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성현 경허선사 (2) 마음수행의 스승들 / 깨달음-마음다스림--

2009/07/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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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성현 경허선사(2)

학철대오한 경허는 유유자적하며 천장암에서

낮에는 맑은 바람과 사귀고 밤에는 밝은 달과 벗하면서

때로는 구멍없는 피리를 불고 때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타면서 무심삼매(無心三昧)에 들어 일 없는 사람이었으며

행함이 없는 참사람이며 모든 배움을 끊고일하는 것이없는 한가로운 도인였다

확철히 깨쳐서 장부의 일을 마친 경허의 대범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여기 있다

어느날 밤 만공스님이 큰 방에 볼 일이 있어 호롱불을 들고 들어가 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방으로 들어와 누워 있는 경허의 배 위에서 놀고 있었다

"스님 배 위에 뱀이 걸쳐 있습니다"

경허는 놀라지도 쫓지도 않고 그대로 누운 채 말했다

가만히 내버려 두어라 실컷 나와 놀다 가도록 내버려두어라"

장부의 일을 마치고 일 없이 법의 기쁨과 세상 밖의 무궁한 즐거움을 누리던 경허가 처음으로 법회를 열어 중생들을 깨치고자 하는 날에 그의 어머니 박씨도 아들이 자기를 위해 법문을 설 한다는 기쁨으로 옷을 갈아입고 맨 앞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법상에 앉아 주장자를 잡고 한동안 묵묵히 있던 경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벌거숭이가 되자 숨 죽이고 있던 신도들은 소리를 지르고 처녀들은 황망히 법당을 뛰쳐 나갔다

완전히 벌거벗은 알몸이 된 경허는 어머니 박씨에게 말 하였다

"어머니 저를 보십시오'

어머니는 크게 놀라고 화가나서 "무슨 법문이 이렇단 말인가?" 하고는 박차고 나가버리자

경허는 껄껄 소리를 내어 웃으면서 벗었던 옷을 하나씩 다시 입고는 주장자를 세번 내리치고는 법상을 내려왔다 이것으로 설법은 끝이다

경허의 첫 설법은 무엇을 의미 하는걸까?

부모로 부터 받은 육신으로 부모로 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법신을 보이려는 뜻이 아닐까

눈 감은 범부는 경허의 육신을 볼 뿐이지만 눈뜬 부처는 경허의 법신을 보는 것이다

드디어 주장자를 꺽어 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훌훌 털고 산을 나서서 빈 배처름 떠돌면서 인연 따라 교화를 배푸니 상투적인 데서 벗어나고 격식을 두지 않았다

53세 때인 1898년도에 부석사에서 금정산 범어사로 가서 영남 최초의 선원을 개설하고 하안거를 지도하는 등 선풍을 진작한다

어느 한때 갈산 김씨의 49재가 있는날 주지인 태허 스님이 장을 보아 법당에 떡과 과일을 푸짐하게 잘 차려 놓았다 법당 앞에는 벌써부터 김씨의 49재가 있다는 소문으로 마을 사람들이 주린배를 움켜지고 웅성거리고 서있었다

태허 스님이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워 막 제사를 올리려는 때에 벌써부터 경허는 차려놓은 떡과 과일을 전부 바구니에 담아 가지고 법당 앞에 모여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남김없이 나누어 주었다

경허의 돌연한 행동에 화가 난 태허 스님은 "왜 제사가 끝나기도 전에 재공양물을 나누어 주느냐?"

경허는 차분하게 대답하였다

"이렇게 49재를 지내야 바르게 지내는 49재 입니다"

죽어서 굶주린 산사람들에게 먼저 보시하는게 죽은 사람의 영가를 천도한다는 것이려라

오대산 월정사를 거쳐 금강산에 도착한 경허는 금강산을 유람하며 무려 175편의 연작시 "금강산유산가' 등 주옥같은 시를 남긴다

경허는 함경도 안변의 석왕사까지 올라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연히 석왕사를 떠난 경허는 호를 난주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서 서민대중 속으로 들어가 교화하는 일에 손을 드리운다

일찍이 이 나라 불교 정신을 찬란하게 꽃피운 신라의 혜숙과 혜공,대안,원효가 그러했듯이 민중 속에서의 거침없는 행동과 무소유 무집착의 삶의 맥을 이어간다

60세때의 경허는 강계에서 서당을 개설하여 김탁,김소산,오화천,최문화,이여성,김유근,강봉헌,한학순,장사윤,김수장 등 수십명의 선비들과 우국지사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미 경허는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뭇사람들은 아무런 역사의식도 없이 홀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불법의 오묘하고 깊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편협한 생각이다

경허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시 한편이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다 귀밑 털이 더욱 희어졌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늙을수록 붉어지네

병들고 술 취해서 나라 걱정 잊는가 했더니

신선 찾던 이곳도 또한 나라일세

조촐한 도시락과 담박한 나물로 위안 삼으며

서울을 잊고자 하는 옛 마음 그대로일세

흉년 생각에 맛난 음식도 삼키기 어렵고

나라 걱정에 등나무로 만든 평상에 누워도 편치 않구나

1912년 4월 24일 방랑길의 한 글방에서 울 밑에 앉아 학동들이 풀 뽑는 것을 구경하다가

길에서 열반의 세계로 입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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