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 '목요일아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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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부양비로 청·장년 연명하는 일본 영화 '어느 가족'
지난해 7월 개봉한 일본 영화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실제 가족은 아니지만, 가난 속에서 가족 공동체를 이룬 아저씨·아가씨·소년·소녀가 할머니의 연금으로 겨우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다. 어느 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지만, 이들은 쉽게 장례를 치르지 못한다. 할머니의 죽음을 알리면 연금이 끊기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을 해야 할 청·장년이 노인을 부양하는 게 아니라, 노인 부양비로 청·장년이 연명하는 극 중 설정은 극단적이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 소득자는 늘고, 연금을 부담할 계층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과연 일본의 고령층은 영화에서처럼 가족 5명을 부양할 소득이 있을까? 한국 고령층은 어떨까. 중앙일보가 17일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함께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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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노인가구 70% 취업자 없는데 월 소득 334만원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와 일본 후생노동성 '국민생활기초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원화 환율(100엔=1011.6원)로 환산한 일본 노인가구(65세 이상 가구주·배우자가 생계주부양자인 가구) 평균 월 소득은 334만9000원(2018년)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 국내 일반 가구의 소득 2분위(하위 20~40%) 계층 소득(277만3000원)보다는 많고 3분위(상위 40~60%) 계층 소득(410만9700원)보다는 적은 수준이다. 일본 노인가구 중 취업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29.1%다. 노인가구 10곳 중 7곳이 일하는 사람이 없는 데도 국내 정규직 초봉 수준의 소득을 일본 노인들은 받고 있는 셈이다.
한일 노인가구(현황 비교).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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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인가구 월 소득은 128만원…대다수가 빈곤층
반면 한국 노인가구의 지난해 가구당 평균 월 소득은 128만6000원이었다. 일본 노인가구의 40%에도 못 미친다. 일본은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더 높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수준은 한국(3만600달러)이 일본(4만1340달러)의 74%다. 그러나 노인가구 소득은 평균 가구원 수, 취업 인원 등 생활 조건은 비슷한데도 한국이 일본보다 특히 낮은 모습을 보인다. 한국 노인가구 대다수가 빈곤가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본 노인가구 중 소득 하위 20%(1분위)에 속하는 가구는 36.5%인 반면, 한국은 61.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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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과 민간 일자리 많은 일본…한국은 공공 일자리 의존
전문가들은 일본의 노인 빈곤율이 낮은 이유는 공적 연금과 함께 민간 노인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1961년부터 국민연금제도가 시작돼 현재 노년층이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국민연금을 도입한 건 1988년부터다. 또 지난해 일본의 실업률은 26년 만에 최저 수준인 2.4%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톨게이트 관리원 등 단순 일자리는 물론 골프장 캐디 등도 노인이 담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민간 일자리 감소로 노인 일자리 사업 등 공공 단기 일자리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13일 내놓은 '고용안전망 확충사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노인 10명 중 7명(68.7%)은 민간 부문 일자리에 취업하고 싶다고 답했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 민간 분야 비중은 2016년 23.0%에서 지난해 16.0%로 감소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취업하려는 노인은 많은데 민간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의 단기 일자리 공급 정책으로는 근본적인 노인 빈곤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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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한국, 연금이 경제 발목 잡는 일본 전철 밟을 수도
문제는 한국이 빠르게 고령사회로 이동해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면, 연금이 경제 활력을 발목 잡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연금 문제는 아베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2007년 1기 아베 정부는 5000만 건의 국민연금 납부기록을 분실해 민주당에 정권을 넘겨줬다. 올해 6월에는 일본 금융청이 '연금 만으론 부족해 노후를 위해 1인당 2000만엔(2억2800만원) 정도의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아베 내각 지지율이 3%포인트 하락(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하는 일도 있었다. 아베 정부는 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국민 불안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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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부담률 높이고 운용 수익 늘릴 대책 세워야"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미리 연금 제도에 대한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진 NH농협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노인은 늘고, 청년층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 구조가 지속할 수 없다"며 "납부자들의 저항이 있더라도 국민연금 부담률을 높이고, 연금의 운용 수익을 높이기 위한 운용 전문가 영입 대책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