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의 난'이 신동빈 바꿨다, 입찰장의 PPT 열변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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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기자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5대그룹 리더십 대변신 ④신동빈
‘4년의 난’, 신동빈을 바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지난달 17일 대법원이 신 회장의 국정농단사건 상고심에서 항소심(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 판결을 확정하면서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총수 부재 가능성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돌리던 차였다. 하지만 판결 13일 만에 열린 경영회의, “20분 먼저 오라”는 지시에 참석한 자리에선 또 위기가 화두였다. 비상경영선포일은 마침 공모주 청약에서 대박을 낸 롯데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롯데리츠) 상장일이기도 했다. 롯데리츠는 롯데쇼핑이 보유한 상업용 부동산(백화점·마트·아웃렛 등 6곳)에 투자해 임대소득을 배당하는 사업을 한다. 상장으로 실탄 최소 1조원이 확보된 호재가 있던 날이다. 신 회장이 밀어붙여 6년 준비한 리츠 사업이 좋은 출발을 보인 날이었지만 축하할 여력은 없었다. 그룹을 지탱하는 양대 축인 유통·화학의 올해 영업이익 시장 전망치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큰 형상은 형태가 없다’
신 회장이 1월 화두를 내며 함께 한 주문은 크게 넷이다. ▶5년 뒤, 10년 뒤 어떠한 사회가 될 것인지를 예측하라 ▶이를 위한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라 ▶고객ㆍ시장의 변화와 경쟁사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하라 ▶각 계열사 임원은 대표를 도와 이를 수립해 7월에 발표하라 등이다. 6개월 뒤 하반기 사장단 회의에서 ‘과제’를 해 온 각 계열사 대표의 희비는 엇갈렸다. 회의 마지막 날 ‘인터널 IR’이라는 부제로 진행된 행사에선 아예 과제에 대한 가상 투자를 진행했다. 58개사의 대표이사와 임원 150여 명이 각 사 대표의 전략을 듣고 투자를 진행해 점수를 매겼다. 신 회장이 이 자리에서 “위기 속에서 힘을 발휘할 때 기회가 온다”며 보수적인 전략을 질타했다.
![지난 1월 12일인천 관교동 롯데마트 인천터미널점을 둘러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 회장은 일정을 알리지 않은 현장 방문을 늘려가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7/57034924-bf02-4321-a003-2f82edba734d.jpg)
지난 1월 12일인천 관교동 롯데마트 인천터미널점을 둘러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 회장은 일정을 알리지 않은 현장 방문을 늘려가고 있다. [사진 롯데지주]
롯데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몇몇 CEO는 그냥 넘어갈 만한 사안에 대해서도 너무나 집요한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 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고 투옥되는 와중에 중국 사업 실패와 이커머스의 세력 확장 등 유통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불거지면서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이로 인해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한 신 회장이 이른바 '오너 리스크'를 벗어난 이후 그룹을 다잡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히타치 케미칼 입찰, 직접 PPT 띄운 신동빈
히타치케미칼은 롯데 화학부문에서 빠진 사업 부분의 조각, 즉 전자재료사업 부문 고부가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 중의 하나인 음극재와 반도체칩을 외부 충격에서 보호하기 위해 덮은 에폭시몰딩컴파운드 분야에서 높은 점유율(30~40%)을 자랑한다. 8조원 규모의 거래에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은 모두 쏟아부었다. 신 회장이 그룹 총수에 오른 뒤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그룹 투자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롯데그룹 관계자는 “얼마나 애착을 갖고 진행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롯데케미칼 신규사업팀은 거의 매일 미국과 유럽 화학사 관련 검토 보고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의 불확실성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아 히타치 입찰은 불발됐지만, 당분간 롯데의 핵심 투자가 주요 화학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호를 주기엔 충분했다.
화학 스페셜티가 살길, 2016년 놓친 액시올 “아까운 사업”
![5월 9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서 롯데케미칼 에틸렌 공장 준공식. (왼쪽부터) 존 벨 에드워즈 루이지애나 주지사, 이낙연 국무총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해리 해리슨 주한미국대사, 실비아 메이데이비스 백악관 정책 조정관 부차관보, 웨스트레이크 알버트 차오 사장 [사진 롯데지주]](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7/ce08574c-fd83-45ae-9fe8-9b86f8026299.jpg)
5월 9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 레이크찰스에서 롯데케미칼 에틸렌 공장 준공식. (왼쪽부터) 존 벨 에드워즈 루이지애나 주지사, 이낙연 국무총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해리 해리슨 주한미국대사, 실비아 메이데이비스 백악관 정책 조정관 부차관보, 웨스트레이크 알버트 차오 사장 [사진 롯데지주]

롯데그룹 주요 해외 투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롯데그룹 주요 국내 투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12년 이후 롯데그룹 주요 인수합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주사체제 마지막 퍼즐은 호텔롯데 상장
롯데지주 체제는 올해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없어 예정된 금융 관련계열사(롯데카드ㆍ롯데캐피탈ㆍ롯데손해보험)의 처분과 매각은 지난달 마무리됐다. 마지막 퍼즐은 호텔롯데 상장이다. 이를 롯데지주와 합병해 완전한 지주사 체제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와 롯데쇼핑, 롯데물산 등 핵심 계열사의 주요 주주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분 100%를 갖고 있어 상장을 통해 일본 자본의 비율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는 롯데가 풀어야 할 과제로 이질적인 사업의 융합을 꼽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 사업의 손실이 커지자 적절한 시점에 손절매하고, 전혀 다른 업종에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모습에서 신동빈 회장의 결단력이 드러난다”며 “탄탄하게 갖춘 그룹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이종산업간 시너지를 노리고, 동종산업에 종사하는 계열사가 창출하는 시장지배력을 강화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롯데의 위상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그룹 매출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여건 악화에 사업 재편은 환경이 악화하는 기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실적을 만회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글로벌화와 B2B 사업 강화를 택한 롯데의 선택이 맞는 것이었는지를 판단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연말엔 신 회장이 동일인(실제 그룹 회장)으로 지정된 후 두 번째 그룹 인사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인사는 신 회장이 석방된 지 2개월 만이라 거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번 인사가 그의 색깔을 본격적으로 드러낼 첫 번째 인사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사상 최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거친 풍랑을 만난 신동빈의 롯데호는 어디로 갈 것인가. 서울 잠실 롯데그룹 본사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전영선·문희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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