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들에게는 입주민 모두가 ‘사장님’
  • 전혜원 기자
  • 호수 663
  • 승인 2020.06.03 01:05

 
입주민에게 지속적으로 폭언·폭행을 당하고 숨진 최희석씨는 관리사무소장으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이 소송을 도왔지만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시사IN 이명익입주민에게 폭언·폭행을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의 분향소 앞에서 한 어린이가 조의를 표하고 있다.

‘저 너무 억울해.’ ‘제 결백 발끼세요(밝히세요).’ 삐뚤빼뚤한 글씨의 유서만 남았다. 서울 강북구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59)가 5월10일 숨진 채 발견되었다. 최씨는 지난 4월21일 이후 입주민 ㄱ씨에게 지속적으로 폭언·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ㄱ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시사IN〉은 ㄱ씨에게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최씨는 오래전 서울에 와서 건설 일용직으로 철근 일을 수십 년간 했다. 젊어서는 기능공으로 돈을 벌었지만, 나이를 먹으니 쉽지 않았다. 3년 전쯤 서울 강남구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시작했다. 집과 멀어서 힘들었다. 2018년 8월 집과 가까운 강북구 ㄱ아파트에 1년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사실 그 노동일이라든가 철근 일 하면서는 대우를 못 받지 않습니까. 경비 하면서도 대우를 받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런데 얘가 착하고 열심히 일해서, 입주민들한테 칭찬과 인정을 받다 보니 웃으며 출퇴근하는 거예요. ‘형님, 지금까지 직장생활하면서 이런 데 못 봤다’고 그래요. 열심히 하다 보니 재미있고, 일이 손에 익어서 알아서 착착 하니까, 애기들은 ‘할아버지’, 부모들은 ‘아저씨’ 하면서 따랐습니다.” 최씨의 친형이 말했다. 2019년 8월 최씨의 근로계약이 1년 연장되었다.

 

최씨가 일한 아파트는 1990년에 준공되었다. 2개 동 200여 세대의 작은 아파트다. 초소 두 곳에서 경비원 2명씩 총 4명이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6시에 퇴근한다(이런 근무형태를 24시간 격일제라고 한다). 200만원 좀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 이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이중, 삼중으로 주차된 차량을 밀어 소통시키는 게 경비원의 업무 중 하나다.

 

지난 4월21일 오전 11시13분께, 최씨는 차량을 밀다가 차 주인인 입주민 ㄱ씨의 항의를 받는다(이하 주민 작성 사건일지와 유족 증언 등 종합). “밀지 말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왜 미느냐.” 통상적인 업무라고 답하자 ㄱ씨가 삿대질을 하며 주먹으로 최씨의 얼굴을 쳤다. “야 이 자식아, 경비 주제에 너 우리가 돈 주는 걸로 먹고살면서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냐.” ㄱ씨는 최씨를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사직서를 요구했다. 최씨의 경비복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졌다. 관리사무소장은 해고는 자신에게 직권이 없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4월21일 이후 최씨가 근무한 홀수 날짜마다 ㄱ씨의 폭언 또는 폭행이 이어졌다. 4월23일 오전 7시38분에는 “그만둬라. 여기 꿀단지 묻어놨냐, 왜 그만 안 두냐. 이 ××야”라고 했다. 최씨가 “딸하고 먹고살아야 하니 못 그만둡니다. 미안합니다”라 답하자 “둘 중 하나 죽어야 끝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4월25일 오후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너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니 변호사 준비해라”고 했다. 4월27일 오전 11시35분, 최씨가 화단에 물을 주고 경비초소에 돌아와 화장실을 가려 했다.

 

1평 남짓한 이 아파트 초소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다. ㄱ씨가 따라 들어와 “상처 안 나게 때릴 테니 각오해라. 당장 안 그만두면 내 후배 10명 불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암매장한다”라며 10분 넘게 얼굴과 머리를 폭행했다. 최씨가 “소변 좀 보게 해달라” 하니 ㄱ씨는 “바지에다 싸”라고 했다. 이때 최씨의 코뼈가 부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ㄱ씨는 화장실에서 나와 최씨를 관리사무소로 데려가 또 사직서를 요구했다.

