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에 백화점을 연다면...탁월한 사업가일까, 몽상가일까
입력 2021.04.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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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환블록미디어 대표
편집자주
디지털 기술과 금융의 결합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특히 디지털 자산은 금융의 개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도 빠르게 발전 중이다. 기승전비트코인은 기술, 금융, 투자, 정책 등 디지털 자산 시장을 입체적으로 스캐닝한다.
디지털개척, 코인러시 시대를 사는 사람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골드러시 열풍에서 새롭게 부를 일굴 기회가 펼쳐졌던 것처럼 지금은 디지털 개척시대, 코인러시의 시대가 열렸다. 새로운 땅과 코인의 소유권을 인정받고 호텔, 음식점, 환전소를 열어 몰려든 이들에게서 돈을 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역사에 서부개척시대가 있었다. 골드러시. 미국 동부 사람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서부로 향했다. 금을 캐서, 물건을 팔아서 부자가 되자, 숙박업소를 차린 사람, 청바지를 만들어 파는 기업, 음식점, 술집. 새로운 세상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들었다. 개척지 땅에 말뚝을 박아 경계를 치면, 소유권이 인정됐다. 새로운 기회의 땅이 열린 것이다.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개척시대. 코인러시의 시대다. 수많은 벤처기업, 혁신기업이 디지털 세상 속에서 생태계를 만들고, 코인을 쏟아내고 있다. 온라인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유혹해 큰 부를 만들려고 한다.
현실 세계와 가상 공간
가상 공간이 현실인 사람들이 있다. 페이스북은 '오큘러스 퀘스트2'라는 VR 상품을 팔고 있다. 200여 종의 게임이 있는데 그 안에서 마치 내가 실재하는 것처럼 즐길 수 있다.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영웅이 되거나 나이트클럽에서 바람둥이가 된다. 내 분신(부캐)이 가상 공간에서 또 다른 내가 된다.
페이스북이 출시한 VR(가상 현실) 상품 오큘러스 퀘스트2 착용 모습. 오큘러스 제공
페이스북은 가상 세계 '호라이즌'을 만들었다. 앞으로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출근하는 세상이 열린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 제페토에서 연 블랙핑크 팬사인회에는 5,000만 명이 참여했다. 제페토는 멀티버스(Multiverse·다중 세상), 메타버스(Metaverse·가상 세상)다. 내 아바타가 싸인회에 참석해 블랙핑크의 아바타와 즐긴다. 오프라인 세상 사람들에겐 가상이지만, 모바일 부캐에 익숙한 신세대에겐 현실이다.
최근 나스닥에 상장한 로블록스(Roblox)도 멀티버스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논다. 아이템을 매매하고 옷도 사 입는다. 이 로블록스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있다. 로벅스(Robux)다. 로블록스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는 수고비를 로벅스로 받는다. 지난해 9월까지 1만 달러 이상 번 크리에이터가 1,050명, 10만 달러 이상도 250명에 달한다. 개발자와 크리에이터들이 받아간 수익은 2019년 7,220만 달러에서 지난해 2억902만 달러로 급증했다.
진화하는 인간 정체성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현실과 가상 세계의 구분이 무너지고 통합되는 현상을 묘사했다. 슬럼가 출신 주인공과 친구들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사랑과 우정으로 뭉쳐 악덕 기업과 싸운다. 가상 세계에 대한 지배는 현실의 부·권력과 일치한다. 스필버그의 상상이 이미 현실이다.
아이들은 멀티버스 세상에서 내 아바타를 나로 생각한다. 더 이상 부캐가 아닌 나 자신이다. 인간의 정체성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칠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허구를 만들어 협동하면서 자연 선택 없이 진화하는 최초의 동물”이라고 했다.
메타버스(가상 세계) 게임 로블록스의 캐릭터들. 로블록스 제공
메타버스 세상을 꿈꾸는 코인이 디지털 자산시장에서도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회 다룬 대체불가토큰(NFT)은 국내외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로벅스가 NFT 기술과 결합해 가상 세계에서 희소성 높은 재화로 변신한다면? 전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서부개척시대, 경계를 넘어 서부로 향한 이들에게 기회가 생긴 것과 똑같다.
가상 공간의 부동산
블록체인에 가상 세상을 만들어 좌표를 구분해 돈을 받고 파는 프로젝트가 있다. 디지털 부동산 개발업자다. 가상 공간에서 ‘땅’을 파는 것이다. 백화점도 짓고, 음악회도 개최할 수 있다. 여기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통용되는 코인을 사야 한다.
왜 할아버지는 강남에 땅을 사지 않으셨을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이런 한탄을 하는 사람이 많다. 앞으로 30년 후, 우리 손자들이 비슷한 투정을 할지도 모른다. “왜 그때 할아버지는 가상 공간에 땅을 안 사셨어요?”
가상 공간에서 땅을 사 백화점을 만들려는 개발자가 있다. “현실의 백화점은 하루 10만 명 오기도 힘들어요. 가상 공간은 하루 100만 명도 끄떡없어요.” 망상가인가? 사업가인가? 사기꾼인가?
