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명인열전12]'뜨겁지 않은 쑥뜸' 치료법 전수자 심재천씨
'심주섭식 비법' 그대로 건강을 뜬다
한동안 심주섭식 쑥뜸치료법이 건강마니아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심주섭(2003년 작고)옹의 쑥뜸치료법의 핵심은 뜨겁지 않으면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데 있었다. 심주섭옹은 간접구 방식을 채택해 뜨거움을 피하는 대신 지름 5cm 크기의 특수제작 받침대와 어린애 주먹 크기의 큼지막한 약쑥을 사용, 각종 난치병을 고치면서 명성을 얻게 됐다. 뜨겁지 않은 쑥뜸을 창안한 심주섭옹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뜸사랑과 비법은 그의 아들 심재천(50)씨에게 전수돼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 국도변 한 음식점 2층에 자리한 ‘심주섭 할아버지의 뜨겁지 않은 쑥뜸집(www.shimjuseob.co.kr,02-442-9749).’ 예전에 카페로 이용된 이곳은 천장이 매우 높아 쑥뜸 연기를 소화해 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환자 네 명이 엎드리거나 누워서 쑥뜸치료를 받고 있다. 심씨는 의자에 앉아서 바삐 손을 움직이며 약쑥을 절구대에 넣어 쑥봉을 만들고 있었다.

상자에 담긴 약쑥을 한 움큼 집어와 나무절구에 넣어 엄지손가락으로 몇번 다진 다음 나무막대를 꽂고 다시 엄지손가락을 돌려가며 약쑥을 다졌다. 그리고 막대를 쑥 빼니 회색의 원추형의 뜸기둥이 완성돼 나왔다. 대여섯개를 만들고 있는 동안 옆에서 “아저씨 뜨거워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집게로 다 타들어간 쑥뜸을 집어 물그릇에 던졌다.

갑자기 하던 일을 중단하고 반대 편 환자에게 다가가 타오르고 있는 뜸기둥을 쇠주걱으로 누른다. 재가 떨어질까봐 그렇게 하는 거냐고 묻자 그게 아니란다.

“쑥이 진과 잘 어우러져 밑으로 빠져야 하거든요. 쑥 자체가 부실하거나 어디에 구멍이 나면 약기운이 내려오질 못해요. 여기 받침대 안에 연기가 고여 있어야 해요. 구멍이 생기면 연기가 고이지 못하기 때문에 잘 눌러줘야 해요. 쑥봉을 만들 때도 이걸 감안해 만들어야 합니다.”

심씨가 아버지 심주섭옹으로부터 쑥뜸을 본격적으로 전수받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7년째.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쑥뜸을 배워왔건만 그는 여전히 아직도 아버지의 그늘에 있는 자신의 존재임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만큼 심주섭이라는 이름 석자가 쑥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증거다.

“아버지에게서 쑥뜸에 관한 것만 배웠습니다. 아버지께선 쑥 제조하는 것에서부터 쑥 사리 하는 것, 링 받침대 만드는 법, 뜸기둥을 요령있게 뭉치는 방법, 링을 끼워넣는 순서 등을 세밀히 가르쳐 줬어요. 또 뜸을 뜨기 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 뜸을 뜰때 주의할 점, 뜸을 뜨면 안되는 사람, 뜸 뜨면 좋은 시간 등을 알려주셨지요.”

고 심주섭옹의 아들 심재천씨가 나무절구를 이용해 약쑥 뜸기둥을 만들고 있다. 심주섭식 쑥뜸 1장은 일반 뜸 30장의 효력이 있다.

충북 음성 출신인 심주섭옹은 어렸을 때부터 눈썰미가 좋고 손재주가 있었다. 17세때 양조기술을 배운 그는 그 후 양조기술자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50대 중반에 중풍으로 쓰러진 심옹은 살기 위해 백방으로 민간의술을 찾아 다니다 ‘뜸 3000장이면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침구서 구절을 읽고 본격적으로 뜸을 뜨기 시작, 3년 만에 중풍에서 벗어났다.

