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쓰는 ‘세라믹 新소재 배터리’… 1회 충전으로 1000㎞ 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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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송재우 기자
■ 울산과기원-삼성전자 종기원, ‘리튬 공기전지’ 수명 대폭 개선

차세대 배터리 ‘리튬 공기전지’
공기 중 산소를 산화물로 사용
에너지밀도 높지만 수명 짧아

연구팀 개발한 세라믹 新소재
이온·전자 전도도 모두 뛰어나
충·방전 수명 10 →100회 늘려


“공기로 배터리를 만든다?”

2차전지의 양극재로 현재의 금속 산화물 대신 공기 중 산소를 대신 쓰는 차세대 전지인 ‘리튬 공기전지(Li-air battery)’는 높은 에너지 밀도로 학계와 기업의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에너지 밀도란 쉽게 말해 그릇 안에 한 번에 집어넣을 수 있는 전기의 양을 뜻한다. 전지 내부에서 금속을 빼니까 전체 무게가 가벼워지고 공간도 넉넉해져 한 번 충전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다. 충·방전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면 성능이 나빠져 곧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수명이 너무 짧아 보통 수천 번 이상 재활용하는 2차전지의 장점을 살리기 힘들다. 한 번에 큰 힘은 내는데, 오래 내지는 못하는 고(高)순발력 저(低)지구력 선수인 셈이다. 그런데 한 번의 충전으로 서울∼부산 왕복 거리보다 긴 100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 전지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공동연구팀은 차세대 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리튬 공기전지 내부의 유기물질을 세라믹 소재로 바꿔 그동안 상용화의 난제로 지적돼 온 전지 수명 저하 문제를 해결했다. 리튬 공기전지는 공기 중 산소를 양극 물질로 사용하는 초경량 전지다. 기존 리튬 이온 전지는 양극 재료로 전이금속 합금을 사용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에너지 재료 분야의 저명 학술지인 ‘어드밴스트 에너지 머티리얼스(Advanced Energy Materials)’ 표지 논문으로 선정돼 지난달 13일 출판됐다.

리튬 공기전지는 현재 각종 전자 기기와 전기차에 쓰이는 리튬 이온 전지보다 10배 이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또 공기 중 산소를 전극재로 쓰기 때문에 금속 소재를 사용하는 리튬 이온 전지보다 경량화 측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가볍고 오래 달리는 차세대 경량 전기차 전지로 각광받는 이유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전지 작동과정에서 발생하는 활성산소 때문에 전지 수명이 떨어지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했다. 전지 수명의 획기적 향상은 전지 내부의 유기물질을 슈퍼컴퓨터 양자역학 모델링으로 합성한 신규 고성능 세라믹 소재로 대체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10회 미만이었던 충·방전 수명이 100회 이상으로 크게 개선된 것이다.

신규 세라믹 소재는 ‘혼합도체’로 불리는 소재로, 리튬 이온과 전자를 동시에 전도할 수 있어 전지 내부의 전해액과 도전재(導電材)를 동시에 대체할 수 있다. 또 고체 형태인 세라믹 소재가 우수한 이온 전도성과 전자 전도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라믹 물질은 이온 전도성만 높지만, 이번에 개발된 물질은 전자 전도성 또한 뛰어나다. 이 때문에 전지의 다양한 구성 부품에 쓰일 수 있다. 연구팀은 밀도범(凡)함수 이론 기반의 양자역학 모델링 기법을 통해 이온과 전자 모두 높은 전도성을 갖는 물질을 찾았다. 이를 통해 망간 또는 코발트를 품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구조의 세라믹 소재가 높은 리튬 이온 전도도와 전자 전도도를 동시에 갖는 사실을 밝혔다.

교신저자인 서동화 UNIST 교수는 “신규 세라믹 소재는 전자와 리튬 이온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리튬 공기전지뿐만 아니라 리튬 전고체전지 등 다른 전지 분야에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앞으로 남은 과제에 대해 “혼합도체의 입자 크기와 분포에 따라 방전 용량과 수명 특성이 크게 변할 수 있어 최적화 작업이 필수”라며 “충·방전 반복 시 양극의 혼합도체 표면에 생성된 리튬 부산물이 공기가 양극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 수명이 저하될 수 있는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혼합도체를 3차원적으로 잘 적층하는 기술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수행은 삼성전자, UNIST 기관 고유 사업인 미래선도형 특성화 사업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자원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 용어설명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 산소 원자를 포함한 화학적으로 반응성이 높은 분자. 리튬 공기전지 작동 중에 발생한 활성산소가 전지 내부의 유기 물질을 지속적으로 분해해 전지의 수명을 저하시킨다.

혼합 도체(Mixed Ionic-Electronic Conductor) : 이온과 전자가 동시에 빠른 속도로 전달 가능한 물질

이온 전도도(ionic conductivity) : 어떤 물질 등이 이온을 전달할 수 있는 정도

전자 전도도(electronic conductivity) : 어떤 물질 등이 전자를 전달할 수 있는 정도

밀도범함수이론(DFT·Density Functional Theory) : 물질, 분자 내부에 전자가 들어 있는 모양과 그 에너지를 양자역학으로 계산하기 위한 이론의 하나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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