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청(제주시 연동) 앞 제2공항 반대 천막 농성 현장.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금 제주에선 섬의 미래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을 사이에 둔 격렬한 논쟁은 단지 새 공항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미래 제주의 역사는 현재의 논쟁을 제주 앞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결정적 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추진하는 쪽은 제2공항이 제주의 미래를 위한 번영과 희망의 거점이라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쪽은 제2공항이 만들 미래는 도민들이 원치 않는 미래라고 맞선다. 제2공항은 제주도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제주가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규모의 관광객들을 제2공항은 실어나를 것이다. ‘한 개의 섬에 두 개의 공항’이 축복을 가져올지 재앙을 몰고올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 저편에서 제주의 미래가 현재 위에 겹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섬은 이미 과거부터 앓고 있었다. 과잉관광이 부른 막개발이 제주 곳곳에서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한겨레> 토요판은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의 생명들을 찾아 떠났다. 먼 곳에서 바라볼 때 오늘도 아름다운 제주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언제까지 아름다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제2공항 부지 안에서 마을과 사람, 오름과 초지, 동굴과 철새 등의 오랜 터전을 빼앗을지 모를 미래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월20일 장문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2공항 추진은 도민의 숙원이자 제주의 미래를 위한 필수 사업입니다. …정부(국토교통부)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재조사를 실시해 오름 훼손도, 동굴 훼손도 없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도민을 위해, 제주의 후손들을 위해, 지금 이 시대, 제주도지사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을 도민의 뜻으로 알고 받들겠습니다.”
제주 2공항에 반대하는 도민들은 다음날 기자회견(제주도의회 도민의방)을 열어 담화문을 반박했다. 강원보(55)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물었다.
“사업 부지 내 오름과 동굴 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국토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쟁점들에 도지사가 결론을 내버렸다. 도민이 원치 않는 미래를 도민이 원한다고 주장하는 도지사는 도민의 도지사가 맞나?”
지금 제주도에선 섬의 미래를 둘러싼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강원보 제주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독자봉 정상에 올라 2공항 예정지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오름…잘려나갈지 모를 생명
기자회견 이틀 전 강원보는 독자봉(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꼭대기에 있었다.
“저기 대수산봉에서 왼쪽으로 한뼘(실제 거리 약 3.2㎞)을 짚고, 거기서부터 반대편 성산기상대 부근까지 이은 땅을 공항이 수용한다는 거다.”
독자봉 꼭대기에서 강원보가 손을 뻗어 거리를 어림했다. 그의 손끝 저편으로 생명들이 펼쳐졌다. 독자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안에서 마을과 사람, 오름과 초지, 동굴과 철새 등의 오랜 터전을 빼앗을지 모를 ‘미래’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독자봉은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망오름’이었다. 독자망이라고도 불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있었다. 왜구가 침략할 때마다 북쪽의 대수산봉에서 봉수를 받아 서쪽의 남산망으로 전했다. 독자봉이 있는 신산리에선 1천년 전부터 사람(현재 인구 1200여명)이 살았다. 중산간 마을이지만 푹 꺼진 마을 형상 탓에 제주에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세 동네 중 하나(나머지 두 마을은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와 애월읍 고내리)가 됐다.
2공항이 들어서면 신산리는 공항 활주로의 남쪽 끝이 된다. 활주로 끝에서 마을까지 1㎞에 불과한 소음·분진 피해 예상 지역이었다. 강원보는 2월1일부터 신산리 이장 임기를 시작했다. 과거 40년 동안 추대로 이장을 맡겼던 마을에서 공항 찬반을 두고 세명이 출마했다. 마을 주민들은 지난 3년 동안 성산읍대책위를 이끌어온 그를 과반 지지율로 당선시키며 ‘반대 의지’를 다졌다.