뜸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심옹은 양조기술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쑥뜸을 연구해 뜨겁지 않은 쑥뜸법(간접구)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간접구는 혈자리에 마늘 생강 소금 등을 올려놓고 그 위에 뜸을 뜨는 전통적 방식.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겉지름 5cm, 속지름 2.5cm, 두께 1cm의 도넛 모양의 링 받침대와 뜸기둥 제조 전용 절구의 개발이었다. 이 받침대 위에 올라가는 뜸기둥 1장은 일반 직접구 30장에 해당하는 크기. 즉 심주섭식 뜸으로 1장(丈)을 뜨면 한번에 30장을 뜨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 그야말로 바쁜 현대인에게 안성마춤인 쑥뜸법인 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일단 소문이 나자 손님들이 밀어닥쳤다. 서울 강서구 고덕동 공무원아파트에서 쑥뜸집을 오랬동안 했는데 하루에 100명 정도가 심옹의 쑥뜸치료를 받았다.

중풍 한자, 위암 환자 등 난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심주섭옹의 쑥뜸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쑥뜸은 특히 여성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심주섭식 쑥뜸의 단골도 대부분은 여성들이다.

심재천씨는 심주섭식 쑥뜸치료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장육부는 만병의 근원지입니다. 그래서 일단 어떤 환자든 증상에 관계없이 복부에 뜸을 놓는 걸로 치료를 시작합니다. 배꼽(신궐)과 배꼽에서 10cm 정도 떨어진 위아래(관원·중완) 모두 3곳에 세번씩 총 9번 뜸을 놓습니다. 그런 다음에 병명과 병세에 따라 정해진 혈자리에 뜸을 합니다.”

쑥뜸 한개가 다 타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배 부위를 세번 뜨는데 45분, 등 부위를 세번 뜨는데 45분 해서 보통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쑥진과 함께 콩과 밀가루로 만든 링받침대도 약효에 한몫한다. 쑥진은 살갗에 침투해 장까지 전달돼 약리작용을 보인다는 것. 콩으로 반든 받침대에서 나온 성분도 몸속으로 침투돼 쑥뜸의 효능을 보강한다는 것이 심씨의 설명이다.

심주섭식 쑥뜸은 개인이 가정집에서도 쉽게 뜰 수 있다는 것이 특징. 약쑥과 링받침대, 나무절구, 나무막대만 있으면 쑥봉을 만들어 쑥뜸이 가능하다. 재료는 ‘심주섭 할아버지 쑥뜸집’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지방은 택배로 배달도 해준다. 나무절구는 한번 구입하면 일단 영구적이라 할 수 있고 링 받침대도 2∼3년은 사용이 가능하다. 약쑥만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400g짜리 약쑥 네 봉지가 한달치 분량.

설명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10년 전에 펴낸 ‘심주섭 할아버지의 뜨겁지 않은 쑥뜸 치료법’(김용태 저). 이 책에는 민속연구가인 김용태씨는 심주섭식 쑥뜸치료의 명성을 듣고 이 요법이 대중화돼야 한다는 신념으로 심주섭옹을 취재해 책을 펴냈다고. 김씨는 이 책을 보강해 2004년 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15년 단골인 윤진홍(61·개인사업)-김태은(59)씨 부부는 쑥뜸으로 위장병과 부인병을 고친 후 건강 유지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들러 쑥뜸을 받는다고 한다.

심재천씨는 원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출판영업의 일을 하면서 틈틈히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아버지를 이어 쑥뜸 일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부친이 작고할 때까지 13년 동안 심주섭식 쑥뜸과 함께한 산증인. 아버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라’가 그의 생활 신조. “안전성으로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건강관리차원에서 보나 쑥뜸만한 것이 없어요. 꾸준히 뜸을 뜨는 게 최고의 건강비결입니다.”

심주섭식 뜨겁지 않은 쑥뜸법의 전수자인 그는 배운대로 아는대로 묵묵히 심주섭식 쑥뜸법으로 환자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하남=글·사진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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