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두씨 성공 스토리] 한국 암웨이 매출액 47% 책임


4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68년 한양공대(화학공학과) 4학년 때 선경합 섬(현 SKC)에 입사했다. 첫 직장이자 마지막 샐러리맨 생활을 보낸 곳이 다. 해병대에서 군생활을 한 그는 72년 27세 때 유학차 아내 오영옥씨와 '빈손'으로 미국 시애틀로 향했다. 2년 반 동안 그는 "안해본 아르바이 트가 없다”고 했다.

고층건물 청소와 주유소 펌프질, 식당 접시 닦기가 그의 주특기였다. 아 내도 봉제공장 바느질로 도왔다. 74년 말 시애틀 A백화점 구내식당 사업 권을 취득한 게 '미국 드림'을 실현한 계기였다. 이후 91년까지 17년간 15평짜리 패스트푸드점 3개를 운영해왔다. 일년에 단 이틀만 쉬면서 아 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그는 이를 '세븐일레븐'으로 표현) 일했다. 돈 은 벌었지만 공부는 접어야했다.

90년 그는 교통사고를 2번 당하고 사업은 매출이 떨어져 고민이 많았다.

이때 접한 사업이 바로 암웨이 디스트리뷰터다. 미국인 파일럿 친구인 탐 월리너의 권유였다. 그러나 어려웠다.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이 사업에서 미국은 하루에 5명 만나기도 힘들었다 . 인구밀도가 낮아 차로 멀리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한국에서 이 사업을 한다면…'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때 암웨이는 한국 진출을 본격화하던 시기였다.

91년 암웨이의 한국 상륙과 때를 맞춰 그도 19년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 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다단계에 대한 인식이 미국보다 훨씬 안 좋았던 탓이다. 그는 "자리잡는 데만 5년이 걸렸다”는 말로 어려움 을 표현했다. 애초 '10년 플랜'으로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다고 덧붙였 다. 이 말은 그가 항상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총 1 2단계인 크라운앰배서더DD에 오른 것도 사업 후 꼭 10년만인 지난해 9월 이다.

그는 성공 비결을 "항상 영업(Sales) 마인드를 버렸던 것”으로 꼽는다.

대신 사업을 즐겼다고 표현했다. '믿을만한 회사의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지 물건 팔려고 달려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영옥씨는 "영업과 관리와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자클럽'을 꾸려나가는 것이 사업 내용”이라 강조한다.

국내 최대 다단계판매사인 한국암웨이 최고 자리에 오른 김일두·오영옥 씨 부부의 성공 노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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