그들이 원치 않는 2공항은 2015년 11월10일 ‘튀어나왔다’. 국토부는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을 마치며 성산읍의 495만㎡(150만평)를 공항 예정지로 발표했다. 기존 제주공항의 수용력을 평가하고 인프라 확충 방안들(기존 공항 확장, 기존 공항 폐지+새 공항 신설, 기존 공항 유지+2공항 신설)을 검토한 용역이 ‘기존 공항 유지+2공항 신설’ 안(공사비 4조1천억원)을 확정하고 부지까지 결정했다. 성산읍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 공항이 생긴다는 소식을 뉴스로 처음 접했다. 이튿날 제주도는 공항확충지원종합대책본부를 발족하고 공항 주변을 대규모 상업지구로 조성하는 ‘에어시티’ 구상을 밝혔다. 공항 예정지 주민들은 최종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과 협의가 전혀 없었다며 반발했다.
“이게 갑자기 생겼다.”
독자봉 전망대에 서며 강원보가 말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2공항 부지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성산에 2공항’ 발표 한달여 뒤 독자봉 꼭대기엔 전에 없던 전망대가 설치됐다. 공항을 추진하는 국토부 관계자들이 제주를 찾으면 그 전망대에서 공항 부지를 바라보며 보고를 받거나 브리핑했다.
독자봉도 “목 잘리는” 오름들의 명단에 있었다.
2공항의 경제성과 재원조달 방안 등을 평가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는 2016년 12월 끝났다. 한달 뒤 공개된 보고서(예타 보고서)에서 오름들의 ‘운명’이 언급됐다. 비행기 이착륙을 방해해 잘라낼 필요가 있는 주변 오름 10개가 거명됐다. 은월봉 40m, 대왕산 55m, 낭끼오름 90m, 후곡악 50m, 유건에오름 95m, 나시리오름 45m, 모구리오름 100m, 통오름 45m, 대수산봉 40m…. 독자봉이 잃어버릴 높이로는 60m가 제시됐다. 각각 해발 137m와 185m인 대수산봉과 낭끼오름은 3분의 1과 2분의 1을 깎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독자봉에서 내려와 봉우리에서 조망했던 풍경들 속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바라볼 때 무표정했던 것들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을 펴거나 찡그렸다. 통오름, 모구리오름, 유건에오름을 서쪽에 두고 1119호 지방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올라갔다. 독자봉에서 직선으로 7.3㎞ 거리에 대수산봉(성산읍 고성리)이 있었다.
대수산봉도 망오름이었다. 제주도 368개 오름 중 봉수대 터가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혔다. 주위에 돌담을 쌓은 전통 묘소들이 시원한 전망을 껴안으며 봉우리의 햇빛을 받고 있었다. 정면에서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의 풍광이 대수산봉 꼭대기로 뛰어올라왔다.
“대수산봉의 경우 비행안전을 위해 절취가 필요하며….”(예타 보고서)
10개의 ‘비행 저촉’ 오름 중 공항 청사(부지)를 기준으로 활주로 동쪽엔 2개(은월봉과 대수산봉)가 위치한 반면 서쪽엔 8개가 밀집해 있었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고 자연경관 보존을 위해 (서쪽 오름들을 자르지 않는 대신)” 서쪽으로 선회 비행을 피하고 대수산봉을 잘라 동쪽을 이용하도록 하겠다고 보고서는 썼다. 한쪽 선회비행을 전면 차단하는 공항이 비행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국토부가 기존 제주공항 확장안을 배제한 까닭과 2공항 최종 후보지에서 정석비행장(대한항공 조종사 훈련장)을 제외한 이유 중엔 오름 훼손(각각 부소오름과 도두봉) 우려도 포함돼 있었다. ‘기존 공항과 정석은 안 되고 성산은 되는’ 고무줄 잣대란 비판이 거세지자 국토부와 제주도는 비행 안전 절차를 마련해 대수산봉도 자르지 않겠다(2017년 4월)고 밝혔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서 수산초등학교를 감싸고 있는 수산진성의 북문.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그동안 제주가 한번도 겪은 적 없는
관광객들을 실어나르게 될 제2공항
과잉관광 폐해 크게 앓고 있는 제주
2공항이 부를 막개발과 사회 문제들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선 계획 소홀
1천년 된 마을,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
오름, 초지, 성벽, 동굴, 신당, 철새…
정치가 “미래 위해” 2공항 만들 때
그 미래에서 자기 찾을 수 없는 존재들
공항 예정지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어
성, 신당, 동굴…서로를 품으며 살아온 생명
“우리 머리 바로 위로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는 얘기니까.”
