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인] 뱅상 칼보, 미래를 품은 생태건축 미래인
2014.02.04 17:52 곽노필 Edit
» 뱅상 칼보의 수상도시 '릴리패드'. 미래의 기후난민들이 거주할 자급자족형 해양구조물로, 해류를 따라 떠다닌다. 사진=뱅상 칼보 홈페이지(www.vincent.callebaut.org)
자연을 도시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건축은 삶을 담은 공간이라고 한다. 거기엔 인간의 오늘 뿐 아니라 오늘을 있게 한 과거도 있고, 미래에 대한 상상과 꿈도 담겨 있다. 자연과 직접 맞닥뜨렸던 원시사회를 벗어나 문명사회에 진입한 이후 인간은 줄곧 건축을 매개로 자연에 반응하고 자연과 교류해 왔다. 문명의 진화와 함께 인간의 건축 의존도는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벨기에 건축가인 뱅상 칼보(Vincent Callebaut)는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 사회를 건물에 담아내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건축을 대하는 그의 기본 태도는 생태학과 기술문명을 결합해 사람들이 도시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게 하자는 것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자급자족의 탄소배출 제로 도시가 그가 지향하는 미래의 지속가능 도시이다. 그의 건축은 이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그가 건축 디자인의 영감을 수련이나 잠자리 날개, 해파리 등 자연의 동식물 세계에서 주로 따오고 녹색과 청색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진 영상인터뷰에서 “오늘은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알던 생활방식으로 살지만 내일과 내일 이후엔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정원과 과수원을 가꾸고 식량을 만드는 건물에서, 현대의 세상에서 만든 오염을 흡수해 제거하는 건물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소비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건물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릴리패드의 영감을 준 아마존강 유역의 커다란 수련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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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기후난민들을 위한 수상도시, 릴리패드
그의 미래형 건축디자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08년 제안한 ‘릴리패드’(Lilypad) 프로젝트이다. 릴리패드는 지구 온난화 심화에 따라 2100년경 세계 해안지대 곳곳이 물에 잠기는 상황을 가정해 설계 제안한 자급자족의 수상도시다. '기후 변화에 관한 초정부 조사 그룹(GIEC)'의 예측에 따르면 해수면은 21세기 동안 20~90cm 상승한다. 1미터 상승할 경우 우루과이 땅의 약 0.05%, 이집트 땅의 1%, 네덜란드 땅의 6%, 방글라데시 땅의 17.5%, 오세아니아 마셜 제도 공화국(마주로 환초)의 80%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뉴욕, 뭄바이, 캘커타, 호치민, 상하이, 마이애미, 라고스, 자카르타, 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들은 아예 통째로 물에 잠긴다. 릴리패드는 터전을 잃은 2억5천만의 지구 기후난민들을 위한 미래판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릴리패드는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설계돼 있다. 조형도를 보면 도시의 절반은 수중에, 절반은 수면 위에 떠 있다. 표면적 50만㎡(약 15만평)에 이르는 이 수상도시는 해류를 따라 전세계 바다를 떠다닌다. 이산화탄소와 쓰레기를 재활용해 자체적으로 산소를 만들고, 전기는 태양광, 조력, 해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다. 중앙에는 빗물을 모아 정화해 만든 커다란 인공호수가 있고, 해안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항구가 3곳, 여가와 작업장, 쇼핑용으로 쓰이는 언덕이 3곳 있다. 그는 아마존강 유역의 커다란 수련 잎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형태의 디자인을 설계했다고 한다. 릴리패드는 이 수련 잎을 250배로 확대한 크기다.
그는 생태도시 릴리패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의 건물은 갈수록 늘어나고 주거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더욱 밀집해 살 수밖에 없는 도시민들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도심에 자연을 되돌려서 다양한 친목공간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하고, 개인 정원부터 과수원, 야채텃밭 농경지까지 가져오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방랑도시엔 모든 민족들이 와서 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몇달 살다가 저기서 1년 사는 방식이니 기후 난민, 해양 과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국경 없는 세상입니다. 이곳에서는 서로에게 더욱 관대하고 자연과 공생하니 새로운 생활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 피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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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부족 시대의 지속가능한 물관리 대안, 피살리아
그는 또 미래의 물 부족 시대에 대비해 ‘피살리아’(PHYSALIA)를 내놨다. 피살리아는 세느강, 볼가강, 라인강 등 유럽의 운하와 강을 여행하며 강물을 정화하는 이동식 정원이다. 부유하는 해양 유기체에서 영감을 얻은 이 이동식 정원은 탑승객과 강변의 시민들에게 자연을 선물하는 것 말고도, 특히 효소나 미생물을 이용한 필터를 달아 오염된 강물을 깨끗이 한다. 선박 외피에 입힌 이산화티타늄은 자외선과의 광촉매 반응을 통해 유기물을 분해함으로써 정화 작용을 돕는다.
동력원은 지붕의 태양광 패널에서 얻은 태양에너지와 배 밑의 물살에서 얻은 물에너지를 이용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탄소제로 선박이다. 피살리아 안에는 물, 바람, 불, 땅을 주제로 한 네 가지 테마정원이 있다. 피살리아라는 이름은 ‘물풍선’이란 뜻을 지닌 해파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아시안 케언스
» 아시안 케언스
공룡화하는 도시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아시안 케언스
중국의 경제특구인 선전(심천)에 제안한 도심의 수직농장 ‘아시안 케언스’(ASIAN CAIRNS)는 급속한 도시화가 초래할 갖가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미래 도시 대안이다.
