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독일 통합의학 암치료 현장을 가다
(프랑크푸르트.슈투트가르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최대도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기차로 약 2시간을 남쪽으로 달려 도착한 바드 베르크자베른. 전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시골도시에는 아주 특별한 시설이 있다.
언뜻 보면 휴양지에 있는 듯한 분위기가 나는 한 호텔. 이곳 사람들 역시 휴가를 즐기러 온 휴양객들처럼 밝은 표정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뜻밖에도 병원이다. 그것도 일반병원이 아닌 암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암전문병원. 병원에는 상식적으로 생각했던 암환자의 생활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 목격돼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암환자의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만들었다는 병실 내부. 이 곳에 있는 의료진은 환자를 최대한 편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환자와 의사는 마치 친구 같은 사이다.
암환자를 위한 통합치료프로그램 중 하나인 기공체조는 이 병원의 특별한 치료법이다. 심리학자의 지도로 명상과 기공을 함께 하는 시간. 어느 순간 자연 속의 일부가 된 환자들의 얼굴에선 암환자들에게 흔한 우울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이 병원 원장 하거 박사와 동료 베링마이어 박사는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두 사람이 함께 도착한 곳은 명상 치료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암치료 방법이다. 누워있는 사람들은 모두 암환자들. 평온한 모습으로 명상치료를 기다린다.
육신보다도 마음의 치료를 먼저 하는 암환자 병원. 이들은 여기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치료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들을 보면서 한국의 암환자들의 모습이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우리나라 암환자들의 모습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몸의 치료만을 통해서 병을 고치려는 상황에 힘든 한국의 암환자들. 그러나 암치료의 첫걸음을 정신치료로 생각하는 독일의 병원은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고전적 진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치료를 받는 환자의 얼굴에는 오직 평온함만 보일 뿐이다.
하거 박사 병원의 통합 암치료 프로그램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보여준 곳은 미술치료실. 이 곳에서도 명상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과연 암치료와 명상은 어떤 관계일까. 또 미술치료는 암치료에 어떤 효능이 있을까. 그림 그리기가 시작되면 환자들은 다들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다. 미술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고 할 정도로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람들.
하트, 버드나무 등이 그려진 그림들은 자신의 내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짐작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그림 한편을 완성한 환자는 자신의 작품을 놓고 심리학자와 토론을 벌이며 현재 자신의 내면세계에 관해 설명한다 .
그렇지만 이 병원은 꼭 정신치료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피지컬 세라피'(Physical Theraphy)라고 불리는 종양부위를 직접 마사지하는 치료도 있다. 또한 한국에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암세포에 고온의 광선을 투과시켜 암세포의 활동을 저지하는 온열치료 요법도 병행하고 있다.
온열치료를 통해 줄어든 암세포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이 병원이 자랑하는 통합 암치료프로그램의 핵심기술 중 하나다.
<하거 박사 인터뷰>
"이런 치료를 시행하는 데에 밑받침이 되는 철학은 전통적인 치료와 보완적인 치료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보완치료는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개발된 것입니다. 그것은 암을 치료할 때 면역 요법, 심리요법, 물리치료 등을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통적인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함께 받을 경우 그 부작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생존 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 치료를 받는 경우에 암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통합 암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병원을 찾아갔다.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 근교에 있는 베라메드 병원. 언뜻 봐도 생소한 검사를 하고 있다. 환자의 각 신체부위에 각종 기기를 달고 꼼꼼하게 검사하고 있는 이 모습은 암환자를 위한 통상의 검사와는 사뭇 다르다.
<호츠하워 베라메드 병원장 인터뷰>
"여기에서 우리는 영양학적인 진단을 합니다. 신체의 구성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영양분의 구성 성분을 알아둠으로써 암환자가 식사를 하지 못해 죽는 경우가 없도록 합니다. 또 면역기능 향상을 위한 별도의 항산화제를 투여하며 이것은 다른 병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요법으로 매우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입니다. 이 장비가 있으면 영양결핍 상태를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이 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 병원에서는 또 모든 항암치료 때 셀레늄이라는 성분을 사용한다. 국내에선 아직 사용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특별한 광물질. 이 병원은 환자에게 이를 투여해 면역기능을 높인다고 소개한다.
뿐만 아니다. 면역기능을 높여 식생활 또한 개선시킨다. 환자의 모든 것을 꼼꼼하게 챙기며 이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료진의 태도는 진정한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독일의 통합의학 암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한 병원은 인간생명의 고귀한 존엄성과 '네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실천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환자와 혼연일체가 돼 암이라는 무서운 질병과 함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병원.
이곳의 환자와 의료진은 때로는 가족으로, 때로는 친구처럼 서로 의지하며 생활한다. 이들은 오늘도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함께하며 암을 이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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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지원 = 한독 생의학학회 (www.kgbm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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