수산리 주민 김문식(50·성산읍대책위 사무국장)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날 비가 내린 제주의 하늘은 이튿날(2월20일)에도 흐렸다. 마을 진입로에 꽂힌 깃발들이 세차게 펄럭이며 소리쳤다.
“스톱(STOP) 제2공항.”
수산리도 1천여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수산리는 신산리의 반대쪽 활주로(북쪽) 끝에 해당했다. 신산리와 비슷한 피해가 예상됐다.
제주에서 새 공항 이야기는 이명박 정부 때 구체화됐다. 당시는 ‘기존 공항 확장’과 ‘기존 공항 폐쇄 뒤 새 공항 건설’이란 두 안을 놓고 논의됐다. 기존 공항을 그대로 두고 2공항을 만드는 안은 2015년 11월 사전타당성 용역 발표로 본격화했다. 2공항은 “2010년 연간 약 1500만명 수준이던 제주공항 이용객이 최근 5년간 연평균 11%씩 증가해 2015년에는 2500만명”이 되고 “2030년엔 연간 4424만명의 항공 수요가 발생할 것”(예타 보고서)이란 전제하에 추진되고 있다.
2공항은 제주 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를 예고하고 있다. 반대하는 쪽은 2공항이 실어나를 관광객들은 제주에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라 본다. 이미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의 폐해(2015·2016년 땅값 상승률 2년 연속 전국 1위, 2015년 인구 1천명당 범죄발생률 전국 1위, 2011년 764t에서 2017년 1332t으로 제주도 하루 생활폐기물 2배 가까이 급증 등)를 크게 앓고 있는 제주가 2공항이 불러올 막개발과 사회·환경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선 계획이 전무하다는 우려다. ‘삼다도’ 제주를 구성하는 세가지도 바뀌었다. “돌, 바람, 여자에서 중국인, 게스트하우스, 렌터카가 되더니 지금은 중국인 자리를 각종 박물관이 차지했다”고 도민들은 전했다. “어떤가. 엄청 예쁘지 않나?”
수산초등학교(성산읍 수산리·1946년 개교)는 김문식과 마을 주민들이 공부한 학교였다. 수많은 비행기가 날아다닐지 모를 하늘 아래에서 검은 현무암들이 아담한 학교 건물을 아늑하게 에워쌌다. 현무암 더미는 성벽이었다. 학교를 품은 성이었고, 성에 안긴 학교였다.
수산진성(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2호)은 조선 세종 21년(1439년) 축조를 시작했다. 왜구가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마을 주민들은 성안에 들어가 방어선을 쳤다. 집들도 동서남북 성문들 주위로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70여년 전 주민들이 마을 공유지였던 성을 교육당국에 내줘 학교 문을 열었다. 높이 4.84m와 길이 343.72m의 성벽은 학교 담장이 됐다.
“가장 속상한 게 이 학교다.”
오만탁(수산1리장)이 안타까워했다. 2012년 수산초 학생 수는 유치원생까지 합쳐 23명이었다. 교육청이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시위하며 막아냈다. 마을 돈을 모아 임대주택도 지었다. 육지에서 귀농한 사람들에게 자녀의 수산초 전입을 조건으로 싸게 빌려줬다. 지금은 학생이 80여명까지 늘어났다. 공항이 들어와 소음 피해가 발생하면 주민이 이탈하면서 어렵게 살려놓은 학교의 호흡이 다시 가빠질 것이라고 오만탁은 염려했다.
