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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12 15:56
- ▲ 스마트폰의 힘은 즉시성이다. 쌔스코리아 조성식 대표는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약속 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 아이폰을 이용해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한다.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통신장비업체 다산네트웍스의 남민우 대표는 최근 A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CEO들의 친목 모임에 나갔다가 스마트폰(PC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 열풍을 실감했다. 한 사람이 아이폰 (미 애플사가 만드는 스마트폰) 이야기를 꺼내자 모임에 참석한 50대 내외의 CEO 8명이 일제히 테이블에 아이폰을 꺼내 놓은 것. 남 대표는 "작년 12월 모임 때는 나 혼자 쓰고 있었고 1월 모임에서는 나까지 두 사람만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불과 한 달 뒤에는 모두가 쓰고 있었다"며 "요즘 웬만한 CEO 모임에 나가면 화제 1순위는 골프가 아니라 아이폰"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면 뒤처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CEO들 사이에서 느껴졌다"며 "1990년대 인터넷이 막 보급될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했다.
요즘 조찬 모임에서는 CEO들끼리 서로 편리한 기능의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하 앱)을 추천해 주는 게 일반화됐다. 평균 참가 연령이 60대인 한국공학한림원 CEO포럼은 지난달 '스마트폰'을 주제로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의 강의를 들었다. 서울 여의도 미래에셋 6층 회장실에도 스마트폰은 인기다.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애플의 응용프로그램 제공 사이트인 앱스토어에 접속해 매일 10분씩 앱을 '공부'한다. 웬만한 신제품에는 꿈쩍도 않던 CEO들이 왜 스마트폰에 열광할까? 그리고 어떻게 스마트폰을 쓰고 있을까?
Weekly BIZ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CEO들을 조사해 얻은 결론은 'VICTORY'였다. 시각화(Visual ization), 통합(Integration), 소통(Communication), 시의적절성(Timely), 기회(Opportunity), 휴식(Recreation), 젊은 세대(Young)의 머리글자다.
Visualization (시각화)
미국에서부터 쓰기 시작해 2년 이상 아이폰을 쓰고 있는 이노디자인 김영세 대표에게 아이폰은 '시각화 도구'다. 길을 가다가 디자인에 도움이 될 만한 사물을 보면 사진으로 찍어 디자이너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아이디어를 종이에 그린 뒤 촬영해 다른 디자이너와 공유하기도 한다. 그는 "아이폰이야말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옛말을 가장 잘 구현해주는 수단"이라며 "그때그때 생각난 아이디어를 말이나 글이 아닌 이미지로 직원들에게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값어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업체인 다쏘시스템의 버나드 샬레 회장의 경우 한국 고객사를 방문해 CEO를 만날 때 아이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상대방에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영상으로는 쉽게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Integration (통합)
쌔스(SAS)코리아 조성식 대표의 아이폰은 다목적이다. 컴퓨터이자 수첩이고, 내비게이션이자 디지털카메라이다. 그는 간단한 인터넷 검색은 컴퓨터가 있어도 아이폰으로 하고, 컴퓨터에 있는 일정 프로그램과 연동시켜 스케줄 관리도 아이폰으로 한다. 기존 PDA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양복 주머니에 전화기와 PDA를 다 넣고 다니기가 부담스러웠다.
조 대표는 "여러 기기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그러면서도 조작이 쉽다는 단순함이야말로 아이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다음(Daum) 지도 등 실시간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앱을 내려받아 막히는 도로를 피해 갈 때도 아이폰을 이용하고 있다.
CEO들 사이엔 명함 인식 앱도 인기다. 내장된 카메라로 명함을 찍으면 자동으로 명함을 정리해 준다.
Communication (소통)
표현명 KT 사장은 스마트폰을 고객과의 소통 창구로 활용한다. 그는 아이폰 등을 이용해 자신의 트위터(twitter.com/hmpyo)에 글을 남기는데, 소문을 타면서 많은 KT 이용자들이 '팔로잉(following·등록 수신)'한다. 최근 스마트폰 '노키아 5800' 사용자들이 표 사장의 트위터를 통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요청하자, 그는 "고객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다각도로 노력 중입니다"(2월 28일)라고 답한 데이어 "노키아와 협의해 업그레이드를 최종 결정했습니다"(3월 5일)라고 직접 공지를 올렸다.
스마트폰은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유용하다. 모바일 프로그램 제작업체인 포비커의 고종옥 대표는 아이폰용 앱인 'WhatsApp' 메신저를 자주 쓴다. 아이폰끼리 실시간 채팅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 대표는 "직원들에게 일정을 공지하거나 간단한 회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Timely (시의적절성)
CEO들이 꼽는 스마트폰의 최대 강점은 즉각적인 업무 처리에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 DNA를 가진 한국인 CEO들에게 잘맞는다는 것이다.
