세대 교수 1명은 2017년 2학기 회계 관련 강의를 담당하면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딸에게 수강을 권유하고, 딸에게 A+ 학점을 줬다. 연세대 대학원 입학전형 서류심사에서는 평가위원 교수 6명이 2016년 이모 전 국제캠퍼스 부총장의 딸 A씨를 경영학과 일반대학원에 합격시키고자 주임교수와 짜고 지원자들의 구술시험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엔 재벌이나 최고 부유층만 계층을 세습했다면, 이젠 중산층도 세습하는 사회가 됐다. 저소득층이나 서민층이 교육이나 새로운 직업을 통해 계층을 상승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회가 됐다”면서 “부모 소득 격차에 따라 교육 수준이 달라지지 않도록 입시제도 개편 등의 공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진=뉴스1

◆대학 졸업 후엔? 부동산도 ‘부모 찬스’

 

결혼을 준비 중인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서울 내 전셋집을 알아보다 예비신부와 다퉜다. 날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값을 한탄하다 예비신부가 대학 동창 얘기를 꺼낸 터였다. “걔 남편은 부모가 좀 사는지, 금호동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게 몇 년 새 두 배로 뛰었다네.” 그 얘기에 악의가 없는 줄 알면서도, 이씨는 마음이 상해 “우리 집은 거지라서 미안하네” 하고 빈정대면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이씨와 예비신부는 모두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현재는 유명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둘 사이에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소위 ‘영끌’(영혼까지 자금을 끌어모음)하면 서울에 20평대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쉬이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막상 알아보니 아무리 둘이서 대기업 월급을 받아도, 자력으로는 서울 아파트 전세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씨는 “이전까지는 내 여건에 만족하는 편이었는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노력만으로 올라설 수 없는 ‘벽’ 같은 걸 느끼게 됐다”며 “금호동에 집을 샀다는 그 친구는 내 월급으로는 꿈도 못 꾸는 돈을 지금 이 시간에도 벌고 있는 거 아니냐”며 한탄했다.

 

특히 문재인정권 들어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30대 사이에서 부동산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이는 곧 부동산이 끊어진 사다리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부자 부모를 둔 ‘금수저’들은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아 서울의 아파트에 입성해 출발부터 수십억원대 자산가로 시작한다. ‘흙수저’들은 시작부터 은행 대출을 최대한도로 끼고도 서울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 김 교수는 “대학 간판이 직업의 귀천, 근로소득 수준의 고저를 결정한다면, 사회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세습을 만드는 효과는 근로소득보다는 부동산이나 불로소득이 더 크다”고 말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숨만 쉬고 살며 모아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15.6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플랫폼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서울 3분위 가구(2인이상·도시가구)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5.6으로 2008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PIR은 주택가격을 가구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가구 전체가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경우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뜻한다.

 

부동산 구입이 이렇게 힘들다 보니 2030 젊은 세대들은 결혼 자체를 잘 하려 하지 않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5년차 부부 가운데 자녀가 없는 부부는 18.3%였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엔 12.9%였으나 2016년 13.7%, 2017년 14.9%, 2018년 16.8%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김모(34)씨는 “결혼 전부터 아내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했다. 내 처지로는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에게 우리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엔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잡아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가정도 꾸릴 수 있었지만, 부의 불평등이 워낙 심각해진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부모 도움 없이는 개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해 살아가기 너무 힘들어졌다”면서 “부동산 문제가 이를 특히나 키웠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거의 끊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취업난은 더욱 심각해져서 젊은 층의 직업을 통한 계층 상승이나 제도권 진입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남정훈·유지혜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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