뿌리로 현무암을 감싼 늙은 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수산진성 북문을 덮고 있었다. 나무 아래엔 사과, 홍시, 막걸리 등을 바치고 하얀 한지를 묶어 치성을 드린 흔적이 있었다. 진안할망당은 성 축조 때 생긴 신당이었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성을 쌓는데 북문 쪽 성벽이 까닭 없이 잇달아 무너졌다. 한 스님이 아이를 바쳐야 한다고 마을에 일렀다. 한 아이를 묻으니 더는 무너지지 않아 성을 완공할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고 어떤 여성이 음식을 놓고 제를 올리니 울음이 그쳤다. 그 장소가 지금도 제주 전역에서 찾아와 기원하는 신당이 됐다.
1276년 한국 최초의 목마장이 시작된 수산평(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초지 한켠에 위치한 수산굴 입구.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고등학생 때 친구들하고 기어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말들이 풀을 뜯는 수산평 한켠에서 수산굴(공항 부지로부터 1.24㎞)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수산평은 국내에서 처음 목마장이 시작된 초지였다. 1276년 원나라가 탐라를 지배할 때 말을 보내 방목했다. 수산리에 넓게 펼쳐진 수산평 위로 공항 활주로의 그림자가 겹쳐지고 있었다.
“수산굴 입구에 불 피워놓고 해안 쪽으로 1㎞ 정도 들어갔다가 연기가 따라와 죽을 뻔했다”며 김문식이 웃었다. 수산굴(천연기념물 제467호)은 소가 땅 밑으로 꺼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입구는 작고 좁았지만 땅 아래에선 용암이 낸 길이 해안을 향해 4675m(빌레못굴·만장굴에 이어 국내에서 세번째로 긴 용암동굴)를 뻗어내렸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수산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신청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김문식이 가끔 수산굴을 찾을 때면 말똥 사이에서 꿈틀거리다 굴러떨어진 뱀들이 굴 입구 밑에서 햇빛을 받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공항을 만들려면 지반을 닦아야 한다. 굴 훼손은 불가피하다. 수산굴뿐 아니라 공항 예정지에 수많은 용암동굴이 숨어 있다. 파악 안 된 굴들이 몇개인지 알 수도 없다. 수산굴만 해도 수많은 작은 동굴들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예타 보고서는 공항 예정지 주위에 6개의 동굴이 있다고 적고 있지만 제2공항 부지 발표 이후에도 새 동굴은 계속 발견되고 있었다. 2017년 10월 밭을 정비하던 중 나온 미확인 동굴도 공장 부지에서 600m 떨어져 있었다. 사전타당성 조사 당시 용역팀은 동굴 파악을 위한 정밀지반조사를 하지 않은 채 조사 비용을 반납(2003년 자료 사용)했다. 공항 부지에서 미확인 동굴의 존재는 대형 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비행기 하중을 견뎌야 하는 활주로 부지로 위험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 2월19일 제주 제2공항 부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주민들이 ‘걸궁’ 놀이를 하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마을, 사람…쪼개질 위기에 처한 생명
온평리(인구 1500여명)는 수산리와 신산리 사이에 있었다. 공항 부지의 70%를 차지하는 마을이었다. 온평리에선 발로 밟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대부분의 땅이 수용 대상이었다.
“동굴을 훼손시키거나 허가 없이 출입하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자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 처벌을 받게 됩니다. 2005년 남제주군수(남제주군은 2006년 서귀포시로 통합).”
온평리 서궁굴 앞에 세워진 경고판이 나뭇가지에 찔리고 있었다. 이끼 낀 동굴 입구로 머리를 들이밀면 어디까지 뚫려 있는지 알 수 없는 습하고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이 길을 잃었다. 서궁굴은 제주 4·3 당시 마을 주민 수십명이 학살을 피해 숨은 은신처였다.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2공항이 들어서면 서궁굴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온평리의 위치는 공항 청사 자리에 해당했다. 상가 개발 등으로 땅값 상승 기대가 없지 않았다. 2공항 건설이 발표되기 전부터 성산읍 일대에선 외지인 토지 취득이 증가(반면 활주로 주변 땅은 토지 거래 실종)했다. 발표 시점인 2015년 11월 기준으로 매입 면적이 한해 전보다 22.1%(229만9099㎡→280만6567㎡) 늘었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주 공항 인프라 확충’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할 때부턴 외지인이 746만8143㎡를 사들였다. 공항 예정지 발표 한달 전엔 부동산 브로커들이 성산읍내에서 주민들과 만나 땅을 거래하는 모습들이 목격담으로 돌기도 했다.
