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광주시 서구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앞 8차로 도로로 진입하는 계엄군 탱크 대열. 5·18기념재단 제공
“암, 당연히 처벌해야지. 하지만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어쩌겄어….”
지난 17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김옥수(82·전남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씨가 어머니 이매실씨의 묘비 앞에서 한숨을 지었다. 지병으로 입원 중인 그는 이날 5·18 40돌 추모제에 참석하려고 짧은 외출을 했다.
농사를 짓던 그는 당시 42살, 어머니는 68살이었다. 고향 어머니에게 광주로 유학한 중학 1학년, 초등 5학년 남매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손주들에게 밥을 해주겠다며 두말없이 광주로 왔다.
1980년 5월22일, 어머니는 오후 5시 광주시 서구 쌍촌동 1002-37 자택 2층에서 방문을 뚫고 들어온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다발성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절명했다. 시위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계엄군은 전날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 뒤 외곽으로 퇴각해 광주 시위가 외부로 확산하지 않도록 봉쇄작전을 펼쳤다. 광주로 이동한 20사단 62연대는 이날 광주 국군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계엄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8차선 도로로 들어오다 건물을 향해 소총을 난사했다. 병원에서 200m 떨어진 길가 첫 집에 살던 어머니가 날벼락을 맞은 순간이었다.
“오토바이에 관을 싣고 허둥지둥 오는데 상무대 앞에서 막더라고. 관을 보여주며 통사정했어. 혼자서 입관한 뒤 하룻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채소 팔러 온 트럭에 실어 고향으로 갔어. 선산에 모셨는데 열흘쯤 뒤 검시한다며 다시 주검을 가져오라고 해. 도리 없이 파묘를 했어. 불효에 지금도 눈물이 나와….”
계엄군은 당시를 “시위대가 아파트 등 고층에서 총을 쏴서 응사했다. 사살 3명, 부상 10명, 체포 25명의 전과를 올렸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검찰은 이 일대에서 17~68살 주민 6명이 숨졌다고 봤고 5월단체는 적어도 8명이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검찰이 기소한 것만 9건이다. 광주 외곽인 효천역, 주남마을, 광주교도소 등에서 이뤄진 학살들이다. 검찰은 피해자는 특정했지만, “명령에 따랐을 뿐”인 가해자는 수사하지 않았다. 그 탓에 사건 경위와 피해 규모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민간인 집단학살에 대한 증언은 끊이지 않고 있다. 22~23일 미니버스 총격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한 주남마을 사건은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로도 확인됐다. 이외에도 집단학살 2건이 다른 시간에 일어났다는 목격자 증언도 있다. 보안시설인 광주교도소에선 국가폭력의 실상이 철저하게 은폐됐다. 계엄군이 21~22일 국도를 통과하던 김성수씨 일가, 고속도로에서 담양 주민 4명에게 가한 총격도 폭도의 습격을 격퇴한 것으로 조작됐다.
광주 국군통합병원 민간인 학살로 숨진 이매실씨의 묘지. 안관옥 기자
또 전남대 등에서 체포한 시민들을 교도소로 이송하고 감금하는 과정에서 차 안에 최루탄을 터뜨리고 진압봉으로 구타하다 사망자가 나오자, 주검들을 암매장했다는 계엄군과 교도관의 증언도 나왔다. 24일 송암동에선 계엄군 사이 교전으로 인명 피해가 나자 주변 민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주민 권근립씨의 아들과 친구 등 5명이 학살된 사건도 있었다. 당시 11공수여단 부사관이 지근거리에서 관자놀이를 겨냥해 발사한 M16 총탄을 맞고 숨진 ‘김군’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태껏 행방이 묘연하다. 죽는 장면을 본 목격자가 있지만 아직 주검조차 찾지 못했다.
시위 진압작전 범위를 벗어난 민간인 집단학살 6건에 대해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도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실행 부대 지휘관과 현장 병사 등을 조사해 법적·사회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국가폭력 가해자들은 여전히 민간인 학살을 부정하거나 자위적 수단이었다고 강변한다. 민간인 학살의 증인·증거를 모아 국가보고서에 기록해야 한다. 이어 검찰 고발이나 특검 구성 등으로 사법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17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한 김옥수(82·전남 나주)씨. 안관옥 기자
조사 후 진상규명위가 민간인 학살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면 처벌 가능성을 두고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법조계에선 일사부재리 원칙(한번 처벌한 범죄는 다시 처벌할 수 없다)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등 학살 책임자를 다시 재판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2002년 60개국이 비준, 발효한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의 인도에 반하는 범죄를 적용하면 된다는 얘기다. 로마규정은 국가기관이 체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살해·상해·강간·구금·추방하는 행위를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적시했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반인도적 범죄는 소급금지, 공소시효, 일사부재리 등의 일반 형사원칙에 제한을 받지 않고 처벌할 수 있다는 국제적 합의다.
독일에서 국제형사법을 전공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경규 부연구위원은 “민간인 집단학살을 추가로 밝히면 인도에 반한 범죄 중 살해 혐의의 구성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커진다. 책임자를 처벌하려면 정서적 차원에 머물지 말고 소급적용이 가능한지, 공소시효 문제는 없는지, 다시 재판할 수 있는지 등 법리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묘지에 있는 고 이매실씨의 사진. 안관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