Weekly BIZ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CEO와 임원 20명을 조사한 결과, 15명(75%)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첫 번째 이유로 "이메일 등을 통해 업무를 즉각 처리할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삼성 옴니아2를 쓰는 CJ오쇼핑 이해선 대표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업무 관련 이메일을 확인하고, 결재도 한다. 뉴스 앱을 통해 경제·산업 소식이나 CJ오쇼핑에 관한 기사를 확인한다.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곧장 자신의 이메일에 전송해 두는데, 이 대표는 이를 '비주얼 DB'라고 부른다.
CEO들이 모여 부동산 투자를 이야기할 때도 바로 구글 위성지도를 띄운 아이폰을 꺼내 놓고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Opportunity (사업 기회)
아이폰을 쓰는 하나금융그룹 김승유 회장은 "스마트폰은 사람의 통화 패턴뿐만 아니라 생활 패턴까지 바꾸는 변화의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회장은 이를 과거 컬러TV 유행에 빗대 이야기한다. 컬러TV의 점유율이 5~10% 수준에선 잠잠했지만, 10%를 넘자 너도나도 컬러TV를 샀다는 것. 스마트폰 역시 일정 점유율을 넘어서면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작년 12월 국내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아이폰용 앱을 출시했으며, 현재 약 2만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기업은행, 신한은행도 앱을 내놓고 있다.
모바일 솔루션업체인 오비고코리아의 황도연 대표는 "인터넷의 등장이 1차 혁명이고, 이메일이나 포털이 2차 혁명이라면, 3차 혁명은 스마트폰"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년 가까이 수많은 모바일 기술이 유행처럼 오갔지만, 스마트폰처럼 판 자체를 바꾸며 시장을 만드는 변화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Recreation (휴식·재충전)
스마트폰은 CEO들이 머리를 식히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해선 CJ오쇼핑 대표가 즐겨 쓰는 'midomi(미도미)' 앱도 그중 하나. 스마트폰에 대고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노랫소리를 들려주면 노래의 제목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표는 "좋아하는 올드팝의 멜로디는 떠오르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을 때 종종 쓴다"며 "스마트폰을 처음 접하는 지인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좋다"고 말한다.
CEO들 가운데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에서 몇 십년이 지난 노래를 듣거나, Mnet(엠넷) 앱에서 국내 인기 가요 동영상을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한 CEO는 "직원 모임에서 아이돌그룹 2PM 이야기를 했더니 젊은 직원들의 말문이 터지기에 나도 즐기고 젊은 세대의 취향도 파악할 겸 틈틈이 최신 뮤직비디오를 본다"고 말했다.
아이폰과 모토로이 등 스마트폰만 2개를 가지고 있는 두산 박용만 회장의 트위터(twitter.com/ solarplant)에는 두산 직원뿐만 아니라 대학생, 고등학생 팔로어(follower·특정인의 트위터를 구독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박 회장은 아이폰의 앱인 에코폰(Echofon)을 통해 하루에도 몇 차례 글을 올리는데, 가족과 이야기하듯이 친밀한 내용이라 인기가 높다. 이를테면 지난달 26일 일본 출장 중 아이폰으로 김연아 선수 경기 소감을 올렸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대결을 일본 회사 휴게실서 일본인 한복판서 관전!! 으아 꼭 이겨야는뎅 ㅋㅋㅋ."
박 회장은 아이폰 내장 카메라로 휴게실과 자신의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곧장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대기업 회장답지 않은 파격에 젊은 팔로어들이 많이 따른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인터넷을 접해온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들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친화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기업 이미지뿐만 아니라 성과 측면에서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충격
스마트폰은 CEO들에게 파괴적 혁신의 무서움을 환기시켜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IT업체 CEO는 이렇게 설명한다.
"CEO 모임에서 아이폰 이야기 나오면 그다음 화제가 뭔 줄 아세요? 바로 삼성전자·LG전자·SK텔레콤입니다. 평생 삼성 애니콜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장님들이 한순간에 '그게 대세(大勢)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내 사업도 그렇게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심리적 충격을 받은 겁니다."
그러나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적응력을 들어 미래를 낙관했다. 그는 "얼마 전 조찬에서 만난 60대 CEO가 돋보기를 끼고 스마트폰 기능을 익히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CEO들의 적응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년간 제조업 중심의 성장 전략으로 달려왔던 한국 CEO들에게, 아이폰이 보여준 소프트웨어 중심의 플랫폼(platform) 사업 모델이나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은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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