“사직서 안 냈으니까 100대 맞아”

최씨는 이날 점심시간에 자신의 형을 찾아갔다. “딱 와서 보니까 코가 틀어졌어요.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야, 너 코뼈 부러졌다’ 그랬어요. 왜 그러냐니까 막냇동생 같은 사람에게 죽도록 맞았다는 거야. 억울해서 못살겠다고, (ㄱ씨에게) 맞아 죽을 거 같으니까 살려주십시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거길 그만두라 그랬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안 된다고, 다른 데 가서는 인정을 못 받았는데 거기선 인정을 해준다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가야 된다고 다시 근무를 하러 갔어요. 4월28일 (근무를 마치고) 와서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형 나 죽을게’ 하더라고요.

 

그럼 방법이 없다, 경찰서로 가지고 가라고 제가 고소장을 써줬어요.” 최씨가 남긴 음성 유서에 따르면, ㄱ씨는 4월29일에도 최씨에게 찾아와 “너와 나의 싸움은 하나가 죽어야 끝나니까, 경비복 벗고 사복 갈아입고 나오라. 사직서 안 냈으니까 100대 맞아 이 ××야”라고 말했다.

 

5월3일 오전 11시. 폭행에 대한 트라우마로 식사를 못하던 최씨가 경비초소에서 뻥튀기를 먹으려 하는데 ㄱ씨가 또 나타났다. 상처 나 있는 콧등을 비비고 때렸다. 최씨가 경비초소에서 뛰쳐나왔고 ㄱ씨가 넘어졌다. 여기까지는 4월21일부터 있었던 상황의 연장선이다.

 

다만 하나가 달랐다. 입주민 ㄴ씨는 집에 있다가 “저 사람이 때려요” 하는 최씨의 목소리를 듣고 1층으로 내려갔다. ㄱ씨가 같은 입주민 ㄴ씨를 보자마자 “○○ 매니저인데 내가 경비한테 맞았다”라고 말했다. ㄴ씨가 최씨에게 ‘왜 그러시냐’ 물었다. 최씨는 그제야 마스크를 내리고 다친 부위를 보여줬다. 방금 맞은 상처가 빨갛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최씨는 울면서 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때렸어유.” ㄱ씨는 “경비 말 믿지 말라. 저 사람 이중인격이다”라고 주장했고, ㄴ씨는 “이중인격이고 뭐고 간에 때렸잖나”라고 되물었다. 이때, 최씨는 “이번만이 아니고 계속 맞았다”라고 말했다.

ㄴ씨는 최씨를 대신해 큰 소리로 ㄱ씨와 설전을 벌였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창문을 열고 내다보기 시작했다. 경찰이 와서 사람들을 떼어놓고 돌아가자, ㄴ씨는 40분 뒤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또 다른 입주민도 최씨에게로 향했다. 이날 ㄱ씨가 다시 최씨에게 와서 “명예훼손으로 경비 아저씨 신고했다”라고 할 때는 최씨가 혼자가 아니었다. 주민 2명이 곁에 있었다.

ⓒ시사IN 조남진고 최희석씨의 형이 제공한 최씨의 입원 당시 모습(위 왼쪽). 그는 가해자가 최씨를 ‘머슴’이라고 칭했던 문자를 보여주었다(위 오른쪽).

 

그때부터는 달랐다. 5월4일 입주민 몇몇이 최씨 문제로 관리소장을 면담했다. 이날 오후 최씨가 CCTV를 확보하러 관리사무소에 왔을 때 ㄴ씨는 ‘녹음기 켜고 들어가셔라’ 조언한 뒤 같이 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 최씨는 관리사무소장에게 말하는 과정에서 피해 내용을 적어둔 포스트잇을 주섬주섬 꺼냈다가 떨어뜨렸다.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글씨였다. 이래서는 최씨가 경찰 진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답답했다. ‘저거 정리해놓으면 될 텐데.’ “기다리세요. 노트북 가져올게요.”

 

ㄴ씨는 노트북을 가져왔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다시 물어서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이것이 ‘○○아파트 입주민의 경비원 폭행 사건일지’다. 경찰 고소에 활용하라고 주었다. 그런데 그날 8시쯤 최씨가 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죽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려고 해도 집주소를 몰랐다. 밤 12시30분 다시 전화가 왔다. “아파트 뛰어내리려는데 옥상 문이 잠겨 있어요. 죽을랍니다.” 너무 놀라서 1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병원으로 데려가서 입원하게 했다. ㄴ씨의 남편이 밤새 최씨 곁을 지켰다.

