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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영의 풍운아’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9일 향년 83살로 별세했다. 한국 재계에서 그만큼 영욕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기업인도 드물다.

김 전 회장은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정주영 회장 등 다른 1세대 창업가와 달리 샐러리맨 출신이다. 만 31살 때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섬유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해 30년 만에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금융·호텔 등을 아우르는 재계 2위의 거대 재벌을 일구어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다. 1990년대에는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밝힌 것처럼 글로벌 경제를 누비며 ‘세계경영’의 신화를 썼다. 한때 600여개의 해외 법인과 지사망, 35만명의 국내외 직원이 한국 수출의 14%를 담당했다.

하지만 1997년 몰아닥친 외환위기는 세계경영의 몰락을 불러왔다.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을 맡은 뒤 ‘500억불 경상수지 흑자론’을 펴며 경제 위기 타개에 앞장섰지만, 정작 대우를 구하지는 못했다. 환율과 금리가 2배 이상 급등하며 막대한 차입에 의존하던 대우의 숨통을 죄었고, 김대중 정부의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 정책이 겹치며 대우는 1999년 해체 운명을 맞았다. 김 회장은 국외 도피 끝에 20조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분식회계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개월과 추징금 17조9천억원을 선고받은 뒤 2008년 특별사면됐다. 최근 10년간은 ‘제2의 고향’인 베트남 등을 오가며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교육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김 전 회장은 한국 경제에 두 가지 큰 ‘유산’을 남겼다. 무리한 차입에 의존한 세계경영과 확장경영의 말로를 통해 1960년대 산업화 이후 40년간 이어진 재벌의 ‘대마불사 신화’의 종언을 알렸다. 이후 한국 기업의 경영 패러다임은 외형에서 내실 위주로 급속히 전환됐다.

김 전 회장이 1년의 3분의 2 이상을 외국에 머무는 열정으로 이뤄낸 샐러리맨 출신의 ‘세계경영 신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 정신’의 상징이 됐다. 재계는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앞장서 개척한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많은 대기업이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고용에 소극적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룹 경영을 맡고 있는 재벌 3~4세들이 그의 ‘기업가 정신’을 본보기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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