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와 스티브잡스, 창의성 비밀은?
[중앙일보] 입력 2018.01.27 01:00 수정 2018.01.27 21:42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 졸업식을 기억하시나요?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이 나온 때입니다. 당시 잡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졸업생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잡스의 연설 동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고 미래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큰 영감을 불어넣었죠. 그리고 정확히 2년 후 잡스는 ‘아이폰’이라는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출처: 중앙일보] 다빈치와 스티브잡스, 창의성 비밀은?
미래 일자리 혁명에서 살아남는 법③
본인 회사에서 쫓겨났다 돌아온 CEO
AI 못 따라할 창의성이 가장 큰 무기
새로운 걸 만드는 것만이 창의성 아냐
잡스 “서로 다른 걸 연결해 변주한 것”
기술과 인문학 융합으로 탄생한 아이폰
애플 초기 모델 매킨토시·맥도 마찬가지
출시 직후 아이폰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놨습니다.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산업의 생태계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일상에서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 또한 혁명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언론들은 잡스와 아이폰을 ‘기술혁신’의 대명사, 롤모델로 치켜세웠죠. 세계 각국에선 삼성을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들이 아이폰의 혁신을 따라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잡스의 혁신 정신을 배우려고 합니다. 몇 해 전 세계적 컨설팅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전 세계 900여명의 CEO들에게 가장 창의성 있는 경영인이 누군지 물었는데 잡스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아이폰과 잡스가 성공할 수 있던 진짜 비결은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창의성’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실제로 창의성은 미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이기도 합니다. 지난 회에 살펴본 것처럼 기술혁명으로 다가올 ‘직업 증발’의 시대엔 ‘얼마나 많은 일거리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내일이 달라질 겁니다. 미래엔 기존 직업과 산업 분야에서 열심히 경쟁해 1등 하는 게 아니라 전에 없던 일자리와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창의적이란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의성(創意性·creativity)은 사전적 정의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창의성의 본질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통념처럼 꼭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든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잡스는 창의성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정의하죠.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자신의 인생을 연결하는 지점(connecting the dots)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혼모의 아들, 입양된 사고뭉치
잘 알려진 것처럼 잡스의 출생은 불우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둘은 부부가 아니었죠. 대학원생이었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보냈죠. 자녀가 없던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는 아이를 입양하고 스티브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어린 잡스는 학교에 빠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잦았죠. 학교 공부보다는 다른 취미에 빠져 있었습니다. 비틀즈의 음악을 사랑했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히피 문화를 동경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던 아버지 폴은 지금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어린 시절의 잡스는 그다지 천재성을 보이진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무언가에 빠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집중력은 높았다고 하죠.
“제가 선택한 리드칼리지는 학비가 매우 비쌌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께서 힘들게 모아둔 돈이 제 학비로 고스란히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공부가 그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믿음만 갖고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지나고 보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한 순간부터 흥미 없던 필수 과목을 듣는 대신, 좋아하는 강의만 자연스럽게 청강할 수 있었거든요.”
이후 잡스는 기숙사를 나와 친구 집 등을 전전하며 생활했습니다. 병당 5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병을 팔아서 먹을 양식을 구하기도 했죠. 매주 일요일엔 온전한 식사를 하기 위해 점심을 제공해주는 하레 크리슈나(힌두교의 한 분파) 사원까지 7마일을 걸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잡스가 흠뻑 빠져 있던 것은 서체(캘리그라피) 강의였습니다. 잡스는 “리드칼리지는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다, 학교 곳곳에 붙은 포스터와 상표의 글씨들이 모두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곳에서 잡스는 세리프(serif)와 산 세리프(san serif) 같은 서체를 익혔습니다.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아름답고 예술적인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한 거였죠.
차고에서 태어난 애플, 쫓겨난 주인
청강 생활을 끝낸 잡스는 ‘올인 원 팜(Allin one farm)’이라고 불리는 사과 농장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곳에는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히피들이 많았죠. 어릴 적 동경하던 히피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일본의 선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乙川弘文)을 만나게 됩니다. 선불교를 통해 동양 철학에 심취하게 되고 훗날 인도 히말라야 여행을 할 정도로 빠지게 되죠.
한때 잡스는 스님이 될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승인 오토가와의 만류로 속세에 남게 됐다고 전해지죠. 스승을 떠난 잡스는 ‘아타리’라는 게임 회사에 취직해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 못한 그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죠.
사업 수완과 아이디어가 뛰어난 잡스는 타고난 엔지니어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2를 연이어 내놓습니다. 조잡한 애플1과 달리 대기업들의 다른 컴퓨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던 애플2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허름한 차고에서 2명이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 4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200억 달러짜리 기업이 됐습니다. 하지만 애플에선 그의 경영 스타일을 문제 삼은 이사회가 결국 잡스를 해임하고 맙니다. 1985년 30세의 나이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 거죠.