 

5월5일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오후 4시 아파트 경로당에 15명이 모였다. 상황을 공유하고, 최씨의 경찰조사와 이후 재판까지 물심양면으로 돕기로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입주민 ㄷ씨는 “앞으로 경비원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 고민하고, 최씨의 입원을 산재 처리하며, 최씨의 소송에 필요한 탄원서 서명을 받고,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8월로 계약만료인) 최씨의 고용안정을 보장하자는 등 논의를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의 절망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5월10일 최씨는 병원에서 빠져나와 자정께 자신의 자택에서 투신했다. 최씨는 음성 유서에서 자신을 도와준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남겼다. “○○이 엄마(ㄴ씨), 아빠. ○○슈퍼 누님. ○○○○호 사모님, 정말 그 은혜 꼭 갚겠습니다. 나 죽어서 저승 가서라도요.”

경비원들은 입주민 모두가 사장님  

최씨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을까? 최씨는 입주자대표회의에 고용되어 관리사무소장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경비원이었다. 4월21일 관리사무소로 끌려가 사표 요구를 받았고, 4월27일 경비초소 화장실에서 폭행당해 코뼈가 부러졌으며, 5월3일에도 콧등을 맞았다. 그러나 첫 피해가 발생한 4월21일부터 5월3일 전까지, 최씨 자신이 4월28일 ㄱ씨를 고소한 것 외에 적절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월21일 이후 초창기에는 최씨의 형이 ㄱ씨와 최씨의 화해를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숨진 최씨는 음성 유서에서 “소장님은 상사이시면서 내가 그렇게 맞고 끌려가고, 당하고 있어도 나 몰라라 했습니다. 제 편은 진짜 손톱만큼도 안 들었어요”라고 했다. 4월21일부터 5월3일 주민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최씨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리사무소장은 “직원과 입주민 사이를 중재하려 노력했는데 잘 안 됐다. ‘하지 마세요’ 요청할 수는 있지만, 소장이 입주민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일부 주민들은 관리소장도 경비원도 ‘머슴’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직원을 보호하는 방법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되물었다. 이 기간에는 중대한 폭행이 있었지만, 그는 ‘중재’를 말했다.

 

 

최씨는 5월3일 전까지 다른 주민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정의헌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공동대표는 “보통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사장님이 한 명이지만, 경비원들은 사실상 입주민 모두가 사장님이다”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취업규칙상 해고 사유 중에는 ‘입주민의 편의 서비스 제공과 친절 등 그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입주자대표회의 3인 이상 또는 아파트 입주민 10인 이상이 연대서명으로 직원의 해임 요청이 있을 때’ 해고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최씨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탄원서에 2시간 만에 100명 넘는 주민이 서명했다. 주민들은 경비원들의 업무 범위나, ‘부당한 지시나 명령을 해선 안 된다’는 공동주택관리법 조항을 아파트 곳곳에 붙여놓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입주민 ㄴ씨는 “여름이 오기 전에 경비초소 밖에 간이 화장실을 만들고 초소 안에는 싱크대라도 설치해서, 밥이라도 거기서 편하게 드실 수 있게 하고 잠자는 공간은 따로 마련하면 어떨지, 뜻 있는 주민들끼리 의논 중이다”라고 말했다.

 

최씨의 형은 “경비 선다고 해서, 청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하고 ‘너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 된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새벽 4시에 첫차 타고 출근하시는 분들, 고통을 받고, 갑질을 당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여기서 그만 안 두고 오래 일할 수 있나 생각하면서 일하시는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죠. 앞으로 내 동생이 마지막 희생양이 되어서, 다시는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이런 일이 없게끔, 정부나 사회 지도층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합심을 해서 ‘최희석법’을 하나 만들어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최희석법’의 내용이 무엇일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 공동체가 오랜 시간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이 한 입주민에게 ‘청소 똑바로 해라’ 등 폭언을 당한 뒤 분신해 숨졌다. 산재로 인정되었다. 2010년에는 경남 창원에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한다’며 주민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경비원이 투신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1년간 일한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씨는 “이번 사건으로 해당 아파트의 주민들, 특히 아이들이 큰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주민들도 피해자인데, 문제를 일으키는 주민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주민들의 상호 감시·견제를 명문화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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