“성산이 공항 부지로 예고되지 않은 시점부터 그들은 왜 성산의 땅을 사들였을까. 성산이 공항 부지가 돼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최순실 개입설(부동산 투기 세력의 작전이 아니고서는 논리적으로 ‘성산 선정’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구심)까지 나온 이유다.”(문상빈 제주제2공항반대범도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허이, 허이, 얼쑤~.”
손으론 징, 꽹과리, 북을 치고 입으론 흥을 돋우며 걸궁(제주에서 음력 정월부터 2월까지 마을의 안녕을 바라며 행하는 풍물굿) 패들이 2월19일 오후 난산리 골목골목을 돌았다. 마을 할머니들이 뒤따르며 소원지를 묶은 새끼줄을 잡고 어깨춤을 췄다. 제주 도민들은 ‘강정 사태’(제주해군기지 건설)를 겪어 알고 있었다. 정치와 행정이 보상을 매개로 국책 토건사업을 밀어붙일 때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깨지는지 지켜봐왔다. “걸궁 놀이는 공항 찬반을 떠나 마을이 쪼개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걸궁패로 참여한 춤꾼)이었다.
난산리는 공항이 고립시킬 마을이었다. 마을 대부분이 공항 청사 뒤쪽에 자리하게 된다. 활주로가 읍내로 진입하는 도로들을 차단해 마을과 읍내가 분리될 처지였다. “마을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주민 ㄱ씨)이 주민들 사이에 있었다.
제주 제2공항 활주로 부지에 집을 수용당할 상황에 처하자 두차례에 걸쳐 80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난산리 주민 김경배씨.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난산리 주민 김경배(51)의 집은 온평리와 난산리의 경계 지점에 있었다. 한라산과 오름과 바다를 한꺼번에 내다보는 땅에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던 그가 직접 터를 닦고 나무를 심어 가꾼 아름다운 집이었다. 활주로가 삼킬 집이었다.
2015년 11월 공항 부지가 발표될 때 김경배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던 그는 며칠 뒤 도청 앞에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12월부턴 서울로 올라가 청와대 앞에 섰다. 그는 42일(2017년 10월10일~11월20일)과 38일(2018년 12월19일~지난 1월20일) 두차례에 걸쳐 제주도청 앞에 텐트를 치고 모두 80일간 단식했다. 1월7일 행정대집행 땐 천막 안에 그를 두고 철거가 강행됐다. 1월11일엔 원희룡 지사와 면담하며 공항 추진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30년 동안 생활을 지탱해준 포클레인도 팔았다. 공항 부지 발표 두달 전 새로 산 포클레인이었다. “제주의 막개발을 막아야 한다며 공항을 반대해온 사람이 개발의 맨 앞에서 파고 부수는 포클레인을 더 이상 몰 수 없”었다.
“국토부가 주민 공청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부지를 확정해버렸다. 그 날벼락을 도지사가 환영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2공항이 들어서야 제주도가 행복해지는지 묻고 가야 한다. 제주의 미래가 걸린 일은 제주도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두차례 단식으로 몸이 상한 그는 눈이 흐려지고 이빨이 들떴다. 집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으나 “나의 싸움이 우리의 싸움이 됐고 그 싸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했다. “공항 건설이 강행돼 집이 강제수용되더라도 끌려나갈 때까지 집에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해 8월 제2공항 연계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훼손된 비자림로(조천읍 대천동) 삼나무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미래…무엇을 품은 미래?