돌아온 천재, 혁신의 아이콘
몇 달 동안 방황했던 잡스는 다시 현업에 복귀합니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수모로 분노에 휩싸이기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다시 열정을 쏟게 되죠. 이후 5년 동안 잡스는 넥스트(NeXT)라는 회사를 만들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Pixar)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1995년엔 그의 두 번째 작품 ‘토이스토리’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최초의 장편 3D 애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는 오늘날 3D 영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죠. 이후 잡스는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주식회사’, ‘인크레더블’ 같은 대작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키며 화려하게 컴백합니다.
반면 매킨토시의 성공 이후 ‘썩은 사과’가 돼 버린 애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애플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잡스가 설립한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그는 애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년 후엔 다시 애플의 최고 경영자에 오르고요. 1998년 애플은 혁신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감으로 무장한 ‘아이맥’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흑자로 돌아섭니다.
이는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했던 과거 ‘맥’의 성공 방식과도 일치합니다.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할 때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두 갈림길이있다, 애플은 언제나 그 한 가운데에 서 있다”고 말이죠. 기술과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시도는 이때부터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창의성은 경험에서 나온다
잡스와 아이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창의성은 사전적 의미대로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기존에 있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연결해 또 하나의 변주를 만들어내는 게 현대적인 의미의 창의성이란 이야기죠. 이런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선행돼야 합니다.
첫 번째는 경험과 지식, 고민과 아이디어 같은 ‘연결꺼리(things)’가 많아야 한다는 겁니다. 전자공학을 좋아했지만 히말라야에 여행 갈 만큼 선불교에 심취하고 다양한 서체 수업을 들으며 디자인에 빠졌던 잡스는 남들보다 색다른 경험이 많았습니다. 경험을 통해 다양한 지식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했죠.
‘연결 지능’ 융복합 능력 갖춰야
두 번째로 창의성을 제대로 발현하기 위해서는 ‘things’를 이을 수 있는 ‘연결 지능’ 있어야 합니다. 잡스가 핸드폰과 MP3, 노트북을 연결해 스마트폰을 만든 것처럼 말이죠. ‘연결 지능’은 사고의 확산을 통해 길러집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해당 분야에서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범주를 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거죠.
다양한 분야의 지식에서 오는 영감은 그를 미래로 이끌었죠. 새가 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새들의 비행에 관해(1505)’라는 저서를 남긴 그는 그의 모든 재능을 동원해 하늘을 나는 기구를 설계했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기 400년 전의 일입니다. 그가 고안한 기구에는 오늘날 비행기 날개에 적용되는 ‘베르누이의 법칙’이 반영돼 있죠.
이처럼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융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엔 교육의 흐름도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죠. 대표적인 곳이 올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입니다. 디지스트는 국내 최초로 4년간 학부 과정 전체를 무학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공 구분 없이 기초과학과 공학,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을 배우죠.
신의 가장 큰 닮은 꼴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티탄족(Titan)의 아들인 프로메테우스는 사촌인 제우스와 악연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생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올림포스의 지배자인 제우스가 인간을 없애려 하자 그는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갖다 줍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전유물이던 불을 갖다 준 죄로 제우스로부터 큰 형벌을 받습니다. 코카소스 산에 사슬로 묶여 매일 같이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는 것이죠. 하지만 밤마다 간이 재생해 똑같은 고통을 반복합니다. 훗날 헤라클레스가 구출하러 올 때까지 프로메테우스는 매일 매일 비극에 빠지게 되죠.
불은 곧 문명을 의미합니다. 어두웠던 인간들의 원시 세계에 빛을 밝혀주는 도구였죠. 즉, 무언가를 만드는 힘이란 이야깁니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면서 도구를 쓸 줄 알게 됐고 문명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이후 인간은 수차례의 기술 혁신 끝에 오늘과 같은 발달된 문명을 이뤘죠.
하지만 본래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 ‘창조’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덕분에 신의 피조물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의 능력 중 하나를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 창의성이란 뜻입니다.
‘창조’라는 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은 뛰어난 창의성을 지녔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유일하게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댐을 만들어 물길을 가두기고 산을 깎아 터널을 뚫기도 합니다.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들고, 하늘에선 인공 비가 내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AI가 활성화 된 미래 시대에도 마찬가집니다. 수많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직업 증발’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요. 계산하고 암기하며 정리하는 능력 등은 이제 AI를 따라갈 수 없을 겁니다. 인간의 능력 중 AI와의 경쟁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창의성’뿐입니다.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에서처럼, AI라면 두지 않았을 이 9단의 마지막 한 수, 기계는 생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무언가에 앞으로 우리가 찾아야 할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인간혁명’이, 우리가 갖고 있던 창의성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는데 일조했길 바라면서 ‘미래 일자리 혁명에서 살아남는 법’ 세 번째 시리즈를 마칩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다빈치와 스티브잡스, 창의성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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