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빗장, 법·제도 아닌 코로나19가 열었다
[대한민국 2030 넥스트노멀] ⑦원격의료
헬스케어입력 :2021/05/26 08:18 수정: 2021/05/26 11:17
김양균 기자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정부가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원격의료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건당국은 환자, 의료진, 병원내 감염 확산 차단을 위해 한시적 비대면 의료(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관련 사업이 다수 추진 중이거나 예정돼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원격의료가 팬데믹(대유행)을 계기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및 제4차 감염병관리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대상은 경증 환자·만성 질환자 등으로, 의사는 이들에 대한 전화 상담 및 처방, 대리 처방, 화상진료를 할 수 있다. 또 내원 환자는 병원 내 별도 공간에서 간호사 등 의료인 보조 하에 화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의료계는 원격의료에 절대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환자 수 급감 등 감염병 유행에 따른 직격탄을 맞으면서 기존 입장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한병원협회는 의료계에서는 처음으로 비대면 진료 도입에 찬성했다. 병원협회는 ▲초진 환자 대면진료 원칙 ▲적절한 대상 질환 선정 ▲급격한 환자 쏠림 현상 방지 ▲의료기관 종별 역할의 차별 금지 ▲환자의 의료기관 선택권 보장 등을 전제로 원격의료의 한시적 허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관련해 미국의 의사 커뮤니티인 ‘Sermo’가 비대면 의료를 시행 중인 미국·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독일·영국·중국·일본·스위스 등의 의사 1천3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미국 응답자의 81%가, 나머지 국가들의 참여 응답자 48%가 환자 수가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확진자 발생이 최대치로 증가했을 때, 비대면 의료를 이용한 환자 비율은 94%의 증가율을 보였다고 밝혔다.
지난 20여년 동안 보건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원격의료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본격 도입되고 있다. (사진=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정책지원본부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장점 및 필요성' 캡쳐)
20년 넘게 뜨거운 감자…코로나19 계기 온도 변화
우리나라의 원격의료는 2006년 참여정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원격의료 추진 방향의 틀을 잡았다. 추진 방향은 도서 산간 및 벽오지의 의사가 ICT 기술을 통해 대형병원 전문의로부터 자문을 받는 형태였다.
2014년이 되자, 박근혜 정부는 의료법 제34조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개정안에는 휴대전화나 PC 등으로 환자 진료 및 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대한의사협회와 시민사회단체는 크게 반발했다. 원격의료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보다는 인프라 구축을 맡은 ICT 기업의 주머니만 불릴 것이란 비판이 나오면서, 당시 의료계에서는 ‘핸드폰 진료’라는 말이 나왔다.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의사협회가 같은 해 성인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원격의료에 반대했다.
이후 박 정부가 비영리 법인병원과 영리 자회사 허용 등을 연이어 추진하면서 원격의료는 이른바 ‘의료 민영화’의 대표 격으로 취급받았다. 결국 의료법 34조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19대 국회의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후에도 복지부는 스마트진료, 유헬스 등 이름만 달리한 원격의료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현 정부들어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병원 내원에 부담을 느낀 환자 및 의료진을 위한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자, 해당 조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확산됐다. 여론도 긍정으로 돌아섰다. 작년 경기연구원이 국민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3%가 원격의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국민 여론이 우호적으로 바뀌었지만, 원격의료를 기존 의료체계에 편입시킬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백경희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원격의료에 관한 법제의 개정 방향에 관한 고찰’ 연구를 통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의사-환자 사이의 원격진료에 대한 국민 여론은 우호적”이라면서도 “원격의료 범위 확장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의료법은 원격의료 적용 대상은 오직 의료인에 국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 유럽 등은 원격의료 대상을 모든 환자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사진=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정책지원본부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장점 및 필요성' 캡쳐)
환자-의사 원격진료 확대 허용할 것인가
의료법 제34조는 원격의료를 “의료인(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만 해당한다)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법은 원격의료가 의료진-의료진 사이의 의료 자문으로 범위를 한정지어 놨다.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일본, 중국 등은 원격의료 대상을 모든 환자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환자 가족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의사-환자 사이에 원격으로 진료 및 처방이 가능토록 한 것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장점 및 필요성’을 통해 한시적 허용에 따른 서비스 제공은 의료진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의료법 제34조 제1항의 원격의료 조항은 유명무실하고 정부 정책 방향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디히어 임재성 공동창업자는 “초진 환자에 대한 원격진료 허용 여부가 쟁점”이라며 “한시 허용도 해석에 따라 적용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간 도서 지역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니즈가 강하다”며 “제도 개선을 통한 원격의료 전면 허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우려도 존재한다.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 무엇보다 ‘동네병원’의 붕괴 및 대형병원의 원격의료 의존 현상 등 의료전달체계 왜곡이 벌어질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원격의료를 의료시스템의 일부로 확대 도입하더라도 앞선 우려 사항을 충분히 감안한 절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윤철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장겸 WHO 정책자문관은 원격의료를 떠받치는 하부구조, 즉 지역사회 의료기관이 단단해야 한다고 본다. 의료전달체계 고려 없이 추진되는 원격의료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의료시스템에 대한 고민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료를 망치는 길이다.
원격의료를 기존 의료체계에 편입시킬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진=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래정책지원본부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장점 및 필요성' 캡쳐)
너무 빠른 속도·무게중심 산업발전 쏠림 우려도
최근 의사협회는 정부의 의원급 의료기관 대상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김대하 의사협회 대변인은 “화상진료장비 지원 사업은 한시적 전화 상담·처방제도에서 더 나아간 것”이라며 “의료계와 협의 없는 일방적 추진은 원격진료 도입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는 관련 사업을 빠르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선 ‘한국판 디지털 뉴딜’에 원격의료를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켰다. ‘감염병 안심 비대면 인프라 및 건강취약계층 디지털 돌봄 시스템 구축’을 통해 내년까지 건강취약계층 13만 명을 대상으로 생활습관 개선 등 보건소 모바일 헬스케어 제공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뿐 아니다. 경증 만성질환자 17만 명을 대상으로 웨어러블 보급 등 ‘동네의원’ 중심 건강관리체계 고도화도 추진 중이다. 또 취약 어르신 등 12만 명에게 IoT(사물인터넷)·AI(인공지능) 기반 통합돌봄 시범사업도 진행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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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기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0.4%가 원격의료의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의사협회의 주장이나 여론 조사 결과는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함에 있어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울러 원격의료를 의료정책보다 산업 발전 측면에 더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듯한 인상도 불필요한 논란을 낳는다. 이와 관련 김창엽 서울대보건대 교수는 ‘정부의 원격의료를 둘러싼 주요 논점’을 통해 “원격의료는 코로나19 시기라는 특수한 배경뿐 아니라 전체 사회와 국민 건강, 안전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할 제도”라며 “기본 정의에 대한 검토가 필수”라고 조언했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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