성산읍에서 제주시로 넘어가는 길(조천읍 대천동 사거리에서 금백조로에 이르는 비자림로 일부 구간)에서 거대한 삼나무들의 주검을 만났다. 수백미터 도로변에서 촘촘하게 잘려나간 아름드리 둥치들이 나무의 공동묘지 같았다. 2공항 연계도로 확장 공사 과정에서 훼손(지난해 8월)된 나무들이 허리와 팔다리가 끊긴 채 숲속에 방치(도는 3월 중 공사 재개 예정)돼 있었다. 공항에서 ‘더 많은’ 관광객을 뿜어낼 도로가 섬에 산소를 공급해온 생명들 위에 내려앉으려 하고 있었다.
거쳐야 할 합의 절차를 빠뜨린 채 맞닥뜨린 미래는 접착제로 바른다고 금간 틈이 붙을지 알 수 없었다. 2공항 신설이 발표된 뒤 끊임없는 의혹이 불거졌다. 상대적으로 적합한 지형 조건의 후보지가 빠지고 성산이 낙점된 과정, 탈락한 정석비행장 평가 때 왜곡된 안개 자료(비, 눈, 바람 등의 이유로 비행기가 운항하지 못한 날까지 안개일수에 포함), 성산 후보지가 군 작전 공역(空域·비행에 필요한 공간)과 겹치는데도 최고점을 받은 이유 등 반대대책위가 제기해온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공군참모총장 시절(2017년 3월) 제주를 찾아 2공항에 공군남부탐색구조부대를 설치한다고 발언한 사실도 ‘2공항의 군사공항 기능’(국토부는 극구 부인)을 의심하게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말 이 의혹들을 뒤로하고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에 착수(2017년 예타 보고서 발표 당시 추진 일정은 2018년 기본계획→2020년 용지 보상→2021~2024년 공사→2025년 개항)했다. 그사이 2공항 부지 발표 때 63.7%(제주도 여론조사)였던 도민 찬성률은 32.9%(2019년 2월6일 KBS제주 여론조사)로 주저앉았다.
지난 2월21일 제주특별자치도청(제주시 연동) 현관 앞에서 이날로 36일째 단식농성 중인 엄문희씨(왼쪽 둘째)와 녹색당원들이 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100배를 하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세상의 모든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생명 평화의 길임을 생각하며 12번째 절을 올립니다.”
2월21일 아침 제주도청 현관 계단 앞에서 엄문희(47) 등 8명이 절을 인도하는 음성에 따라 100배를 올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엎드리며 그들은 출근하는 공무원들에게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말없이 물었다.
김경배(1월25일 38일째에 중단)의 단식 텐트 옆에 엄문희와 윤경미(2월8일 23일째에 중단)·최성희(2월16일 24일째에 중단)가 천막을 치며 시작된 ‘제주도청 텐트촌’은 한차례 행정대집행(1월7일)을 당한 뒤 다시 모습을 갖췄다. 이날 엄문희는 36일째 단식 중이었다. 혈당 수치가 처음 60 아래(반복되면 뇌손상 우려)로 떨어졌다. 옆에서 동료들이 차례로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도 그는 홀로 단식을 이어가며 매일 100배를 했다.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배를 깔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받드는 동안 도청 현관 옥상에 붙은 글귀는 흔들림이 없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
엄문희는 강정마을 주민이었다. 제주해군기지가 끝내 들어선 뒤 핵항모까지 입항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그는 열세살 아들을 서울 친정으로 올려보내고 도청 앞에서 살기 시작했다.
“강정의 구럼비 바위가 깨져서 아팠지만 구럼비가 깨지도록 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더 아팠다. 성산의 마을과 사람이 삶터를 잃어서 아프지만, 성산의 오름과 동굴, 철새와 모든 생명들이 다치게 돼 똑같이 아프다. 제주도민에게 묻지 않고 밀어붙이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어떤 생명도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마지막 절을 알리는 스피커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밝힌 생명 평화의 등불로 온누리의 생명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길 기원하며 100번째 절을 올립니다.”
*엄문희씨는 단식 42일째인 2월27일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날 제주도의회는 ‘제2공항에 대한 갈등해결 방안 마련 촉구 결의안’을 임시회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제주/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철새도래지에서 천연기념물 저어새들이 먹이를 잡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제2공항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에서 오조리 철새도래지의 존재는 아예 빠져 있다. 서귀포/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