중국은 현재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 있다. 2020년이 되면 도시 인구가 8억명에 이르고,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221곳, 500만이 넘는 대도시가 23곳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톈진대 인구학 교수인 리지안민의 분석으로는, 2030년 안에 도시 인구가 전인구의 75%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당장 미래형 도시 모델을 갖춰야 한다. 칼보가 제시한 목표는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 비옥한 도시다.
칼보는 이를 위해 풍력 및 태양광 발전시설을 갖춘 수직농장을 만들어 농촌의 생산 모델을 도시로 가져오자고 주장한다. 조약돌 모양의 산길 이정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아시안 케언스’ 건물은 6개의 다목적 수직농장으로 구성돼 있다. 뉴욕의 ‘잠자리’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목표는 농촌을 도시로 가져오고, 소비지와 생산지를 통합하는 것이다. 중앙통로를 따라 서로 층을 이룬 자갈 모양 구조물 안에 주택과 사무실 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중앙통로는 각 건물의 구조틀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이동 통로 역할도 한다. 각종 물자를 나누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도 이 통로를 이용한다.
» 드래곤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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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속으로 들어온 자연과 농촌, 드래곤플라이
그가 설계한 미국 뉴욕의 도시농장 ‘잠자리’(DRAGONFLY) 역시 자연을 도시로 가져오는 개념이다. ‘잠자리’ 빌딩은 농산물과 가축을 기르고 연구하는 일종의 유기농 도시농장이다.
잠자리 날개에서 모양을 본딴 이 건물은 132개층으로 구성되며 높이가 무려 600미터에 이른다. 두 잠자리 날개 사이에는 커다란 온실이 있다. 그것이 태양열을 모으며 낮은 곳에서 올라가는 따뜻한 공기를 흡수해 건물 전체를 자연적으로 환기해준다. 따뜻한 공기는 작물이 빨리 자랄 수 있도록 한다. 낮 동안 사무실에서 만든 열은 밤에 주택을 난방하도록 재생된다. 건물 꼭대기에는 필요한 전기의 절반을 생산하는 150m 높이의 거대한 풍차가 3개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전기는 남쪽 지붕에 있는 큰 태양광전지에서 하루 종일 햇빛을 흡수해 얻는다. 이 건물엔 거주시설과 상업시설도 들어서 완전한 독립적 유기체로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잠자리는 몸무게의 1%밖에 되지 않는 섬세한 날개로 몸을 움직인다. 그런 미세한 구조를 건축물에 적용하려면 자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건축 방법도 경제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 아고라 가든
» 아고라 가든
미래형 친환경 럭셔리 주거단지, 아고라 가든
지금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는 칼보가 설계한 친환경 고급 주거단지 ‘아고라가든’(AGORA GARDEN) 공사가 한창이다. 2010년 국제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으로 2012년 공사를 시작했다. 타이베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101타워(높이 508m)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아파트 역시 자연을 도시에 담아내는 칼보의 기본 건축 개념에 충실하다. 세대별로 유기농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널찍한 발코니를 갖추고 있어 ‘공중 정원’을 구현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하수, 빗물을 재활용해 식수나 정원수로 쓰고 태양광전지로 에너지를 자급하도록 돼 있다. 칼보는 생명의 근원인 DNA 이중나선 구조에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한 층에 두 가구씩 모두 4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 최고 에코유토피아 건축가
» 뱅상 칼보 1977년생인 칼보는 2000년 벨기에 브뤼셀의 빅토르오르타대학 졸업작품 '미술과 문명의 메타뮤지엄-케브랑리'가 르네슈레건축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엔 5만명이 거주하는 상상의 수중도시 디자인 '엘라스티시티'(Elasticity)로 벨기에 미술협회로부터 고드샤를건축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칼보 디자인의 역동성과 표현력, 콘셉트의 일관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진 영상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화가출신 조부모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덕분에 미술적 감각으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건축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 컴퓨터 및 인지과학자 존 매카시 등이 자신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이 2010년에 내놓은 '피살리아'는 20세기 초 헤켈의 미세골격 연구 내용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중이다. 2011년 시사잡지 <타임>은 그를 세계 최고의 에코유토피아 건축가로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 건축계는 그를 일찌감치 주목했었다. 2005년 건축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담디는 세계의 젊은 건축가를 소개하는 작품집 'DD시리즈'의 14번째 주인공으로 그를 소개하는 단행본 <신세계>를 펴냈다. 이는 국외에서 소개된 그의 첫 작품집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살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는 없다.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한국 건축설계 국제공모전에 작품을 냈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지난 2005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노들섬 개발 프로젝트엔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이란 이름의 설계디자인을, 2006년 경기도 전곡선사박물관 국제설계공모전엔 '현무암 절벽'(THE BASALT PRECIPICE)이란 이름의 디자인을 각각 출품한 바 있다. 노들섬 개발 프로젝트는 2011년 박원순 시장이 백지화했으며, 전곡선사박물관은 2011년 개관했다. 앞서 2003년엔 부산시 주최로 열린 광안대교 개발 공모전에 '수면 밑 산호초'라는 작품을 내 장려상을 받았다.
» 2005년 칼보의 노들섬 디자인 '폭풍의 눈'
» 2006년 칼보의 전곡선사박물관 콘셉트 디자인.
» 2003년 광안대교 인공섬 개발 공모전 참여작 '수면밑 산호초'.
뱅상 칼보 홈페이지
http://www.vincent.callebaut.org/
뱅상 칼보 인터뷰영상
http://www.suprememastertv.com/kr/gat/?wr_id=77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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