이런 사업가를 위한 디지털 코인들이 부지기수다. 망상가, 사업가, 사기꾼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엘도라도를 찾아 가상 공간으로 몰려들고 있다. 환전상 대신 이들이 사용하는 코인을 바꿔주는 탈중앙금융(DeFi)도 활성화되고 있다. 디파이 프로젝트들은 그들 스스로 코인을 발행하기도 한다.
디센트럴랜드...메타버스의 조물주를 꿈꾸다
가상 공간 부동산 업체 한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천한다는 뜻은 아니다. 코인 투자는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한 후 진행하는 것이 정도다.
디센트럴랜드는 많은 사람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롤플레잉 게임이다. 광장 '제네시스 시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싸우고 권력을 잡는 기존 게임과는 문법이 다르다. 이용자가 직접 소유·관리하며 계속 살고 싶은 매력 있는 메타버스로 만들어 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 게임 디센트럴랜드의 초기 화면.
이 안에서 사용자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가진 아바타로 살아간다. 다른 아바타와 사귀기도 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번다. 디센트럴랜드에서 통용되는 코인은 마나(MANA)다. 마나로 백화점을 짓겠다는 야심가가 있고, 그에게 돈을 대주는 은행이 있다. 개척시대에 철도, 광산 개발에 자금을 댄 은행. 대표적인 곳이 JP모건이다. 디파이는 디지털 공간의 JP모건 같은 역할을 수행 중이다.
가상 공간의 은행
돈을 맡기고 빌리려면 중간에 은행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 세계의 공식을 깨뜨린 것이 디파이다. 은행 없이도 돈을 맡기면 이자가 나오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빌려간다. 환전상 없이 환전하고 증권사 없이 주식을 거래한다. 디파이는 이 교환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동화한 것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유니스왑(Uniswap)이다.
유니스왑은 이더리움이라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가상자산(코인)을 거래한다. 코인 A와 코인 B를 거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이더리움을 매개로 A와 B를 바꾼다. 중간 브로커 없이 가격은 어떻게 결정할까?
암호화폐 간 거래 프로토콜 유니스왑 홈페이지의 환전계산기. 100마나를 이더리움으로 바꾸는 설정이다.
‘유동성 풀’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같은 가격에 거래되는 코인 A와 B가 있다고 하자. 갑이 A와 B가 교환되는 유동성 풀을 만든다. 갑은 유동성 공급자다. 갑은 A 100개와 B 100개를 이 풀에 넣는다. 누군가 이더리움을 주고 A를 50개 산다. A의 가격은 올라가고 B는 떨어진다. AxB가 항상 일정한 값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A 가격이 2배가 됐다고 치자. 이때 유니스왑 거래소에서 A가 B보다 1.5배만 비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군가 거래소 간 가격차를 이용해 이득을 보려할 것이고, 이는 가격 균형을 만든다. 이때 사용되는 기술이 스마트 컨트랙트다. 약속된 조건 'AxB=항상 일정한 값'이 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이자 농사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누군가 유동성을 제공해야 한다. 그 대가는? 디파이에선 이를 이자 농사(Yield Farming)라고 한다.
유니스왑은 유동성 공급자에게 거래금액의 0.3%를 수수료로 준다. 유니스왑 자체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내가 보유 중인 디지털 자산을 유니스왑에 맡겨 두면, 자동화된 프로그램에 의해 다른 사람들이 코인을 교환하고, 나는 이자를 받는다.
그렇다면 유니스왑 자체는 어떻게 돈을 벌까. 자체 토큰을 발행했다. 유니(UNI)라는 토큰이다. 유니스왑을 개발한 개발자들과 네트워크 관리자들이 이 유니 토큰을 나중에 배분받게 돼 있다. 유니 토큰에는 프로그램 변경, 이자율 결정 등의 회의에서 찬반 투표를 할 권한이 있다. 이를 거버넌스 토큰이라고 한다. 이 유니 토큰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 중이다.
디지털 자산시장이 불러오는 변화
로블록스에서 만난 미국 어린이와 중국 어린이는 가상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의 아이템을 교환한다. 사용되는 돈은 달러도 위안화도 아닌 로벅스다.
가상 세계에도 문제는 있다. 가지고 있지도 않은 아이템을 판다고 해놓고, 로벅스만 받아 도망치는 것이다. 이 안에도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다.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어디일까?
“내 이름은 Uopi1290이야. 드래곤 처단하려는데 용자의 칼 가진 사람 연락 바람.”
“나는 SS_JJANG. 용자의 칼 가지고 있음. 얼마?”
“로벅스 250. 어디서 볼까?”
“드래곤 아레나. 먹튀는 용서 없음.”
Uopi1290은 강남구 초등학생, SS_JJANG은 미국 LA로 조기 유학을 간 소년이다. 드래곤 아레나에서 이들은 전투를 준비하는 용사들이다.
최창환 블록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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